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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의혹' 해결 못하면 세계 과학계 '왕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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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의혹' 해결 못하면 세계 과학계 '왕따' 된다"

[기고] "과학엔 '한계'없지만 과학자에겐 '규제'있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윤리 문제가 연일 제기되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과 일부 국내 언론은 "섀튼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 노하우를 충분히 섭렵했기 때문에 '독자 노선'을 걷기 위해 결별한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국적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적 연구 윤리를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등의 여론몰이를 연일 시도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 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 피츠버그 의대에 재직 중인 이형기 교수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만약 국제적인 연구윤리 관행을 황우석 교수팀을 비롯한 국내 과학자들이 무시하고 있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진다면 더 이상 세계적인 과학·의학 잡지들은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를 싣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논란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면 5000년만에 찾아온 '바이오 강국'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황 교수가 파스퇴르를 인용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언급한 것을 빗대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편집자>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다**

피츠버그는 현대 의학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내 도시다. 의료인들에게는 무엇보다 현대적인 장기이식의 새 장을 연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츠버그 의대의 스타즐 이식 연구소는 여전히 이 분야의 지평을 개척해 가는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의학과 공중보건 영역의 또 다른 부문에서 인류에 큰 -더 정확하게 말하면 '훨씬' 큰- 기여를 했다. 바로 50년 전인 1955년 피츠버그 의대의 소크 교수팀이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을 이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뒤에는 흔히 '피츠버그 소아마비 개척자(Pittsburgh polio pioneer)'라고 불리는 수많은 임상시험 자원자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어린 학생들- 의 헌신과 참여가 있었다. 오늘날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동물 실험자료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받았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질병통제 사례라고 일컬어지는 소아마비 백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피츠버그 소아마비 개척자들의 예는 새로운 예방 또는 치료법을 개발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자원자들의 헌신이 인류 전체의 건강 증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 준다. 동시에 이 예는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헌신의 짐을 조금씩 나누어 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말해 준다.

***섀튼 결별,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의학계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바로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는 그 대표적인 예다. 언론이 연구 결과를 매우 극적으로 전달했고 일반 대중이 이를 거의 종교적으로 확대 재생산한 것에 힘입어 황우석 교수팀은 바야흐로 우리나라가 생물의학 산업의 거목 국가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주도적 견인차로 부각됐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도 함께 증폭됐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이 분야 연구자들이 한국에 줄을 대기 위해 애쓰는 반가운 진풍경도 연출됐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한때 호형호제하던 피츠버그 의대 섀튼 교수가 돌연 황우석 교수팀과의 공동연구 결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작년에 처음 발표돼 전 세계를 흥분시킨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한 성인 여성의 난자 제공 과정에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었던 것이 주된 이유로 알려졌다.

필자는 섀튼 교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우연히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빌미로 결별 소식이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발표된 다음에 이메일을 보내 추가 정보를 줄 수 없는지 문의했다. 답신은 바로 왔지만 섀튼 교수가 아닌 피츠버그 의대의 홍보 책임자가 보낸 것이었다. 요점은 섀튼 교수가 어떤 인터뷰나 추가 질문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언론에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공식적인 자료의 전문을 보내 왔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자료에는 왜 섀튼 교수가 갑작스러운 결별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새튼 교수는 이렇게 진술했다.

"유감스럽게도 난자 제공 과정과 관련해 허위진술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정보를 어제 접수했다. 정보의 특성상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 대학 및 규제기관들의 관계자와 이 정보를 의논한 결과 황우석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얻는 과정에서 윤리적 원칙을 위배한 것에 대한 우려와 (황우석 교수가) 신뢰를 어긴 것이 이러한 결별 결정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아직은 섀튼 교수도 황우석 교수도 더 자세한 해명을 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관계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필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단한 학문적 업적을 갖고 있는 황우석 교수와 관련 연구팀들이 아무쪼록 이 위기를 잘 넘겨, 국민들의 기대를 이어 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섀튼 교수의 자료와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모든 문제는 난자 제공자로부터 '적법하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동의서를 받았는가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하려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난자 채취 과정 및 합병증,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투여 받는 배란촉진제의 장·단기 부작용 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지, 그리고 최종 결정이 암묵적인 강제 하에서 내려지지 않도록 충분히 자율성을 부여받았는지 등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또한 황우석 교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임상 연구를 실제로 수행한 의사들과 이들이 속한 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가 사전 및 사후에 어떤 방법으로 연구의 윤리적 측면을 최대한 보장했는지 공개돼야 한다. 필자가 피츠버그 의대 병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10여 건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자원자들은 먼저 연구 간호사로부터 약 1시간에 걸쳐, 그리고 참여 의사를 밝힌 다음에는 의사, 즉 필자와 함께 보충 질의나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한다. 이 과정은 사전에 피츠버그 의대 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로부터 까다로운 심의를 받아야 하며 사후 실사를 대비해 기록도 남겨야 한다.

***섀튼이 '독자 노선' 위해 결별했다고?**

하지만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에 이어 일반인은 물론 의료계, 심지어는 황우석 교수팀이 보여 준 반응과 대응은 매우 염려스럽다.

우선 섀튼 교수가 이제는 알 만큼 알았기 때문에 비겁하게 다른 이유를 대 공동연구를 파기했다는 반응이다. 주로 일반인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은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자체 병원에서 실시되는 임상 연구뿐만 아니라 소속 의사(교수)나 연구원이 공동 연구자로 참여하는 다른 나라 또는 다른 기관의 임상 연구도 자체 기관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임상 연구 수행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나 보건성의 감사를 받고 그 결과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면 해당 병원은 일정 기간 동안 어떠한 임상연구도 실시할 수 없고, 당연히 정부나 외부기관으로부터 오는 모든 연구비 지원은 일시에 중단된다. 피츠버그 의대는 미국 내에서 국립보건원이 주는 생의학 연구비를 6번째로 많이 받는 곳이다. 따라서 새튼 교수의 결정은 피츠버그 의대의 입장에서는 학교와 병원의 연구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적절한 조치다.

***과학 윤리에 '한국적 특수성' 내세우다가는 '바이오 강국' 꿈 날라가**

필자가 더 염려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의 특수성을 내세워 비록 윤리적인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서구적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주로 줄기세포에 관련된 연구팀에서 보이는 반응이다. 그러나 임상 연구에서의 윤리적 기준과 잣대는 더 이상 특정 지역에만 적용되는 국지적 규정이 아니다.

이 분야에서 과거 10여 년 동안 진행돼 온 범세계적 조화 및 일치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병원에서 실시되는 임상 연구도 모두 동일한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지 이미 오래다. 만일 이 전제가 만족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세계의 유수한 의학 잡지들은 우리 손으로 실시한 임상 연구의 결과를 게재해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국적인 특수성을 말함으로써 지금 당장 배포는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전략적인 실패라는 것이다.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 말은 황우석 교수의 어록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자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학에는 규제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법의 한계가 있다."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피츠버그의 어린 학생들과 그들의 결정을 지지한 부모들은 '자율적으로' 임상시험 참여를 결정했는지 일일이 질문을 받았다. 50년이 지난 지금 난자를 제공한 연구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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