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총리지명자 국회인준 부결 사태를 접하는 청와대의 반응이 다분히 감정적이다.
감정이 앞서다 보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정확한 자기성찰을 못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통절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부결사태 직후 낸 공식논평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에 지명된 능력있고 존경받는 (여성)지도자 장상 총리의 인준 부결에 대해 통절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도 1일 국무회의에서 장상 임명동의안 부결과 관련, "참으로 애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대통령은 장 전 총리서리 지명배경을 ▲정치적 중립성 ▲국정운영 능력 ▲여성지위 향상 등 세가지로 정리해 설명한 뒤 "세번째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리가 경제 4강과 세계일류 국가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이 여성의 사회진출과 취업률이 낮고 지도적 역할이 취약한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현대사에서 파키스탄과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여성집권자가 나왔지만 동북아에서 여성이 집권의 자리에 올라간 것은 거의 없었다"며 "남존여비의 전통이 있고 여성 취업률이 50% 미만인 나라에서 여성 총리의 탄생은 여성문제는 물론, 국가발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장상씨를 지명한 배경을 밝혔다.
***국민은 '봉황의 높은 뜻'을 알지 못하는 우중(愚衆)?**
이같은 청와대쪽 반응만 놓고 보면, 장상 인준 부결사태는 참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박선숙 대변인은 장상씨를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에 지명된 능력있고 존경받는 (여성)지도자"로 정의내렸다. 동시에 부결에 대해 "통절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준을 부결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증오감까지도 읽을 수 있는 표현이다.
김 대통령은 "남존여비의 전통이 있고 여성 취업률이 50% 미만인 나라에서 여성 총리의 탄생은 여성문제는 물론, 국가발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장상씨를 지명했으나 부결돼 "참으로 애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은 민심과 상당 부분 괴리를 느끼게 한다.
과연 장상씨는 국민 눈에 "능력있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비쳤는가.
총리인준 표결에 앞서 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국민의 57%는 장상씨의 총리자격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이같은 청와대와 국민간 시각차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국민들이 '봉황의 높은 뜻'을 알지 못하는 우중(愚衆)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무관한 시민단체들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다.
한 예로 참여연대의 경우 31일 인준부결 직후 발표한 논평에서 " 장상 총리지명자 국회 인준 부결은 총리 지명 이후에 언론과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위장전입, 땅 매입 투기의혹, 장남의 국적포기와 주민등록문제'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장상 총리 지명자가 해명과정에서 보여준 도덕성과 신뢰성의 상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는 고위공직자의 기본요건으로서 도덕성과 신뢰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또 "더불어 이번 투표결과는 민주당 투표참여 의원이 1백5명임을 감안한다면 당 차원에서 인준에 찬성할 것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표가 상당히 나온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자유투표의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민의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
국민이나 시민단체의 시각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 부결 사태와 관련해선, 청와대가 '감정' 섞인 대응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부터 자성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특히 장상씨를 총리후보로 대통령에게 추천한 비서진의 책임문제부터 살펴봐야 마땅하다. 이럴 때에만 제2, 제3의 부결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개각에 앞서 청와대 비서실은 몇달에 걸쳐 국정원 존안문서를 비롯해 각종 정보를 참조하고 각계 의견을 물어 보통 3배수로 대통령에게 후보를 추천, 대통령의 낙점을 받는다. 이번 장상 총리지명자도 다른 언론계 고위급인사 두명과 함께 대통령에게 총리후보로 추천돼 낙점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번 청문회를 비롯한 언론의 검증과정 등에 여실히 드러났듯, 청와대의 사전 검증과정이 너무나 엉성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가장 기초적인 사안들조차도 파악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경우 언론사가 출입기자 명단을 통고해도 신원조회에만 두달이 걸린 정도로 평소 물샐 틈 없는 사전 검증을 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번 장상 지명자의 경우는 사전 검증과정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 또는 주변 비서진의 근무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로 허점 투성이였다.
물론 정권말기다 보니 유력인사들이 너도나도 입각을 하지 않으려 해 완벽한 후보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부터 인정해야만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가 "능력있고 존경받는 지도자" "통절한 심정" 같은 민의와 어긋나고 감정적 표현을 쓴 대목은 적절치 않다. 설령 진정으로 속내가 그러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해선 안된다.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고 하두 여러번 되풀이되다 보니 '국민의 정부'가 자꾸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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