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테러와의 전쟁', 그 역겨운 이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테러와의 전쟁', 그 역겨운 이면

임종태의 '부시 일가의 영원한 제국' <2>

***제2부: ‘테러와의 전쟁’, 그 기묘한 수사학의 의미**

그로부터 몇개월이 지난 2001년 여름, 미국에서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다룬 영화 <진주만>(Peal Harbor)이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크린에서 경험한 가공할 진주만 공습의 잔영이 채 가시지 않은 9월11일 오전 8시45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92인승 보잉 767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84층과 85층 사이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고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스턴에서 LA로 향하던 아메리칸 에어라인(AAL) 소속 여객기가 갑자기 항로를 이탈해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타워를 들이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도 잠시. 그로부터 불과 18분 뒤인 9시3분, 역시 보스턴에서 LA로 향하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L) 보잉 767기가 또다시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로 돌진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것이 앞의 것과 차이가 있다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비행기 날개를 대각선 방향으로 회전하며 돌진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분이 지난 9시43분, 이번엔 세계의 철옹성이라 불리는 펜타곤이 워싱턴 달라스 공항에서 LA로 향하던 아메리칸 에어라인 소속 보잉 767기에 의해 피습당해 불타오르는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에서 펼쳐질 세기의 드라마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2분이 지난 10시5분, 마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듯 대각선 방향으로 날개를 꺽으며 돌진한 보잉 767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가 일순간 붕괴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치 폭파 공법의 진수를 보여주듯 순식간에 ‘와르르’.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25분이 지난 10시30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이번엔 첫번째 피격당한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마저 가공할 연무를 내품으며 남쪽 타워보다 훨씬 더 정교한 모습으로 수직 붕괴하고 있었다.

9.11 테러는 이처럼 몇가지 점에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을 안겨줬다. 먼저 9.11 테러는 독립전쟁 이후 단 한번도 침공당하지 않은 미국 본토, 그것도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와, 팍스 아메리카의 상징인 펜타곤이 그 타깃이 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둘째, 폭파 수단으로 폭탄이 아닌, 대형 여객기가 사용됐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셋째, 마치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세계무역센터의 드라마틱한 붕괴였다. 실제로 그것은 9.11 테러의 배후 인물로 알려진 빈 라덴조차 전혀 예측하지 못한 하나의 ‘묵시록적인 사건’이었다.

***부시는 9.11 테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일선 FBI 요원들의 9.11 테러에 대한 사전 경고를 CIA와 FBI 간부진이 고의로 누락시킨 사실이 포착되면서부터였다. 실제로 미국은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 독일과 프랑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로부터 테러 경고를 받았다. 특히 러시아는 “9월9일로 시작되는 주일에 25명의 비행사로 구성된 테러단이 여객기로 매우 중요한 건물을 들이받을 것”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통보해 주었다. 그런데도 부시는 사전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9.11 테러를 보고 받은 후에도 부시는 80분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ABC 방송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플로리다주 사라소타(Sarasota)의 한 호텔에 묵고 있던 부시는 부커(Booker) 초등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리무진에 오르다 앤드류 카드(Andrew Card) 비서실장으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았다. AAL 보잉기가 WTC 북쪽 타워를 들이받은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또한 CNN 브레이킹 뉴스에 따르면, 리무진이 북커 초등학교에 막 도착하던 오전 9시, 부시는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인 콘돌리사 라이스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부시가 9.11 테러 담화를 발표한 시각은 그로부터 무려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그것도 초등학생들과 담소하다가 학교 TV 스크린에 나타난 WTC 피격 장면을 시청하고서. 게다가 이 자리에서 부시는 기자들에게 어처구니없게도 WTC 피격 장면을 보고서 그것을 단순한 조종사의 실수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헌데 부시가 TV를 통해서 본 WTC 피격 장면은 첫번째가 아니라, 두번째였다. 첫번째 피격 보고를 이미 두차례나 받은 미국 최고 통수권자가 두번째 피격 장면을 보고 그것을 단순한 조종사의 실수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통령 딕 체니는 9.11 테러가 발생한지 5일이 지난 9월16일, ‘기자와의 면담’(Meet the Press) 시간에 실수로 테러 상황을 알고 있었음을 폭로하고 말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백악관 비밀경비대(The Secret Service)는 FAA(연방항공통제국)와 특별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비대는 WTC 빌딩이 피격당하면서부터 연락망을 열어 놓았다...”고 얘기하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황급히 말을 끊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백악관 비밀경비대는 WTC가 첫번째 피격을 당했을 때 이미 FAA와 연결된 통신망을 통해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9.11 테러가 발생하기 직전 시카고 증권거래소에서는 9.11 테러와 관련된 UAL과 AAL,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주식이 풋옵션(put option) 방식으로 대량 거래됐다. 주가가 떨어져도 매입 당시 가격으로 매각하는 풋옵션은 흔히 주가 폭락이 예상될 때 사용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 기업은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도이체방크-A.B.브라운이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AB.브라운은 전세계 금융 시장의 감시 기능을 맡고 있는 CIA의 Executive Director인 크론가드(Krongard)가 1998년까지 책임자로 있던 회사였다. 게다가 CIA 서열 3위인 이 자리에 크론카드를 천거한 인물은 다름아닌 부시였다.

실제로 CIA에서는 9.11 테러 전부터 ‘프로미스’(Promise)의 방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세계 금융 시장을 감시해왔다. 프로미스는 CIA의 정보용 특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이스라엘 등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Fox 뉴스에 따르면, 빈라덴은 최소한 2001년 6월에 프로미스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FBI와 법무부 역시 적어도 2001년 여름까지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다시 말해, 9.11 테러 직전 CIA는 ‘프로미스’를 통해 알카에다의 움직임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9.11 테러를 사전에 알고도 방치한 부시의 의도는 무엇일까?

***'테러와의 전쟁’ 그 기묘한 수사학의 의미와 아프간 침공**

WTC 건물이 피격당할 때까지만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던 부시는 불과 몇시간만에 갑자기 전지전능한 신으로 돌변한다. 9.11 테러가 발생한지 불과 몇시간만에 테러의 배후 인물로 빈 라덴을 지목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자 전세계 언론의 관심은 빈 라덴이란 인물과 그의 근거지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부시는 빈 라덴이 아프간에 은거하고 있다며 느닫없이 탈레반 정권을 향해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했고, 오마르(Mullah Muhammad Omar)가 불응하자 거침없이 아프간을 침공했다.

부시가 아프간 침공을 감행할 때만 해도, 미국의 방송과 언론은 아프간 침공이 자칫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아프간의 탈레반 군은 다름아닌 미국의 지원하에 전투하기에 열악한 지형 환경을 기반으로 치열한 게릴라전을 전개해 구소련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독립을 쟁취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불과 2개월여만에 탈레반 정권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신개념 과학에 근거한 미 특수부대의 전투력은 구형 무기와 낡은 전술에 의존하던 구소련군의 전투력과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미군의 아프간을 침공은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아프간 북부 동맹군의 도움으로 개전 2개월만에 탈레반 정권을 항복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부시가 침공 구실로 내세운 빈 라덴과 오마르의 행방은 묘연했기 때문이다. 미군의 침공 이후 아프간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만신창이가 된 탈레반 정권이 부시가 원하는 아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정권으로 교체됐다는 점에 불과했다. 그것도 가공할 폭격으로 비참하게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조각난 시신을 댓가로.

하지만 바로 그것이 석유 재벌 출신인 부시가 아프간을 침공한 실질적인 이유였다. 아미드 카르자이는 아프간의 수상이 되기 전까지 세계 굴지의 석유회사인 유노칼(Unocal)의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노칼을 비롯한 미국의 메이저 석유 회사는 오래전부터 페르시아만의 매장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중앙 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눈독을 들여왔다. 그런 까닭에 이 지역을 하나의 이슬람 공동체로 묶어 풍부한 지하 자원을 통해 전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탈레반 정권은 반드시 제거해야할 악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부시가 아프간을 침공한 실질적인 이유다.

하지만 부시가 아프간을 침공한 이유가 단지 탈레반 정권의 붕괴를 통한 중앙 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확보뿐이었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그보다는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묘한 수사학을 전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켜며 은연중에 그것을 정당화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국가간 전쟁은 유엔의 룰에 따라야 하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 vs 국가'간 전쟁을 '국가 vs 테러국가'로 변질시킴으로써 유엔의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묘한 근거’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묘한 수사학에 담긴 의미는 바로 이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은 앞서 언급한 폴 월포위츠의 prevent war 정책의 불법성을 정당화시키는 레토릭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공식을 미국에 저항하는 불량국가들을 상대로 정식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야말로 9.11 테러 1주년을 기념해 자신이 ‘악의 축’이라 규정한 후세인 제거를 공언하며 이라크 침공에 들어간 부시의 숨은 의도이자, UN의 승인 하에 이라크를 침공해야만 했던 아버지 부시와 UN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아들 부시의 차이였다.

***후세인 제거후 부시의 중동 패권 전략**

그렇다면 후세인 제거후 부시가 구상하는 중동 패권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후, 부시가 아프간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보를 살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석유 재벌 출신인 부시는 탈레반의 오마르를 몰아낸 후, 아프간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로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 간부인 아미드 카르자이를 임명했다. 유노칼 직원인 그를 아프간의 새로운 국가 수반으로 내세움으로써 페르시아만의 매장량보다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중앙 아시아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후세인 제거를 통해 부시가 바라는 것은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 지역의 원유 확보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 행정부내 전형적인 매파 인사로 알려진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이 사우디의 알-아스와트 신문과의 회견(2.2)에서 “이라크에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프랑스의 석유합작사인 토탈피나엘프는 석유 문제를 놓고 이라크와 재협상을 벌여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영국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온 실질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가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실질적인 이유도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로코일이 이라크 유전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런던의 클로벌 에너지연구센터(CGES)에 따르면, 현재 1천1백25억 배럴로 추산되는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실제 매장량의 극히 일부로 알려졌다. 이는 이라크 국영석유회사인 INOC가 지난 1971~1980동안에만 무려 4백50억 배럴의 원유 매장지를 발굴해낸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후세인 정권이 붕괴될 경우, 이라크 정부는 전후복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석유 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현재 하루 3백만 배럴의 석유 생산량은 향후 9년 안에 8백만 배럴로 늘어나면서 최대산유국인 사우디와 석유 생산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같은 경쟁은 전세계의 기름값 안정에 크게 기여함과 더불어 외화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는 중동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라크로부터 매년 6백억달러 상당의 석유를 최소한 5년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라크 전비로 추정되는 9백억 달러는 1년 반정도만 지나면 회수할 수 있고, 남은 3년 반동안 얻게 될 2천억 달러에 달하는 원유는 전리품으로 챙기겠다는 말이다. 부시가 이라크 점령후 상당 기간의 군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부시는 이미 후세인의 후계자로 이라크국민회의(INC)를 이끌어온 아흐메드 찰라비 의장(58)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의 분할 통치를 구상하는 부시에게 친미 성향이면서도 이라크내 지지 기반이 취약한 그보다 적당한 인물은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정리되고 나면, 부시는 쿠웨이트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의 원유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에게 독립 의지를 고무시켜온 부시 정권의 행태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의 보호하에 자체 의회를 구성하는 등 후세인의 통제에서 벗어난 쿠르드족은 공식적으로는 자치와 석유자원의 공유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후세인이 축출되고 나면, 그들은 자체 군대의 창설과 쿠르드어 방송국 설립, 석유산업 중심지인 키르쿠크에 수도 건설 등을 요구하며 사실상의 독립을 꿈꾸고 있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미군의 용병을 자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터키와 이란, 시리아에 흩어져 있는 2천만 쿠르드족의 독립 투쟁을 촉발시킴으로써 중동을 거대한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비록 터키 의회의 부결로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이라크 침공에 협력할 경우 터키가 미국으로부터 수백억 달러의 경제 지원를 보장받고 미군의 이라크 침공시 터키군 8만을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 지역으로 파병하려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칫 쿠르드족의 독립 문제를 방치했다가 이라크 북부와 인접한 자국내 쿠르드족의 독립 운동을 촉발시켜 사실상 터키가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기는 시리아와 이란 역시 마찬가지. 지난 2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미국무부의 볼튼 차관이 이라크 다음에 이란과 시리아가 미국의 타겟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분쟁 조정을 핑계로 중동 분쟁에 개입해 원유를 차지하려는 미국에게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기 때문이다.

***부시 정권이 에너지 확보에 혈안이 된 이유**

그렇다면 부시는 왜 그렇게 에너지 확보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것은 부시 행정부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먼저 부통령 딕 체니는 세계 2위의 에너지회사인 핼리버튼의 대표 출신이다. 여기에 콘돌리사 라이스 보좌관 역시, 쉐브론사의 중역으로 아프간 침공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카자흐스탄의 석유를 다뤄온 인물이다. 게다가 도널드 에반스 상무부장관 역시, 톰 브라운사를 경영하며 석유사업 분야에 상당한 실력을 쌓은 인물이고, 상무부 차관인 캐설린 쿠퍼는 엑손 모빌의 중역 출신이다. 게다가 텍사스 주지사 출신인 부시는 지난 대선에서 이 지역 석유 회사들로부터 공식 후원금만 무려 3백만 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민들에게 에너지 확보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사건은 따로 있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지 부시의 취임을 불과 3일 앞둔 2001년 1월 27일,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 지역에서는 갑작스런 전력 중단으로 인한 대혼란이 발생했다. 도산 위기에 처한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회사가 90분 가량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학교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정지하면서 학생들이 갇히는 등 정전 사태로 50여만명이 피해를 당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카터 정권 시절의 2차 오일 파동으로 인한 정전 사태를 떠올리면서 중서부 지역에서의 가솔린 가격 폭등 사태로 비화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부시는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위기와 석유 가격 폭등에 대처하기 위해 4월29일, 부통령인 딕 체니를 책임자로 하는 에너지정책입안 특별위원회를 긴급 가동시킨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난 5월17일, 특별위원회가 작성한 1백70쪽 분량의 <국가에너지정책>을 발표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인 게파트 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엑슨 모빌사의 보고서> 같은 이 문건"을 통해 부시는 단기적으로는 전력 위기에 대응하고, 장기적으로는 조만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에너지 확보와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실제로 미국의 석유 매장량은 1천3백억배럴 정도로 알려졌다. 미국의 연간 소비량이 70억 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18년도 못되어 고갈되고 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에너지 수입국으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부시 정권 들어, 미국의 석유 소비 수입의존도가 오일 파동을 겪던 카터 정권 시절(33%)보다 무려 23% 늘어난 56%나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최대 석유수입국은 놀랍게도 매일 60만 배럴을 수입하는 이라크다. 배럴당 25달러로 계산해도 ‘악의 축’인 후세인에게 매일 1천5백만 달러를 송금해온 셈이다. 이쯤되고 보면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도 전혀 이해못할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단순히 후세인 제거를 통한 중동 지역의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뿐이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일반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아프간 침공을 통해 국가간의 전쟁을 ‘국가 vs 테러국가’의 전쟁으로 변질시킴으로써 폴 올포위츠의 prevent war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이라크 침공을 통해서는 국가간의 전쟁을 ‘국가 vs 불량국가’의 전쟁으로 변질시킴으로써 prevent war 정책을 일반화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9.11 테러를 계기로 아프간을 침공한데 이어, 이라크 침공에 들어간 부시의 또다른 의도라고 생각한다.<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