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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버는 능력, 파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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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버는 능력, 파는 기술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환율급락의 내막

속절없이 하락하는 환율을 바라보는 외환 당국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시장에 맡겨두자니 중소 수출기업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달러를 사들여 원화 가치를 지탱하자니 개입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국회니 미국이니 눈치 볼 곳도 많다.

"3월과 4월에는 외국인들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주식배당금을 송금하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할 것"이라던 당국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일주일 연속 하락하며 950원 선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성태 신임 한은 총재가 "올해 평균 환율은 작년보다 많이 낮지는 않을 것이란 당초 예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말발'이 서지 않는 느낌이다.

***대규모 수출기업들의 작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국자들은 달러를 연일 시장에 쏟아내는 대규모 수출기업들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1분기에 올해 목표 수주액의 40% 이상을 달성할 정도로 잘 나가는 조선업체만 해도 외환시장에 현물환, 선물환 할 것 없이 달러를 뭉치로 밀어내고 있다. 달러를 많이 벌어오니 팔지 않을 수 없겠지만 "파는 방식이 약지 못하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말부터 환율 하락에 베팅해 온 역외세력의 의도는 수출 대기업의 달러 밀어내기를 에너지원 삼아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역외가 주변상황이 유리해질 만할 때 집중력을 발휘해 달러를 매도하면 국내 은행이 따라 들어간다. 이어 막대한 달러를 가진 수출 대기업이 가세해 환율을 단기에 10~20원씩 끌어내린다. 역외세력이 '방아쇠'를 당기면 은행이라는 '공이'가 수출 대기업이란 '탄약'을 쳐서 원화 가치를 쏘아 올리는 양상이다. 지난 1월 초에도 그랬고 이달 들어서 나타난 환율 하락도 마찬가지다.

역외세력이 합심해서 환율을 끌어내리는 것이 분명히 보이면 당국의 대응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역외가 촉발하고 은행과 수출대기업이란 증폭기를 거쳐 환율이 떨어지다 보니 '투기세력'의 '준동'이라고 이름 붙여 응징하기도 어렵다는 데 당국의 고민이 있다. 외환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출기업의 외환 담당자들의 생각이 한 쪽으로 쏠려 있다"며 "마치 '죄수의 딜레마'처럼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먼저 달러를 팔겠다고 머리를 들이미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상사에게 보고한 것이 뒤집어질까 노심초사한 나머지 민감한 시기에 달러를 서둘러 시장에 퍼붓는 외환 담당자들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에서는 "당국이 크게 한번 환율 수준을 끌어올리는 개입을 해서 거대 수출기업의 외환 관리 관행에 경종을 울리려 하는 것 아니냐"며 경계심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외부 상황이 환율 상승에 유리해지는 국면과 맞물리면 이런 민간 외환 담당자들이 인사조치를 당할 정도의 환율 급상승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등 터지는 중소 수출기업들**

환율 급락은 기업들에게 채산성 악화와 수출 감소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올해 초 1000원과 990원, 980원이 연이어 무너질 때는 채산성을 우려해야 했지만 950원 아래로 내려가면 수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산업연구원의 최근 조사에서 중소 수출기업의 수출이 불가능해지는 환율은 928원으로 나타났다. 조사시점의 환율인 970원대에서 이미 적자를 보고 있다는 기업이 26%, 손익분기점에 직면했다는 기업이 54.6%였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원화 절상률이 세계최고 수준이고 △수출 결제통화가 달러에 집중돼 있으며 △환율 하락분을 수출가격으로 전가하지 못하고 있다며 "환율은 우리 기업에 너무 아프게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두 자릿수 수출증가율이 유지된다고 해서 우리 기업이 원화 절상을 극복하고 수출 전선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수출 채산성이 악화되고 수출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상황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화 절상의 영향은 실제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퇴장하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42.2%에서 지난해에는 32.4%로 줄어들었다. 전체 수출이 증가함에도 중소기업 수출 비중이 감소한 것은 최근 2년 간 환율이 급격히 하락한 때문이다. 무역협회 무역연구소에 따르면 수출실적을 기록한 중소기업은 2004년 3만645개 사에서 지난해에는 2만8542개 사로 2103개 사가 줄었다.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대다수가 환위험을 헤지하지 않고 있다. 무역연구소가 지난해 수출실적 1천만 달러 미만의 수출업체들을 조사한 결과 73.8%가 환위험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과 해당 분야의 지식 부족'이 62.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정부의 의지와 업계의 전략은?**

이번 주는 실적 시즌이 시작된다. 11일 LG필립스LCD와 포스코, 14일 삼성전자로 이어지면서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1분기 영업성과가 발표된다. 환율 하락과 IT제품 가격 하락으로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이 '어닝쇼크' 에 가까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물론 이 때문에 1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증시가 지루한 조정장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식시장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주가지수는 지난주 22년 만에 처음으로 12영업일 연속 상승하며 근 석 달 만에 1400선에 다시 올라섰다.

실제 시장은 1분기 실적보다는 업체들이 2분기 전망을 어떻게 하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환율과 국제유가 상승으로 기업들이 수익성에 대해 낙관하지 못할 경우 모처럼 유동성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주식시장의 기대감이 풀죽을 수도 있다.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란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로 인해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이란 고통을 겪었고, 최근 중국과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환율만큼 국가의 의지와 능력이 총체적으로 반영되는 정치적인 산물인 것도 드물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그렇다. 각각의 업체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겠지만, 그 결과가 외환시장 전체에서는 거꾸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이 판단의 기준인 개별 기업에 전략적 신중함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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