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5년 첫 헌법 수업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 이 말은 나의 법적, 정치적, 신앙적 화두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한 번 이뤄졌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시민이 관심을 놓고 참여를 멈추며 권력을 견제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헌법의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제세력을 보호하는 것임을 명백히 선언하며 규범조화적 헌법해석은 헌법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임을 배웠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혁명을 높이 평가하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연방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대의제와 연방제 중심으로 구성하고, 혁명기의 소중한 보물과 같았던 풀뿌리민주주의 시스템(타운홀미팅과 와드자치공동체)을 헌법적 제도로 공식화하지 않고 배제했던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것이야말로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비극적인 큰 실수라 지적하며 시민이 일상적으로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자치공간'이 빠진 대의제는 결국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로 타락하게 되고, 위기 시에는 전체주의 파시즘에 잡아먹히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는데, 이 우려가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윤석열의 내란으로 이어지고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독재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몰각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주권자인 시민이 깨어 있고, 서로 연대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이제 민주주의는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지역의 문제를 함께 숙의하며, 국가의 미래를 직접 논의하는 직접·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숙의민주주의가 서로를 보완할 때 국민주권은 일상의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첨예한 이해관계 가운데 논의되고 있는 개헌은 정치권이 완성한 문안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일회성 사건이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삶을 담는 사회적 약속이므로, 시민이 의제를 만들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며 헌법적 대안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조정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기후위기, 지역소멸, 불평등, 디지털 전환, 돌봄과 주거 문제 등 새로운 사회적 과제에 헌법이 충분히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국민주권시대를 열어갈 개헌의 방향
헌법은 국가기관의 조직과 권한을 정하는 문서인 동시에 국민의 기본권과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따라서 개헌의 의제와 내용은 정치권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지역공동체, 사회적 약자와 다양한 세대의 참여 속에서 형성되어야 하며 시민참여 개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첫째, 국민참여 개헌절차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 법은 헌법이 정한 개헌 절차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개헌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보완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 시민의견 수렴, 숙의공론, 시민의회 구성, 정보 공개, 소수 의견 기록, 시민제안에 대한 국회의 답변 의무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실제로 국민이 헌법개정 과정에 참여하고 개헌 방향과 내용에 대해 토론·제안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법률안이 발의된 사례가 있다. 또한 최근 발의된 헌법개정 절차 관련 법률안에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시민으로 구성된 국민참여회의를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둘째,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상설화해야 한다. 특위에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헌법학자, 지방자치 전문가, 시민사회, 청년, 장애인, 농어촌 주민, 노동계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
셋째, 개헌이 특정 정치인의 임기 연장이나 특정 정당에 유리한 권력구조 개편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정쟁 방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개헌 논의와 현직 정치인의 임기 문제를 분리하고, 회의와 자료를 공개하며, 기본권과 지방분권 의제를 권력구조 협상의 부수적 의제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지역 연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주민자치회, 지방의회, 시민단체, 협동조합, 교육기관, 청년·여성·장애인 단체 등이 참여해 지역소멸, 기후위기, 환경권, 공공의료, 돌봄, 주거권, 지역 일자리 등을 논의해야 한다.
개헌의 진정한 주인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은 국민투표에서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최종 승인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헌의 의제를 만들고, 지역에서 토론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헌법적 약속을 함께 설계하는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정쟁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정치권의 독점적 개헌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고 지역이 숙의하며 국민이 최종결정하는 시민참여 개헌에 있다.
민주주의 박람회로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2026 대한민국 직접민주주의 박람회’가 오는 10월 16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과 국회 부속시설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박람회는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을 넘어, 국민의&국민에 의한(Of & By the People)의 국민주권 정부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대의민주주의와 직접·숙의민주주의가 상호 보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향을 모색한다.
행사에서는 생산시민민주주의, 마을공화국과 주민자치, AI 시대의 기본사회, 통합돌봄, 기후정의, 청년정치, 자치분권, 사회연대경제 등 20여 개 분과 세션이 진행된다. 오후에는 K-민주주의의 미래를 논의하는 전체 대토론회와 시민·청소년 발언, 문화예술 공연, 국회 잔디광장 참여 행사도 마련될 예정이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박람회를 시민이 민주주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참여하는 공론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AI와 자동화가 사회 전반을 바꾸는 시대에 기본사회와 마을자치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지역과 생활 현장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할 방안을 논의한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시민이 직접 참여할 때 민주주의의 내일이 열린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은 민주주의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혁신이 부족한 탓이다. 두 번의 무혈혁명으로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대한민국이 개헌과 민주주의 박람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2026 대한민국 직접민주주의 박람회'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해 볼 분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하고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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