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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들이 말하는 '인혁당의 진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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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증인들이 말하는 '인혁당의 진실' (1)

<특별 기고> 24일 사법부의 재심 심리를 앞두고

닷새 뒤인 24일 서울 지방법원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여부를 판단하는 공개심리가 열린다. 지난해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정치권력과 법조계가 합작한 '사법 살인'으로 판정난 사건에 대해 사법부가 재판을 다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리다.

사법부의 자기반성 여부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심리를 앞두고 지난해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장준하-최종길 의문사 등을 맡아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유봉인씨가 19일 프레시안에 당시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증언해주는 수사관, 검찰관, 중정요원, 교도관 등의 중요한 증언을 모은 장문의 긴급투고를 보내 왔다.

유봉인씨는 현재 천주교인권위원회 산하의 인혁당 대책위 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인권운동가이다.

유 위원이 보내온 "사법부는 '인혁당'의 재심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글을 사법부의 양심적 결단을 기대하며 19~20일 두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사법부는 '인혁당'의 재심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는 11월 24일 서울 지방법원에서는 이른바 인민혁명당재건위(이하 '인혁당')사건에 관한 재심여부를 판단하는 공개심리가 열린다.

지난 2002년 9월 16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최종조사결과보고서'를 통하여 이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된 국가범죄 사건임을 밝힘으로써 지난 30여년간 고문과 조작설 등 끊임없이 제기되어오던 논란에 일차적인 종지부를 찍었었다.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요 근거로 첫째,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협박에 의한 수사과정, 둘째, 피고인의 변론권이 부정되고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이 합리적인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전면 부정된 위법한 재판과정, 셋째, 공판조서 자체에 중요한 범죄 사실이 허위로 기재된 점 등을 들었다. 위원회의 주장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혁당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가상의 조직이다.

오는 11월 24일 법원에서 과연 위와 같은 위원회의 결론을 수용할지 그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인권단체들은 '인혁당 재심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과거청산의 의지를 갖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라며 재심의 수용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재심 규정을 까다롭게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재심의 문을 닫고 있는 현행 재심제도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살펴보고 이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번 재심을 주목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혁당 재심에 관해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몇 가지 논점을 정리하여 인권단체가 제시하는 '재심 관전법'을 소개한다. (참고로 밝힐 것은 당시 사형당한 분들의 변호인 접견기록은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1. 현행 재심제도 - 재판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재심사유를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혹은 원판결의 증거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인 것이 증명된 때'(형사소송법 제 420조 참고) 등으로 규정하여 그 범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사실상 재심의 문을 닫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위와 같은 법 논리를 연장하면, 인혁당 사건과 같이 오랜 시간이 지나 수사기관의 고문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재심의 기회는 원천 봉쇄된다. 재심 조항자체가 재심의 이념 내지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매우 유사한 재심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도 위와 같은 비판이 힘을 얻어 급기야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5년 5월 20일 한 사건(白鳥사건)의 재심 결정에서, 재심 개시를 위해서는 확정 판결의 사실 인정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이 생기면 되고, 이것이 곧 '확정판결의 사실인정을 뒤집는 데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는 근거를 들어 이 사건의 재심을 받아들였다.(『오판의 구제와 재심』 小田中聰樹 저. p.182 참조)

형사소송법이 재심제도를 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고한 자 또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은 자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신중한 재판을 통해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더라도 오판의 가능성은 항상 남아있다. 인간의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하에서 살펴보듯이 인혁당 사건의 경우에는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신중한 재판을 했는지 그 전제 자체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의심할' 근거로 넘쳐난다.

재심제도가 국가 또는 재판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무고한 시민을 구제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상의 제도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필자는 이 사건의 원판결이 위와 같은 요건을 결여하였고 따라서 피고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의심한다. 재판의 권위는 잘못된 판결의 효력을 유지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 스스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다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음이 명백한 이 사건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인권단체의 주장이며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의 의심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할 몫이다, 이하에서는 불법적인 연행에서 형의 확정 그리고 이에 따른 사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시간적으로 따라가면서 기존의 조사와 판결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이 사건의 재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유의 제시는 가능한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들과 변호인 그리고 교도관들의 진술을 그대로 밝히는 것으로 하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간략하게 덧붙였다. 필자는 위원회의 조사관으로서 이 사건 조사를 직접 담당했었기 때문에 법적인 제약 상 실명을 완전하게 밝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2. 재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1) 불법적인 연행 - 영장 없는 체포**

중앙정보부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체포를 한 다음 경찰 및 검찰수사관에게 수사방향과 내용을 지시하였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수사관 나○○ : "중앙정보부로 파견되어 군 수사기관 출신간부로부터 조서를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조사할 때 중앙정보부나 대구수사팀으로부터 어떠한 자료 또는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조서를 받았으며, 전창일 등을 인혁당 관련자로 조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2) 수사관 박○○ : "증거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술서 이외의 증거에 대해서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3) 수사관 전○○ : "월 1~2회 정도 민청학련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들과 팀장 등 30명 가량이 중앙정보부에 모여 회의를 하였고, 각 팀에서 수사내용을 브리핑을 하였고 수사 관련 보강 지시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내용을 짜 맞추는 것 같았습니다."

4) 수사관 이○○ : "중정에서 와꾸(틀)를 이미 만들어 놓고 있었고 우리는 이에 맞춰서 중정에서 시키는 대로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의자들이 부인을 해도 그것을 그대로 진술조서에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중정의 간부들이 이 사건을 긴급조치 사건에서 조직사건으로 확대시키라는 지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이 담당 수사관들에게 '물건(조직사건)을 만들라'고 지시한 사실도 기억이 납니다. 범죄혐의를 밝히기 위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조사를 했다면 탐문과 증인 확보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사건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없었습니다."

5) 검찰서기 김○○ : "사건의 내용을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조사에 참여했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검찰관이 중정에서 작성한 의견서에 기초하여 혐의 사실을 물었고 피의자가 하는 응답 역시 중정의 의견서에 맞게 작성한 것입니다." "검찰관들이 중앙정보부의 의견서를 베끼다시피 하여 피고인들을 기소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6) 검찰관 이○○ : "내가 검찰관으로서 들은 사실은 중정에서 받은 대로 조서를 받아내라는 것이었고 그 외의 지시는 없었습니다. 상이한 진술이 있어도 그대로 두었던 것으로 기억나며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중정에서 작성한 의견서와 검찰에서 작성한 공소장에 맞춰 진술을 받아낸 것입니다."

7) 수사를 지휘한 당시 중앙정보부 6국 수사팀장 윤○○ : "피고인들에 대한 수사를 하기 전에 탐문조사 등 사전조사를 한 사실은 일체 없었고, 피고인들이 조직을 결성하였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는 또 "민청학련은 ...중략... 인혁당재건위에서 배후조종하기는 어려웠습니다."라고 하여 수사관들이 인혁당재건위가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했다는 것을 밝히지 못하였음에도 중앙정보부에서 배후조종하였다고 발표하였고 그 발표문대로 기소하도록 한 사실을 시인하였다. 또 그는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하여 박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문서를 직접 목격한 사실이 있습니다. 박대통령의 서명은 독특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하여 위와 같은 조작이 정권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2) 수사서류의 허위기재**

***1) 수사장소의 허위기재**

이 사건 수사기록에는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등의 작성 장소가 서울구치소 또는 서울 중부경찰서로 기재되어 있으니 이는 모두 허위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수사관 박○○ : "저희들은 주로 정보부 6국 2층, 3층 사무실에서 조사를 하였습니다. 당시에 6국 건물에는 조사실이 없고 전부 사무실이었으며 지하에 보일러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② 수사관 신○○ : "정보부 6국 이외의 다른 장소에서 조사한 일이 일체 없습니다." "오늘 위원회에서 상기 기록(장소가 허위로 기재된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③ 수사관 손○○ : "저희가 경찰관 신분이기 때문에 정보부에서 조사했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 처음부터 조사 장소는 기록하지 않고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하여 조서가 일괄 조작되었음을 인정하였음.

④ 당시 수사관이었던 전○○, 임○○ : "조서 작성 장소로 기재되어 있는 서울 중부서 등의 위치조차 몰랐습니다."

⑤ 수사를 지휘하였던 위 윤○○ : "6국에 있는 저희 수사팀 사무실과 주변의 빈 방에서 조사를 주로 했고, 서울구치소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몇 차례 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서울 중부서에서도 조사를 했는데 이것도 횟수는 극히 적습니다."라고 진술하여 조서가 조작되었음을 자인.

***2) 수사 일시의 허위기재**

신문 장소뿐 아니라 신문을 한 일시 또한 조작되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수사관 이○○ : "하루에 4명의 조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것 역시 중정의 지시에 의해서 두서없이 조사를 하다보니 결국 하루에 4명이나 조사한 것처럼 날짜가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② 수사관 신○○ : "일자도 사실과 다르게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라고 진술하면서 이 사건의 조서들이 사건조작의 수위에 따라서 허위의 일시에 작성된 사실을 자인.

***3) 신문 내용의 허위기재**

장소와 일시뿐만 아니라 신문내용 또한 조작되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수사관 손○○ : 이 사건의 피의자였던 이수병이 73. 12.중순경부터 74. 4. 10.까지 매일 05:00-06:30까지 북한방송을 청취하였다는 진술을 받아낸 부분의 진위를 추궁하며 "이수병은 학원에서 강의하는 시간이 06:30이어서 위 방송을 청취할 수 없었다"고 근거를 들이대자 "(이수병의 진술)내용이 맞을 수 있다"고 시인.

② 검찰서기였던 김○○ : "검찰조서에 기록된 답변은 피의자가 말한 것을 받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검사가 '비밀지하당을 결성하여 정부를 전복하려 한 것이 맞죠?'라고 피의자에게 물으면 '예'라고 대답하였고 그러면 이○○ 검사가 저에게 조서에 적을 내용을 불러주어서 저는 그것을 토대로 문답식 조서를 작성한 것입니다."라고 진술하여, 신문내용을 미리 정한 내용대로 검사와 검찰서기가 임의로 작성한 사실을 인정.

***(3) 고문**

***1) 수사관들의 진술**

① 위 전○○ : "물 고문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고, 전기고문을 하는 것만 봤습니다."

② 위 이○○은 "제가 알기로는 정보부에서 윤○○과 박 수사관, 김 사무관 등 고문을 하는 팀이 따로 있었습니다. 정보부 6국 지하 보일러실에서 고문한 것으로 ...중략... 그때 제가 옆에서 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초기에는 하재완, 여정남 등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습니다. 여정남은 중정의 윤○○과 박수사관 등의 수사팀에게 몽둥이로 계속해서 맞았습니다."

③ 위 신○○ : "아마도 윤○○의 부하들이 고문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피의자신문조서나 진술서를 작성할 때는 피의자들이 별로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중정 사람들이 피의자에게 고문을 하는 등 따로 처리를 한 것 같았습니다."

④ 위 김○○ : "검찰관이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의견서에 기초하여 혐의사실을 물으면 피의자들이 모두 '예'라고 시인을 하여 피의자들이 수사 단계에서 고문 등을 심하게 당해서 두려움에 젖어 있어서 무거운 혐의사실도 쉽사리 시인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 교도관들의 진술**

① 교도관 이○○ : "하재완이 저에게 탈장이 되어서 불알과 창자가 빠져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당시에 하재완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였고 아랫배가 불룩했던 것으로 기억하며, 온몸이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정에서 물 고문, 전기고문 등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아서 탈장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② 교도관 전○○ : "유진곤은 손과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김용원도 맥이 풀려 있었고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재완은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서 탈장이 되어 있었고 물 고문에 의한 폐농양증으로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배어 나왔습니다. 이수병은 저와 대화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서 목이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피고인들 대부분이 구타로 인한 피멍자국이 여기 저기 보였습니다. 그리고 몸이 성하지 않으니까 대화를 나누면서도 문을 붙잡고 몸을 뒤척이곤 하였습니다. 인혁당 사건 관련 재소자들 역시 업혀서 들어오거나 부축을 받으면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③ 교도관 이○○ : "하재완은 저에게 되게 고문을 받아서 탈장이 되었다. 전기고문을 받아서 경련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도예종과 송상진은 같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제가 간첩질을 했냐고 물어보니까 우리는 간첩이 아니다. ...중략... 그런데 중앙정보부에서 심하게 고문을 받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허위로 자백을 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④ 교도관 김○○ : "출정 나갈 때나 복귀할 때 소제들에게 업히거나 부축을 받아서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병으로 몸이 아픈 사람도 있었고 몽둥이로 맞아서 잘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변호인 및 관련 피고인들의 진술**

① 변호인 한승헌의 진술 : "(여정남은) 중정에서 고문에 의해 강제로 진술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② 변호인 박승서의 진술 : "검찰관들은 공판정에서 시종 검찰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의 확인에 진력하였는 바,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는 검찰관 앞에서 자백하지 않으면 다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공포분위기 속에서 검찰이 원하는 대로 허위자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진술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③ 변호인 함정호의 진술 : "검사가 심문을 할 때 혐의를 부인하면 정보부에 되돌려 보내서 고문을 받았다는 주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④ 김지하의 진술 : "제가 하재완에게 인혁당 사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하재완이 저에게 인혁당 사건은 고문으로 조작된 것입니다. 정보부에서 아주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고문 때문에 장이 파열되었습니다."

***4) 접견기록**

고문에 관한 내용과 인혁당이 조작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내용의 접견기록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피고인 서도원과 조성기 변호사의 접견기록 (74년 8월 22일)**

문 : 항소이유서 써냈지요?
답 : 예 정부전복, 학생선동, 특히 인혁당을 재건하려했다는 것은 전면 사실 무근한 것입니 다.
문 : 4인 지도부를 리드한 것은 어때요?
답 : 이것 역시 터무니없는 사실이에요. 공소장 전부가 사실과 무근한 것입니다.
답 : 하재완의 노트 전연 본일 없어요. 이것도 허위예요
문 : 인혁당에 가담한 일 있어요?
답 : 전혀 없습니다.
문 : 공소장은 어때요.
답 : 공소장 6,11,16,21,22,23,23항 이외에는 전부 다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주요 공소 사실 모두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내용임 : 필자)

***② 피고인 우홍선과 김종길 변호사의 접견기록(74년 6월 10일)**

문 : 몸은 괜찮으신지요?
답 : 몸은 정보부에서 조사 받을 때 매를 맞아 허리가 아프며 하지부정증이라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문 : 구속된 경위는
답 : 4.26경 이수병을 만났다하여 조사 받았으나 '내용이 다르다고 서명날인을 하지 않는다'하여 강제로 서명시키고 날인케 한바 있습니다. 작년 이수병, 전창일 등 4명이 만났었는데 누구 아느냐하고 안다면 내용은 각본대로 작성된 것으로 알고 검사조서도 정보부에서 몽둥이찜질을 해가며 작성했기 때문에 임의진술 아닌 강제진술인데 증거가 안 된다고 좀 어렵겠지요.
문 : 자술서를 몇 번이나 썼는가요.
답 : 진술서는 여러 번 썼고, '인혁당 재건위원회라는 진술서는 5월말에 작성'했으며 검사조서를 두 번 받았으나 첫 번 검사 조사 시는 저의 뜻이 반영되는 듯 했으나 두 번째는 문답 문답씩으로 일방적으로 썼으며 서명은 강제로 제 손을 붙잡고 쓴 흔적이 있습니다. 각본대로 했습니다. 긴급조치 4호는 불고지이지요.(인혁당 진술서가 5월말에 작성되었다는 진술은 인혁당이 중정에서 조작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이 시점은 체포된지 이미 한 달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 필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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