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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장이 제시한 '4대 교육개혁'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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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운찬 총장이 제시한 '4대 교육개혁' 방향

"사회 정의를 위해 날카롭게 감시하는 비판자 역할" 시급

"열린 마음을 가진 인재 양성을 위한 글쓰기 등 기초교육 강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의 다양한 선발."

"열린 대학을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건설."

"사회 정의를 위해 날카롭게 감시하는 비판자 역할."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14일 서울대 개교 56주년을 맞아 행한 기념사에서 제시한 서울대의 나아갈 방향, 더 나아가 한국 대학교육이 나아갈 4대 방향이다.

***"사회문제 등에 대한 기초교육 강화하겠다"**

정총장은 지난 7월 총장 취임후 간헐적으로 자신의 개혁 구상을 밝힌 바 있다. 2005년도부터의 대학 논술고사 부활, 지방출신 쿼터제 선발 등이 그런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이번 개교 기념사에서처럼 자신의 개혁 구상을 종합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정총장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마다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왜 논술고사를 부활하키려 하는 것인가', '왜 지방출신들에게 서울대 문호를 개방하려는 것인가' 등등. 이같은 세간의 궁금증에 대해 정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정총장은 이날 논술 부활과 관련, '열린 마음을 가진 인재' 양성의 필요성이란 답을 했다.
정총장은 "연구와 교육은 대학의 두 핵심 축이나 최근 우리 대학이 연구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교육이라는 또 다른 핵심 축을 다소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성과 덕성, 그리고 감성을 고루 갖춘 훌륭한 인재를 잘 길러내는 것 역시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총장은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기초교육의 강화는 창의적인 인재양성에 꼭 필요하다"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 훈련에 힘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과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자연과학도, 과학과 테크놀러지에 대한 식견도 갖춘 인문사회학도를 기르도록 한다"고 밝혔다.

정총장의 이 말은 2005년 입학생 선발때부터 서울대가 도입하고자 하는 논술이 기승전결식의 '글쓰기 기술'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회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필두로 예술, 과학, 테크놀로지에 대한 종합적 시각을 묻는 방식으로 출제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돼 교육계 및 입시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운찬 총장의 슬픈 경험**

정총장은 이와 관련, 연전에 기자와 만난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아끼던 '제자의 변질'을 개탄한 바 있다.

2000년 4월 국회의원 총선전의 일이다. 80년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옥고를 치렀고, 일찌감치 정치권에 입문해 의원뱃지를 단 제자가 찾아왔다 했다. 반가운 마음에 술을 같이 하는데, 이 제자가 한창 술잔이 돌자 "선생님, 재계에 아시는 분이 많으신데 X십억원만 모아주십시오"라 하는 게 아닌가. 잘못 들었나 싶어 "얼마?"라고 다시 물었더니 답은 역시 "X십억"이었다. 자신의 선거운동 비용으로도 쓰고, 자신이 키우고 있는 계보에도 쓰기 위해 필요한 돈이라 했다.

정총장은 호되게 야단을 쳐 돌려보냈고, 다시는 그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학 다닐 때 나라를 위해 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를 가졌던 제자의 변질에 그는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총장은 이밖에 1999~2000년 벤처붐때 많은 젊은 CEO들이 머니 게임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아무런 도덕적 거리낌없이 범한 데 대해서도 대학교육의 책임을 자인했다.

정총장이 총장 취임후 '논술 부활'을 선언한 것도 앞으로 시험과정에 수험생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모럴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를 검증하기 위한 것임을 감지할 수 있는 비사다.

정총장이 이날 기념사에서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사회 정의를 위해 날카롭게 감시하는 비판자 역할"을 요구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가능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언제부턴가 서울대는 '저항과 비판문화의 전당'에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바뀌어왔다. 특히 요 몇년 사이에는 '서울대 해체론'까지 나올 정도로 범사회적 반감이 증폭돼 왔다. 정총장은 그 근원을 "사회 정의를 위해 날카롭게 감시하는 비판자 역할"의 방기에서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운찬 총장은 최근 한 국제경제심포지엄에서 '한국경제의 위기 재연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우리 사회가 상당한 위기구조에 노출돼 있음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념사에서 밝힌 정총장의 '서울대의 미래 모습'은 그런 면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다음은 정운찬 총장이 행한 기념사 전문이다.

***정운찬 총장 기념사**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과 내빈 여러분, 그리고 동료 교수, 직원, 학생 여러분. 우리는 오늘로 개교 56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반세기의 자취를 기념하는 뜻 깊은 날입니다. 오늘의 우리 서울대학교는 방금 표창과 상을 받으신 교직원 여러분과 자랑스런 졸업생, 그리고 우리 모두의 헌신과 기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헌신해주신 교수, 직원, 학생, 그리고 동문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두달반 전 바로 이 자리에서, 겸허한 봉사자의 자세로 일할 것을 다짐하며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은 대학의 현황 파악에도 충분치 못한 편이어서, 약속한 것들을 아직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을 만나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분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우리 서울대학교를 명실상부한 '지성의 전당'으로 키워나가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합니다.

서울대가 참된 지성의 전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내실 있는 교육과 수월성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열린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학내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려 합니다. 연구활동의 주역인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머지 않아 분명한 성과를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인재' 양성 위한 글쓰기 훈련**

연구와 교육은 대학의 두 핵심 축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대학이 연구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교육이라는 또 다른 핵심 축을 다소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성과 덕성, 그리고 감성을 고루 갖춘 훌륭한 인재를 잘 길러내는 것 역시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믿습니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에 걸맞는 수준 높고 내실있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기초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교육 지원체제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겠습니다.

기초교육의 강화는 창의적인 인재양성에 꼭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 훈련에 힘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과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자연과학도, 과학과 테크놀러지에 대한 식견도 갖춘 인문사회학도를 기르도록 하렵니다.

저는 우리 대학의 교육이 '열린 마음을 가진 인재' 양성에 그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배움터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단지 학문적 이론뿐만 아니라 뜻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함께 가르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대학에서는 이번에 사회와 학교에 봉사한 학생들을 위해 '관악봉사상'을 마련했습니다.

이 상이 작은 불씨가 되어, 우리 서울대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남을 위한 봉사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교육의 기회를 골고루 제공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촉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의성 계발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대학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어떤 일이든 실천에 옮기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일과 관련해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이에 충실히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교육의 본질과 우리 학교의 정체성(identity), 그리고 사회의 요구가 적절히 조화된, 현명한 합의에 이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동안 우리 대학에서는 명확한 의사결정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대학 구성원의 의사와 동떨어진 결정이 빈번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과연 대학행정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이루어지는가 의문을 품게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열린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 안의 의사결정 절차를 민주적이면서도 체계적인 형태로 정비해야 합니다. 지금 특별연구팀 중심으로 이를 위한 준비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머지 않은 장래에 새로운 총학장 선거제도를 비롯하여 새로이 정비된 대학의 의사결정기루를 선보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저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우선 학장회의에 운영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의사 결정 과정을 다소나마 민주화했으며 평의원회의 위상을 조금은 제고시켰습니다.

아울러 우리 서울대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역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또한 그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점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알아내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바를 잘 헤아려 현재 대학 안에서 쌓여있는 많은 문제들을 차근차근 풀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요즈음 사제관계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걱정을 자주 듣습니다.

스승으로서의 애정과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도해 나가면 교육의 권위가 새롭게 세워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직원 여러분의 복지와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가 내실 있는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직원 여러분의 헌신과 동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주신 직원 여러분의 노고가 우리 대학의 발전의 밑거름이었습니다. 저는 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사회 정의를 위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감시자 역할 게을리 말아야"**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서울대학교가 그동안 우리 사회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민주화하고 발전한 배경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학생, 졸업생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가 있었다고 감히 자부해 봅니다. 이제 여건이 많이 바뀌었지만, 대학의 사회봉사가 갖는 본질적 의미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활발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빛을 밝히는 연구자 본연의 자세를 지키는 동시에, 사회 정의를 위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감시자의 역할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와 주민에 대한 대학의 역할이 점차 중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지혜롭게 활용함으로써 지역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많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일 때, 지역사회도 우리 대학의 발전을 위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상생적인 관계를 통해, 우리 서울대학교가 민족의 대학이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의 자랑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교수, 자랑스러운 동문, 친애하는 직원, 그리고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개교 56주년을 맞은 서울대학교가 명실상부한 세계의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총장인 저 자신부터 약속했던 공약 사항들을 반드시 지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서울대학교를 열린 지성, 참된 지성의 전당으로 만들어 가도록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2002년 10월14일 서울대학교 총장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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