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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말이 죽을 뻔했다"고?…실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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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말이 죽을 뻔했다"고?…실제 그럴까?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정부의 언론 경제보도 '탓하기'

언론의 경제보도에 대해 '참여정부'는 못내 서운하고 야속한 모양이다. 경제가 잘 되고 있다는 언론의 찬사에 목말라 하던 정부가 또 다시 경제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살아날 듯한 경기와 주식가격 상승에 용기를 내보는 모습이다. 행여 회복의 불씨가 축축한 비관론에 사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도 있는 듯하다.

기자 출신인 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은 지난주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올린 글에 "언론은 달리는 말에도 채찍질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경제위기론은 '주마가편'의 도를 넘어, 달리던 말이 죽을 뻔했다"고 썼다. 그는 "한국경제의 장단기 전망이 지난해의 위기론적 접근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이제는 경제에 대한 비관론을 접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기자 출신인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도 지난주 조선대에서 한 강연에서 "온갖 험담과 폄하 속에서도 꿋꿋하게 안정기조의 정책을 유지한 결과 경제가 신용대란의 늪을 완전히 벗어났고, 활기를 찾아가며 기지개를 펴는 경기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보도가 자기실현성을 갖고 있긴 하다**

현 정부는 경제위기론이 현상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왜곡한 것이며, 이에는 기득권층의 '개혁 발목잡기' 의도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탄핵정국을 벗어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 중에는 순수한 우려도 있지만 의도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한 말은 현 정부의 이런 시각을 잘 보여준다.

언론의 경제보도가 무서운 것은 기대하는 대로 현실이 변한다는 '자기실현성(self-fulfilling prophecy)' 때문이다. 주변에서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면 미래가 걱정스러운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를 유보하게 된다. 그러면 장사는 점점 더 안 되고, 경기가 정말로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고, 경제주체들의 이런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통계당국이 소비자동향지수(CSI)나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같은 조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뉴스는 한 국가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에 큰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 30개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내보낸 보도의 제목이나 첫 문단에 '불황', '경기침체', '해고', '일자리 감소'라는 단어들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지수화하고 이 지수가 소비심리의 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시기별로 분석한 결과, 아주 높은 상관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통계청에서 매달 작성하는 소비자전망 조사를 담당하는 박원란 사무관은 "아직 미국에서처럼 실증연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국내 심리지표도 조사시점 직전의 언론보도에 의해 적지않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재정경제부는 "CSI나 BSI와 같은 심리지표의 변동성이 올해 들어 확대됐고, 이런 지수와 실물지표의 상관관계도 약화되고 있다"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언론보도를 꼽았다. 언론보도가 경제주체들의 심리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영향을 받은 경제주체들의 심리에 대한 조사 결과가 다시 "소비심리가 악화됐다"는 식으로 보도되는 '꼬리 물기' 식의 순환이 경제심리의 쏠림 현상을 키웠다는 것이다.

***경제보도가 조급증과 비일관성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 "경제뉴스가 경제를 망친다"는 말은 1990년대에도 있었던 만큼 이를 꼭 '참여정부'의 피해의식 탓으로 몰아칠 일은 아니다.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는 경제보도의 문제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지적돼왔다.

먼저 조급증이다. 자본주의는 호황과 불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경쟁력 없는 부문을 도태시키고 인적, 물적 구조를 조정하는 순기능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경제뉴스는 불황의 '기미'에도 참지 못하고 곧바로 '일본식 장기침체'니 '복합불황'이니 하는 으스스한 단어를 등장시켜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스산하게 만든다. 경제를 연착륙시키는 선에서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쓰라고 정부에 주문하기보다는 아예 순환을 없애고 호황이 영속되는 '신경제'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는 양상이었다.

다음은 일관성 부족과 선정성이다. 경제엔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기는 부양하되 물가는 잡고, 세금은 깎아주되 재정은 건전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미묘하므로 세심하게 다뤄야한다"고 스스로 쓰면서도 기사는 때때로 지나치게 둔탁하다. '하락'보다는 '폭락', '상승'보다는 '폭등'이라는 표현을 더 즐긴다. 경제뉴스의 자극적 헤드라인에 따라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을 헐값에 처분할 때 한글을 못 읽는 외국계 투자자들은 통계지표 중심의 정석투자를 계속함으로써 돈을 벌고 있다는 가설도 있다.

국내 경제기사의 경기판단은 '위기' 아니면 '과열'이고, 중간은 생략되기 일쑤다. "한국경제에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언론은 항상 위기를 얘기했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과 같이 정작 위기 이야기가 필요한 때는 낙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2분기 연속 전기 대비 실질성장률이 마이너스일 때 '경기후퇴(recession)', 여기서 더 후퇴하면 '불황(depres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는 약속을 충실히 따르려는 선진국 언론과 대조적이다.

마지막으로 '참여정부'가 의심하고 있는 '의도적 과장'의 문제가 있다. 여기서 '의도'란 먼저 정부에 대한 공격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만큼 국민들 가슴에 쏙 박히는 정부 공격용 소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의도'의 또 다른 의미는 광고주인 재계의 상시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경제가 이렇게 좋지 않은데 무슨 재벌개혁이냐", "경제 살리기에 힘써야 할 때 대선자금 문제로 기업인을 처벌해서 되겠느냐"는 식의 보도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공격이 지나쳐 당국이 손을 들면 개혁은 중도하차하고 무리한 경기부양책이 나오는 게 순서다. '문민정부'의 '신경제 100일 계획'이나 몇 년 전 시행된 '신용카드를 통한 가계소비 부양 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산적한 경제과제 놔두고 언론 탓만 해서야…**

경제기사가 현상을 왜곡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정부와 언론이 다투는 것은 소모전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평소 다양한 시각으로 '갑론을박'하며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불행히도 전문가들의 글 중에는 경제기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판박이' 견해들이 숱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일을 하던 중 "많은 경제학자들이 비관론자로 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비관론이 안전한 선택이기는 하다. 예측이 틀려 경기가 좋아졌다 해도 경종을 울리기 위해 비관론을 폈던 것이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울리는 비상벨은 경종이 되지 못한다.

당국은 언론의 경제보도에 의도적인 왜곡이 있다면 반박을 해야겠지만, 과도하게 '음모론'에 쏠리면 현실을 잘못 볼 수 있다. 한 경제신문 기자는 "못 사는 사람, 장사가 안 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언제나 높을 수밖에 없고, 경제기사는 어느 정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감경기 부진, 소득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증가, 만성적 청년실업, 인구 고령화로 인한 성장동력 약화, 재정 및 연금 수지의 악화 등 우리 앞에는 해결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수출이 늘어나고 실업률이 다소 하락했다고 해서 이해찬 총리처럼 "우리 사회가 1988년(민주화) 이후 현상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면 언론의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지난주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또 올린 데 대해 "내년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주부터는 통계청의 소비자동향지수와 한국은행의 기업경기실사지수 등 가계와 기업의 심리를 측정하는 설문조사 작업이 시작된다. 국민들은 지난 한달 간 언론의 경제뉴스를 읽거나 들으며 당국자들과 같은 자신감을 얻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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