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린이집 원장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연 ‘사회서비스공단(원)’이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인터넷 소통방에서는 ‘원장들끼리 전화하거나 원장-주임이 들리지 않게 서로 수군거리면서도 교사들이 지나가면 입을 닫는다’면서 ‘사회서비스공단이 도대체 뭐야?’라는 질문이 돌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사회서비스공단이 왜 원장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있을까? 도대체 어린이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보육하기 위한 근거법인 ‘영유아보육법’은 두 어린 남매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 법이다. 1990년 3월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던 맞벌이 부부가 바깥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일 나간 사이 다섯 살, 세 살 두 남매가 불이 난 방에 갇혀 질식사한 사건이 있었다. 길거리에 방치될 수밖에 없던 아이들을 데려다 보호하던 탁아소 교사들의 요구, 일을 나가면서 아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한 부모들의 요구, 맞벌이 부모들의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법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분들이 모아져 만들어낸 법이다.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영유아 및 가정의 복지 증진’을 위해 처음으로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다른 사회복지서비스가 그렇듯 ‘영유아보육법’에 기초한 어린이집 설치와 운영은 ‘민간 시장’에 내던져졌다. 어린이집을 짓겠다고 하면 0%에 가까운 저금리로 대출해줬다. 교사 대 아동 비율도 없이 되는대로 아이들을 받아 보육하고, 먹을거리나 교육 내용에 특별한 규제도 없어 아이들 머리수 하나하나가 돈이 되는, 일명 장사가 되는 시장이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민간 시장 주도로 성장한 어린이집 산업(?)의 현주소는 국가‧지자체가 직접 설치하고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전국에 단 84개뿐이라는 성적표다. 전국 4만238개 어린이집 중 국가‧지자체가 법인이나 개인 원장에게 위탁해서 운영하는 가짜 국공립어린이집까지 포함해서 단 3157개(7.84%)다. 그나마도 서울 중심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80% 가량의 어린이집은 근무자 수가 5인 미만으로 교사들은 최저수준의 안전망인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그나마 5인 이상 근무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이라도 보육교사 노동권의 사각지대인 것은 마찬가지다. 유형을 망라하고 어린이집에 횡행하는 ‘부당 처우 3종 세트’가 있다. 근로계약서 상에는 있으나 실제로는 없는 ‘가짜 휴게시간’, 공휴일을 연차로 대체하는 ‘연차대체 합의’, 교사가 아무리 시간 외 근무를 하더라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포괄임금제’ 서약이 그것이다. 설사 이런 내용이 근로계약서 상에 없다 하더라도 어린이집에서는 관행적으로 통용되는 노동조건이다.
이런 부당한 상황은 어린이집 교사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부당한 것들을 문제제기했던 내부고발자, 공익제보자 교사들이 원장들의 힘 앞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만해도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아동 학대’를 신고한 교사가 해고되었다거나, 정원보다 아이를 더 받아 운영하는 ‘초과 보육’을 민원 넣었다가 해고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에어컨, 비데, 소파, 책상을 비품으로 구입하고 원장 집에서 쓰던 것과 바꿔치기하는 일, 아이들 급식‧간식 재료를 살 때 원장 개인 집에 가져갈 재료까지 덤으로 얹어 사는 일, 견학활동비 부풀리기, 특별활동 업체나 교재교구 업체와 리베이트 관계라는 일 등은 이미 많은 보도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경쟁 속에서 ‘괜찮은 어린이집’이 더 우세해지고 훨씬 잘 운영될 것이며, 뒤처진 어린이집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며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국가 보육정책의 일관된 논리였다. 하지만 민간 시장에 내맡긴 어린이집을 견인할 것이라고 여겼던 ‘괜찮은’ 국공립어린이집마저도 실제 개인 원장에게 위탁하고, 한 명의 원장이 장기 위탁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개인의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사회서비스공단’이다. 지나치게 민간 시장 주도로 운영되고 있는 영유아 보육서비스 전달 체계에 그나마 한참 늦기는 했지만 공적영역에서 어린이집을 짓고, 운영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민간, 개인 어린이집 원장들의 힘이 너무 막강해진 탓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후퇴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공약이 빈약속이 될 것이라는 원장들의 선전을 보면서 깊은 우려가 든다. 얼마 전 원장 출신 국회의원은 토론회 모두 발언 자리에서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사회서비스공단을 사회서비스진흥원으로, 그리고 사회서비스원으로 그 위상을 축소시켰다’고 위세를 과시했다.
그리고 또 8월 말경에는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에서 ‘사회서비스공단(원)에서 보육을 빼기로 했다’는 공지를 돌리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인가? 원장들이 국가의 보육정책 방향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것인가? 사용자들이 보육정책을 좌지우지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사회서비스공단과 관련한 정보는 교사들에게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저 원장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동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비리를 고발하면 해고되는 현실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 숨죽이고 침묵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장시간 쉼 없는 노동을 하면서도 현장을 지켰던 교사들의 기대는 정말 소박하다. ‘적어도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지켜지는 어린이집’, ‘비리가 없는 투명한 어린이집’, ‘원장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교사, 아이 모두가 주인인 어린이집’이다.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운영하는 단 하나의 어린이집이라도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괜찮은 어린이집, 부모들에게는 믿고 맡길만한 어린이집, 교사들에게는 일할 만한 어린이집이 드디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작고 소박한 희망이 사회서비스공단을 통해서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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