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수출국으로 전락한 '참담한' 현실**
여성ㆍ시민단체들이 생명윤리법 제정 운동에 몰두하고 있던 2002년 어느 날 한 여성단체 활동가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들고 들어왔다. 방금 전에 서울의 유명 여대 앞을 지나오면서 받아왔다는 그 선전물에는 "젊은 여성의 난자를 삽니다"라는 큼직한 문구가 찍혀 있었다. 대낮에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난자매매 선전이라니 기도 차지 않을 일이었다.
벌써 4년 전 일이었는데, 난자 매매를 금지하는 생명윤리법이 발표돼 1년이 다 지나가서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그 사이에 난자 매매 브로커 10여 명은 총 260여 명의 국내 여성들을 대상으로 난자를 매매해서 43억 원 가량의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이 경찰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경찰의 추가적인 조사로 난자매매 규모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하지만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난자 매매 사실이 없다고 국회에 답변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누구라도 난자 매매 거래를 알선하는 커뮤니티를 몇 개라도 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얼마나 속편한 소리인지 한심할 따름이었다. 얼마나 답답했던지 한 국회의원이 직접 조사에 나서 7개 커뮤니티에 181건의 법률위반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의 때늦은 수사도 이 발표에 자극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벌써 7~8년 전에 난자 매매 시장을 우려하는 주목할 만한 책이 하나 번역돼 나왔다. 책 제목이 <휴먼 보디 숍(Human Body Shop>(앤드류 킴브렐, 김동광 옮김, 김영사)인데 말 그대로 인간 신체가 거래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혈액으로부터 시작해서, 난자와 정자, 골수, 심장, 간 등과 같은 장기, 나아가 유전자까지도 가격이 매겨지고 판매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를 모아 분석한 책이었지만 공공연한 장기 매매, 난자 매매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더 이상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다.
이번 경찰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돈이 궁한 20대 여성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서, 혹은 카드 빚을 갚기 위해서 난자를 '시장'에 내놓았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여성은 일본 여성을 위해 난자와 자궁을 빌려주고, 조선족 여성은 우리나라 여성을 위해 난자와 자궁을 판매하는 '국제적인 연쇄적 하청체계'까지 형성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여성의 몸은 '난자 생산공장, 아기 생산시설'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기틀을 흔드는 인간 존엄과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법률은 어떠한 경우도 장기 매매, 난자 매매를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여 '인간신체 매매시장'의 가능성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법적으로 지하에서 형성된 인간신체 매매시장을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빚을 갚을 것을 종용하면서 장기포기 각서를 받아낸다는 조직폭력배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조폭이 여성에게 난자 매매를 그런 식으로 강요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관련 법률을 만들어 놓고도 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는 복지부와 경찰 등 정부의 무사안일에 다시 한 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생명윤리법에 인공수정에 관한 조항이 포함될 계획이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된 것을 떠올리면 더욱 더 그렇다. 이 조항이 계획대로 제정됐더라면 난자의 추출 단계에서부터 통제가 이루어져 보다 효과적으로 난자 매매가 규제되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난자 추출, 시험관 아기 시술 및 대리모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공공연한 난자 매매, 줄기세포 연구는 문제없나?**
한편 이번 불법적인 난자 매매에 서울 강남 소재 대형 산부인과 병원들이 연계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난자 매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 번에 여러 개의 난자를 추출하기 위한 '과배란 촉진제' 투여에서부터 난자가 잘 생성되고 있는지 조사하면서 적당한 시기에 외과적 시술을 통해 난자를 체외로 뽑아내는 일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면 안 된다. 이 과정에서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은 건강을 해칠 수 있고 심지어 난소암, 불임, 심지어 사망에까지도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산부인과 병원들이 불법적인 난자 매매 사실을 묵인하거나 방조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 11월 4일에 이미 4곳의 병원을 대상으로 압수 수색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난자가 매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특히 인공수정 시술을 많이 하는 대형 산부인과 병원들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언론사 기자들이 확인해주는 바에 의하면 차 병원과 미즈메디 병원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4곳 중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만약 이들 병원이 난자 매매 사실을 인지하고도 시술을 해주었다면 경찰은 법에 따라서 처벌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차병원과 미즈메디병원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들어 여성 난자 수요는 인공수정 시술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 외에도 연구를 위한 '재료'로써 부쩍 많이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 병원과 미즈메디 병원은 대량의 난자를 필요로 하는 복제배아 연구를 진행했거나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많은 난자를 '재료'로 이용한 복제배아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황우석 교수가 2004년과 2005년에 연속해서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복제배아 연구에서도 수많은 난자가 사용되었다. 2004년에는 16명의 여성으로부터 242개의 난자를 추출해 사용하였으며, 2005년에는 18명의 여성으로부터 185개의 난자를 추출해 사용했다.
게다가 황우석 사단의 일원이라고 알려진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원장은 최근 '단위생식'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줄기세포를 얻어내는 연구를 위해서 300개의 난자를 사용할 계획을 복지부에 제출한 바 있다. 또한 차 병원 역시 많은 난자가 들어가는 배아복제 연구계획을 복지부에 제출한 바 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는 우리나라 배아복제 연구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난자를 원활히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을 뽑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그 많은 난자를 확보해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 자체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난자들이 여성들의 자발적인 기증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쉽게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수사를 통해서 난자 매매가 광범위하게 벌여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난자 매매가 꼭 임신 목적으로만 국한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배아복제 연구를 위해서 사용된 난자가 이런 불법적 난자 매매를 통해서 확보되지 않았는지 궁금한 것이다. 경찰조사가 여기에까지 미쳐야할 것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줄기세포 연구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시작부터 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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