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현재 환경부와 기획재정부는 공동으로 제3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기본계획은 다음과 같은 목적과 기본원칙을 따라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배출권거래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6조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장기능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기본원칙) 정부는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제도(이하 "배출권거래제"라 한다)를 수립하거나 시행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기본원칙에 따라야 한다.
1.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 및 관련 의정서에 따른 원칙을 준수하고,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상을 고려할 것
2. 배출권거래제가 경제 부문의 국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것
3.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시장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것
4. 배출권의 거래가 일반적인 시장 거래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할 것
5. 국제 탄소시장과의 연계를 고려하여 국제적 기준에 적합하게 정책을 운영할 것
위 두 조항을 보면 배출권거래법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서 2017년 배출량은 7억900만 톤에 이르렀다. 내년에 달성하고자 했던 온실가스 목표 배출량 5억4300만 톤은 도저히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를 통해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배출권거래제가 감축활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배출권거래제 대상 사업장이 배출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1)할당을 많이 받는 것, 2)감축투자를 해서 배출량을 줄이는 것, 3)시장에서 모자라는 배출권을 사는 것, 이렇게 세 가지다. 여태까지 사업장들은 할당을 많이 받는 것과, 배출권을 구매하는 것에만 총력을 기울였고, 감축투자는 주저했다.
할당, 감축투자, 그리고 거래의 세 가지 중에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달성’이라는 목표와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것은 감축투자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사업장이 감축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배출권거래제가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또 배출권을 구매해서 할당량을 맞추는 것과 감축투자를 통해서 배출량을 줄이는 활동은 반드시 차별해서 취급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배출권거래제는 그렇지 못하다. 노력해서 줄인 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업이 배출권을 할당받게 되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게끔 되어 있다. 물론 제도상 내부감축 활동이 할당량 산정에 반영될 수 있고 외부감축사업을 하면 상쇄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투자를 통한 감축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정해진 할당신청 기간을 놓치거나 2)까다롭게 한정된 방법론에 해당되지 않거나 3)과거 활동자료가 1년 미만이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있으면 감축활동 자체나 외부사업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으로서는 '이 감축투자를 하면 앞으로 몇 년간 OOO톤만큼 할당을 더 받을 수 있는가'라는 답을 투자의사결정 전에 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해서 '기업들이 알아서 줄여야지, 줄인 것을 가지고 뭘 할당을 더 받으려고 하느냐?'라는 비판이 있다. 그런데 배출권거래제의 목표가 온실가스감축이라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더 장려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기업들이 어떻게든 감축투자하고 배출량 자체를 줄이도록 돕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또 배출권을 사서 할당량을 맞추는 활동보다 감축활동을 반드시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할당량, 배출량, 절감량 등의 정보가 공개되어야
온실가스로드맵이 정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나 에너지기본계획, 또는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에서 정한 2030년 최종에너지소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수조 원씩 합계 수십조 원 이상이 투자되어야만 한다고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돈을 쌓아 놓고 있는 대기업에 왜 돈을 지원해야 하나', '대기업이 알아서 해야지 국가재정을 직접 투입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을 지원하자는 주장은 국회에서 절대 통과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에너지사용량과 온실가스배출량이 많은 다소비/다배출 사업장을 줄이도록 유도하지 않고서 무슨 수로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이런 비판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자. 무엇보다도 배출권거래제에 관한 보다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래 그림의 항목들이 배출권거래제에 관해 현재 공개되는 정보다. 사업장들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성과를 배우고 전파되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큼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1)할당 받은 배출량이 얼마인데, 그 중에 내부감축이나 외부사업을 통해서 더 받은 양은 얼마인지, 2)감축 투자액은 얼마이고 어떤 감축사업을 시행했는지, 3)그와 같은 감축 투자를 통해서 전년 대비 배출량 감축을 이뤄냈는지, 4)정부로부터 어떤 효과적인 지원(세액공제, 자금융자, 기타 인센티브)를 받았고 그에 따른 성과는 무엇인지, 5)중장기 감축 계획은 무엇인지 등은 공개되어야 한다.
이런 정보가 공개된다면, 기업의 감축노력은 제대로 평가될 수 있고, 노력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구분이 되며, 성공사례가 전파되고, 터무니없는 비난 -배출권거래제는 아무 효과가 없다, 효과 없는 대기업 자금 지원은 금물이다- 은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배출권거래제, 포기하기는 아직 일러
에너지효율화 투자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하는 대기업에 충분한 인센티브(자금융자와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감축노력이 충분한 기업은 응원과 박수를 받고 계속 감축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충분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게을리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배출량만 늘리는 기업은 분명하고 엄격하게 제재해야 한다. 온실가스배출량이 많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비난받기 보다는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감축노력이 부족한 것을 가지고 비판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아무 쓸모가 없고, 탄소세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런 의견이 나오는 배경도 이해가 가고 탄소세의 장점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우리는 배출권거래제를 제대로 운영해 보지도 않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정부 재정을 과감하고 충분하게 풀어보지도 않았다. 어렵고 까다롭겠지만, 배출권거래제를 개선할 때까지 개선하고 배출권거래제를 전제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있는 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정말 만만치 않다. 직면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의 가능한 한 최대한 활용'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유럽도 배출권거래제를 유지하면서 탄소세를 도입해 보완하려는 때 배출권거래제를 무용하다고 여기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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