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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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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끝나지 않았다.

인권단체들, 희생자 명예회복ㆍ보상 요구

1975년 4월 9일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기록된다. 이날, 박정희 정권은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고인들 가운데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흥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등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이 확정된 지 불과 20시간 만에 일어난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그 후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혹독한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권력에 의한 인권 희생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12월 10일로 53회를 맞은 세계인권기념일을 앞두고 유신체제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7시, 명동성당 별관에서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회고와 증언을 모은 ‘사법살인, 1975년 4월의 학살’(학민사)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70년대 중반의 정세와 민청학련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글들을 담았고, 2부에서는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몰린 인혁당 관계자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과 조작된 증거의 진실을 다루었다. 그리고 3부에서는 KBS 다큐멘터리에서 증언한 관련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실었다.

이 책은 협박과 구타, 고문 속에서 민청학련 및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과 증거가 어떻게 조작되어 군법회의에서 결국 사형, 무기 등 악형을 받기에 이르렀는가를 관련자들의 회고와 증언을 모아 정리했다.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 이철·유인태 전 국회의원, 김지하 시인,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함세웅, 문정현 신부 등의 글을 통해 억울한 죽음을 고발하고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비롯, 국내 인권단체들과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 및 유시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에 앞선 오전 10시, 민청학련 운동 계승사업회와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자 100명의 공동 명의로 명예회복 및 보상신청서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인혁당 사건을 포함, 민청학련 사건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관련자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은 현재 진행형**

현재 인혁당 사건의 진실 규명을 주장하는 움직임은 천주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인권 단체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김형태 위원장은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밝힌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과거에 자행된 인권유린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사법살인’ 2, 3부도 출판을 준비 중이며 과거 인혁당 재건위 재판 기록 등을 확보해 재심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엉터리로 꾸며진 조서와 재판 기록 등을 상당수 확보한 상태이며 자료 검토가 끝나는 내년 4월경에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재심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인혁당 사건의 재심은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혁당사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현재 여러 각도로 진행중이다.

먼저 유족들의 진정을 받아 인혁당 사건의 진실 규명을 추진해 온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로 지목돼 옥중에서 사망한 장석구 선생의 사건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는 이번 대책위의 신청을 계기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른 한편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계류중이다. 인권위 업무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유가족들은 진정을 접수시키고 국가기구 차원에서 이 사건이 처리되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김형태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생한지 1년 이상이 경과한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권한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인혁당 사건의 공식적인 재조명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접수 자체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한 인혁당 사건의 관계자들에게는 어떠한 명예나 보상이 주어지기는 커녕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배후설 등의 명목으로 사건이 조작되었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돼 버려 다른 민주화운동 사건들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인혁당 사건은 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인권적 토대 구축을 위해서라도 지난 과거의 사법적 과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며 이러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사건 조작과 정치적 악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인혁당 사건의 재조명은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형제도 폐지 운동 등 기본적인 인권 운동과도 결부된 것으로, 우리 역사에 점철된 정치권력의 사건 조작과 사법적 오판을 돌아봄으로써 이같은 희생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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