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프레시안>에 연재된 경제 칼럼 연재 기획 '삶은경제'가 재개됩니다. 앞으로 매주 1회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기억을 지우며 산다. 채우기 위해 비우고, 비운 것을 되찾기 위해 기록하고 보관한다. 기록은 과거의 흔적이면서 미래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다. 불과 십 수 년 만에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기록의 공간이 확장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들어가면 역대 선거에서 각 정당이 제시한 공약을 볼 수 있다. 정당은 같은 이념을 기반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때문에, 정책공약의 현재적 평가는 그 정당에 대한 신뢰수준(약속에 대한 이행여부)을 나타내며, 미완의 과제를 향한 유권자의 요구를 다시 수렴한다. 공약은 기록된 정당의 약속이기에 문재인 정부 2년 금융정책 평가와 개선과제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제시한 19대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하겠다고?
19대 대선 당시 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선거공약은 총 20페이지이다. 그 중 주목해서 본 것은 5페이지에 있는 '반부패·재벌개혁,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됩니다'라는 공약이다. 친절하게도 공약을 순위별로 중요도를 제시했는데, 1번이 일자리 확대, 2번이 정치권력과 권력기관 개혁, 3번이 재벌개혁이었다. 총 10가지 공약 중에서 3번째로 중요한 공약이 바로 재벌개혁이었다.
특히, 각 공약은 목표와 이행방법으로 세분화해서 이해를 돕고 있는데, 2번째 목표로 제시된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하여 포용적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겠다는 문구는 말 그대로 혁명적이었다. 어떻게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할지 궁금했다. 누가 재벌개혁의 칼자루를 쥐게 될지 자못 궁금했다. 문재인 정부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튀어나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은 가관이었다. '몰아치듯 기업개혁을 하지 않겠다',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겠다'이 말과 함께 오히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 경직성을 탓했다.
그의 말처럼 몰아치지 않고 재벌의 셀프 개혁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대선공약에서 제시했던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과 자사주 의결권 방지'는 물 건너갔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차등의결권 도입, 500억 상속세 공제 등의 정책을 도입해 재벌 3, 4세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려 하고 있다. 집권 초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2년의 골든타임이 지나가면서 더는 재벌개혁을 논할 수 없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제2금융권을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고?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하기 위한 목표 아래 3번째 이행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문어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방지'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박스 안에 '금산분리로 재벌이 장악한 제2금융권을 점차적으로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고 명시했다.
2년이 경과한 지금, 재벌의 지배에서 점차적으로 독립한 제2금융권은 없다. 어떠한 정책적 시도조차 없었다. 되려 문재인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허용을 통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허용을 통해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소유 지분 한도를 34%까지 늘렸고, 대주주 적격성과 관련해서는 시행령에 위임했다. 금융산업을 규제하는 각 개별법령과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도 아예 무시한 것이다. 특례법에 그것도 시행령 위임이라는 엉터리 방식을 결합했다.
개인정보 감독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공약집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인정보 감독 체계를 현재보다 강화하고,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효율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집권여당은 금융권 빅데이터 활용을 통한 개인정보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용정보법 개정을 통해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2018년 3월 19일 금융위원장이 '금융분야 데이터활용 및 정보보호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인정보를 확산시켜 놓고 거꾸로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억지궤변이다. 이미 흘러 넘친 물은 다시 담기 어렵다.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하겠다는 발상은 개인정보를 '상품' 그 자체로 보기 때문이다.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해야 할 금융회사와 이를 감독하는 금융위원회의 수장이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는 내팽개치고, 오히려 이를 내다팔거나 가공하는 등 상품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국정과제는 차일피일, 실종된 노동이사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유독 눈에 띄었던 항목은 '노동이사제' 도입이었다. 공공에서 민간으로의 확산이라는 부제가 제시될 만큼 이행경로까지 밝힌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민주당 기획재정위원 박광온 의원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특별시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고, 산하 16개 기관에서 도입되는 것을 보면서 점차 금융공공기관으로 확산되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2년이 경과한 현재까지 이 법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그리고 처리 가능성이 희박한 개정안으로 남았다. 기획재정부는 일부 공공기관에 '노동참관제'를 시범운영하겠다며 발을 빼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상 공약 파기다.
야당일 때는 요구하고, 여당일 때는 무시하고... 보험업 감독규정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려고 나선 사람은 막는 것이 현재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요지는 보험회사가 다른 회사의 지분을 3%를 시가보다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현재도 삼성생명은 취득원가 기준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종걸 의원의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감독규정을 스스로 바꾸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법률로 제어하고자 낸 것이었다.
집권 이후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줄기차게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감독규정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대로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야당 시절 이종걸 의원이 요구한 것을 여당 의원이 다시 요구한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보험업법 감독규정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법률 개정안을 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박용진 의원을 정무위원회에서 교육문화위원회로 사보임시켰다. 삼성과 대결했다는 이유가 이 저질스런 축출의 이유인 듯 했다. 민주당이 금융개혁, 재벌개혁 의지도 없고 유권자와 약속마저 잊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누구를 위한 금융혁신인가?
문재인 정부가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 '혁신금융'은 박근혜 정부가 내 건 '창조금융'의 복사판이다. 4차 산업혁명에 목을 맨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은 핀테크 등 기술을 혁신하는 금융정책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진정한 금융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데 있다. 재벌들을 향한 금융의 물꼬를 더 키울 것이 아니라, 방향을 돌려 서민대중을 위한 물길을 만드는 것이 금융혁신이다. 그러나 이 정부의 금융혁신이 지금 불평등·양극화에 신음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고 있는가? 이전 정부보다 더 나가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약탈적인 금융으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았는가? 오히려 금융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재벌의 편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집권 2년차 문재인 정부는 내 놓아야 한다.
<별첨> 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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