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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논란, 원조는 25년 전 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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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논란, 원조는 25년 전 이 사건!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5> 서울대병원 법정수당 소송

지난 5월 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상공회의소 주최 CEO 라운드테이블. 댄 애커슨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엔저 현상과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면 절대로 한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확실히 풀어가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기업인의 '민원 해결사'로 나선 박 대통령의 이 한마디 덕분에 통상임금 문제가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시간 외 근무수당 등 법정수당의 산정근거가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킬 것인가 여부가 현재 논란의 핵심이다. 대법원은 이미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들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번 논란의 당사자인 한국GM은 현재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애커슨 회장의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대통령이 노동 현실에 대해 모른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논란의 뿌리는 짧게 잡으면 지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올라간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 1000명이 "그간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각종 법정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소송에 김선수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변호사가 1990년 끌어낸 판결은 향후 임금 및 수당 논란과 관련해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이후 통상임금 개념은 구체화되고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통상임금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와중에 통상임금 문제를 '민원 해결'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목격된 것이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진보해 왔을까? <편집자>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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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노동조합은 노동자대투쟁 시기인 1987년 7월 31일 설립되었다. 노동자대투쟁 시기에 병원사업장에서 최초로 설립된 노동조합으로서 간호사들을 비롯한 다양한 직종의 병원노동자들이 모두 가입했다. 서울대병원에 이어 한양대학교병원, 경희대학교병원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등 100여 개의 병원노동조합들이 설립되었다. 이들 신생 병원노동조합들은 1987년 12월에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를 설립했다가 1988년 12월 위 협의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을 출범시켰다.

<한겨레> 1988년 8월 3일 자 보도에 의하면 1988년 8월 1일 개최된 서울대학교병원노동조합 설립 1주년 기념제에서 한 변호사가 소리는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진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현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는 것입니다"라고,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을 인용하며 "스스로 권익을 찾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못자리로 노조가 자리 잡기를 기원하다"고 축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조합은 출범 후 중요 사업의 하나로 그동안 병원이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월차휴가수당, 생리휴가수당 등 제반 법정수당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근로기준법은 연장, 야간(하오 10시부터 상오 6시까지),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한 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매월 1일의 유급월차휴가(월차휴가제도는 2003. 9. 15.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40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면서 폐지되었다. <편집자>)를, 1년간 개근한 경우 1년에 10일부터 근속연수 1년당 1일씩 추가한 일수의 유급연차휴가를 주도록 규정했다. 여성 근로자에게는 매월 1일의 유급생리휴가(2003. 9. 15.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여성근로자가 청구한 때에 주도록 바뀌었다. <편집자>)를 주도록 규정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근로기준법의 위 규정들을 준수하지 않았다. 법정수당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정한 계산법에 따라 법정기준보다 적은 액수만을 지급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하며 분신한 것이 1970년이건만,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도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학교병원처럼 공익적 성격의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근로기준법은 무시되고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조합이 대거 설립되고 어용 집행부가 민주 집행부로 교체된 이후에 근로기준법 기준에 따른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소송이 제기되었지만 1000여 명에 이르는 전체 조합원이 원고가 되어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은 서울대학교병원이 처음이었다.

▲ 1987년 이후, 노동계의 요구는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사진은 병원노련(현 보건의료노조)의 1990년 임투 대동문화제 모습 ⓒ보건의료노조

소송 제기와 방대한 수당 계산 작업

내가 고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박석운 상담소장이 노동조합 간부들과 협의하여 1987년 10월 24일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병원에 최고장을 발송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간 후 준비를 해서 1988년 4월 23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최고장을 발송한 인원은 958명(간호사 340명, 간호조무사 84명, 급식과 73명, 청부실 107명, 핵의학·진단방사선 54명, 중앙공급실 36명, 약사 20명, 약국과 진단방사선 일반직·임상병리·병리·특수검사 100명, 사무직·치과·간호부 고용직 144명)이었는데, 이후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최종적으로 1,021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업종과 근무형태 그리고 인원수 등을 고려하여 9개의 사건으로 나누어 소장을 접수하고 진행했다.

임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3년이므로 최고장을 발송한 시점으로부터 역산해서 3년치, 즉 1984년 11월분부터 1987년 10월분까지의 수당을 청구했다. 소장을 제출하는 단계에서는 수당 내역을 구체적으로 계산할 수 없어 청구기간을 밝히고 최대치를 청구하는 형태로 했다. 재판은 1988년 5월 20일 첫 기일이 있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원고들의 3년치 급여내역서, 타임카드, 당직명령서 등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서 병원으로부터 이를 제출받았다. 이 자료들은 원고들의 청구액수를 계산하기 위해 꼭 필요하므로 병원은 이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워낙 방대한 자료여서 병원으로부터 이를 복사해 받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었다.

청구액수를 구체적으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3년치의 매월 제 수당 산정표를 작성해야 했다. 먼저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월급 통상임금을 확정해야 하는데, 그동안 병원이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각종 수당, 즉 위험수당, 기술수당, 진료지원수당, 식대보조비, 가족수당, 출근장려수당, 학자보조금 등을 각 항목별로 정리하고 본봉 등 병원이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항목과 함께 월별 합산액을 산정한다.

이 작업은 병원으로부터 받은 급여명세서를 일일이 확인해서 월별로 산정하는 방법으로 한다. 법정수당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월급 통상임금을 시간급 통상임금으로 환산해야 하는데, 당시 병원 보수규정은 "시간당 임율의 계산은 월 184분의 1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월급 통상임금을 위 규정에 따른 184로 나누어(근로기준법상의 기준 소정근로시간으로 나누는 것보다 근로자에게 유리한 것이 확실하므로)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했다.

다음으로 매월 연장·야간·휴일근로 시간수, 매년 연월차휴가일수, 매월 생리휴가일수를 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원고의 타임카드를 보고 매일의 근무시간을 확인하고 휴게시간을 공제한 후 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수를 계산해서 월별로 집계한다. 매월 월차휴가와 생리휴가를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1년 단위로 연차휴가일수 및 미사용 연차휴가일수를 산정한다. 이들은 각각의 항목에 별도로 기재한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계산한 시간급 통상임금과 연장·야간·휴일근로 시간수와 연월차휴가·생리휴가 일수를 토대로 매월별로 지급받아야 할 수당의 액수를 산정한다. 그리고 지급받아야 할 수당 액수에서 급여명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지급 수당 액수를 공제하여 청구액수를 확정한다.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미사용 유급연월차휴가와 유급생리휴가에 대해 50%를 가산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마찬가지로 50%를 가산하여 산정했다.

각 개인별로 수당 산정표를 작성하는데, 세로축으로 36개월의 기간을 설정하고 가로축으로 각 통상임금 항목, 시간수 항목, 수당의 계산 항목, 기지급액과 차액 항목 등으로 정리하니 1인당 작성해야 할 칸이 500칸이 넘는 것 같았다. 당시 286 컴퓨터가 보급되기는 했지만,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3벌식 또는 2벌식 타자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히 박석운 소장이 데이콤노동조합 간부들과 친분이 있어 그쪽에 부탁을 해서 컴퓨터로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산정표를 작성했다. 1989년 2월 2일 자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막 오른 '컴퓨터 대중화 시대' 활용 실례" 제목의 기사에서 데이콤노동조합이 1988년 11월 서울대병원 체불임금 실태 파악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을 들고 있다.


통상임금에 관한 법원 입장의 정리


당시 서울의 지방법원은 형사지방법원과 민사지방법원이 독립되어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에 법원장을 통해 형사재판을 통제하기 위해 형사지방법원을 독립시켰던 것이다. 형사지방법원에는 정보기관원이 상주하였고, 이들은 시국사건 혐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의 발부나 재판과정에서 판사에게 직접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판사도 형사지방법원에 근무하면서 정권에 잘 보여야 출세코스를 달리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서울대병원 사건을 비롯해서 3년치 법정수당 청구 소송 몇 건이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제기되어 그 업무량이 방대했다. 구체적인 수당 액수의 계산 자체도 엄청난 업무량이었지만 통상임금의 범위(분자의 문제), 시간급 통상임금의 계산방법(분모의 문제), 각종 법정수당의 계산방법 등 모든 쟁점에 대한 법원의 견해를 결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통상임금에 대해서는 법률에 정의규정도 없고(통상임금의 정의는 1982년 8월 13일 시행된 근로기준법시행령에 처음 규정되었다. <편집자>), 다른 쟁점에 대한 법률 규정도 간단해서 해석으로 보충해야만 했다. 그런데 당시까지 대법원이 판결로 법리를 정리한 것도 부족했다. 이와 관련한 법원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처음 정리해야 했다.

1심 재판은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17부(재판장 박용상 부장판사, 주심 판사 김상준)와 합의15부(재판장 이융웅 부장판사) 등에 배당되어 진행됐다. 1989년 6월경부터 합의17부에서 먼저 판결을 선고하고 이어서 8월경까지 줄줄이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그동안 대법원의 견해와 일본의 판례와 학설 등을 연구하여 나름의 기준을 정리했다. 원고들 소송대리인의 입장에서는 원고들에게 가장 유리한 주장을 했었다.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되는 수당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수당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하기 위해 분모로 나누어야 하는 월 소정근로시간수는 병원의 규정에 따른 184시간을 주장했으며, 연월차휴가수당과 생리휴가수당의 경우에도 50%의 가산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판결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이라 함은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시간급금액, 일급금액, 주급금액, 월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을 말하며 이는 근로의 양 및 질에 관계되는 근로의 대상으로서 실제 근무일수나 수령액에 구애됨이 없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1임금 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고정급임금을 의미하므로 단순히 은혜적, 부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것이거나 근로의 양 및 질과는 무관한 요인에 따라 근로자의 일부에 대하여 지급되는 것은 통상임금의 산정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라는 법리에 전개한 후 위험수당, 기술수당, 진료지원수당, 식대보조비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했으나, 출근장려수당이나 상근직원 중 부양가족이 있는 자에 대하여 지급하는 가족수당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입학 또는 재학 중인 직원의 자녀에 대한 학비보조금은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월급 통상임금을 시간급 통상임금으로 산정할 때 분모인 월 소정근로시간수에 대해서는 "근로자에 대한 임금을 월급으로 지급할 경우 월급 통상임금에는 근로기준법 소정의 유급휴일에 대한 임금도 포함되므로 월 유급휴일 해당근로 시간수도 월 소정근로시간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복무규정으로 주 44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병원의 경우 유급휴일 해당시간을 포함하여 연 평균하여 월 소정근로시간수를 계산하면 225.9시간이 된다고 판단했다.

통상임금의 범위와 시간급 통상임금 계산에 관한 위와 같은 1심 판결의 논지는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외 쟁점으로는 연월차휴가근로수당과 생리휴가수당에 대해서도 50%의 가산율을 적용할 것인지, 숙직근무 시간을 모두 연장 및 야간근로시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소위 합의에 의한 변형근로시간제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에도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여야 하는지 등이 있었다.

1심 판결에 대해 원고들과 피고 모두 항소를 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1990년 3월경부터 4월경까지 사이에 판결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민사13부: 재판장 신성택 부장판사)이 1990년 3월 28일 연월차휴가근로수당에 대해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한다고 판결하자, 노동부는 1990년 4월 24일 연월차휴가근로수당의 경우에는 통상임금의 100%만 지급하면 된다고 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반하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렸다. 병원 측은 모든 사건에서 상고를 제기했고, 원고 측은 몇몇 건에 대해서 상고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1990년 12월 26일 2건에 대해 판결{대법원 1990. 12. 26. 선고 90다카12493 판결 : 대법관 이회창(재판장), 배석 김상원, 김주한 / 대법원 1990. 12. 26. 선고 90다카13465 판결: 대법관 이회창(재판장), 배석 김상원, 김주한}을 선고한 이후 1991년 7월경까지 선고했다. 대법원은 50%를 가산하여 연월차휴가근로수당을 산정한 부분을 파기함으로써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지지했다.

한편 약사의 숙직근무에 대해 전체 시간을 시간외근로시간으로 인정한 부분에 대해 숙·일직근무가 전체적으로 보아 근로의 밀도가 낮은 대기성의 단속적 업무에 해당할 경우에는 숙·일직근무 중 실제로 업무에 종사한 시간에 한하여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파기했다(대법원 1990. 12. 26. 선고 90다카13465 판결). 대법원에서 파기된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되어 더 심리되었는데, 최종적으로 1992년 5월 12일 간호조무사들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선고로 약 5년여에 걸친 모든 소송절차가 종결되었다.

<서울대병원노동조합 20년사 신새벽>은 이 소송의 의의에 대해 "지루한 기간이었지만 법정소송을 제기한 조합원이 잃어버릴 뻔했던 권리를 되찾았으며, 서울대병원노동조합의 선도적 법정소송은 직종을 초월한 다른 노조에도 영향을 끼쳐 속속 소송이 제기되었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 계기로 나는 1992년 9월 1일 자로 서울대학교병원 노동조합의 고문변호사로 위촉된 이후 중간에 약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고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의 투쟁 모습 ⓒ보건의료노조

노동전담부 신설의 계기

이 사건이 제기되었을 당시 서울민사지방법원에는 9개의 합의부가 있었다. 이 사건과 같은 대규모 노동사건의 처리를 계기로 서울민사지방법원은 1989년 9월 1일부터 2개의 노동전담부를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노동전담부의 효시(嚆矢)이다. 그 이후에도 노동사건의 수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노동전담부는 점차 확대되었다. 현재 노동전담부는 규모가 큰 지방법원은 물론이고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 민사부와 행정부에도 설치되어 있다.

노동전담부의 설치만으로는 근로자 보호에 충실을 기하고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법관들이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노동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가 어렵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동법이 실체적인 측면을 규정하고 있는데, 절차에서는 일반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 절차에 의하도록 함으로써 노동법상 보장된 실체적 권리를 구체화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모든 증거자료가 사용자에게 편중되어 있는 사정에 유효적절하게 대처하고, 신속하고도 저렴한 권리 구제를 위해서는 노동사건의 심리에는 절차상의 특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된 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을 설치해야 한다. 특히 노사단체 추천의 참심원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함으로써 전문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사법민주화를 강화함으로써 재판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통상임금 범위의 확대 과정

서울대병원 사건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0. 12. 26. 선고 90다카12493 판결 등)은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의 기본공식이 정립된 판결로 평가된다. 그 이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몇 단계 발전과정을 거쳐 현재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이것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되고 있다.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입장의 근본적인 변화는 1995년 판결(1995. 12. 21. 선고 94다26721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소위 임금이분설을 폐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적용 여부에 대한 것으로 모든 임금을 구체적인 근로의 대가로 인정했다. 위 사건에서 노동계는 임금이분설 유지를 주장하였고, 경영계는 임금이분설 폐지를 주장했다.

대법원은 경영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임금을 사실상 근로를 제공한 데 대하여 지급받는 '교환적 부분'과 근로자로서 지위에 기하여 받는 '생활보장적 부분'으로 2분된다는 이분설을 폐기했다. 현실의 근로 제공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근로자로서 지위에 기하여 발생한다는 이른바 생활보장적 임금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매년 1월과 7월 보수지급일에 지급하는 정근수당 역시 구체적 근로에 대한 대가이므로 파업참가자들에게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생활보장적 부분으로 취급되었던 가족수당, 사택수당 기타 복리후생적 수당들의 경우 소정근로를 하면 전액 지급되고 초과근로를 해야만 지급되거나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그 액수가 변동되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통상임금에 포섭되었다.

또 하나의 전기가 된 판결은 인천광역시 중구의료보험조합 사건(대법원 1996. 2. 9. 선고 94다19501 판결)이다. 위 판결은 근로자에 대한 임금이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것이라도 그것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고, 소정 근로시간의 근로에 직접적으로 또는 비례적으로 대응하여 지급되는 임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되는 임금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런 사유만으로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매년 1회 지급되는 체력단련비와 월동보조비의 각 1/12을 월급 통상임금에 속한다고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대법원(2012. 3. 29. 선고 2010다91046 판결)은 6개월을 초과하여 계속 근무한 근로자에게 근속연수의 증가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각 비율을 적용하여 산정한 금액을 분기별로 지급하는 상여금은 그 지급 여부 및 지급액이 근로자의 실제 근무성적 등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 할 수 없고 그 금액이 확정된 것이어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인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노동부 예규(2012. 9. 25. 개정 제47호 통상임금 산정지침)는 현재까지도 임금이분설을 폐기한 대법원 판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보장적 임금에 해당하는 복리후생비 대부분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있고, 1임금산정기간을 초과하여 지급되는 임금 항목을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일률성 요건에 대해서도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경우에만 이 요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노동부 예규에 대해서는 임금이분설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나 지금이나 의구(依舊)하므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조속히 개정되어야 한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현재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경영계가 극렬하게 비판하고 있으나, 대법원이 임금이분설을 폐기하는 견해를 채택하는 순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경영계로서는 대법원 입장을 수용하고, 임금구조를 단순화하고 나아가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통상임금을 기초로 해서 산정해야 하는 연장·야간, 휴일근로 등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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