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요구한 아이 한 명당 양육비는 월 10만 원.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겠지만, 깎을 게 따로 있지 싶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쪼개도 또 쪼갠 금액을 요구했다.
'남자 아이가 셋이니, 월 양육비는 총 30만 원'
한시절 부부로 살았던 상대방의 대답은 ‘양육비 특별 대할인’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양육비 받고 싶으면 신고해. 너 신고 잘하잖아."
최성철(32) 씨는 이혼 후에도 전 부인이 엄마로서 양육 책임을 질 거라 믿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충실한 엄마였다. 이혼 당일 함께 식사하고 헤어졌으니, 최 씨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이혼 전에 전 부인이 육아로 고생했어요. 둘째 낳고 제가 현역으로 입대했으니까요. 제가 군에 있을 때 혼자 아이 둘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혼 후에 아이들과 연을 끊어버리니 충격이 더 컸죠."
최성철-마주혜(가명, 89년생)는 2008년 결혼해, 2014년 1월 협의 이혼했다. 아들 셋 친권, 양육권은 아빠 최 씨가 맡았다. 당시 삼형제의 나이는 6살, 5살, 2살.
전 부인이 '양육비 월 30만 원'을 외면하자, 최 씨는 전 부인에게 양육비 청구 소송을 2014년 9월 제기했다. 광주가정법원은 2014년 9월부터 자녀 1명당 매달 15만 원씩 지급하라고 전 부인에게 명령했다.
전 부인이 최 씨에게 줘야 하는 양육비는 월 45만원. 최 씨는 이 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전 부인의 양육비 없이, 최 씨는 세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겨울비가 장마처럼 쏟아진 1월 7일, 싱글대디 최성철 씨를 찾아갔다. 그는 이제는 초등학생이 된 세 아들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산다.
최 씨는 빨간 마티즈를 끌고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시외버스터미널로 기자를 마중 나왔다. 터미널에서 그의 집까지는 차로 약 10분. 이 짧은 시간에도 그는 육아와 ‘마티즈의 내력’을 설명했다.
"한부모 가정 지원금 받으려면, 자가용도 없어야 한대요. 지역 특성상 교통이 불편하지만 한 번 차를 팔아봤어요. 그런데도 평균 소득 등 지원금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서 저는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100만 원 주고 이 마티즈 중고차를 다시 샀잖아요!"
족발집 등이 있는 상가건물 2층에 올라가자, 복도식 아파트처럼 일렬로 이어진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 닫힌 현관문 중 하나, 거기서 최 씨와 세 아이가 산다.
최 씨가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현관문 하나를 열쇠로 열었다.
"기자님, 들어오세요.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집이 조금 어수선해요"
현관은 부엌으로 바로 연결됐다. 주방에 붙은 연두색 격자무늬 타일이 부엌과 거실의 경계선을 알려줬다. 거실엔 식탁 대신 접이식 밥상이 펼쳐 있었다. 싱크대 한 쪽에 햇반이 가득했다.
"쌀이 유명한 이천에 살아도, 저희는 햇반 먹어요. 쿠팡에서 미국 쌀 시켜 먹든가요. 이천 쌀은 너무 비싸더라고요."
거실 턱 넘어 큰 방, 초등학생 삼형제가 생활하는 방이다. 침대, 컴퓨터는 없었다. 펼쳐진 분홍색 솜이불이 방의 절반을 차지한다. 삼형제가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 ‘라따’가 솜이불 위에 누워 기자를 바라봤다.
"애들이 동네에서 놀다가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왔어요. 생명을 함부로 모른 체 할 수 없어 가족처럼 키우고 있어요."
최 씨와 삼형제, 고양이 라따가 함께 사는 집은 18평 크기의 투룸이다. 보증금은 500만 원, 월세 30만 원. 최 씨 혼자 경수(가명, 13), 경민(가명, 12), 경운(가명, 9)을 키운 지 6년이다.
최 씨는 5톤 트럭 운전기사다. 트럭 운전기사는 개인사업자로 통하는 화물노동자와 달리, 화물차를 소유한 운송 회사 소속의 노동자다. 그는 물류 납품 회사에서 대형마트로 물건 배달하는 일을 한다.
하루 평균 거래처는 5~6개, 한 곳당 평균 왕복 거리는 2시간. 최 씨는 끼니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 저녁을 굶는다. 퇴근 시간은 보통 오후 10시 이후다. 월급 실수령액은 약 280만 원. 세 아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돈은 매달 150만 원 정도다.
"2017년도 방학 때 아이들끼리 집에 있기 심심하다고 해서 트럭 조수석에 태워 일을 한 적이 있거든요. 애들이 바로 옆에서 제가 일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제게 투정을 잘 부리지 않아요. 제가 혼자서 힘들게 일하는 걸 알고 눈치를 보는 거죠."
회사는 세 아이를 혼자 키우는 최 씨를 배려해줬다. 그의 출근 시간은 오후 1시다. 그는 출근 전 육아로 시간을 보낸다. 아침을 차려 밥을 먹이고, 걸어서 등교가 어려운 지역 특성상 학교 근처까지 바래다 준다.
오후 10시가 넘는 퇴근 시간 탓에, 최 씨는 주로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본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최 씨의 휴무는 일주일 중 평일 하루 정도다. 최 씨 가족은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치킨 등을 시켜서 집에서 먹는다.
아빠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형제들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센터를 다녔다.
학기 중엔 오후 4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센터에서 보낸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 아래 기초학습, 숙제, 독서 등을 한다. 외부 강사가 센터로 와서 바이올린, 난타, 미술 회화 등을 가르칠 때도 있다. 저녁도 센터에서 먹고 귀가한다.
방학에는 센터를 학교처럼 다닌다. 시간도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거의 종일을 보낸다. 일하는 아빠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귀가한 후에도, 아이들은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낸다.
"저도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집에 있는 게 불안했죠. 일이 바빠서 챙겨주지 못하니까 애들한테 ‘첫째 형 말을 잘 들으라’고 교육하죠. 제가 첫째를 많이 믿고 의지해요."
영유아 삼형제가 모두 초등학교이 된 지난 6년간, 전 부인은 한 번도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삼형제 생일 때마다 만나겠다는 면접교섭 약속은 허무한 거짓말이었다.
"애들 엄마는 휴대전화 번호를 세 번 바꿀 정도로 저희와 연락을 끊었어요. 저와는 남이지만, 아이들 엄마잖아요. 저는 처음엔 전 부인이 ‘애들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걱정했어요. 그래서 아이들 학교 이름, 학교 위치, 핸드폰 번호 다 알려줬어요. 아이들을 찾아오거나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최 씨는 엄마 손길 없이 자라는 삼형제가 안타까웠다. 주변 눈치 탓인지, 아이들도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삼형제를 지도하는 A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와 둘째 아이는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예를 들어 친구들이 ‘우리는 가족끼리 어디 놀러 갔어’, ‘너희 엄마 아빠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들이 위축된 모습을 보여요. 본인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이야깃거리가 적으니까요."
최 씨는 2018년 10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전 부인을 상대로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전 부인이 미지급한 양육비는 2200만 원을 넘어섰다.
매달 양육비 45만 원을 안 주는 부인은 새 연인과 해외여행을 다녔다. 둘 사이에는 자녀 1명도 있다.
"솔직히 양육비 매달 45만 원 안 받아도 살 수 있어요. 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낳은 게 아니라 상대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어요. 최소한 엄마로서 아이들한테 관심은 가져야 하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나도 안 하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법원은 미지급 양육비 중 1200만 원을 매달 100만 원씩 우선 지급하라고 2019년 2월 판결했다.
전 부인은 양육비 지급 대신 역고소를 택했다. 그녀는 현 남편 김철민(가명)과 함께 최 씨를 명예훼손 및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다. 최 씨가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온라인 카페에 올린 게시글을 문제 삼았다.
내막은 이렇다. 최 씨는 2018년 10월 ‘경기도 이천에서 아들 키우는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전 부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육아가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전 부인이) 합의 이혼 서류 기타란에 경제활동 시 지급이라고 자필 작성했지만, 이후 4년간 양육비를 10원 한 장 받지 못했습니다." (게시글 내용 中 일부)
게시글에서 전 부인의 출생연도와 행정구역은 명시했지만, 이름과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렸다. <배드파더스>에 올라온 전 부인의 사진을 캡처해 게재한 글도 문제가 됐다. <배드파더스>는 이혼 후 양육권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얼굴과 신상(이름, 거주지 등)을 공개한 온라인 사이트다.
최 씨가 캡처한 사진에는 전 부인과 현 남편 모습이 나온다. 최 씨는 현 남편 얼굴은 ‘캐릭터 사진’으로 가렸고, 전 부인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해 글에 첨부했다. 이후 최 씨는 해당 게시물에서 양육비를 책임지지 않는 전 부인의 행동을 댓글로 비판했다.
'재혼해서 지금 남편 뒤에 본인이(전 부인 의미) 해결해야 할 일을 숨어서 지켜보고만 있죠.’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2019년 4월 최 씨의 명예훼손 및 모욕죄 혐의에 대해 무혐의(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사회 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을 정도며, 개인의 인격적 가치 평가를 저하할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녀의 양육비보다 본인의 명예가 중요하다는 전 부인의 태도에 최 씨는 법원에 감치를 신청했다. 감치는 현행법상 양육비 지급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다. 재산 조회도 했지만, 소송을 담당한 변호사로부터 “확인 결과 전 부인의 재산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역고소로 대응했던 전 부인은 감치 재판을 4일 앞두고 최 씨에게 양육비 100만 원을 지급했다. 감치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이는 조치였다.
최 씨는 2019년 10월 감치 재판에서 전 부인을 5년 만에 만났다. ‘이행명령’ 소송 때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던 전 부인이 감치 재판엔 나타났다.
그녀는 임신 상태였다. 전 부인은 20살 때부터 약 10년간, 아이 넷을 낳았고 현재 임신까지 고려하면 최소 5차례 임신한 셈이다. 그녀는 올해 2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 법정에 나온 전 부인은 재판부에 요청했다.
"임신을 한 상황이니 감치는 면해 주십시오."
법원은 감치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거나 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현재 최 씨는 감치 재판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2020년 1월 기준 전 부인이 미지급한 양육비는 약 2600만 원. 마 씨의 신혼집으로 기자가 직접 찾아갔다. 오피스텔 초인종을 눌러 마 씨가 집안에 있는 걸 확인했지만,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녀는 “나는 마주혜가 아니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전 부인의 소식을 들은 최 씨는 “양육비 싸움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강조했다.
"저는 양육비 법적 싸움을 10년~15년도 생각하고 있어요. 양육비는 나중에 아이들 대학 등록금으로 활용할 계획이에요. 포기하는 사람이 지는 거니까 끝까지 해봐야죠."
최 씨는 부모와 합가를 준비하고 있다. 집을 자주 비우는 본인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생겨 걱정은 덜었다. 하지만 늘 부모에게 기댈 수는 없다.
최 씨는 최근 약 2년간 모은 만기 적금을 수령했다. 세 아이를 키우고, 화물 운전을 하면서 매달 80만 원씩 모은 돈이다. 이 돈을 본 순간에도 어쩔 수 없이, 전 부인을 떠올렸다.
'세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서, 몸도 건강하면서… 왜 45만 원을 안 줄까.'
연민, 분노, 안타까움, 슬픔, 답답함… 여러 감정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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