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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러기 아빠, 서울대 책임"

정운찬 서울대 총장, 취임후 최초 공개강연

한국에서 '서울대'란 도대체 무엇인가.
단순히 국내에서 입학점수가 제일 높은 명문 대학인가. 때문에 서울대에 들어오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예민한
'임팩트(자극)'만 던져줘도 좋은 대학인가. 아니면 일각에서 예기하듯 서울대 총장은 '민간 교육부총리' 이상 가는 한국교육의 바로미터인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이같은 의문에 대해 일부 소신을 밝혔다.

***정운찬 총장, 말하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지난 7월 20일 서울대학교 25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의 비전을 공개 강연을 통해 밝혀 주목된다.

정 총장은 26일 오전 7시 인간개발연구원(원장 장만기)이 주최하는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에 강사로 초빙된 자리에서 "한국의 경제처럼 한국의 대학 역시 규모의 경제로 양적 팽창만 해온 결과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급변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질적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대학교육에 관한 기본 철학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정 총장은 서울대의 질적 교육여건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글쓰기 센터 설립, 신임교수 연구비 지원, 도서관 확충, 비교우위학문 집중투자, 생명공학센터 설립 등 구체적인 계획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총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할당제에 대해 "미국 일류대학들은 대개 지역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하버드대도 지난 50년대 지역할당제로 미국 전역, 나아가 세계 각국에 대해 쿼터제로 학생들을 받아들이면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다"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강연이 끝난 뒤 이뤄진 보충질의 시간을 통해 정 총장은 "고교평준화로 인한 폐혜가 극심하다"면서 "고교 입시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소신"이라고 주장해 고교 평준화제도를 지지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다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기업이 필요한 것은 기업이 가르쳐라"**

또한 정 총장은 기업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대졸 인재가 26%밖에 되지 않는다는 최근 조사에 대해 "대학은 오히려 기초를 가르치는 데 치중해야 한다"면서 기업 위주의 논리에 반대했다.

정 총장은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대학이 기술을 가르쳐봤자 얼마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더욱 필요하며 기업이 필요한 것은 기업이 가르쳐야 할 것"이라며 기초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밖에 정 총장은 대학생 30~40%가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고시에 대학생들이 매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4년간 거쳐야 할 과정을 어렵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시제도도 법과전문대학원을 만들어서 이들 출신으로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좋다고 생각하지만 기존 법조인들의 반대가 심하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정 총장의 강연이 끝난 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격려사를 통해 "서울대가 추진하는 지역할당제는 지역학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서울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라면서 정 총장의 정책을 강력히 지원했다.

조 교수는 또 "고교 평준화는 큰 문제이며 경쟁시대에 평준화라는 것은 수준을 하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면서 고교 평준화를 반대하고 고교입시제도부활을 소신으로 갖고 있는 정 총장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운찬 총장은 이번 강연에 앞서 프레시안과 만난 자리에서 "이제 할 말은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강연은 이런 맥락에서 정총장의 처음 '할 말'을 기록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정 총장은 단순한 서울대총장이 아니다. 사회, 그 중에서도 특히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서울대 총장' 정운찬의 위치는 각별하다. 질곡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국교육의 돌파구를 마련해주기를 바라는 염원은 각별하다. 서울대 총장이 아닌 '민간 교육부장관'으로서의 정운찬 총장의 약진을 기대한다.

다음은 김용운 방송문화진흥재단 이사장, 윤병철 우리은행 회장,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등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회원 1백여명을 대상으로 1시간여 동안 이뤄진 정운찬 총장 강연 내용 전문이다.

***정운찬 총장 강연 내용**

지난 75년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의 연구회에 강사로 초청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이라 조찬 모임에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모임에 혹시 늦을까봐 밤새 잠도 잘 못잤습니다. 아직 비몽사몽이라 실언이 나오더라도 양해바랍니다.

한달 전 은사이신 조순 선생님께서 한 번 나오라고 전화를 주셔서 감히 거역 못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에 대해 부정적 측면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제가 서울대 총장을 맡으면서 살펴보니 서울대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오늘 이 기회를 통해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강연의 주제가 '한국의 미래와 서울대학교의 새 비전'으로 주어져서 과연 한국의 미래와 서울대의 비전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정희성 시인이 쓴 시 중에 "누가 조국이 가는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시인의 말씀대로 저 역시 서울대의 미래가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기본과 장래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과 제도'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지식, 도덕, 인내, 사명감 등을 가르쳐 경륜과 창의성을 기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90년대 미국은 저물가 고성장의 경제호황을 누렸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 컴퓨터 등 정보기술의 공헌이 크다고 하지만 정보기술도 인간에 의해 활용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90년대 미국의 경제호황도 미국인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제를 호황으로 이끈 인재들이 배출된 것은 70년대 미국이 행한 대학개혁이 성공했다는 것이 큰 요인입니다. 미국 경제는 60년대 황금기를 지나 70년대 어려운 시기를 맞이 하면서 일본에게도 뒤질지 모른다는 비관주의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구조조정을 실시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학 개혁이었습니다.

70년대 미국의 유수한 대학 등은 이미 선진적이었던 대학들에 대해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기존의 분과 학문 중심, 응용기술 중심의 교육은 급변하는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문간 장벽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학문을 습득해야 한다는 방향에서 인문, 자연계 등 기초학문을 강화하고 법과, 의과, 공과 대학 등 각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데 출신 학과에 대한 제한을 대폭 낮추었습니다.

기술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는 사회에서 기존지식을 습득하는데 머무는 교육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곧바로 사장돼 고등실업자만 양성하는 셈이 됩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지식을 창출하고 스스로 습득하는 능력 자체를 배양하는데 주력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서울대는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서울대를 포함한 기존대학시스템은 선진지식을 전파하는데 공헌을 했습니다. 교수들이 먼저 선진지식을 흡수하고 이를 전파하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연평균 8%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사람을 기르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줄어든 시점에서 이제 대학은 지식창출에 기여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 대학들이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학교육은 지식습득 단계를 넘어서 지식창출 단계로 기능이 옮겨져야 합니다.

서울대를 포함한 한국 대학들의 현실을 살펴보면 대학 교육은 한 나라의 커다란 기간산업에 해당합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대학 교육은 괜찮았습니다. 이후 양적 성장은 있었으나 질적 성장은 부실했습니다.

한국경제가 과잉투자, 과잉시설로 수익률이 저조해지면서 금융부실이 초래된 것과 비슷하게, 대학들도 지난 30~40년 동안 과잉투자, 과잉시설로 학생수만 많아졌습니다.

한국대학들이 이처럼 부실하게 된 원인은 한국교육산업이 '나도주의'(METOOISM)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나도주의'는 제가 만든 조어입니다만, 다른 대학도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모든 대학들이 종합대학화했습니다.

대학도 한국경제처럼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에 대해 과신을 했습니다. 국가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특정 학문을 육성한다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갔습니다. 공대를 육성하면 모두 다 공대를 확장하고 지방대를 육성한다면 모두 지방대를 만들었습니다.

서울대가 대학원 중심으로 나간다고 하니까 대학원생들이 몇 배나 늘어났습니다. 수요에 관계없이 공급만 이렇게 늘어나니 교육산업은 고비용산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구대비 세계 1위의 대학생수**

4년제 대학과 대학원의 학생수를 합하면 4천7백만 인구대비 4.07%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비율은 세계 제 1위입니다. 서울대의 경우 등록생이 3만3천명, 재학생이 3만 8천명으로 인구대비 0.06%에 이릅니다. 세계적인 일류대학이라는 일본 동경대의 3배, 하버드대의 10배, 버클리대의 7배입니다. 하버드대의 경우 미국 인구 2억5천만명 중 매년 학생 1천6백명만 뽑습니다.

특정대학 점유율(서울대, 연대, 고대 3개 대학)은 인구대비 0.18%로 미국의 하버드, MIT, 버클리 3개 대학이 차지하는 0.02%의 거의 10배가 됩니다. 특정대학에 학생들이 몰리는 이런 현상은 대학교육의 부실화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요 대학 10개를 합한 학생수는 1만명이 안됩니다. 한국은 3개 주요대학에서 1만5천명을 뽑습니다. 이같은 대학 규모는 억제되어야 합니다. 외적인 양적 팽창을 제한해야 합니다.

90년대 이후 서울대는 사회변화에 능동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90년대 한국 경제가 자본 수익률이 악화돼 IMF위기가 온 것도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 것이 근인이었습니다. 서울대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서울대도 너무 큽니다. 보다 내실을 길러야 합니다.

대학 교육을 연구, 교육, 봉사라는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때 서울대의 연구 능력은 지난 10년간 연구를 강조하고 'BK21' 프로젝트에 따라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면서 논문발표수에 있어서는 실적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세계 3천9백여개의 과학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을 조사해 발표하는 SCI 논문게재수를 보면 2001년 서울대가 42위를 차지했습니다. 올해는 35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위가 각 나라 대표 대학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2만여개 대학을 상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적은 상당한 것입니다.

40위권에 영국의 2개 대학도 있지만 유럽대륙만 보면 40위권에 드는 대학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시아에서 4개 대학이 서울대를 앞섰지만 조사대상 저널에 우리나라는 10개 정도 있는데 비해 일본어 저널이 많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은 이처럼 세계적이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미흡하다고 인정합니다. SCI 게재 논문 중 피인용건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한편 한 편의 논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투자했느냐는 점에서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의 조사결과를 참고해 서울대에 적용해 보면 SCI 게재논문 한 편당 서울대는 2.25억원이 들었습니다. 동경대는 2.99억원, 하버드대는 2.49억원, 옥스퍼드대는 2.30억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한국의 대학들에 대해 비판만 하지는 말아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 출신 학생들이 유학을 갔을 경우 대개 1~3등을 합니다. 그러나 역시 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학생들은 코스 워크(Course Work)에서는 매우 우수한데, 테크니컬한 면이 적은 단계에 들어가면 상대적으로 저조합니다.

대학의 사회적 봉사라는 측면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결과적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용역 조사를 해본 결과 서울대가 서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외부에서 서울대를 보는 시각은 매우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부에서 서울대를 보는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서울대 출신들은 우월한 지위만 누리고 있지 사회에 대해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저는 보다 내실있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서울대가 더 이상 팽창하지 않도록 하고 학부 학생, 대학원생을 줄이도록 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글쓰기 센터를 설립해 이번 겨울방학때부터 실시할 계획입니다. 4천명이 넘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을 위한 예산을 뽑아보라고 했더니 잘 하려면 10억원, 중간 정도로 하면 5억원, 기초적인 정도로 하면 2억6천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예산도 여의치 않아 우선 2억6천만원의 예산으로 글쓰기 교육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운용을 잘하면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임교수들에게 시드머니(종잣돈)을 제공할 방침입니다. 신임교수들이 연구를 위해 경비를 스스로 조달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과 교수에게는 1인당 3천만원, 문과 교수에게는 1천만원씩 제공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논문 한 편이 나온다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으로 지급하는 것입니다.

자연과학분야에서 서울대는 양적인 면에서 성장을 많이 했지만 세계적인 질적 우위를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울대가 세계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는 한국관련학과입니다.

'한국경제와 외환위기' 같은 주제들은 외국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입니다. 통일에 대한 연구도 비교우위를 가져야 합니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점에서 통일 분야는 한국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는 학문 분야입니다.

기초학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인문사회과학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입니다. 또한 도서관을 확충하고 이과대의 기자재를 대폭 보강할 것입니다 특히 첨단 BT(바이오테크놀로지) 양성을 위해 바이오맥스(bio multidisciplinary adventurous exellence)라는 생명공학센터를 설립할 것입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들 스스로 연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아가 말하기 훈련, 한자 훈련, 영어 훈련 등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강화할 것입니다.

대학교육이 기존지식 습득 차원에 머물면 막스 베버가 말했듯 '비지성적인 전문인'만 길러낼 우려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교육 철학자 콩도르세는 "대학은 제도의 추종자가 아니라 기존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곳"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사상, 교수, 학습의 자유는 인권과 마찬가지로 옹호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는 자기에게 엄격한 인재로 키우겠다**

서울대는 지성과 덕성을 함께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한 덕성은 특히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인재를 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봉사하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올해 처음으로 관악봉사상을 제정해 시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생처장도 과거에는 데모를 잘 막을 것 같은 교수를 시켰지만 저는 이번에 음대 교수를 임명하고, 부처장도 여교수를 임명했습니다. 대학생들의 인성이 풍부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입니다.

대학교육에서 선진지식을 빨리 습득하는 것은 발전 초기 단계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창의성 있는 인재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새로운 것을 스스로 생각해 내는 재능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수능, 내신 잘 하는 사람을 뽑기도 하겠지만 어느 한쪽을 잘 하는 사람을 포함해 골고루 뽑으려고 합니다.

지역할당제는 제 개인적으로는 '지역 배려제'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제 은사이신 조순 선생님께서 제가 학생시절 강원도 등 각 지역에서 몇 명씩 뽑자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기환 박사라는 분이 외국에 계시면서 지역할당제를 주장하는 글을 대학신문에 기고한 적도 있습니다.

미국의 일류사립대들도 대개 지역배려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보보스(BOBOS)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을 보면 하버드대가 매사추세츠주의 1류 대학을 넘어 세계 1류가 된 것은 50년대에 미국 전역에서 지역을 배려해 신입생들을 뽑았기 때문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아가 아시아 쿼터제 등을 통해 세계 각국 학생들을 뽑으면서 하버드대가 세계 1류 대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칭화대와 베이징대 등 명문대의 경우 각각 3천명 정도씩 뽑는데, 3백만명의 지망자 중 0.01%를 뽑으면서도 지역배려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역배려제는 서울대내에서도 아직 50%를 넘는 찬성을 못얻고 있습니다만 이는 제 소신으로 강력하게 밀고 나가 빠르면 2004년, 늦어도 2005년까지는 반드시 시행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내 연구팀이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서울대는 한국의 장래를 두고 각계각층의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이론적,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지식재판관'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할 서울대 교수들은 우선 생활이 안정돼야 합니다. 이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총장 선거과정에서 만나본 공대 교수들 중에 주택이 없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교수가 된 뒤 5년간 무주택자였습니다. 교수들에게 주거안정을 위해서 서울대 총장 관사 부지를 재개발할 방침입니다. 관사 부지를 재개발하면 1백20가구가 나오고 기존의 교수아파트를 포함하면 1백60가구 정도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울대 교수들의 보수가 매우 낮습니다. 처우개선을 위해 현재 봉급 인상을 위한 재조정을 끝낸 상태입니다.

서울대 운영과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그동안 서울대는 하향식으로 의사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총장과 스태프 들이 안건을 올리면 그대로 통과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장에 취임한 이후 안건이 상향식으로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평교수위원회를 강화해서 총장을 견제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습니다.

기존의 총장직선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총장선출제도도 개선작업중에 있습니다.

서울대가 탄생한지 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회가 많은 변화가 있는 만큼 서울대는 자기개혁을 해야 합니다. 서울대는 앞으로 세계 10대 대학을 지향할 것입니다. 저는 그 기초를 닦겠습니다. 총장을 맡고보니 총장의 권한이 제한돼 있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서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보충문답 주요 내용**

보충질의시간이 되자 10여명으로부터 질문이 쏟아졌으며 이에 대해 정 총장은 하나로 묶어 종합해서 답변을 했다.

다음은 정 총장이 보충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갈음한 내용이다.

조순 선생님도 계신 자리라 당황에서 할 말을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과잉투자, 과잉규모로 IMF를 겪은 이후 미진하나마 구조조정이 많이 된 것으로 저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분야는 구조조정 기회를 못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육도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돼야 합니다.

서울대가 타교 출신을 교수로 뽑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99년부터 정부가 정해준 룰에 따라 신임 교수의 3분의 1은 타교 출신으로 뽑고 있습니다. 99년부터 이 룰이 적용된 이후 서울대의 신임교수 중 35~40%가 타교 출신입니다.

한가지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 교수 임용에서 다양한 배경이라는 것은 학사보다는 대학원이 어느 출신이냐는 점에서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하버드대의 경우 배출하는 학생들도 적어 타교 출신을 많이 뽑게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정부에서 외국인 교수도 많이 뽑으라면서 1백명의 외국인 교수를 영입하도록 했는데, 그중 65명을 서울대에 할당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대는 외국인 교수 20여명을 뽑았습니다.

기업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대졸 인재가 26%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씀도 나왔는데, 대학은 오히려 기초를 가르치는데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대학이 기술을 가르쳐봤자 얼마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더욱 필요하며, 기업이 필요한 것은 기업이 가르쳐야 하는 수고를 부담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학생 30~40%가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저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현실입니다. 고시에 대학생들이 매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4년간 거쳐야 할 과정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고시 공부같은 것을 함께 하기 힘들 정도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시제도도 법과전문대학원을 만들어서 이들 출신으로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기존의 법조인들의 반대가 심합니다.

***'기러기 아빠' 서울대 책임**

아까 우리나라 교육이 부실해 기러기 아빠 신세가 많다는 말씀도 있었는데, 저는 고교 평준화의 폐해가 여러 가지 폐해를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교 입시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신이기도 합니다.

고교 입시제도를 부활시키면 사실 지역배려제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아까 어느 분이 옥스퍼드의 PPE(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통합한 학과)같은 프로그램을 서울대에서 운영할 생각이 없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고려할 만한 것이지만 실제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교수들이 일정기간내 몇 편의 논문을 써야 한다는 식으로 여러가지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질문답변시간이 끝난 뒤 정 총장의 은사 자격으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의 격려사가 있었다. 조 교수는 "퇴계가 율곡보다 35년 연상이지만 깍뜻한 예의를 갖추며 후배에게도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면서 "저 역시 정 총장이 제자이기는 하지만 함께 배우는 동료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면서 정 총장의 학문적 식견을 높이 평가했다.

조 교수는 "오늘날 서울대가 사회의 비판을 받게된 것은 나 같은 서울대 선배 간부들이 잘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초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정 총장은 무투표로 사회과학대학장에 당선되었고, 총장 선거에서도 운동 한 번 하지 않고 당선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조 교수는 "아까 서울대를 세계 톱 텐에 들게 하겠다면서 자신은 기초만 닦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4년임기 가지고 기초라도 닦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미국의 경우 대학총장은 거의 종신직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총장은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정 총장이 총장 자리에 욕심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기 때문에 종신 총장이 된다고 뭐랄 사람 없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조교수는 "미국의 명문대로 평가받는 보든대는 전교생이 2천명에 불과한 조그만 학교임에도 전세계에서 골고루 학생들을 뽑는다"면서 "보든대 총장에게 왜 전세계에서 학생들을 뽑느냐고 하니까 미국의 학생들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는 사례를 인용, "서울대가 추진하는 지역할당제도 지역학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서울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라면서 정 총장의 정책을 강력히 지원했다.

조 교수는 또 "고교 평준화는 큰 문제이며 경쟁시대에 평준화라는 것은 수준을 하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면서 고교 평준화를 반대하고 고교입시제도부활을 소신으로 갖고 있는 정 총장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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