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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의 언론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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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우중의 언론플레이

기자들, "대우 쓰러져선 안돼"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의 귀국 타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 ‘주류(Main Stream)’의 긴장감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김 전회장이 귀국해 ‘입’을 열 경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회장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표현을 빌면 ‘세계자본주의사상 개별기업도산 규모로는 최대규모’인 80조원의 기업도산을 초래한 결과, 외환위기후 간신히 숨을 돌리는가 싶던 한국경제를 나락의 늪으로 떨어뜨리고 국민들에게는 천문학적 세금부담을 떠넘기는 중차대한 ‘경제범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태수 등 다른 몰락재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판의 ‘안전지대’에 있었다. 아울러 일각에서 “안 잡는 거냐, 못 잡는 거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법망에서도 자유로워 보였다. 여야 정치권 또한 이례적으로 침묵해왔다.

김 전회장의 귀국 타진은 23일 한 신문을 통해 공개리에 이뤄졌다. “대우패망비사라는 시리즈를 시작한 후 시리즈가 중반쯤 나갔을 무렵 김우중씨와 연결이 이뤄졌다”는 게 24일 해당신문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김우중씨에게 국내 여러 언론이 접촉을 시도했으나 김씨는 이것저것 잰 다음에 우리 신문을 대화 파트너로 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전회장은 국내에서 활동시 누구보다 ‘언론플레이’에 능한 기업인으로 유명했다. 여전히 그가 해외에서도 국내 언론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나름대로 고도의 언론플레이를 전개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사진>

***“기자들이 용도변경을 해주면 클럽을 지어주겠다.”**

김 전회장은 기업인으로 활동시 오랜 기간 언론을 ‘컨트롤’해 왔다. 이와 관련한 많은 증언이 있다. M일보 사장을 지낸 K씨의 증언이다.

“D일보 재직 당시 내가 외신기자 클럽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김우중 회장이 비서를 통해 한번 만나자는 제안이 왔다. 몇 달 전 해외에서 김회장을 스쳐가며 만난 일이 있는데, 그가 그때 국내에 들어가서 한 번 만나자고 해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나 싶었다. 끊임없이 해외를 돌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 그런 사소한 약속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서도 ‘회장님께서 바쁜 일정을 쪼개 기자님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셨다’고 했다.”

“만나 식사를 하는데 인상이 좋았다. 무엇보다 정력이 넘쳤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내가 뭐 도와드릴 일은 없느냐’고 물었다. 당시 외신기자 클럽 일을 맡고 있었기에 가장 큰 현안은 외신기자 클럽 공간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즉석에서 ‘곧 마련해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했다. ‘과연 듣던대로 통이 큰 사람이구나’ 감탄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난 뒤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다시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러더니 하는 얘기가 ‘남산 힐튼호텔 옆에 클럽을 짓기에 적절한 공간이 있는데, 문제는 용도변경이 안돼 힘들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힘 좀 써주면 금방 문제가 풀릴 것 같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하, 이거였구나' 싶었다. 김회장의 진짜 속내는 기자들을 앞세워 용도변경을 한 뒤 자투리 땅을 떼어주고 시세차익을 거두겠다는 것이었다.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 장사꾼들이 다 그렇듯 김회장은 이렇게 받는 게 없으면 절대로 공짜로 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김회장의 언론관이었고, 언론도 이같은 김회장의 주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분이 하는 일에 박수,보도,홍보하는 것이 우리의 일"**

다음은 IMF사태 발발 직전, 온 나라가 위기감에 휩싸여 있던 지난 97년 9월3일자 미디어 오늘의 보도 내용이다.

"지난 8월21일 서울 남산에 위치한 힐튼호텔(대우 소속) 컨벤션룸에는 때아닌 칭송발언과 '학교사랑'이 줄을 이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연대 총동문회 회장 자격으로 동문언론인을 초청해 이뤄진 이번 행사에서는 듣기에도 민망한 발언들이 여과없이 쏟아졌다."

"연세언론인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최종률 한국신문잉크주식회사 회장은 "세계경영이 뭔가 했는데 영국, 폴란드 등을 돌아본 결과 대우가 그 나라의 경제지표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그 뜻을 알았다"며 김우중 회장 칭찬에 열변을 토했다. 그는 또 "이런 분들이 하시는 일에 박수,보도,홍보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 말했다.
최회장은 또 "밥값에 보답하는 요량으로 연세 출신의 언론인 1천명이 1년에 1건씩 연세대학에 대해 '조찡' 기사를 쓰자"고 발언하기도 했다."

미디어 오늘이 보도한 문제 발언을 한 최회장은 K,J일보 등을 거쳐 K신문 사장까지 지낸 중진언론인. 그의 발언은 언론과 김우중 회장간의 한 측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우그룹 부도전 금감위 출입기자 대거 외유**

대우사태가 터지기 넉달전인 지난 99년 4월26일의 일이다. 기자협회보 1면에 ‘외부제공 해외취재 기지개’라는 기사가 큼직하게 실렸다. 다음은 문제 기사의 전문이다.

IMF이후 움추렸던 기자 외유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중앙일간지 경제부의 한 기자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이례적으로 행한 전경련 출입기자들과의 외유를 스타트로, 현대의 대규모 금강산 무료관광으로 본격 물꼬가 트였다”며 “기자 외유가 IMF이전 호황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재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중략)

금융감독위 출입기자단의 해외출장에도 논란이 제기됐다. 금감위 기자단은 1.2진으로 나뉘어 각각 3월말과 4월초 대우그룹이 제공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우즈베키스탄,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영국 등 유럽 현지 대우공장 시찰 차원이었다.

기자단은 대우그룹의 제안에 대해 회의를 갖고 해외견학 여부를 결정했다. 기자들은 “외국에선 대우그룹이 자금난을 겪는다는 등 갖가지 악소문이 나오고 있어 확인 차원에서 출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일부 기자들은 외부의 곱지 않은 시각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대우 관련 기사를 분위기만으로 쓰지 말고 실상을 본 후 기사화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출입기자들은 말했다.

1진 출장을 다녀온 한 기자는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이후 귀국하기 전의 모든 이동은 대우 전세기로 이동하는 등 경비절감에 적극 협조했다”고 말했다. 외부의 비판적 시각에 대해 출입기자들은 “금감위에서 나오는 대우관련 기사는 워낙 비중이 큰 사안이라 못쓰거나 안쓰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중략)
그러나 한 은행권 출입기자는 대우그룹 제공 출장을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단정짓고 “기자들의 모럴 해저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도직전 재벌의 공통점, 기자모시기 경쟁**

이 기사가 나간 뒤 금감위 기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만을 토로했다.
“IMF사태 발발후 가장 뼈빠지게 고생한 기자들이 금감위 출입기자들인데 외유 한번 갖다온 것 같고 너무 하는 것 아니냐” “기자협회가 정말 기자들의 권익단체냐” 하는 불만이 잇따랐다.
어떤 기자는 “외국의 대우 현지법인들을 돌아보니 대우가 쓰러지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대우가 쓰러져선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망한 재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IMF사태의 촉발제가 된 한보철강이 부도나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정태수 회장은 출입기자들을 당진 한보철강 영빈관으로 초청했다. 이날 영빈관에서는 발렌타인 17년산이 무한으로 공급됐고, 이 술로 폭탄주가 만들어져 돌았다 한다.

대우그룹도 한보철강과 마찬가지 코스를 걸었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금융감독을 철저히 해야할 금감위 출입기자들이 적색기업 1호인 대우그룹 돈으로 외유를 가다니 이런 모럴 해저드가 어디 있느냐”는 개탄의 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자단 외유는 김영재 금감위대변인을 매개로 한 대우그룹의 치열한 로비로 실현됐다.

대우에 이어 쓰러진 현대그룹도 금강산 ‘공짜 유람’을 시켜줬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 현대 돈으로 금강산을 안갔다 오면 시쳇말로 ‘병신’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학자 등 유력인사들도 모두 공짜로 금강산을 갔다 왔다. 당시 현대그룹 문화실에는 "우리도 보내달라"는 각계의 민원이 잇따랐다. 이들은 ‘민족의 영산’을 보는 것인만큼 재벌 돈으로 갔다 오더라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싶었다.
이때 소요된 모든 돈이 훗날 공적자금 부담으로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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