그러나 이제 한반도의 동축과 서축에서 각기 진행된 남북한 철도 단절구간 연결사업이 바야흐로 그 완성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한반도종단철도(TKR)가 대륙철도와 연계되어 유라시아 대륙을 질주하는 '철의 실크로드'가 구현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지경학적 관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하지만 설사 물리적으로 TKR의 복원과 대륙철도와의 연계가 실현된다 할지라도 TKR이 유라시아 국제운송로의 한 축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철도의 현대화'라는 벽을 넘어야 하며, 안전한 통과운송과 효율적인 운영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적, 기술적, 제도적 측면의 '통합 운송체계 구축'이라는 또 다른 벽을 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철의 실크로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의 기대수준에 비추어 본다면 그동안 대륙철도 연결 사업은 남북한 단절구간 연결을 제외할 경우 사실상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일부에서는 대륙철도와 해상운송을 '대안' 혹은 '대체'의 구도에서 직접 비교하면서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고, 또 일부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구도에서 과연 대표적인 대륙철도라 할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중국 횡단철도(TCR)' 중 어느 노선이 보다 경쟁력이 있느냐는 문제에 몰두하는 등 다소 소모적인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들은 TKR의 구축과 대륙철도 연결이 통일 한반도의 미래에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을 방증하며, 러시아와 중국 등 이해당사국들은 각자 잠재적인 지경학적 위상 변화를 고려하며 전략적 대응을 하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국익 극대화 위한 전략적 태도 요구돼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대륙철도를 조기에 연결하고 우리나라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 태도는 무엇인가?
첫째, 대륙철도 연결사업에 대한 협소한 교통물류적 접근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중심이 된다는 구상의 실현과 유라시아 대륙 진출이라는 관점에서 대륙철도라는 국제운송로가 어떠한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즉 '교통물류적 측면의 경쟁력'이란 프리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복합적인 국가전략 실현의 대상'으로서 러시아 및 중국의 대륙철도에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 러시아와 중국의 국제운송로 발전전략은 각자 그 내부에 국제정치적, 안보적, 경제산업적 측면의 복잡한 계기 및 동기와 상호 연계시키며 복선을 깔고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TSR과 TCR의 경쟁력을 비교하고 그에 기초하여 TKR의 북한지역 통과노선을 선정하려는 태도는 비생산적이다. 북한지역 통과노선의 선정은 우리나라의 의지보다는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관련 당사국 간 '게임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셋째, 교통물류적 측면에서 본다면 환적화물 유치에 초점이 맞추어진 기존의 '동북아 물류중심' 구상에서 벗어나, 향후 구축될 '유라시아 물류체계'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접근로라는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국제운송로가 지닌 전략적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및 자원의 안정적 운송로 확보와 동북아 육상운송망을 연계시키는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국제운송로를 활용하는 전략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양자간, 3자간, 다자간 협의채널 모두 가동해야
그렇다면 대륙철도 연결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정책적 과제는 무엇인가? 현재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륙철도 연결사업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관련국들과의 대화를 그 방식과 수준에서 크게 세 개의 층위(양자, 3자, 다자)로 나누어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양자 간 대화채널에서는 남북 간에 합의된 시범적 열차운행을 차질 없이 시행하고, 북측 철도의 현황 및 실태에 관한 공동조사 및 수도권과 개성공단 간의 정기적인 열차운행 등이 실현되도록 남북이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한-러 및 한-중 간에는 TSR, TCR 등과의 연결을 전제로 한 포괄적 교통협력 문제를 논의하고, 북한의 협력을 유인하기 위한 양자 간 정책방향의 조율이 의제로 제기될 수 있다.
또한 대륙철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의 '경쟁' 구도를 활용하고, 대륙철도 연결에서 북한이 남측의 참여를 배제하려고 하거나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내 SOC(사회간접자본시설)을 선점하려고 하는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 남-북-러 및 남-북-중의 3자 간 대화채널이 동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다자간 채널에 있어서는 유엔의 ESCAP(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이나 UNDP(유엔개발계획)의 TRADP(두만강 개발계획) 회의 등을 통해 우리의 입장에서 대륙철도 연결사업의 현안과 당면과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역내 관련국들 모두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는 교통 프로젝트를 개발하거나 대륙철도 연결 이후의 철도망 운영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륙철도가 통과하는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및 관련 협정에 한국이 조속한 시일 내에 가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륙철도 연결과 관련한 대(對)러시아 및 대중국 협력의 측면에서는 양자대화와 3자대화의 틀에서 철도외교를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기존의 논의 틀을 정부 차원으로 격상시켜 '국제 컨소시엄 구성을 전제로 하는 남-북-러 3국 공동의 북한철도 실태조사'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중국과는 새로운 철도협력의 틀을 확보하고, 그 틀을 통해 중국의 동북지역과 TKR을 연계하는 방안이 갖는 상호이익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관련 정책 주도적으로 추진할 국가조직 필요
이를 위해 우리나라가 무엇보다 시급하게 취해야 할 내부적 대응책으로는 우선 '대륙철도사업단(가칭)'과 같은 조직, 즉 남북 철도연결 사업 완료 이후에 이루어질 대륙철도 연결과 관련된 국가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갈 추진체의 구축이 필요하다. 아울러 동북아 철도망 구축에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교통물류 정보나 정책의 내용을 신속하게 수집·정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대응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동북아교통물류정보센터(가칭)'와 같은 기구가 별도로 설립돼야 한다.
제때에 적절히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륙철도 연결이 자칫 허망한 꿈으로 남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나라가 배제된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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