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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가 미국에 요구해야 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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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가 미국에 요구해야 할 3가지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긴급 제언> 주한미군 재배치 수용하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긴급 제언: "주한 미군의 재배치를 받아들여라!"**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5월15일로 예정된 노무현과 부시의 한미정상회담이 과연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5월11일 오후 2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인 미국으로 6박7일의 방미 일정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같은 우려는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4월말 베이징 3자회담에서 터져나온 북한의 핵보유 발언으로 인해 한반도는 다시금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만 이같은 군사적 긴장이 아직까지 표면화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은, 한미정상회담을 시작으로 6월 중순경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주변 4강의 연쇄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 조율을 일단 지켜본 뒤 결정하자는 국제사회의 일종의 암묵적 합의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과 부시의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한반도 주변 4강의 연쇄 정상회담 일정은 지난 3월말부터 시작해 베이징 3자회담으로 연결된 윤영관 외교부 장관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 제시 과정과 유사하다. 먼저 15일 노무현과 부시의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23일엔 부시와 고이즈미의 미일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31일에는 모스크바에서는 후진타오와 고이즈미의 중일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6월초엔 노무현과 고이즈미의 한일정상회담과 부시와 후진타오의 미중정상회담이 각각 도쿄와 베이징에서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중순경, 노무현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베이징에서 후진타오를 만나 북핵 문제를 둘러싼 주변 4강과의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조율을 마무리할 전망이다.

그런데 한반도 주변 4강의 연쇄 정상회담의 시발점인 노무현과 부시의 한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먼저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23일로 예정된 부시와 고이즈미의 미일정상회담에서는 대북 경제제재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산케이신문(10일)은 지난 5일 파리에서 개최된 서방 선진 7개국 및 러시아(G8) 내무.법무 장관 회의에서 일본 대표인 우루마 이와오(漆間嚴)경찰청 차장이 북한을 "테러국"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북한을 '테러국'으로 규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이는 일본의 대북 정책이 점차 경제제재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게다가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은 지난 9일, 도쿄의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초청 강연에서 중국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한 국내 문제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단호한 대북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무력 행사도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여기에 부시 정권의 대변인 기능을 수행하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9일)은 미국의 대북 전초기지로 일본의 오키나와(沖繩) 미군 기지가 부각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쯤되고 보면, 부시와의 첫 한미정상회담에 임하는 노무현의 운신의 폭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미정상회담에 임하는 노무현의 이같은 처지는 베이징 3자회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실제로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비롯한 주변 4강에 북핵 해법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뒤 베이징 3자회담 소식이 흘러나왔을 때, 우리 정부와 언론은 다시 한번 한반도에 해밍 무드가 조성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마치 지난해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의주특구 선언과 연이은 DJ의 철의 실크로드 시대 선언을 계기로 제임스 켈리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처럼. 하지만 제임스 켈리의 평양 방문이 북한의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으로 인한 북미간 군사적 대치 상황을 유발시키는 외교적 재앙을 초래했듯이, 베이징 3자회담은 북한의 핵보유 발언으로 인한 외교적 재앙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 결과, 베이징 3자회담에서 조성된 한반도 해밍무드에 편승해 부시와의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프레임 웍을 구축하겠다던 노무현 정권의 구상은 안타깝게도 물건너 가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파행으로 치달은 베이징 3자회담 결과, 노무현 정권은 뜻하지 않게 백악관의 부시 앞에서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테러와의 전쟁'을 진행중인 미국 편에 설 것인가를 고백해야만 하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면초가 상황에서 노무현이 부시에게 꺼내들 비장의 카드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는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리가 선보일 히든 카드가 연이은 한반도 주변 4강 정상간의 연쇄 회담의 내용과 분위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대화의 모멘텀"으로서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이용하라**

현재 한미정상회담의 의제는 크게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 그리고 경제 문제로 요약된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 3가지 의제는 북핵 문제로 야기된 북미간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제임스 켈리 특사의 평양 방문 과정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하자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며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북한 역시, 미국이 먼저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며 NPT 탈퇴를 선언하고, 영변 핵시설의 재처리에 돌입함으로써 북미 양측은 지금까지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치달아왔다.

그와 더불어 남한에서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선이와 효순이의 재판 결과에 분노한 시민들의 SOFA 개정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점차 주한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반미 시위로 확산되면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가져왔다. 여기에 70만 돼지 저금통 모금 운동과 가히 혁명적이라 불릴만한 네티즌 세대의 예기치 못한 표 결집 현상에 힘입어 드라마틱하게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DJ와는 사뭇 다른 대미관을 표명함으로써 부시 정권으로 하여금 한미동맹 관계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는 급기야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주한미군 철수론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것이 한국 경제에 미친 파장은 안타깝게도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한국 증시에 미친 파장과 유사했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특히 미2사단의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 문제는 북핵 문제 이후에 논의하자고 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동안 인계철선 역할을 담당해온 미2사단의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가 현실화될 경우, 그것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미2사단의 재배치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은 무디스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의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전망으로 이어져, 한국 증시에 투자된 외국 자본의 대대적인 철수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9일 고건 국무총리가 미2사단을 방문해, 주한 미군 장병들에게 한미 동맹 관계를 역설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 논의를 뒤로 미루자는 한국측 주장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실제로 워싱턴은 북핵 문제가 타결되기 전까지 미2사단 재배치는 불가하다는 한국측 입장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보단 정치.안보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워싱턴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주한 미군의 재배치 요구를 미국의 북폭을 위한 사전 단계로 인식하고 있다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2사단이 오성산에 위치한 북한의 가공할 화력의 사정권내에 있는 한, 부시 정권이 위험 부담을 무릅쓰면서까지 무모한 북폭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측이 다른 것은 양보해도 미2사단의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워싱턴은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주한미군의 재배치 요구는 그들의 전세계 패권 전략의 일환에서 추진되는 것이지, 결코 북폭을 위한 수순밟기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반도 외교 정책 책임자들에게 오히려 거꾸로 뒤짚어(radical)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의 사정거리에 위치한 미2사단을 인질로 부시 정권의 북폭을 막아보려는 노무현 정권의 태도를 보고, 과연 부시가 그것이 미국을 신뢰하는 동맹국의 입장이라고 생각할까? 게다가 부시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 및 대미 정책에 대한 뚜렷한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 정책 혹은 입장은 취임 초기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결정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대미 정책의 선회를 상식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오죽하면 노무현의 태도 변화에 고무된 부시가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을까?

노무현 정권이 이처럼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북핵 문제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면, 필자는 오히려 거꾸로 그에 상응하는 동맹국으로서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요구함으로써,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무엇인지 전세계에 밝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먼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정권이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의 재확인 차원에서라도 미국의 전세계 패권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주한 미군의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전격적으로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하라는 것이다. 주한 미군의 재배치에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것과, 그것이 한국에 투자한 외국 자본의 철수를 초래할 수도 있는 예민한 문제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부시 정권에게 있어 전혀 예기치 못한 선물이자, 한국이 미국의 진정한 동맹임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노대통령이 부시에게 요구해야 할 3가지**

이처럼 한국이 미국의 확실한 동맹국임을 전세계에 선포한 상황에서 미국에게 다음의 3가지를 요구하자는 것이다.

첫째,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자주 언급되어 온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따위의 외교적 수사가 아닌,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확실한 보장이다. 물론 이같은 보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협상력 강화를 위해 비밀리에 이면 합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필요로 하는 주한 미군의 재배치를 동맹국으로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수용한 한국의 입장에서 그것이 초래할 외국 자금의 철수를 방지할 책임은 미국에 있다. 그런 까닭에 위험부담을 안고 동맹국으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이행한 한국에 대해 부시 정권은 앞으로 북한에 대한 해상 봉쇄나 경제 제재는 물론, "한반도에 더 이상 미국으로 인한 전쟁은 없다!"고 선포함으로써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을 안심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북한의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고,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지난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길에 1박2일의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한 파월 국무장관은 탕자쉬앤 당시 외교부장을 만나, UN 안보리에서 중국이 이라크 침공에 대해 기권표를 행사해주는 조건으로,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이유로 북한에 대해 사전 선제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면 합의를 한 바 있다. 물론 이것은 중국에 대해 줄기차게 대북 에너지 중단을 요구해온 미국에 대한 중국측 요구를 수용한 측면이 강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북한으로 중유를 공급하는 15개 파이프라인 가운데 14개를 차례로 폐쇄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온 중국은 마침내 지난 2월말 마지막 파이프라인마저 수리를 핑계로 3일간 중단시킴으로써 북한이 베이징 3자회담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중국이 이처럼 대북 압박을 감행했던 것은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은 없다"는 파월의 이면 보장 때문이었다.

둘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간 경제 협력에 대한 동맹국으로서의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의 동맹국으로서 미국은 남북간의 경제 협력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앞으로 방해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직 "2%" 부족하다. 남북 경협을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군사교류 협력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남북 경협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경협과 더불어 한 축을 이루어야 할 남북 군사교류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경협이 중단되는 파행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에게 주한미군 재배치를 선물하는 대가로, 남북 경협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가능 조건으로서 남북간 군사교류 협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요구해야 한다.

물론 부시와 김정일이 과연 이것을 수용할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전격 수용할 경우, 그동안 한미 동맹에 대해 불필요한 의심을 증폭시켜온 워싱턴은 비로소 미국의 진정한 우방으로서 한국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이같은 한미간의 신뢰 구축은 남북한 군사교류 협력을 용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베이징 3자회담이 파행으로 끝난 뒤에도 미국이 남북 장관급 회담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미국 역시 자존심 때문에 북한과 마찬가지로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내심 북한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군사적 도발로 한반도가 예기치 못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상황은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군부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증대되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입장이다. 김정일은 지난 94년 체결된 제네바합의를 불이행하고, UN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미국, 특히 부시 정권을 협상의 상대로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명백한 선언과, 그에 따른 남북 경협 및 군사교류 협력에 대한 지지 표명이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채택될 경우, 북한의 입장도 한결 누그러지면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6월 중순, 후진타오와 장쩌민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를 만나 우리의 진의를 전달하고 김정일에 대한 설득을 요청한다면, 김정일 역시 다시 한번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타결 쪽에 기대를 걸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정일 정권은 노무현 정권 초기만 해도 북핵 문제에 대한 남북한 민족 공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라크전 파병을 계기로 급속히 미국에 기울기 시작한 노무현 정권을 보면서 남북간 민족공조에 대해 점차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요구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내 공동선언문에 채택하게 될 경우, 그것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노무현 정권을 다시 보는(re-spect) 계기(모멘텀)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7.1 경제 조치의 실패로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런 까닭에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변화된 남측의 태도는 노무현과 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높이고, 남북 협상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남는 가능성은 부시 정권이 우리측 제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명할 경우다. 그렇게 될 경우, 다음 수순은 의외로 단순해진다. 이라크 침략을 계기로 전세계에서 점차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미국을 동맹국으로 인정하고, 동맹국의 입장에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주한미군 재배치를 인정한 한국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 아님을 스스로 전세계에 선포한 것이 된다. 그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국으로서 우리에게 뭔가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도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 아닌 이상, 우리 역시 미국의 동맹국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단호히 천명하고, 한반도의 국운을 걸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은 물론,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과 동남아 국가와 협력해 미국의 국제적 고립을 도와야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초, 미국은 필리핀의 수빅만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의 재배치를 운운하며, 필리핀 주둔 미군의 지원 비용 인상을 필리핀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그러자 필리핀 정부는 심사숙고 끝에 미군 철수를 결심하고, 마침내 이를 미국에 통보하기에 이른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것을 필리핀 정부의 협상 전술로 파악한 미국은 한걸음 물러나 필리핀 주둔 미군 지원 비용 인상을 없었던 일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필리핀 정부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자국이 미군의 주둔 비용을 더 지불하겠다며 필리핀 정부에 수십억 달러 제공을 제안했지만 보기좋게 거부당하고, 마침내 1992년 미군은 결국 필리핀의 수빅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필리핀보다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대국이다. 필리핀이 10년 전에 했던 것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가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우리가 한반도에 주둔한 3만7천 주한 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경우, 그것은 미국에게 재앙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말이 3만7천이지 그처럼 많은 군사를 예정에 없는 곳으로 배치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경우, 무엇보다 먼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은 일본이 당장 곤란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설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뜻밖의 강경 태도에 입지가 곤란해진 미국이 한걸음 물러서며 유화책으로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핵 문제가 엄연히 상존한 상황에서 주한 미군의 완전 철수란 미국의 전략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시 정권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다른 무엇보다 한미동맹의 재확인에 의미를 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자! 베이징 3자회담에서 기대했던 한반도 해밍무드에 편승해 부시와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프레임 웍을 구상한 노무현 정부의 꿈은 일단 물건너가고 말았다. 오히려 북한의 핵보유 발언으로 파행으로 치달은 베이징 3자회담 결과, 노무현 정권은 급기야 백악관의 부시 앞에서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테러와의 전쟁'을 진행중인 미국 편에 설 것인가를 고백해야만 하는 곤혹스런 입장에 몰리고 말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노무현 정권은 "제발 미2사단의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는 북핵 문제 이후로 미뤄달라"고 사정하며 미국에 대해 다른 반대 급부를 제공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의연하게 미국이 원하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수용함으로써 동맹국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거꾸로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부시 정권에게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요구하라는 것이다. "이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우리에게 동맹국으로서 너희가 취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라고. 동맹국으로서 그 정도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첫째,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명백한 선언이고, 둘째, "남북 경협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더 이상 군사적 위기 조성으로 남북 경협에 딴지나 걸지 말라"는 요구이며, 셋째, "남북간 지속적인 경제 협력을 가능케 하는 남북간 군사교류 협력에 대해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만일 부시가 이것을 거부한다면 우리 역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의무는 없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늘상 해오던 것처럼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일단 수락 의사를 내비쳤다가, 나중에 실천하지 않거나 딜레이시킬 경우 역시, 마찬가지. 주한 미군의 재배치 역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악관이란 법정에서 피고 노무현을 향해 북한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미국 편에 설 것인가를 요구하는 한미정상회담의 형국을, 오히려 지구촌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피고 부시를 향해, 한국의 동맹국으로서 미국은 남북 경협과 군사 협력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가, 아니면 무력 사용을 통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바라는가에 대한 명백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면초가에 처한 노무현의 히든 카드이자,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언급한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필자 소개: EBS 특집 <한국 호랑이, 그 흔적을 찾아서>, KBS 5.18 20주년 특집 <광주항쟁, 그후 20년> 등을 제작한 다큐멘터리스트 임종태씨(echorhim@hanmail.net)는 최근 윤영관 외교통산부 장관과 최초로 3시간 단독 인터뷰(월간중앙 5월호)를 갖는 등, 2년전부터 북미 관계를 취재해오면서 활발한 기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1년 말, 본격 미디어 비평서인 <스타메이커>(창작시대)를 출간한데 이어, 최근 New America Foundation의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중인 마이클 린드(Michael Lind)의 <메이드인 텍사스: 조지 부시와 남부의 미국 정치 접수>(Made In Texas: George W. Bush and the Southern Takeover of American Politics)라는 책을 번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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