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보육·장기요양·장애재활 등을 중심으로 국공립사회서비스 제공 시설을 확충"하고,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하여 이를 통해 지자체가 국공립 사회서비스 제공시설 직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시장 중심의 사회서비스 공급구조를 공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시그널이었다.
이에 대해 곧바로 보육, 요양 등 민간시설장들이 반대하고 나섰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공약내용을 반영해 사회서비스공단 추진계획을 발표했고(’17.7.12), 이러한 내용은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고스란히 담겼다(’17.7.15). 계획대로라면, 사회서비스공단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법안 형태로 제출되어 2017년 12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고, 2018년부터는 사회서비스공단이 각 지자체마다 설립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서비스공단이 설립되기는커녕 관련 법안조차 통과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보건복지부는 공단 명칭이 주는 오해(독점적 지위, 시설관리공단과 혼동 등)를 해소할 수 있도록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며, 사회서비스공단이 아닌 ‘사회서비스진흥원’으로 둔갑시켜 검토하다가, 반발에 부딪혀 최근에는 사회서비스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올해 3월부터 각계의 의견수렴과 전문성 등을 취합하는 사회서비스 포럼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사회서비스원의 역할과 운영방안'이라는 개괄적 윤곽을 제시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쳤다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리로 전락했을 뿐더러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에 반대하는 민간공급자들의 활동무대만 제공한 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현재 일자리위원회의 공공일자리 전문위원회에서 사회서비스원 설립방안의 주요쟁점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연말까지 핵심쟁점이 모두 정리될지는 의문이다. 남인순 의원의 대표발의로 2018년 5월 4일 제안되어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사회서비스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도 올해 안에 제정되기 어렵다. 광주시의 경우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뒷받침할 관련 법안조차 통과되지 못한 상황임을 이유로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사회서비스원 선도사업’ 제안을 거절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후퇴는 물론 사회서비스 영역에 대한 공공성 강화 정책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2014년 하반기부터 사회서비스 일자리재단(공단) 설립과 관련한 회의를 진행하여 중앙정부보다 먼저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할 것처럼 보였던 서울시도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서울시는 2016년 연구용역을 통해 사회서비스재단 설립 타당성 검토에 나섰고, 대선 직후 서울시가 나서서 사회서비스공단의 성공모델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2017년 6월에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TF를 구성·운영했다. 이후 2017년 7월부터 14차례에 걸쳐 사회서비스원 설립 연구기획단을 구성 및 운영했고, 서울시 복지본부 내 '사회서비스혁신추진반'이라는 전담 기구도 설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중앙정부 차원의 사회서비스공단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서울시 차원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논의도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직접 당사자인 사회서비스 노동자들과는 소통과 대화도 진행될 리 만무했다. 오히려 인권유린·비리 문제가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 등 국·공립 시설에 대한 직접 운영 요구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 뒤늦게 사회서비스원 설립에 나선 대구시보다 더 늦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에는 사회서비스원의 대상 사업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일자리위원회 공공일자리 전문위원회에서는 보육, 요양 등을 필수사업으로 포함하는 것에 다수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서울시에서는 내년도 시범사업에서 민간공급자들의 저항을 핑계로 보육을 제외하고, 예산 부담을 이유로 다른 사업 또한 축소하고자 한다. 지난 8월 말경에는 박원순 시장과 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의 면담 이후 서울시가 "사회서비스공단(원)에서 보육을 빼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시가 현재 직접채용 노동자와 투자 및 출연기관 노동자는 물론 민간위탁 노동자들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는 생활임금이 사회서비스원의 직접고용 노동자에게는 배제된다는 얘기도 들렸다. 서울시가 향후 민간부문까지 생활임금을 확산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데, 정작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에게는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사회서비스공단(원) 설립 논의가 제기될 때부터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었던 것이 재정적 제약과 민간공급자들의 저항이었다.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공공인프라의 대폭 확충이 필요하고, 이는 예산을 늘리지 않고 실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예산 투입을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의에서 말은 많았지만, 정부의 정책담당자들과 전문가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의견 수렴을 한다면서도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고, 그 와중에 민간공급자들의 주장이 관철되었다.
사회서비스의 질은 바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질이 좌우한다.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이 행정적인 편의를 중심으로 기존 민간공급자들만을 배려하면서 논의가 진행되어서는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된다 하더라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는 서비스 제공자의 고용에 대한 공공화(소속 이전) 이외에도 서비스 내용의 공공화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단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고용만 공공부문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서비스원 설립의 주요 쟁점 가운데 사회서비스원의 의사결정구조, 지배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사회서비스원 운영에 참여하는 문제도 논의된다. 그렇다면 바로 사회서비스공단(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부터 사회서비스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공단(원)을 만드는 운동에 나서야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이 강화될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