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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직 형제복지원 문제가 해결이 안됐어?"

[인터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한종선, 최승우 씨

"처음 언론의 조명을 받았을 때는 뭔가 조치가 취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피해보상은 둘째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러 국회의원이 우리를 찾아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1년째 농성을 하는 이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회 정문 앞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비닐 집.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한종선 씨와 최승우 씨가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농성하고 있는 1평 남짓한 공간이다.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농성을 한다. 이들을 만난 6일이 농성을 시작한 지 딱 1년째 되는 날이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따라,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망자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용 시신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 관련 기사 : 전두환은 왜 531명 죽어 나간 그곳을 칭찬했나)

▲ 한종선 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에 나온 한종선 씨의 과거 사진. ⓒ한종선

'부랑자' 범위는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채 끌려와 고초를 당했고, 숨졌다. 1986년 말 산행하던 울산지청의 한 검사가 우연히 울산에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의 목장을 만들려고 강제노역하는 수용자를 발견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사회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박인근 원장은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선고를 받고 형을 산 뒤 풀려놨다.

피해생존자들의 시간은 30년 전 형제복지원에 멈춰있었다. 형제복지원은 경찰과 부산시의 비호 속에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 때까지 운영되며 수많은 피해자가 나왔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국가차원의 진상규명은 없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진선미 의원은 형제복지 사건의 피해규모와 국가책임 여부를 규명하라는 내용의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2016년에 발의했지만 3년 넘는 시간동안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6일 오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농성장으로 찾아왔다. 피해자들은 "이제는 희망고문 같다"고 하소연했다. 최위원장은 "국가폭력 사건들에 대해 국가가 사과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시작되고 있고, 형제복지원 사건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인권위의 1차적 임무가 국가에 의한 인권 유린을 방지하는 것인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저 역시 직접 챙겨보겠다"고 위로했다.

한 위원장이 위로를 건네고 자리를 뜬 뒤, 1년째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한종선 씨와 최승우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레시안(박정연)

"1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어제고 오늘이고 그냥 하루일 뿐"


프레시안 : 지난해 11월부터 농성을 시작해, 오늘로 딱 1년이 됐다.

한종선 : 변화가 없다. 그냥. 1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어제고 오늘이고 그냥 하루일 뿐이다.

프레시안 : 농성장이 집이나 마찬가지겠다.

한종선 : 그러게. 집이 되어버렸다. 근처 식당에서 하루 한 끼를 먹고 지낸다. 옆에 있는 국회의사당역이나 금산빌딩 화장실에서 볼 일을 해결하고.

프레시안 : 하루에 한 끼를 드신다고?

한종선 : 이 좁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두 끼 이상을 먹으면 부대낀다. 운동량이 없으니까. 또 지출을 최소한도로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다.

프레시안 : 이 농성장은 몇 평짜리 공간인가.

한종선 : 1평 정도? 이 공간을 함께 지키는 최승우 씨와 나란히 자지 못하고 서로 엉켜서 잘 정도의 공간이다.

프레시안 : 지난겨울도 많이 추웠고 이번 여름에도 더웠다. 다가올 겨울이 걱정되진않나.

한종선 : 겁난다. 겁이 나지만, 작년 겨울보다 따뜻할 거라 믿는다. 부직포도 내부에 붙였고 비닐도 바깥으로 두 겹을 쳤다. 또, 시민들과 예술인들 조각보를 만들어 집 위로 덮어줬으니까 좀 많이 따뜻해질 거다

프레시안 : 농성장 주변에는 '하루에 한가지 기분 좋은 생각하자!'는 문구와 거울 옆에 '웃자!' 등 긍정적인 말들이 적혀있다.

ⓒ프레시안(박정연)

최승우 : 어두운 생각만 하면 무겁고 견딜 수가 없으니까 한번 더 웃으면서 이 농성장에서의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적어놓았다. 계속 그렇게 밝은 생각을 하면서 형제복지원에서의 트라우마를 떨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국회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분들의 피켓을 보관해주는 일종의 보관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궁중족발 사장님도 이곳에 피켓을 두고 다니신다고 했다.

최승우 : 연대지, 연대. 우리도 사회적 약자지 않나. 우리 같은 사회적 약자가 국회에서 법으로 보호해달라고 하는 거고 궁중족발 사장님도 마찬가지다. 국가 폭력으로 혹은 국가가 법을 잘 못 만들어서 그 법안에서 폭력을 당한 것이고 궁중족발 사장님도 같은 처지다. 그래서 연대 차원에서 서로가 위하는 마음.이랄까. 나의 피해를 들여다보니 상대의 피해를 생각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종의 피켓 보관소가 됐다.

프레시안 : 출퇴근하거나, 오고가는 국회의원들과 국회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

한종선 : 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사람들도 양심이 있을 건데 우리를 보고도 피하려고 하는 그 순간 얼마나 죄책감 들까. 얼마나 찔릴까.

최승우 : 며칠 전 이정미 정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회 앞에서 선거제도 개혁 때문에 행사를 했다. 그때 손학규 대표가 농성장 앞으로 오기에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심 좀 가져주십시오' 하니까 수행들이 나를 가로막았고, 손학규 대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이 가버렸다. 와 진짜 경악스러웠다.

프레시안 : 책임감 있는 위치의 정치인들이 그렇게 도망치듯 떠날 때 많이 서운했겠다.

한종선 : 국회의원은 말 그대로 입으로 발언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줘야 할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우리의 뜻을 어떻게 전달했기에 우리를 피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자신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설레발 치다가 잘못 대응할 수도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살피는 것에 지레 겁먹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프레시안 : 1년 동안 농성을 하면서 많은 일이 있으셨겠다.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

한종선 : 외부에서 힘들게 하는 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나에 대한 폄하와 유언비어로 인한 공격이 너무 아프다. 우리 안의 다양한 피해생존자들이 있다. 그중에 일부는 우리 피해보상이 언제 되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이 진상규명이 안 된 상태에서는 피해보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고 생각해서 첫 번째로 진상규명 해야 한다고 말을 하면, 내부에서도 한종선이는 활동해서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최승우 : 이렇게 만드는 이유에 사실은 언론 책임도 있다. 언론들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형제복지원이 잘 풀릴 것 같은 이야기도 있고, 뭔가 규명이 된 것 같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 보도 내용이 우리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해결이 된 것이 없고, 특별법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무수한 언론이나 공신력 있는 사람들이 사과 하고 찾아오지만 우린 계속 여기 있다.

ⓒ프레시안(박정연)

프레시안 : 더디지만, 변화는 있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도 지난달 13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비상상고를 문 총장에게 권고하지 않았나.

한종선 :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데 잘못 적용된 법리적 해석으로 법령 위반을 확인했으니 법리 적용을 똑바로해서 제대로 돌려놔야한다. 그래야지만 잘못된 판례가 악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생존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재판이 다시 열린다고 하더라도 피해생존자들은 전혀 구제받을 길이 없다. 대검찰청에서 권고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울산에서 186명이 동원된 강제노역 사건이다. 그렇다면 부산에서 4500명을 수용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애초부터 진상조사를 안 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검찰이 비상상고로 법 적용을 새로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이 묻힐 수 있는 위험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특별법이 통과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부산시와 부산시의회도 형제복지원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인권유린이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며 '형제복지원 사건 전담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한종선 : 그들은 사과 했지만, 나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 그런 사과는 받지않겠다. 사과라는 것은 진정한 마음에서 앞으로 이런일 없도록 하겠다는 게 핵심인데 우리는 아직 행동으로 본 것이 없다. 30년 묵은 우리의 억울함은 말 한마디로 풀릴 수 없다.

"행동으로 보여지지않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농성하며 느꼈다"


프레시안 : 오늘 아침에는 최영애 인권위원장도 농성장을 찾았다. 피해 회복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는데 피해생존자들이 느끼는 변화는 아직 미미한 것 같다.

한종선 : 다른 피해생존자들은 몰라도 저희는 아직까지 비판적이다. 행동으로 보여지지않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농성하며 느꼈다.

프레시안 : 정치인들의 사과와 약속이 일종의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는 의미인가?

한종선 : 그렇다. 그들의 쇼맨십과 제스쳐에 우리가 이용당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한 두 번이면 상관없는데 지속적으로 이어질 땐 이야기가 다르다. 국민들도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다. 정치인들의 쇼맨십은 무한 반복되지만 농성장의 우리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눈치챘을 때 정치인들에게 그 쇼맨십이 부메랑으로 돌아갈 거다.

프레시안 :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과거사 진상규명을 다루기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 개정안은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프레시안(박정연)

한종선 : 여야가 인권유린 사건과 국가폭력 사건 만큼은 케케묵은 방법으로 풀 게 아니라, 손을 잡고 풀어주셨으면 좋겠다. 이 부분만큼은 서로 깨끗하게 수용해서 피해자를 구제하는데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서 힘을 모아주셨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방금 한 시민이 지나가면서 '아직까지 형제복지원 문제가 해결이 안됐어?' 하고 지나갔다. 시민들이 농성장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길 바라나.

한종선 : 왜 이런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는지, 왜 피해 당사자들이 여기까지 나와서 있는지 알아주시면 좋겠다. 또 침묵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느껴주시면 좋겠다.

최승우 :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일이고 내 이웃의 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최승우 : 존경하는 국회의원님들 제대로 일을 해주시면 더 존경받을 것 같다. 시민의 일을 나의 일처럼 바라봐주고 아직 첫발도 내딛지도 못한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빨리 통과시켜줬으면 좋겠다.

한종선 : 우리는 끝까지 형제복지원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할 것이다. 국회의원들 정신 똑바로 차리시면 좋겠다. 우리는 포기 안 할 테니까.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통과시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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