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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과 김우중, 어떤 관계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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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대중대통령과 김우중, 어떤 관계였나?

"밀월이 40조원 부실 키웠다" 비판

'최규선 2차 녹취록' 공개를 계기로 최씨의 공격대상이 김홍걸씨에서 김대중 대통령으로 향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최씨의 추가폭로 내용 가운데 김대통령과 김우중 대우그룹 전회장 사이의 범상치 않았던 관계를 드러내는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당선자는 최씨에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대우가) 큰 힘을 발휘했네"라며 대우에 대한 특별배려를 부탁했다는 게 최씨 주장이다. 최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김대통령과 김우중회장간 관계가 보통 이상을 넘는 '특수관계'를 의미하며, 이 특수관계란 다름아닌 대선 정치자금 제공을 의미한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최규선 2차 녹취록의 최대핵심은 DJ-김우중 커넥션 의혹**

최씨 주장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는 아직 불확실하다. 녹음이 최씨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녹음 곳곳에서 김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감지할 수 있어 김대통령 관련부분이 실제보다 과장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7년 대선 승리후 정권 출범 초반부까지 김대중 당선자와 김우중 회장 사이에 보였던 특수친분 관계를 돌이켜보면, 최씨 주장의 상당 부분이 진실에 근접한 게 아니냐는 판단을 갖게 한다.

김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것이 IMF경제위기 극복이다. 그러나 IMF위기 당시 최대부실기업으로 꼽히던 대우그룹 처리를 2년 가까이 늦춰 무려 40조원대의 추가부실을 발생시켜 국민의 공적자금 부담을 가중시킨 대목은 DJ 경제개혁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이같은 미온적 대우그룹 처리의 이면에는 최규선씨 주장대로 DJ와 김우중 회장의 특수관계가 작용했기 때문인가.
앞으로 DJ 경제개혁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있어 반드시 규명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최씨의 2차 녹취록을 담은 9개의 테이프를 독점입수, 이 가운데 우선 3개를 공개한 뉴스위크(한국판) 측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최씨의 자서전 집필용 테이프 6개의 내용을 금명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뉴스위크측은 이 가운데 상당량이 97년말 대통령선거직후 김대통령이 강도높은 재벌개혁을 단행하려 하자 국내 유수의 재벌들이 살아남기 위해 보였던 적나라한 모습을 담고 있다고 예고하고 있다. 이 내용이 추가공개되면, 김대중정부 출범이후 DJ정부와 재계간 역학관계 및 친소관계가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여태까지 드러난 최씨 주장을 화두로 DJ-김우중 특수관계의 실체에 접근해 본다.

***최규선 2차 녹취록 중 DJ-김우중 관련 부문**

7일 공개된 최규선 2차 녹취록 가운데 DJ와 김우중 회장 관련 대목은 다음과 같다.

온힘을 다해서 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를 그해(1997년) 12월23일 서울로 데리고 오게 됩니다. 저는 그 사실을 대통령당선자에게 보고하러 갔습니다. 그때 유럽 출장 중이던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알 왈리드 왕자가 오면 꼭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것까지 보고를 했더니 당선자는 저를 삼청동 안가의 안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네. 그리고 김우중씨 같은 사람 없네."
"그렇잖아도 저한테 직접 전화까지 했습니다."
"그래,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야. 그 사람을 돕게. 그리고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 나, 도움을 많이 받았네. 그리고 이 회사 저 회사 만나게 하지마. 그냥 대우만 만나서 투자유치를 시키게."
"알겠습니다."

저는 당선자의 말을 듣고 "아, 대우를 밀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당시 환율이 1천8백원일 때 알 왈리드가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대우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쾌거를 올린 것입니다. 1달러가 아쉽고,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런 큰 액수는 국가로 봐서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주)대우로 봐서도 엄청난 쾌거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많은 건실하고 잘 나가는 회사를 놔두고 왜 하필 대우일까? 사람들은 의아하고 궁금했을 겁니다. 이러한 뒷 이야기를 저는 역사에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후 현대도 대통령당선자가 찍어줬습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에 5천만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노력을 할 당시에 정동영씨도, 한화갑씨도 저를 불러서 저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화갑씨는 당시에 대림의 전무를, 정동영씨는 컨설턴트를 만나보라고 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도 대통령이 저에게 해준 격려의 말씀, 또 공직을 통해 크고 싶어서 돈에 얽매여서는 안되겠다 싶어 김우중씨가 건넸던 7억원도 거절했고 현대로부터도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최규선 주장의 사실 관계**

이같은 최씨 주장의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우선, 알 왈리드 왕자의 대우 투자건은 사실이다. 알 왈리드 왕자는 90년대초 파산위기에 빠진 미국 시티은행에 투자해 거액을 벌기도 했던 세계적 투자가로 유명하다. 그는 IMF사태 직후인 98년 3웕16일 (주)대우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사들이는 형식으로 대우에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고, 이날 김우중 회장과 정식으로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이같은 투자과정에 최규선씨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를 증언해줄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이와 관련, 김우중 회장이 투자 성사 감사의 대가로 7억원의 리베이트를 주려 했으나 사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번째, "(김우중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라는 김대중 당선자의 말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DJ정부 출범직후인 98년 3월 전경련은 새 회장을 뽑았다. 새 신임회장은 김우중 대우회장이 아닌 최종현 SK회장이었다.
최씨 주장의 과장이 읽히는 대목이다.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회장이 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인 그해 9월16일의 일이다. 최종현 회장이 불치병에 걸리면서 김우중회장이 새 전경련 회장이 된 것이다.

당시 국내외에서는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회장이 되는 데 대해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가장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했던 대우그룹이 재벌들 가운데 유일하게 구조조정 대신 확장경영 노선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에서는 김우중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이 DJ정부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대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김우중회장이 DJ에게 들고간 노란 봉투**

이처럼 최규선 발언만 놓고 보면, 김대중-김우중의 특수관계를 정확히 판단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보다 진실에 근접하기 위해선 97년말 대통령당선후 99년 7월15일 대우그룹 파산때까지 대우그룹의 행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99년 7월중순 대우가 파산했다. 부실규모가 80조원에 달했던 대우그룹 파산은 한국자본주의사뿐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사상 단일기업으로는 최대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되는 초대형 사건이었다.

이같은 대우그룹 부실은 대부분 재벌육성을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았던 과거 개발연대때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부실 급증에는 DJ정권도 '절반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대우그룹 정리의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부실을 증폭시킨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타이밍의 정치'에 실패한 것이다.

대우전자와 삼성전자, 대우자동차와 삼성자동차간 빅딜(Big-Deal)이라는 최악의 해법에 1년동안이나 집착한 결과, 대우그룹의 부실 증가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외국계 애널리스트등은 이를 '술취한 주정뱅이끼리의 어깨동무'에 비유하며 "빅딜은 결국 빅쇼(Big Show)로 끝날 것"이라고 일찌감치 빅딜의 실패를 예고하기도 했다.

경제학 용어로는 사업교환(Business Swap)이라 부르는 문제의 '빅딜'은 김우중 대우회장의 작품이었다. 외환위기 및 정권교체후 재벌개혁 압박의 서슬이 시퍼렇던 98년 1월 김우중 회장은 청와대로 김대중대통령을 독대하러 들어갔다.

당시 김회장의 김대통령 독대는 그 자체가 재계의 '빅 뉴스'였다. 김대통령 당선자는 97년 12월말 5대 재벌총수를 불러 부채비율 200%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5대 재벌총수 모임에 유독 김우중회장만 빠졌다. 그대신 그는 98년 1월 청와대로 홀로 들어감으로써 김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과시했다.

이때 그는 '노란색 봉투'를 갖고 들어갔는데, 여기에 담긴 게 "중복과잉 투자기업들을 5대 재벌이 서로 맞바꿈으로써 국부유출 및 실업발생을 최소화하며 구조조정을 조기에 마무리한다"는 빅딜구상이었다. 당시 1백만명이 넘는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DJ정부는 몸체 구조조정이 아니라 '얼굴 화장'에 불과한 김회장의 빅딜 구상을 '굿 아이디어'라고 받아들였고, 정부는 그후 1년여 동안 빅딜에 집착해 재벌들을 닥달했다.

***빅딜의 최대수혜자, 대우**

1년여간 질질 끈 빅딜협상의 최대수혜자는 다름아닌 대우였다. 김우중회장은 김대통령 독대등을 통해 '빅딜'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김회장은 이같은 정치적 후광을 무기로 회사채 발행등을 통한 유동성 위기 연장과 해외사업 확장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또 현대자동차등 여타 경쟁사들이 매출 격감에 따른 과잉인력 해소를 위해 노조와 격돌하면서 감원을 단행해 나갈 때에도 "우리는 사람을 짜르지 않겠다. 대우는 확장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며 '무감원 노선'을 걷기도 했다. 공장가동률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현대자동차등 경쟁사와 비교할 때 정작 가장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은 다름아닌 대우자동차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때에도 정권은 실업자 급증에 따른 정치불안을 의식, 김회장의 시대착오적 행보를 '침묵'으로 묵인했다.

대우는 또한 DJ정부의 강도높은 재벌개혁 압박에도 열외였다. 그런 대표적 예가 98년 6월18일 있었던 5대 재벌의 1차 퇴출 계열사 명단 발표였다. 모두 55개사의 부실기업 퇴출이 발표된 이날 재벌들은 정부주문에 마지못해 20개 계열사를 떼어냈다.
이때 대우가 떼어낸 계열사는 한국산업전자, 한국자동차연료, 오리온전기부품, 동우공영,대창기업 등이었다. 이 가운데 대창기업은 대우그룹과 무관한 협력업체였고, 나머지 회사들도 떼어내 보았자 대우그룹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소기업들이었다. 말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또한 눈감아주었다.

***밀월이 40조원의 추가부실을 키웠다**

이처럼 DJ출범후 1년여간 지속된'김우중과의 밀월'의 결과는 엄청났다. 40조원이던 국내 대우부채는 60조원대로 50%나 눈덩이처럼 급증했고, 끝내 99년 7월15일 대우사태가 터지고야 만 것이다. 대우사태 발발후 장부를 정밀조사한 결과 23조원대의 천문학적 추가 부실이 새로 발견돼 총부실은 80조원대로 불어났다. "대우그룹의 전체 부실 규모는 대우 임원은 물론 김우중회장 본인도 모를 것"이라던 재계의 우려 그대로였다. 요컨대 '1년간의 빅딜 밀월'의 결과 국민은 40조원대의 추가부실을 떠안게된 것이다.

또 한가지,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대우 파산은 정부가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에 따라 터뜨린 게 아니라 시장의 힘에 의해 곪아터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대우사태후 외국투자가들에게 "대우사태는 정부의 단호한 재벌구조조정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누차 설명했다. 정부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대우그룹을 워크아웃에 집어넣으며 해체시켰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우그룹의 자금사정은 지난 98년말부터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대우등 일부 부실재벌이 편법적으로 고리의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부실규모를 키우는 데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지자 금융감독위원회가 5대그룹의 회사채 추가발행을 금지하자 대우는 곧바로 자금난에 빠졌다. 주택은행의 김정태행장이 이 무렵 금융권에서는 가장 먼저 1조4천억원 규모의 대우그룹 여신을 회수한 것을 시작으로 금융권 일각의 회수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98년 11월부터 금감위는 은행 창구지도를 통해 사실상의 대우여신 회수중지를 지시했다. 은행등 금융기관은 울며 겨자먹기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아울러 신용평가기관들이 대우그룹이 발행한 채권의 신용등급을 낮추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 무렵 대우채 심사를 맡았던 한 신용평가기관 팀장의 증언이다.
"대우그룹의 유동성과 수익성이 너무나 나빠 신용등급을 낮추려 하자 금감원 간부에게 직접 불려가 그로부터 '삼성과 대우사이에 한창 빅딜이 진행되고 있는데 왜 재를 뿌리려 하느냐. 당신 때문에 빅딜이 깨지면 책임지겠냐'는 압력을 받았다."
정부로서는 대우사태 발발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했던 것이다.

***대우 부도는 삼성 때문이었다?**

정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은 대우사태 발발후 기자가 참여했던 한 사석에서 이런 해명을 했었다.
"대우그룹이 끝내 도산한 원인중 하나는 삼성그룹의 약속 파기이다. 나는 원래 올 3월까지는 대우전자와 삼성전자간 빅딜을 매듭짓고, 5월까지는 대우자동차와 삼성자동차 빅딜을 성사시킨 뒤 워크아웃에 집어넣어 대우를 회생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됐다면 대우사태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처음에는 할 것처럼 따라 오다가 막판에 이 그림에 반대하면서 빅딜을 거부, 결국 모든 것이 엉켜 대우사태가 발발하게 된 것이다. 삼성 책임이 적지 않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삼성그룹 고위임원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다.
"부실덩어리인 대우전자를 삼성전자가 떠맡고 여기에 삼성자동차를 대우자동차에 넘겨주면서 운용자금까지 대라는 빅딜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 무리한 주문을 받아들이지 않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그에 따르면, 대우그룹은 IMF위기가 터지기 이전부터 '기술적 지급불능사태(Technical Default)' 상태에 빠져있던 부실기업의 대명사였다는 것. 따라서 대우그룹과 빅딜을 하라는 것은 대우그룹 부실을 삼성그룹에게 떠맡으라는 정부 주문에 다름 아니었으며, 정부 주문대로 따라 하다가는 삼성까지도 함께 망하게 되리라는 게 삼성측 주장이었다.

요컨대 정부의 대우처리 청사진은 관료들 머리속에서 일방적으로 그려진 탁상공론에 불과했으며, 사실상 정부는 사상최대 규모의 초대형 금융사고인 대우사태가 터질 때까지 아무런 대책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게 시장의 냉소적 평가이다.

***"2탄, 3탄이 준비돼 있다. 핵폭탄이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 부도 직후인 98년 9월16일 김포공항을 빠져 나가 사실상의 해외도피 길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그의 출국을 막지 않았다. 80조원대의 사상최악의 경제사고를 터트린 경제사범에 대해 더없이 너그러운 조치였다. 일각에서는 김우중의 해외도피를 정부가 묵인 또는 사주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어린 시선도 제시됐으나 정부는 못 들은 체 했다. 그후 김우중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대우 노조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비등했을 때도 정부는 침묵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김우중씨가 국내 한 경제신문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억울함을 공개적으로 호소하는가 하면, 그의 측근 입을 통해 지난 88년 총선때 김회장이 김대통령 장남 김홍일의원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김우중씨가 귀국을 위한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박정훈 전 민주당의원의 부인 김재옥씨는 당시 한 시사월간지 신년호와의 인터뷰에서 88년 김우중 회장이 세번에 걸쳐 어마어마한 돈을 사과박스에 담아 자신의 집에 갖다 놓았고 그 돈을 한밤중에 김홍일의원이 찾아갔다고 주장해 파란을 불러일으켰었다. 김씨는 "김우중 회장을 그만큼 고생시켰으면 용서해줄 때도 된 것 아닌가. 지금 밝힌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2탄, 3탄이 준비돼 있다. 이것은 그냥 인사로 한 것이다"며 노골적으로 김대중정부를 협박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3홍 비리가 터지면서 레임덕(권력누수)이 본격화하자 김우중 회장쪽의 공세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인사에 따르면, 현재 김우중 전회장은 유럽을 떠나 아프리카 S국가에 체류중인데 건강이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규선씨의 김대중-김우중 커넥션 의혹 제기가 불거져 나와 앞으로 커다란 정치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이제 당사자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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