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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세계시스템<9>-'차이나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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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세계시스템<9>-'차이나 쇼크'

한국 위협하는 거대 중국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90년 9월 국내기업가중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비사(秘事)이다.
정명예회장 측근의 전언에 따르면, 아직 한.중간 수교도 체결되지 않았던 그 시절, 그가 중국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현대자동차의 중국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중국시장이 거대한 자동차 소비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정명예회장 특유의 동물적 직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장쩌민(江澤民) 주석 등 중국 지도부와의 합작자동차 공장 설립을 위한 물밑 협상에서 그는 실패했다. 이유는 정명예회장은 중국에 포니 등 소형차 라인을 옮기고자 희망한 반면, 중국 지도부는 ‘낡은 차종’외는 관심이 없다며 중국에 오려거든 소나타 등 현대차의 ‘첨단라인’을 옮기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10년전 정주영의 ‘아쉬운 선택’**

정명예회장은 당시 중국요구를 따를 경우 첨단기술이 유출돼 ‘새끼호랑이를 키우는 우(愚)’를 범할 것을 우려, 중국쪽 요구를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에 중국은 “한국의 사양 기술을 물려받아 영원히 한국의 뒤를 쫓아가는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잠재력이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하려면 최첨단 기술을 내놓아라. 한국 아니더라도 들어오고자 하는 기업들은 많다”는 식의 배짱이었다.

중국은 그후 자신의 노선을 관철해 한국 대신 미국, 독일 등의 내로라하는 선진 자동차메이저들과 합작공작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최대 잠재시장인 중국에 기껏해야 중고차나 편법으로 극소수 조립자동차를 수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정몽구회장이 중국을 방문, 시장 개척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 관계자는 10년전 ‘정명예회장의 선택’을 아쉬워하고 있다.
“만약 그때 일부 첨단기술 전수를 각오하고 중국에 들어갔다면 지금쯤 현대차가 중국시장을 휩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 그 돈을 기술개발에 쏟아 부어 국내에서 더욱 뛰어난 첨단기술을 개발했으면 되는 일 아닌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제는 울며겨자먹기로 기술을 내줘야 할 판**

정명예회장의 현대차 중국진출 시도가 좌절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하이닉스 반도체가 중국에 팔려갈 정반대 운명에 몰렸다. 생산라인을 팔려면 하이닉스의 첨단기술도 함께 내놓으라는 게 중국측 요구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중국요구를 받아들여서라도 ‘하이닉스의 악몽’으로부터 하루바삐 벗어나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에서는 “하이닉스가 문을 닫거나 미국,대만 등의 경쟁국가로 팔려가는 것까지는 인내할 수 있으나 매입자가 중국이 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연간 14만5천명씩 배출되고 있는 중국의 우수한 저임 엔지니어들과 풍부한 외국자본이 결합할 경우 중국 반도체산업이 가공스런 속도로 성장,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까지도 위협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이처럼 우리에게 더 이상 경제보완이 아닌 ‘최대위협’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9.11테러로 중국만 어부지리**

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래 우리나라는 산업적으로 ‘잃어버린 4년’을 보낸 반면, 외환위기 안전지대였던 중국은 도리어 이를 계기로 욱일승천해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경제가 동반침체의 늪에 빠져들자, 중국에 대한 외국투자자본의 선호도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다가 9.11테러까지 터지면서 상황은 더욱 좋아졌다.
뉴욕증시가 9.11테러로 엿새간 문을 닫았다가 문을 연 지난달 17일의 일이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와 나스닥은 기다렸다는 듯 내리 폭락을 거듭, 일주일만에 1조3천억달러의 자산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중국 상하이, 선전증시의 경우는 달랐다. 17일에는 하락세를 보였으나 그 다음날부터는 미증시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3%나 상승했으며 그후에도 견조한 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9.11사태로 중국은 오히려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9.11사태로 미국경제가 급락하자 ‘차이나 신드럼’에는 더욱 가속이 붙어 금명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최대 투자유치국이 될 것이라는 게 국제금융계의 지배적 전망이다.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에 대한 투자가들의 신뢰도가 지난 93년이래 최저치인 83.6포인트까지 떨어진 반면, 중국의 투자신뢰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IIF(국제금융협회) 조사결과나 파이낸스아시아의 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중국은 아시아로 몰려드는 외국투자자금의 70%이상을 독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9.11사태 직후인 지난달 19일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제6차 세계화상(華商)대회에서 중국의 주룽지총리는 “올해초 세계경제는 눈에 띄게 성장속도가 느려졌으나 우리 경제는 성장에 탄력을 받고 있다”고 호언했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다이샹롱 총재는 “어떤 경우에도 중국이 금융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없다”고 장담했다. 중국대외무역부는 “오는 2005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5천억달러를, 2010년에는 2조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번 중국화상대회는 중국지도부가 국내외로 경제강국에의 자신감을 내보인 경연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이는 가공스러운 ‘차이나 쇼크’였다.

***동남아에 이어 다음은 한국이 희생양이 될 차례(?)**

‘차이나 쇼크’는 이미 아시아 등 신흥시장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고촉동(吳作棟)총리는 지난 8월19일 36번째 독립기념일을 맞아 행한 TV연설에서 '중국의 위협‘을 인정했다. 그는 “그동안 나는 중국의 변신을 예의주시해왔다”며 “그것은 가공스러운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따라서 “우리의 최대도전은 중국이 ‘값싸면서도 품질 높은 제품’들로 세계를 뒤덮을 때 우리만의 틈새시장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기 위해선 외국투자에 덜 의존적이며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체질로 바꾸는 길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 때 아시아의 맹주를 꿈꾸었던 싱가포르의 침통한 좌절 고백이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은 이미 중국성장의 희생물(?)이 됐다는 게 국제경제계의 지배적 분석이다. 이들 국가가 경험한 지난 97년 외환위기라는 것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중국의 ‘값싼 제품’이 태국 등의 제품을 밀어내면서 생긴 경상수지적자의 산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번에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희생물이 될 차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고촉동총리의 분석대로 이제 중국제품은 단순히 값싼 제품이 아니라 ‘값싸면서도 질높은 제품’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중국에는 세계 5백대 다국적기업중 3백개 기업이 이미 직접투자를 하고 있다. 나머지 2백대기업들도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이 연말에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가입하면 외국인투자에는 한층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중국정부는 이들의 투자를 허용하는 전제조건으로 첨단기술 이전을 요구, 대부분의 경우 이를 관철시키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 등의 사양기술을 물려받아 외형적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성장궤도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빛은행의 김종욱 부행장은 “중국이 무섭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중국을 찾았던 대부분의 국내기업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중국지도부의 탁월한 국가비젼이 성장의 원동력**

국제경제학계에서는 “90년대 일본경제의 급속한 몰락으로 한때 미국, 유럽, 일본이 구축했던 ‘3극체제’가 ‘2.5극체제’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세계경제계의 세력판도가 또한차례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과 유럽이 여전히 1극씩을 차지하고 있을 때 일본이 0.5극, 중국이 나머지 0.5극을 차지하는 질적으로 달라진 ‘3극체제’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시간이 흐르면 중국이 0.7극, 일본이 0.3극으로 아시아의 경제역학이 뒤바뀔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가공스런 중국의 성장비결은 무엇인가.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중국지도부의 탁월한 국가비젼을 꼽는다.
정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 협상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지도부는 10년 전부터 일관된 경제개발 노선을 견지해 왔다. 요지인즉 중국의 방대한 내수시장 잠재력을 무기로, 사양기술이 아닌 첨단기술을 이전받아 ‘경제종속 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노선이다. 이들 지도부는 한때 발전모델로 깊숙이 연구했던 한국모델을 ‘실패모델’로 규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형 발전모델을 따를 경우 영원히 미국이나 일본 등 서방선진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다.

이제 우리 지도부도 싱가포르 지도부처럼 중국을 달리 봐야 할 때가 왔다.
“아직 앞으로 5년간은 보완관계이지 경쟁관계가 아니다”라는 식의 안이한 접근은 금물이다. 요즘 우리경제의 극심한 침체상과 이에 대조적인 중국경제의 약진을 보면, 그 기간은 2~3년 앞으로 당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차이나 쇼크’라는 말을 이제 우리 지도부들도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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