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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원하면 풍족하게 베풀라"

<특별기고> 盧대통령에게 보내는 북핵해법

필자인 알렉산드르 만소로프(Alexandre Mansourov) 박사는 미국내 동북아 전문가로,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연구소(MGIMO)에서 국제관계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말 북한의 김일성대에서 한국학을 수료 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한 독특한 경력의 만소로프는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의 동북아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현재 호놀룰루의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소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역자(임종태)의 소개로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만소로프 박사는 민주당 선거 캠프에 대선 이슈로 '전쟁과 평화론'을 제안함으로써, 당시 박빙으로 흐르던 이회창 후보와의 대결에서 노후보가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실제로 당시 만소로프 박사의 제안을 수용한 노무현 후보는 선거를 며칠 앞두고 거리 유세에서 전쟁과 평화론을 역설하기 시작했고, 대선 하루 전인 18일 밤 10시, KBS와 MBC의 마지막 TV 연설에서는 만소로프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전쟁과 평화론을 역설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기념해 만소로프 박사가 역자에게 보내온 <안보 딜레마, 전쟁의 유혹, 남한의 대북 포용정책>(Security Dilemma, War Trap, and the South Protectorate over the North)이란 글을 전문 번역해 <프레시안>에 게재한다. 현재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다단하게 진행중인 북미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노무현 정권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판단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역자주

***<안보 딜레마, 전쟁의 유혹, 남한의 대북 포용정책(Security Dilemma, War Trap, and the South Protectorate over the North)>**

최근의 북핵 위기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진의는 양측의 설전이 심화될수록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북미 양측의 메시지가 명확해지기보다는 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진다는 얘기다. 양측은 북미 직접 대화가 현실화될 경우,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아직까지 패를 고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불가피하게 전쟁이라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인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북미 양측이 상대방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에 대한 워싱턴의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고, 조지 W. 부시는 평양에서 공적 1호가 되었다. 그동안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유지시켜온 북미간의 거의 모든 협정과 상호 이해는 갈갈이 찢겨져 휴지통에 처박혀버렸다. 북미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도달한 것은 분명하다. 평양과 워싱턴은 겉으로는 평화적 해결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북미 양측이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전쟁을 위한 수순 밟기에 돌입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얼마 전 북한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며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계획을 준비하도록 펜타곤의 최고위 군사 관리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거듭된 발언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이라크와 북한)에서 동시에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한 럼스펠드의 발언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한낱 소문에 불과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경우는 없는 법이다.

실제로 지금쯤 미국에서 한반도에서 발생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모종의 군사적 옵션이 고려되고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펜타곤은 그동안 모든 종류의 우발 상황에 대비해 모든 종류의 대응 방안을, 상황 변화에 따라 수시로 업데이트해왔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해 군사적 대응 방안을 얘기하는 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종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군사적 대응 방안에 대한 미 정치권의 지지가 증가하고 있으며, 백악관은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군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등 외교적 해결보다는 군사적 대응 쪽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새로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아마도 핵실험도 실시하며, 궁극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전력을 증강하고 있는 미군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주한 미군과 주변 동맹군에 대한 선제 공격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의 선제 공격 위협에 대해 선제 공격 위협으로 맞서는 것은 현재 평양과 워싱턴이 직면한 전통적인 '안보 딜레마'의 필연적 결과물로 보인다.

전통적인 국제관계 이론에 따르면, 안보 딜레마는 단순히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럴 경우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좋지 않은 대치 국면으로 빠져들곤 한다. 약육강식의 무질서한 세계에서 한 나라의 군사력 증강은 인접국의 안보를 위협하게 되고, 그에 따라 인접국이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면 상대국은 초기 군사적 우위가 상쇄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군사력 증강을 꾀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비 및 안보 경쟁은 궁극적으로 양측의 불안정성을 높이면서 '선제 공격에 대해 선제 공격'으로 맞서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몰고간다. 핵 대치 상태에 있는 평양과 워싱턴은 바로 그 파국의 순간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북미간의 긴장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워싱턴에서는 김정일이 진심으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심이 있다면,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이 전력 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국제 사회를 향해 보다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지난 2003년 2월 5일, "북한의 핵활동은 현단계의 전력 생산을 포함해 평화적인 목적에 한정하고 있다"고 선언한 북한 외무성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일부 전문가들은 1992년에 발표된 남북 공동 비핵화 선언 정신을 따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층 가까워진 남북 관계에 편승해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이 남한의 친선 전문가들을 영변으로 초청, 핵시설 단지를 둘러보게 함으로써, 8천17개의 폐연료봉이 저장소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고, 핵재처리 시설도 적절하게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을 제안한다. 혹은 우방인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문가 대표단을 영변으로 초청해 핵시설 감시 장치를 제거했음에도 불법적인 핵활동이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전세계에 김정일 자신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플루토늄이 아닌 전력을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다른 방편으로 영변의 핵시설 주위에 전력선을 설치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내에서 북미간 직접 협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이 가운데 한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미국과의 직접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언뜻 보기에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정작 협상의 당사자인 북한이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입장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이 협상을 위한 협상에 관심이 없는 것은 명백하다. 명목상의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어 협상의 목적은 북한이 동의할 수 있는 결과, 다시 말해 북한의 국가적 이익과 김정일 정권의 체제 보장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획득하는 데 있다.

북한의 지도부는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다. 그들은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정치가들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협상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상태에서 협상 테이블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설사 미국이 협상에 나선다 하더라도 이라크 전쟁에 매달려 있는 한, 부시는 그동안 북한이 지겹게 들어온 레파토리, 즉 핵과 인권 문제 등을 열거하면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지루한 설교만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안보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이같은 협상 전략은 아무런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라크 문제가 마무리되는 순간, 미국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북한과의 합의 도출이 실패로 끝났다고 발표하고, 북한에 대한 전방위 압력을 가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북한의 지도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은 협상의 가시적인 성과는 고사하고, 그들의 잠재적 전쟁 억지력에 대한 믿음인 핵보유의 기회마저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북한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협상력이 전략적, 전술적 모호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부시 정권이 협상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장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도 두려워함으로써 스스로를 코너에 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김정일은 부시가 북한의 거듭된 상호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를 거부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마지못해 동의하게 될 경우, 국제적으로 체면을 손상하게 될 것으로 여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이 이라크전에 집중하고 있는 최근 그리고 향후 수개월간 북한의 김정일이 부시 정권을 강력히 압박하려는 실질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북한이 노리는 궁극적인 타깃은 무엇일까? 이처럼 극단적인 대치 상황에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더 이상 식량이나 에너지가 아닌, 미국의 북한에 대한 완전한 포기다. 현재 북한을 방문하는 모든 특사들에게 북한 관료들은 외부의 어떤 간섭도 거부하며,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는 북한의 자주권 확보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전한다. 그들은 또한 방문자들에게 북한의 인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선택의 자유를 위해 기꺼히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려 한다. 그들은 말한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우리의 방식대로 살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달라"고. 외교적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미국이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동안 취해온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의 개혁 개방 정책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은 이같은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이 현재 국내 경제 사정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고 인민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불가불 외화를 필요로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최근 북미 관계를 긴장시키는 북한의 일련의 도발 행위들을 자신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벼랑끝 전술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매달려 있는 동안, 백악관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은 명백하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부시의 대북 정책팀에 대한 당파적인 비판이 거세다. 처음에 백악관은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대화는 하지만 협상은 없다"고 말을 바꾸더니만, 다시 "우리가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겠지만 대리인이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결국 이제 와서는 "그들(북한)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협상에 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사소한 말장난과 겉으로 드러나는 정책적 모순은 북한이 핵 공갈 협박을 중지하고 핵무장의 야욕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그들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패러다임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03년 대통령 연두교서와 의회 증언에서 보여준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리차드 아미티지 부장관의 발언은 최근의 이같은 미국의 입장을 잘 드러내준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먼저 일방적으로 핵포기를 선언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까닭에 미국 주도의 국제적 고립 정책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거나, 미국 주도의 무력 공격에 의해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고, 미국의 이같은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겉으론 갈팡질팡해 보이는 백악관의 발표 내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정보전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최근 참담한 실패로 끝난 한국의 임동원 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비롯해 러시아와 호주의 중재 노력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2002년 7월 1일에 실시된 북한의 경제 개혁에 급제동이 걸렸으며, 이로 인해 북한은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주: 김정일의 국내 지지가 약해지고 있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일이 자신의 고향인 시베리아의 하바로프스크로 정치적 망명을 고려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핵포기 유도를 위해 중국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위해 중국이 요구한 몇가지 이슈에 대해 양보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워싱턴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될 경우, 중국 국경을 통해 밀려들 북한 난민의 일부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중국측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예: 다가오는 미하원의 "80-10-10" 의회 법안을 주목할 것). 또한 미국은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을 북한 지역에 재배치하지 않겠다고 베이징에 약속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미국 관리들은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에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 유지될 것이며,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협력에 대한 한계와 기회를 함께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 관리들은 평양에 대한 압력 행사에 미온적인 중국에 대해 당혹감과 불쾌감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환하고, 북핵 사태에 대해 중국이 워싱턴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현재 중국이 평양에 대한 외교, 경제적인 지원에 투자하고 있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북한이 넘어서는 안될 레드라인(금지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이 폐연료봉의 플루토늄 재처리를 강행하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북한이 5메가와트급 반응로에 새로운 연로봉을 장전하는 것은 묵인하겠지만, 사용된 핵연료봉을 국제 감시기관의 입회 없이 독자적으로 제거한다면, 그 시점이 미국에게 개전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이는 북한이 8천17개의 폐핵연료봉 가운데 단 하나라도 이동할 경우 미국이 즉각 공격에 나설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해, 부시 행정부는 이 점에 관해서는 상당히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고, 아직은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레드라인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필자는 이처럼 극단적인 CNN의 추측 보도를 들으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정일이 깨닫는 순간, 김정일은 미국이 정한 모든 레드라인을 일시에 넘어서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김정일이 미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아직까지 판돈을 더 늘리고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북한의 김정일은 붉은 깃발이 올라갈 때마다(레드라인이 설정될 때마다) 피에 굶주린 투우처럼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 고립과 '선무장 해제후 협상' 카드로 북한을 압박하는 부시 행정부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인 방안들도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북미간에 "헬싱키형 타협"과 같은 "포괄 협상" 아이디어도 포함된다(역주: 헬싱키는 냉전시대 미소간에 최초로 이루어진 군축 협상인 솔트I 협정이 타결된 곳이다). 헬싱키형 타협이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미사일 프로그램, 재래식 무기, 인권 문제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가침 보장, 에너지 및 식량 원조, 경제 지원, 정치 외교적 관계 정상화 등을 포함한 포괄 협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 방안은 가장 우호적인 분위기에서조차 처리하기 버거운 난제들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좀 더 현실적인 사람들은 포괄 협상 대신에 점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이미 합의한 대로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동결과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입증 절차에 합의하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즉각적이고도 전반적인 북미 관계 개선의 댓가로 에너지와 식량 원조를 얻는 방안이다. 물론 필자는 북한의 김정일이 이 방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얻는 것에 비해 포기해야 할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흘러간 과거를 그리워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제임스 켈리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기 전인 지난 2002년 10월 이전의 상황으로 북미 관계를 되돌릴 것을 촉구하며, 켈리가 지적했던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의혹에 대해서는 금창리의 선례를 따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에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그런 시절은 이미 영원히 흘러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부시와 김정일이 전쟁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정일에 대해 불만에 가득찬 북한 장성들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일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또한 김정일이 자신의 고향인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를 가끔 방문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망명과 같은 극적인 타결 방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부시와 김정일의 인간적인 궁합이나 두사람간의 직접 대화를 통한 해결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들은 서로를 너무 혐오하는 까닭에 한 방에 같이 있는 것조차 견디지 못할 것이다.

몇가지 중재를 통한 제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현재 대치중인 북미 관계에 직접 끼어드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베이징은 "자물쇠는 단 하나의 열쇠로만 열 수 있다"는 중국의 오랜 속담으로 화답한다. 다시 말해 현상태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부시 정권을 향해 현대의 로마제국인 미국만이 북핵 위기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상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새롭게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최근의 중재 실패에 연연해하지 말고, 북미 협상 무대의 한복판에서 양자가 만족할 수 있는 중재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북미간의 대치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아닌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의 북핵 위기를 남북 관계의 기초를 새롭게 재정립하고, 미래의 한미 군사안보 동맹의 임무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역사적인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이 연합해 통일된 한반도를 지향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적인 비전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햇볕은 따뜻하고 밝지만, 온정주의적 포용 정책은 풍요롭고 영화롭다.

이제 한국은 형제국인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을 개념적으로 정립해나가야 할 시기이다. 북한이 가난하고 약하며 불안한 반면, 한국은 풍요롭고 강하며 자신감에 차 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미국으로부터의 위협과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한미 동맹 관계에 균열이 생기길 바란다. 그들이 원하면 당신은 풍족하게 베풀어야 한다. 북한의 빅브라더로서 한국은 불안하고 황폐화된 형제국에 대해 부를 나누어주고, 개발 모델을 제공하며, 정통성을 인정해주고, 외세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한다. 오직 한국만이 북한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며, 경제 개발을 지원해줄 수 있다.

북한이 양보해야 할 것은 단 한가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같은 정책적 영역 등에서 부딪히는 주권 행사의 실질적인 한계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북한과 중국이나 북한과 소련의 관계에서도 돌출되었던 것들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남북이 진정 하나라고 한다면, 결국 한국인들은 한 민족, 한 식구로서 겪어야만 하는 곤경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에 대한 남한의 포용 정책은 남북이 평화 통일로 가기 위한 수많은 과정의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다.

지난 반세기를 통해 한국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했으며, 개방된 국제 사회 속에서 성숙한 자유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런 까닭에 이전의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포스트-탈냉전 시대에 걸맞는 안보 자세를 재정립하고, 북한을 견제하거나 제지하는 것이 아닌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하는 외교 정책을 확대해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필자는 이같은 한국의 전략적 태도의 변화가 한미 군사 안보 동맹에 상처를 주고, 특히 WMD 확산과 지역의 안정,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과 같은 미국의 국제적, 지역적 이익을 훼손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 대화및 상호 이해 협력의 증진을 통해 남북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기본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라도 미국은 우방인 한국이 남북 문제에 있어서 워싱턴의 간섭없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신뢰를 보내야만 한다.

***역자 소개**

이 글을 번역한 역자인 다큐멘터리스트 임종태(echorhim@hanmail.net)씨는 EBS 특집 <한국 호랑이, 그 흔적을 찾아서>, KBS 5.18 20주년 특집 <광주항쟁, 그후 20년> 등을 제작했고 2년전부터 북미 관계를 취재해오면서 월간 말지와 월간 중앙을 통해 꾸준히 활발한 기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1년 말, 본격적인 미디어 비평서인 <스타메이커>(창작시대)를 출간한 데 이어, 최근 북핵 위기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노무현 정권의 해결 방안을 다룬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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