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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대륙 철도, 그 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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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대륙 철도, 그 꿈과 현실

[대륙 철도의 꿈 (1)] 대륙적 상상력의 복원

최근 나라 안팎에서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구상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 북한과 러시아가 함경북도 나진과 두만강 건너 러시아 도시 하산을 잇는 철도 보수를 위한 공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남한과 북한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편 방북에 대한 협의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TKR과 TSR의 연결, 더 나아가 중국 횡단철도(TCR)까지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철도 연결은 1990년대 초부터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이래 이 지역의 경제통합과 공동번영의 실현을 앞당겨줄 획기적인 구상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우리로서는 이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국토분단으로 잃어버렸던 유라시아 대륙과의 육로를 회복함으로써, 지난 50여 년 동안 사실상 섬나라 국민인 것처럼 살아 오면서 해양 쪽으로만 편향돼 온 민족적 상상력을 대륙으로 다시 넓히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대륙 철도의 꿈'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의 독특한 지정학적 갈등관계와 얽히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이 꿈이 현실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돌파구는 아직 찾아지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새로운 동북아시대를 열기 위한 '동북아 물류중심 추진 로드맵'의 7대 과제 중 하나로 남북한 철도 연결과 대륙 철도와의 연계를 포함한 '동북아 철도망 구축'을 내걸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대륙철도의 꿈'을 되짚어보고, 그 실현의 전망은 어떠하고 걸림돌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어떤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몇 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염원

남북이 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장관급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합의한 데 이어 이달 16일부터는 금강산에서 그 세부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갖기로 함으로써 김 전 대통령이 일관되게 희망해 온, 열차편을 이용한 방북이 실현될지 주목된다. 아울러 남북은 지난해 합의했다가 연기한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구간의 열차 시범운행과 철도 개통식을 실시하는 문제에 대한 협의를 계속 해나가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이철 철도공사 사장을 비롯한 남북러 3국 철도당국 대표들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달리는 특별열차 안에서 회담을 갖고,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면서 실무협의 채널을 가동하기로 했다. 이 회담은 특히 남북러 3국 철도당국 간 회담으로는 역사상 첫 번째였다는 점과 더불어 러시아 측이 북한의 위임을 받아 나진항과 러시아 국경도시 하산 사이 55km 구간의 철도에 대한 투자유치 및 보수공사에 나서기로 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남북 간 철도 연결과 관련해서는 개성공단의 발전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개성공단이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경의선을 통한 육로수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물류의 개선을 위해 남북을 잇는 경의선 철도가 하루빨리 개통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말 개성공단을 방문하러 가던 도중 파주 도라산역 방명록에 "도라산에서 TSR로 런던까지 가는 날을 앞당깁시다"라는 글을 써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방문을 수행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몽골의 정부 관리들에게 남북 간 철도 연결사업 추진현황을 설명하고,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대륙 횡단노선 중 가장 짧은 몽골 종단철도망 구축 및 활용방안에 대해 양국이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한반도 종단철도(TKR)>

한반도 종단철도(TKR, Trans-Korean Railway)는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까지 간 뒤 중국 횡단철도(TCR, Trans-Chinese Railway)로 접속되는 TKR-1,

경원선으로 원산으로 간 다음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다 청진을 거쳐 남양에서 만주 종단철도(TMR, Trans-Manchurian Railway)로 접속되는 TKR-2,

청진까지는 TKR-2와 같으나 청진에서 갈라져 두만강 하구 쪽으로 간 다음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way)로 접속되는 TKR-3 등 세 가지 노선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세 가지 TKR 노선 개념은 모두 남북 간에 철도 연결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적극적인 관심

이런 최근의 남북관계와 러시아의 태도, 업계의 물류수요, 정치인의 수사, 동북아 각국의 관심 등은 남북 철도의 연결과 대륙철도와의 연계가 단순한 구상 차원을 넘어 수요 기반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는 동시에 그 구체적인 실현을 위한 모색이 다각도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구상의 실현을 통해 새로운 동북아시아 시대의 개막을 앞당긴다는 꿈의 크기에 비해서는 현실의 변화와 진척은 아직 더디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험난한 고비를 여러 번 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의 경위를 되돌아봐도 남북 간 및 대륙과의 철도 연결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TKR과 TSR의 연결 구상은 1990년대 초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에서 논의된 아시아 횡단철도(TAR, Trans-Asian Railway) 구축 구상의 한 부분으로 국제사회에서 부각됐고, 2000년에 집권한 러시아의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이 극동지역 개발과 TSR의 활용도 제고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시베리아의 풍부한 자연자원 개발과 극동지역의 물류중계 기능을 연결해 러시아의 국가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을 우선순위로 끌어올리면서 한반도로의 TSR 연장, 즉 TSR과 TKR의 연결을 위한 외교에 적극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2002년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면서 TSR을 타고 장장 24일 간에 걸쳐 기차여행을 한 뒤 모스크바까지 오도록 함으로써 그에게 철도 연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특이한 정상외교 방식을 구사했다.

그런가 하면 남한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이 분단 이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2001년 2월에 방한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TKR과 TSR을 연결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01년 8월 남북이 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연결하기로 합의하는 등 2000년대 초에는 TKR과 TSR의 연결이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미국의 대북한 압박외교의 파장

그러나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특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월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대북 압박외교를 강화함에 따라 남북관계도 덩달아 경색되면서 TKR과 TSR 연결의 전제조건인 남북 간 철도 연결에 비상등이 켜지기 시작했다.그럼에도 남과 북은 이미 합의한 대로 2002년 9월 동시에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을 위한 복구공사 착공식을 가졌고, 그 후 경의선은 2003년 말에, 동해선은 2004년 여름에 각각 연결공사가 완료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당초 2005년 중에 실시하기로 합의됐던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구간의 열차 시범운행과 철도 개통식은 북측이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섬으로써 무산되면서 향후 과제로 남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로는 북한의 군부를 비롯한 보수파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라는 설과 김정일 위원장 자신이 철도 연결을 대남외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로 남겨두기로 작정했다는 설 등 온갖 추측성 설명이 제시돼 왔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부시 정부가 핵 문제, 위폐 문제 등을 제기하며 대북압박의 강도를 높임에 따라 북한이 안보위협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남북 철도 단절구간.

이처럼 남북 간 철도 연결과 TKR과 TSR의 연결에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국제정치, 외교, 안보 측면의 문제가 훨씬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 사정을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관련국들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보수파의 우려

우선 러시아와 유럽은 TKR과 TSR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희망하는 입장이다. 그간의 경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TKR과 TSR의 연결이 유라시아 대륙의 기간 철도로서 TSR의 역할을 강화시킴으로써 각종의 경제적 이득을 얻게 해줄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위상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TKR과 TSR의 연결은 또한 TSR 자체 및 러시아 내 접속노선의 철도시설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해줄 것으로 러시아는 보고 있다. 유럽도 동아시아 지역과의 물류 개선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서 TKR과 TSR의 연결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TKR과 TSR의 연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일본의 경우 대북 외교 측면에서 여러 가지 고려를 할 수는 있지만 유럽으로 보내는 수출상품을 실어나르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대체 수송로를 추가로 갖게 되는데다 동북아지역의 철도 연결이 낳아주는 새로운 투자의 기회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남북 간 철도 연결은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안정시키고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시켜줄 것이니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으로서는 갈수록 늘어나는 남한과의 교역 물량을 소화한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러시아가 선호하는 동해선 또는 경원선보다는 자국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의선의 연결이 유리하다는 점에서 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의 우선순위를 놓고 러시아와 입장이 엇갈릴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이미 강경한 대북 압박외교를 통해 남북 철도 연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안의 극단적인 보수파들이 남북 간 철도가 연결되면 북한이 그것을 남한 침공로로 이용할 수 있다는 냉전시대적 우려를 부시 행정부에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남북 간 철도 연결은 한반도를 대륙과 바로 이어준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것이 빤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달가울 것이 없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국제관계 및 세계경제 연구소(IMEMO)'의 한국연구부를 이끌고 있는 게오르기 불리쳬프 조사국장은 최근 발표한 글에서 "미국의 극단적 보수파들은 철도 연결이 남북 간의 물리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적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에 대해 남한의 보수파와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남북 간 및 대륙으로의 철도 연결 프로젝트가 진전되면 될수록 이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의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전향적 태도 견지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열차 시범운행을 지연시키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상태이지만, 기본적으로 남북 간의 다른 현안들에 비해서는 철도 연결에 대해 비교적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 간 철도 연결은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사업이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다. 김 주석은 이미 1994년에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의장과 면담할 때 남북 간 철도 연결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동시에 그 경제적 효과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당시 그는 "북과 남이 합작만 하면 돈벌이를 많이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의주와 개성 사이의 철길을 한 선 더 건설해 복선으로 만들고 남조선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다 주기만 해도 거기에서 1년에 4억 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 … (이를 포함해 철도를 활용하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도 한 해에 15억 달러(당시 북한 수출입 총액의 4분의 3)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주석의 이런 유훈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남북 철도 및 TKR과 TSR의 연결이 북한에 대해 갖는 경제적, 전략적 중요성은 얼마든지 짐작해볼 수 있다. 남한과 중국, 러시아, 유럽과 철도로 연결된다면 북한은 동북아 물류의 한 중심지(허브)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미국은 물론 러시아나 중국의 일방적인 압박에 대항하는 외교상의 지렛대를 하나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은 철도 연결 과정에서 경제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노후한 철도망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고, 철도가 연결된 뒤에는 철도망 제공을 통해 안정적인 외화수입원도 하나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간 철도 연결이 체제에 위협요인이 된다고 보는 보수파의 우려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TSR로 연결될 TKR의 노선은 동해선이 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을 계기로 북한의 이런 입장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직은 이런 변화가 가시적으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 군부에서 군사적으로 민감한 시설이 집중돼 있는 경원선 노선을 노출시키기를 꺼리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남한으로서는 강릉 북쪽의 저진에서부터 남쪽으로는 포항에 이르기까지 철도가 대부분 단절돼 있는데다, 많은 돈을 들여 이 구간을 복원한다 해도 남한 각지의 인구 또는 산업시설 밀집지역으로의 연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철도 연결의 효과를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국토분단 이전에 사용되던 이 구간의 동해선 철도는 현재는 노반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정부는 동해선의 단절구간을 일단 단선으로 2012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은 세워놓고 있으나 예산배정의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고 있어 계획대로 복원공사가 진행된다고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TKR 노선 선정의 문제에 대해 건설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산업적 물류수요가 거의 없는 동해선을 연결해놓고 화물차는 텅텅 빈 채 오고가고 다만 금강산 관광객이나 실어나를 경우 국민들이 곱게 봐주겠는가"라고 되물으며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 퍼주기 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TKR 노선 선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디나마 북한의 입장에서 신축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청신호로 보자"고 권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내의 북한정보 전문가들은 북한 내 철도시설 개선을 위한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면 북한이 보다 현실적인 연결 노선인 경원선을 선택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하고 있다. 러시아 연구소 IMEMO의 불리쳬프 조사국장도 "TKR과 TSR의 연결 노선이 북한 땅의 어느 곳을 거치게 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전적으로 북한의 결정에 달려 있다"면서 "동해선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의 반대를 누르고 보다 합리적인 경원선의 선택을 승인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철도 개선 위한 재원 조달 문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갈등과 노선 선정 문제 다음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는 북한 철도의 개선에 소요될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다. 북한은 노선 총연장이 5224km, 전철화율이 81%에 이르는데다 대륙으로 연결되는 국제철도 노선이 4개나 되어 외형상으로는 철도강국에 속하지만 오랜 경제난으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철도망 전체가 대단히 노후화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TKR과 TSR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철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그 비용은 20억~4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철 철도공사 사장도 지난 3월 7일 '동북아 미래포럼'의 조찬강연에서 남북 철도 및 TKR과 TSR의 연결이 진전되지 않는 이유로 북한의 내부사정 외에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이 사장은 북한 철도 개보수 비용 조달방법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러시아에서 받을 차관 중 일부를 철도 연결 비용으로 돌리거나 북한이 러시아에 대해 갖고 있는 채무(약 40억 달러로 추산)를 우리가 대신 갚아 주는 방법 등 다양한 구상이 제기되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 이해당사국 중 어디에서도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을 공식으로 제안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 철도 개선을 위한 자금 조달 방안으로는 러시아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국제 컨소시엄 결성 방안이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밖에도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는 방안,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채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TKR과 TSR 연결 사업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나중에 발생할 수익의 배분에서 더 많은 몫을 가져가도록 하는 방안, 일본의 자본을 유치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여러 가지 방안들이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서 오고갈 뿐이지만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돼 TKR과 TSR의 연결이 보다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고, 더 나아가 어느 정도 투자수익성의 전망까지 서게 된다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북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오가는 물동량의 크기, TSR 주변 시베리아의 막대한 자연자원과 관련된 추가 사업기회의 가능성 등에 비추어 TKR과 TSR의 연결 사업에 지분참여를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예상하기 어려운 막대한 투자수익을 선점하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건설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자금조달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지금은 겉돌고 있지만 남북 철도 연결이 실제로 이루어진 뒤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국제컨소시엄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경우에는 우리도 지분참여 경쟁에서 밀려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 철도 개선 문제와 관련해 최근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러시아가 나진~하산 구간의 철도 개보수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로 지난 3월 북러 간에 합의한 대목이다. 이 구간의 철도 개보수를 위한 자본조달 및 공사추진 방식이 어떻게 구체화하는가는 앞으로 TKR과 TSR 연결 사업 전체의 자금 조달 및 집행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9월 아셈과 11월 ESCAP에서도 논의될 듯

아울러 올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에 이어 지난해 실시하려다 유보된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범운행과 철도 개통식이 실시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다 9월 아셈(ASEM, 아시아유럽정상회의)과 11월 ESCAP 회의에서도 동아시아 철도 연결 문제가 주된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어서 그 어느 해보다 '대륙 철도의 꿈'이 부풀어오를 전망이다.

오는 9월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열릴 예정인 아셈에서는 아시아와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이 유라시아 철도 연결을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ESCAP 회의에서는 62개 회원국 교통장관들과 1000여 명의 기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횡단철도(TAR)와 관련된 정부 간 협정이 조인될 예정이이서, TAR의 북부노선인 TSR과 KTR의 연결 문제가 다시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TKR과 TSR의 연결은 보다 현실적, 구체적이면서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대륙으로 철도가 연결되기만 하면 한국이 당장이라도 동북아시아 물류의 중심지가 되고 국운 상승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식의 과도한 장밋빛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TSR의 국제 컨테이너 운송능력은 동북아와 유럽 간 해상 컨테이너 운송 물량의 4~5%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륙으로의 철도 연결이 성사되더라도 당장은 해상운송의 대안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인 보완수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유럽으로의 육지 수송로를 TSR에만 의존하게 될 경우에는 지정학적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러시아의 수송로 독점력 행사로 의외의 봉변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우려를 피하기 위해서는 남북과 러시아의 3국 간 협의채널 외에 남북과 중국의 3국 간 협의채널도 조속히 구축해, TCR로 연결되는 대안의 대륙철도 연결 방안에 대한 협의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륙철도 연결의 열쇠는 지리적 위치상 남한이 아닌 북한이 쥐고 있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남북 철도연결에 나설 것인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한 이해당사국들의 입장과 관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을 좀더 적극적으로 TKR과 TSR의 연결 논의에 끌어들이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상대로 때로는 경쟁의 관계에서, 때로는 공조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준다면 우리가 꾸는 '대륙 철도의 꿈'은 훨씬 빨리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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