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강연 전문> 정운찬 서울대총장 공개 경고 (1)

'경제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강도높게 경고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논문이 각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국내외의 돌아가는 경제정세를 일시적 불황이라고 치부하기엔 자못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이같은 경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금융센터(소장 정덕구) 주관으로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정총장은 '한국경제, 위기를 넘어서'라는 이 대회의 주제에 맞춰 <1997년 경제위기 전후의 한국경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일관적 관점을 고수해온 경제학자로 유명한 정총장이 총장 취임후 자신의 전공인 경제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주제발표자로 나선 정총장은 "외환위기는 본질적으로 경제거품의 붕괴로 묘사할 수 있다"면서 "한국의 경제위기는 미시구조적 결함이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는 구조적 결함으로 국내외 충격에 허약하기 때문에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정총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같은 구조결함은 지금도 시정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며"구조적 결함을 지금이라도 시정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경제위기의 본질과 그 대책에 대해 정총장은 쉬우면서도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어, 이를 두 번에 나누어 전문을 소개한다.

우선 1차로 경제위기의 본질에 대해 중점을 둔 앞 부분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1997년 경제위기 전후 한국경제에 관한 고찰>**

***제1장. 서론**

한국 경제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금융기관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은행불사'의 신화는 깨졌다. 기아와 대우 등 같은 재벌그룹이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이 되면서 '대마불사'의 신화도 깨졌다.

한국 경제는 안정을 회복하면서 IMF 자금을 만기일을 훨씬 앞당겨 갚았을 뿐 아니라 1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를 쌓았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우려를 떨칠 수 없는 데에는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결함에 기인한다.

이 논문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성격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구조조정의 불가피성과 한국경제 개혁에 필요한 올바른 방향과 과제를 도출해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제2장에서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나 거시경제적인 불균형보다는 금융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경제체제의 미시구조적인 결함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전개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고, 제4장에서는 현재까지 진행중인 구조조정 과정을 평가할 것이다.

제5장은 결론에 해당한다.


***제2장. 1997년 위기 이전의 한국경제**

한국경제의 누적된 문제점들

1960년대 이후 한국 정부는 양적 성장에 지나치게 치중한 성장위주 정책을 추구했다. 이 정책의 주된 특징은 '중앙통제적 자원배분'과 '제한경쟁'이다. 정부는 기업별로 특화된 사업을 지정해주고 은행을 산업정책의 도구로 삼아 자금배분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한국경제는 30년만에 서구 제국들이 1백~2백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압축성장은 수많은 부작용을 수반한 것이었다. 실물경제분야에서는 중복투자로 인해 경제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손상시키고 생산설비 과잉이 초래됐다.

금융부문에서는 부실한 대출심사로 인해 막대한 무수익여신이 발생했다.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욕과 은행의 부실감사가 어우러지면서 한국의 기업 특히 재벌들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부채비율을 지니게 되었다.

존슨(2002)의 논문에서 볼 수 있듯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높은 부채비율에 의존한 경제는 안팎의 조그만 충격에도 매우 취약해 쉽게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이같은 미시구조적인 문제들이 바로 한국경제 위기의 독특한 성격을 규정해주고 있다. 한국경제위기는 거시경제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위기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1997년 위기를 이같은 미시구조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구조적 왜곡이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는 있어도 심각한 외환위기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삭스 1997, 라델레트와 삭스 1998).

구조적 왜곡 자체가 1997년 위기의 원인은 아니라는 주장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은 구조적 왜곡 또는 한국경제의 하드웨어적 문제가 한국경제를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위기상황에 빠져들게 만든 요인이라는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채택된 개혁정책들이 한국 경제에 구조적 왜곡을 초래하는 근원을 바로 잡는 데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에 조그만 충격이 가해지면 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그 뿌리에 대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한국 경제가 거둔 거시경제적인 성과가 비교적 좋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국내총생산(GDP)와 실업률 같은 경제변수가 좋게 나타났을 때도 금융부문의 무수익자산 같은 실물지표에서 상당한 문제들이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90년대 중반에 보여준 거시경제적 성과는 한국경제의 건전한 성장에 필요한 경제개혁을 단행할 시기를 놓쳤다는 점에서 비극이 내재된 것이었다.

다음에서 한국경제가 안고있는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 두 가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실물경제부문: 비효율적인 과잉투자**

시장경제의 핵심원칙은 '적자생존'이다. 비효율적, 수익성 없는 기업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효율적이고 수익성 있는 기업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원칙이 한국에서는 무시됐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성장지향적인 정부의 보호 아래 확장일로를 걸어왔다. 한국의 경제는 그 대가로 효율성을 희생당하고 자기통제력을 상실할 만큼 너무 비대해졌다.

이, 유, 윤(2002)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재벌의 비교 효율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재벌은 수급조절에 실패해 시설투자비를 회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금흐름도 악화됐다. 이같은 과정으로 재벌이 무너지면서 1997년 경제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중복 과잉투자를 해결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고질적인 비효율의 늪에 빠진 이유는 어떤 것인가.

첫번째, 한국에서는 수익성보다는 규모에 따라 기업들의 등급이 매겨졌다.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경제에서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자금조달을 할 수 없다거나 기타 불이익을 받는 기업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기반이 취약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규모같은 외형적 요소가 정부나 금융기관을 상대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금융기관들은 수익성 같은 본질적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기업을 평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형적 기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재벌기업들은 담보 제공 능력이 더 크고 최악의 경우에도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대마불사'의 신화는 한국경제계에서 신속하게 철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두번째, 재벌기업들의 상호출자도 중복투자의 원인이었다. 재벌들은 상호출자를 통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상호출자 방식을 통해 극히 적은 소유지분으로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한 것이다.

재벌 오너가 계열사의 중요한 투자 결정에 대해 갖는 영향력은 계열사의 직접적인 지배권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재벌 오너가 투자를 결정할 때 효율성의 기준이 아니라 재벌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오너의 무제한적 욕망 같은 또다른 기준에 따른 경우가 적지 않다.

재벌 오너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장치 없이 중복투자는 불가피한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정부, 금융기관, 재벌들의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은행들은 위험한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어도 정부는 금융경색을 우려해 금융기관들의 손실을 메꿔주었다. 금융기관들이 점차 위험요인을 무시하게 되고 오직 매출 증대에만 신경을 쓰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때문에 프로젝트가 비효율적이고 위험성이 높아도 경제를 볼모 삼아 얼마든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풍토가 생겼다.

***2)금융부문:부실대출심사와 무수익여신 증가**

금융기관의 역할은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과적인 분배를 보장하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계획을 심사하면서 건전한 투자를 지원하고 의심스러운 계획은 걸러내는 것이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에는 수익성 같은 기준에 근거한 금융기관의 심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율적인 대출심사의 중요성은 지난 30년간 장밋빛 경제성장론에 가려졌다. 금융부문이 경제성장지원에 내몰리면서 자금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실물부문에서도 비건전한 투자가 만연했다. 부실대출이 계속되면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부실한 투자계획을 밀고나간 기업들 탓도 크지만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부실심사를 일삼은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경제의 구조적인 왜곡뿐 아니라 정부가 정확한 통계치를 발표하는 것을 꺼린 것도 무수익여신(NPL) 문제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커져가도록 만든 주범이었다.

금융위기 전까지 한국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공식 통계로는 2~3%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회수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원리금과 추심계획이 요구되는 '회수의문'등 '추정손실' 범주만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일본처럼 6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나 담보대출을 포함하면 부실비율은 7~8%에 달했을 것이다. 미국 기준처럼 '요주의'나 3개월 이상 연체대출을 포함한다면 부실비율은 20%가 넘었을 것이다.

미국식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미국의 경우 무수익여신비율은 1~2%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융위기에 닥치는 순간까지 한국의 정부와 은행들은 통계치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금융위기 와중에 한국 금융기관들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불신을 증폭되어 상황이 악화됐다.

***2.한국경제의 난제**

***1) 거시경제적 성공이 안고 있는 미시구조적 약점**

거시경제적 지표로 보면 한국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이후 GDP는 평균 10%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으며 3년간(1972년 4.9%, 1980년 -2.1%, 1988년 -6.7%)을 빼고는 5% 이상을 꾸준히 달성해 왔다.

GDP 디플레이터는 1980년 이래 1990년과 1991년(모두 10.8%)을 빼고는 한자리 숫자를 유지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경제가 이같이 눈부신 거시경제적 수치를 장기간에 걸쳐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산업화 초기 단계에 있는 경제가 미시구조적인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팽창성장을 지속하는 것은 가능하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소련과 1978년 개혁 이후 중국이 그 예다.

한국 경제에서 구조적 비효율성이 존재했던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실물부문의 수익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제조업체들의 자산수익률(ROA)은 꾸준히 떨어져 8.5%에서 1.4%로 낮아졌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은 편이다.

실물부문에서 수익성이 이처럼 낮은 원인으로는 금융기관들의 부실대출로 얻은 자금을 재벌들이 과잉투자한 것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초 이후 정부, 금융기관, 재벌간 권력균형이 이동하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과 중복 과잉 투자는 때마침 1993년 금융자유화조치로 상징되는 시장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만연되면서 위험수준에 도달했다.

1993년 금융자유화 조치는 재벌이 수익성과 관계없이 한국경제에 있어서 재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소기업들은 좋은 사업계획을 갖고 있어도 투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었다. 비효율적인 재벌의 사업자금으로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씨앗은 이같은 잘못된 금융자유화 시기에 뿌려졌다.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비재벌보다 높은 반면, 수익성은 훨씬 낮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1997년 전후로 부도가 난 6개 재벌의 평균부채비율은 무려 1천8백77%에 달했다. 은행들의 사전사후 감시가 사실상 실종된 상황에서 이처럼 엄청난 부채비율을 지녔기 때문에 안팎의 조그만 충격에도 취약한 경제가 된 것이다. 실물부문의 이같은 문제가 금융부문으로 번져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종금사들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매우 높았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은 기술발전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자원집중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일본의 경제부흥과 대조적으로 아시아의 신흥경제의 고도성장은 자원집중 특히 자본축적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경제가 안고있는 미시구조적 약점을 시정하지 않고서는 과거의 거시경제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원활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경우에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고질병의 주요원인인 재벌은 자기교정 능력을 상실했다.

과거 한국은 몇 가지 이유로 구조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첫번째, 1960~1980년대에 걸쳐 기술도입이 쉬웠다.
두번째, 값싼 우수노동력이 풍부했다.
세번째, 기업경영이 비교적 단순했다.

외부여건도 유리했다. 1960년대 한국의 경제는 유엔의 '10개년 개발' 계획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 덕을 톡톡히 보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중동건설붐과 오일달러 효과가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낮은 국제금리, 원화가치하락, 저유가 등 소위 '3저 효과'를 누렸다. 냉전으로 인한 지정학적 요인도 한국이 미국의 지원에 기댈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같은 요인들로 인해 한국 경제거품의 붕괴가 지연된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말 이후 선진국이 기술이전에 제동을 걸면서 기술도입이 점차 어려워졌다. 노동력, 특히 고급노동력도 더 이상 풍부하지 않았다. 임금은 대폭 올랐고 기업경영도 매우 복잡해졌다. 크루그먼(1994)이 지적했듯 대대적인 자원투입으로 이룬 고속성장은 어느 순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 경제에 딱들어맞는 얘기다.

***2) 위기 발생**

구조적 결함과 양적위주의 성장은 경제거품을 형성했다.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깨닫는 순간 거품은 터지게 된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자기충족적 기대가 작용하면서 경제체제 자체에 타격을 준다. 1997년 위기에 이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구조적 결함으로 한국의 경제는 조그만 외부충격에도 취약하다. 1997년 이러한 충격은 종금사들의 행태로 촉발된 신용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종금사들은 위기의 촉매 역할을 했다. 한국의 종금사들은 대부분 지하자금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한 1972년 8.3조치에 따라 투자금융기관으로서 설립됐다. 1994년과 1996년 금융기관합병과 전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24개 기존 투자금융기관은 종금사이 되었다.

그러나 6개 기존 종금사와 달리 24개 후발 종금사들은 외환운용 경험이 없었고 영업기반이 취약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위험성 높은 사업에 손을 댔다.

국내 시장에서 종금사들은 재벌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할인해 사들였으며 이를 종금사의 신탁계좌에 되팔았다. 수익을 내기 위해 불법거래를 하기도 했다. 1995~1997년 종금사들의 CP 할인매입과 매각은 각각 42조와 35조에서 90조와 75조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97년 재벌의 연쇄부도로 종금사들은 엄청난 빚더미에 안게 됐다. 30개 종금사들이 떠안은 무수익자산은 1996년 10월 1조2천6백40조원이었으나 1997년 10월경에는 3조8천9백70조원으로 2백% 이상으로 증가했다.

대외적으로는 종금사들이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 고금리로 장기대출을 해주고 있는 홍콩으로부터 저금리의 단기 일본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때문에 심각한 만기 불일치가 발생했다. 부채의 80%가 단기자금인 반면 자산의 70%가 장기대출이었다.

만기 불일치가 발생했더라도 종금사들이 건전한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만기 연장이나 단기부채를 이월시키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국제신용등급이 곤두박질치면서 한국 종금사들은 홍콩지점에서 단기부채를 이월시키기 힘들어졌다.

이들은 시중은행으로부터 원화표시 콜자금을 받아 외환시장에서 외화를 사들이기까지 했지만 사태만 악화될 뿐이었다.

종금사에 관한 법률과 규제가 매우 부적절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통합회계기준과 무수익자산 분류기준이 없었고 감사와 감시도 형식적이었다. 종금사들은 허술한 시장규제를 틈타 자산 축적에만 열을 올려 이것이 결국 경제위기로 연결됐다.

한국이 WTO와 OECD에 가입한 이후에도 정부는 정부와 은행, 기업이라는 소위 '주식회사 한국'의 삼각구도에 안주한 나머지 국제기준에 맞는 게임을 배우지 못했다.

외환 보유고 부족에 대비해 정부는 금융산업에 대한 포괄적 구조조정계획을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계획이었지만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했다. 외환 보유고 유출이 줄어들지 않으면서 1997년 11월23일 마침내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결국 거품붕괴로 묘사할 수 있다. 이 거품의 기원은 중복 과잉투자와 허약한 금융시스템으로 요약되는 구조적 왜곡이다. 이러한 왜곡은 1990년대 잘못된 시장주의적 정책으로 더욱 증폭됐다. 마침내 금융체제의 국제신용마저 떨어지자 거품이 파열된 것이다. <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