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인도를 다녀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제39차 연차총회가 인도의 정보기술(IT) 도시로 떠오르는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렸는데, 이를 취재하면서 일부나마 인도의 현재 모습과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 명암이 교차하는 '30년 뒤 세계3위 경제대국'
인도의 잠재력은 중국과 함께 친디아(Chindia=China+India)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근래 귀가 따갑게 강조되고 있다. 2003년 골드만삭스는 인도가 2050년까지 연평균 5~6%씩 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렇게 된다면 2032년에는 경제규모가 일본을 추월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NIC,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는 "21세기 중국과 인도의 등장은 19세기 독일의 등장이나 20세기 초 미국의 등장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인도는 세계적인 IT 아웃소싱 기지로 성장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베스트셀러 <세상은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도 나와 있듯이 미국의 의사가 퇴근해서 잠을 잘 동안 야간 응급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이 인터넷을 타고 낮 시간인 인도의 의사에게 전달돼 진단과 처방이 내려지는 시대가 됐다. 인도 기업들은 미국 등의 하청생산에만 머물지 않고 자체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 왔는데, 인포시스나 위프로, 타타그룹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고도성장과 중산층의 확대로 인도인들의 자동차 소유대수가 2000년 543만 대에서 2005년에는 900만 대로 늘어났고, 이동통신 가입자 수도 1998년 120만 명에서 2003년에는 2615만 명으로 늘어나는 등 폭발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시장을 겨냥한 다국적 기업의 인도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인도는 여전히 '명암이 교차'하는 나라였다. 인도의 경제 수도인 뭄바이는 세계 최대의 슬럼가 도시라는 또 다른 불명예를 그대로 안고 있다. 눅눅하고 축 늘어지는 날씨에 아무데서나 누워 잠을 청하는 남루한 사람들의 물결,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은 채 몰려다니며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의 새까맣게 때 묻은 손에서 어떤 희망의 싹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교통질서란 없어 보이는 도로에서 외국인이 탄 버스를 경찰은 수시로 세웠고, 어김없이 20루피아가 건네진 뒤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한 인도인 가이드는 "인도 공무원의 업무시간이 9시부터 5시라면, 9시는 집에서 나오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5시는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어서 실제 근무시간은 3~4시간밖에 안 된다"며 공무원의 부패와 나태를 비꼬았다. 시골 고속터미널을 연상시키는 뭄바이 국제공항의 모습에서 이 나라가 당면한 큰 고민 중 하나인 사회간접시설 부족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급 호텔에서도 점심 한 끼 먹는 사이에 정전이 5번이나 거듭됐다. ADB 총회에 참석한 한 국내 은행장은 "여전히 할일이 많은 나라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그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말한 것이다.
"인도가 무서운 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8억 명에 집중해서는 인도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뭄바이에 8년째 근무하고 있는 신한은행 국성호 인도지점장은 "정말 무서운 부분은 눈에 하나도 안 띈다"고 말한다. 8억 명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안 나오지만, 나머지 2억 명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인도는 이미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이란 것이다. 국 지점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도라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몇 번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늑대가 나타났다"며 인도 경제가 무섭게 탈바꿈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이 해안에서 시작해 내륙으로 퍼져가는 점→선→면 방식의 제조업 발전전략을 택했다면 인도는 기술적 능력과 지식산업에서의 경쟁우위를 활용해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가는 전략을 실험하고 있다. 인도는 사실 자원, 시장, 기술, 인력 등의 측면에서 제조업이 갖춰야 할 여러 경쟁우위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인도는 세계 6위의 철광석 매장량을 갖고 있고, 알루미늄 원료인 보크사이트는 세계 5위의 매장량을 갖고 있다. 고무, 목재, 원유, 천연가스의 매장량도 풍부한 편이다. 농업 역시 여러 기후대에서 다양한 작물 재배가 가능해 농산물 가공산업의 잠재력이 크다. 우유, 차, 콩은 세계 최대의 생산량을 갖고 있고, 소 등 가축은 사육두수로 보면 세계 최대다.
현재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은 생산가능 연령(15~59세)이 2010년쯤 정점에 이른 뒤 감소하리란 전망이지만 인도는 인구증가율이 높아 향후 20년 간 인구가 계속 증가해 제조업의 인력 풀을 갖게 되리란 예상이다. 인력의 질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인디아공대(IITs), 인디아과학대(IISc) 등 미국 MIT에 비견되는 연구능력을 가진 과학ㆍ기술대학에서 매년 500명의 이공계 박사와 20여만 명의 공학 전공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어를 잘 하고 상업성이 몸에 밴 인도 젊은이를 스카우트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20만 달러의 초봉을 받는 인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그간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아시아 금융을 주름잡던 인도 출신 금융인들이 고액의 스톡옵션을 받고 인도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마이크 자피로브스키 모토롤라 사장은 "명석한 엔지니어뿐 아니라 기업가 정신과 경영능력 측면에서도 세계에서 따라올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인도는 이미 디자인 능력과 엔지니어링 능력에서 독일 다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엔지니어링과 경영능력을 기반으로 인도 기업은 품질향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ISO 14001 등 품질개선 프로그램을 채용하는 기업이 매년 늘고 있다. 2003년에는 인도 기업들이 일본의 과학기술자연합이 주는 '데밍 상' 8개 중 5개를 휩쓸었다.
동아시아 쪽으로 중심이동하는 인도의 무역
2004년에 들어선 신정권은 경제성장 동력을 높이기 위해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으나 연합한 좌파의 반대 등으로 국유기업 지분 매각, 노동법 개정, 외국인투자 규제 완화와 같은 주요 개혁과제가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싱 수상 등 인도 지도부의 개혁의지가 강해 느리지만 개혁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의 반사이익을 크게 얻을 가능성이 있다.
한덕수 부총리는 인도 현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장관 등 지도자들을 만나보니 생각이 굉장히 올바르다"며 "1990년대 초만 해도 퀴퀴한 사회주의였는데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이게 옳지 않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장애물만 없다면 (인도 경제는) 굉장히 잘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가 1990년대 이후 동방정책(Look East)을 추진하면서 인도의 대외무역이 서구 중심에서 동아시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과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앞서서 뛰고 있다.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경우 LG, 삼성이 전체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연산 30만 대의 현지 공장을 통해 승용차 시장에서 약 2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포스코는 동인도 오릿사 주에 1차로 연산 300만 톤의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중국에 비해 인도는 우리와 멀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에 비해 우리의 대 인도 수출은 7%, 투자는 6%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할일이 많은 곳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중국 못지않은, 또는 중국을 능가하는 인도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bonghyun.lee@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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