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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위한 '카드' 구사

로비설 일부 공개로 여론반응 떠보기

김우중 대우그룹 전회장의 귀국의사 표명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실제 그의 말대로 연내귀국이 실현될 경우 정치권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아직까지 정치권에서 김 전회장의 귀국 의사 표현에 대한 뚜렷한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여야의 공식 논평도 없었고, 오늘 치러지는 재보선 때문인지 여야 대변인실의 관계자들도 귀국설에 대해 “아직 못들었다. 관심이 다들 딴 데 가 있어서”라는 반응이었다.

검찰 역시 24일 “측근 등을 통해 귀국 가능성을 타진하고, 귀국하면 원칙대로 소환조사 후에 사법처리 한다”는 원론적인 언급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분석가들은 대우그룹이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었고, 관련설이 나도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정치권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김 전회장의 귀국은 그 자체가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정가에는 대우그룹이 정당과 국회의원들을 ‘관리’해 왔고, 일부 의원들은 출마 시점부터 지원해 왔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또 김 전회장의 비자금이 정치권과 정부 로비를 위해 엄청나게 뿌려졌을 것이라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른바 김우중리스트다.

김 전회장이 종적을 감추고 해외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한 1999년 10월 직후 손병두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회장의 비자금 의혹 등과 관련 “김 전회장도 과거 우리 기업인들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때부터 대우그룹 주변에서는 “만약 김 전회장이 구속되면 김 전회장 측이 그동안 정치권 등에 뿌린 정치자금 문제를 거론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김우중 리스트' 의혹 꾸준히 떠돌아**

금년 2월 대우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진행되던 당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자민련 함석재 의원이 “대우그룹 부정 비리 사건의 최종 지시자이자 외화 밀반출 혐의의 열쇠를 쥔 김우중씨의 출국을 방치하고 아직 그 소재 조차 파악치 못하고 있는” 검찰을 질타하며, “검찰의 이러한 미온적 태도는 ‘김우중 리스트’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거론하기도 했다.

대우그룹사건과 김 전회장에 대해 여야가 그간 보인 공식적인 반응은 ‘엄정한 처벌 요구’이다. 지난 2월 대우 관계자 사법처리 당시 민주당은 “부실기업 책임자 처벌은 당연한 것”이란 논평을 냈고, 한나라당도 “김 전회장의 조속한 귀국 및 책임 추궁을 촉구”했으며, 자민련 역시 “불법적으로 조성한 수조원대의 비자금 내역도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만약 ‘김우중 리스트’가 실재하고, 어떤 경위든 그것이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 이번에 발간된 월간조선 11월호에 게재된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의 인터뷰가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권과 관련해서 관심이 가는 내용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김우중 전회장이 대우그룹 출신을 비롯한 20-30명의 국회의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 전회장은 이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사이는 원만하지 않았다. 97년 대선 무렵 김대중 후보가 찾아왔는데 화가 나 돌아갔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관계는 김 전회장이 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만 20억원의 공식 후원금을 냈다. 민주당 김대중 후보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한나라당 고위인사에게 20억원을 더 주었다는 혐의로 98년에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풀려났다.

김 전회장의 정치권에 대한 로비는 박정희 정권 이후 다양하고 대단했다. 정치인들에게 주는 자금은 공식 후원금이었고, 몰래 주는 것은 김 전회장이 직접 해서 그만이 안다. 여러 차례 뇌물사건으로 곤욕을 치룬 김 전회장은 누구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로비도 있었고 각종 명목으로 뇌물과 상납을 수시로 했다.

대우그룹이 무너진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 사회의 지배층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뜯어 먹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고, 만약 김 전회장의 귀국과 함께 그 내용이 실제 공개된다면 정치권 뿐아니라 정부 관련 인사들까지 ‘과연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정치권, 정부, 각계에 카드 던져**

그리고 그간 김 전회장이 각계 명망가들과 폭넓은 교류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은 항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점까지 감안한다면 김 전회장의 귀국을 ‘불안해 할 사람’의 숫자는 훨씬 더 늘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김 전회장 측근이 일부 언론에 전한 그의 편지와 귀국설, 그리고 최근 김 전회장 측근들이 인터뷰나 소설 등의 형식을 빌어 정치권 로비의 일부를 드러낸 것은 국내의 여론을 떠보기 위한 애드벌룬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전회장 측의 생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김 전회장이 내년 대선을 앞둔 혼란한 시기에 귀국해 자신에 대한 처벌을 최소화 하려는 의도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측근들에 의해 일부 공개된 김 전회장의 정치권 로비설은 이러한 의도를 달성키 위한 일종의 카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전회장 측이 구사한 이 카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아직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또 그에 대한 김 전회장 측의 대응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그래서 실제 귀국이 이루어진다면 김우중 리스트의 실체가 밝혀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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