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대우그룹 전회장이 '귀국'을 예고해 정치권을 비롯해 관료계, 재계, 학계 등 각 부문에 비상이 걸렸다.
김 전회장이 귀국해 '입'을 열 경우 대우그룹 몰락의 한 요인이었던 '검은 유착'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미증유의 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회장이 미묘한 정권 교체기에 귀국의사를 밝힌 대목을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최근 김 전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인터뷰나 소설의 형식을 빌어 정경유착의 실체와 비자금의 존재를 일부 드러내기 시작한 대목도 김 전회장의 향후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해석하며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관련기사 2,3면
경제계는 이같은 '김우중 변수'의 출현이 경제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김우중 전회장의 귀국이 경제적 불안을 심화시키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선 귀국후 그가 자신의 안위나 정략적 차원을 넘어서 과거 정경유착의 실태를 명백히 밝히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제공해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대우는 그동안 4천억원을 뜯겼다"**
김 전회장의 최측근 인사는 23일 "김 회장의 편지"를 한국경제신문 "대우패망비사 취재팀"에 전달하면서 "대우 전ㆍ현직 임원들의 2심 공판이 마무리되는대로 해외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런 발표를 앞두고 월간 조선에는 김우중씨의 최측근으로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김우일씨가 “김우중 회장의 대우는 안팎으로 뜯어먹힌 거대한 복지재단이었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때를 맞춘듯 대우와 김우중의 몰락사를 소재로 한 <재벌에 곡(哭)한다>는 장편소설도 나왔다. 90년대 대우그룹 사사 제작에 참여했던 이 소설의 작가 최용운씨는 본지와 만나 “김우중씨의 경영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정치권과 관료들이 대우 패망의 공범이라는 시각에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김 전회장 해외도피후 그의 변호사 석진강씨는 “김우중 리스트도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최측근 김우일씨는 이런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양심선언’을 했다.
김우일씨는 대우 붕괴 책임의 80%를 경영 탓으로 인정하면서도, "사회 지배층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대우를 뜯어먹었다"며 한국 지배층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듣기에 따라선 일종의 선전포고로 해석가능한 발언이다.
“30년간 줄잡아 4천억원 이상이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빠져나갔다. 매년 2백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만들려면 매출액 당기순이익률을 2%로 잡을 경우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려야 가능한 액수”라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우일씨는 우선 정치권에 화살을 날렸다. 정치인들에게 건네지는 금액에 대해서는 “공식 후원금 이외에는 회장이 직접 하기 때문에 그 규모나 액수, 빈도는 전혀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정치인에게 불법적인 자금 공여를 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았다.김씨는 "김회장은 누구도 믿지 않기 때문에 직접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배달을 했다"며 “이때문에 뇌물 사건이 터질 때마다 김회장이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러나 김회장이 관리하던 정치인이 20~30명에 달한다고 말해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가방에 현찰 5억원씩 넣고 다니며 공무원에 상납**
그는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나라에서 비자금 없이 사업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 인사치레를 하면 아무래도 대화가 잘 통한다. 봉투를 내밀었을 때 거절당한 경우는 10% 정도인데, 제 느낌으로는 그 10%도 인물이 강직하고 공명정대해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 그릇이 적어서 거절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먹고는 싶은데 받았다가 문제되는 건 아닐까 벌벌 떨면서 포기하는 거다. 인간은 다 눈 먼 돈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특별한 이권이 걸려 있지 않을 경우 공무원들에게 건네는 보통 인사치레 액수는 3백만원 정도이다. 수표는 절대 안 받으니까 현금으로 보낸다. 소액이라도 횟수가 많으면 더 짭짤하다. 이것이 귀찮아서 한몫에 1천만원 정도 주면 절대 안 받는다.”
“해외여행때 끌고 다니는 가방에 1만원권으로 현금 5억원이 들어간다. 전달은 주로 밤 늦은 시각이나 새벽에 집으로 보내거나 차 트렁크에 넣어준다. 기업 입장에서야 떳떳하게 받고 화끈하게 도와주는 공무원이 가장 고맙다. 공무원 중에는 술과 여자를 원하는 스타일, 현금을 선호하는 스타일, 덜덜 떨면서 못 받아먹는 스타일이 있는데 봉투를 안 받는 사람과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동안 귀국을 저지당했다?**
<재벌에 곡한다>는 소설을 쓴 최용운씨는 이 소설에서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주군(김우중 회장)은 귀국을 하려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말린다고 한다. 육대주 그룹(대우그룹) 사장단 재판을 며칠 앞두고 주군이 귀국하기 위해 영국 히드로 공항에 나타났는데, 어찌 알았는지 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비행기 탑승을 막았다는 것이다”고 썼다.
소설은 이어 "그래, 막으려면 막아 봐라. 그래도 주군은 들어올 것이다. 동물적인 위기 극복능력을 소유한 주군이 그깟 대사관 직원 몇이 막는다고 들어오지 못하겠는가. 두고 봐라, 이제 주군의 서슬 퍼런 양심선언으로 정치인과 관료들은 식은 땀을 흘릴 것이다"고 쓰고 있다.
김 전회장의 귀국을 예고한듯한 대목이다.
김 전회장이 귀국하면 종신형을 받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얼마전 대우그룹의 전문경영진들이 7년이상의 중형을 받은 대목을 고려하면 김 전회장에게는 형평성 차원에서 종신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공격적 뻔뻔스러움'이라는 비판**
그러나 김 전회장은 이에 대해 항변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국내에 보낸 편지에서 "대우의 공과(功過)가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 오로지 매도 일변도로 모든 추악한 비난만이 나를 위시한 대우 임직원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며 "내가 국제적 사기한(詐欺漢)이고 대우가 범죄집단이었다면 어떻게 마티즈가 로마시내를 가장 많이 질주하고 있고 대우가 만든 수백척의 배들이 전세계 바다위를 항해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같은 김 전회장의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는 '공격적 뻔뻔스러움'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8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국민 개개인에게 치명적 손실을 입힌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이들은 아울러 그동안 김 전회장의 '외유'를 방치한듯한 인상을 주어온 여야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도 차제에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고위관계자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에 김우중 변수까지 출현하면서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경제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김 전회장은 귀국후 정경유착의 진상을 명백히 밝혀 이런 일이 재연될 토대를 없애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속죄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가 주변에는 김우중 전회장이 귀국을 강력히 바라고 있으며, 지병을 이유로 귀국후 병상생활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가에서는 지난 99년 8월10일 출국이래 2년이상 외유생활을 해온 김 전회장이 정권교체기라는 정치적 혼란기에 귀국, 자신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매듭짓기 위해 이같은 고도의 사전정지 작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