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북한'을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줄여서 '조선'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지 2년 반이 흘렀다. 이러한 제안을 내놓은 이유는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여긴 데에 있었다.
즉, 호칭을 출발점으로 삼아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흡수통일을 실질적으로 배제하는 조치들을 하나둘씩 취할 때, 남북(한조)관계의 가장 큰 병폐인 적대성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제안은 '선민후관(先民後官)'이었다. 먼저 민간에서 공식 국호 사용을 늘려 국민적인 수용성을 높여야,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사이에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조선'이라고 호칭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도 이 사안을 언급할 정도로 '공론화의 영역'에 진입했다.
정부 내에서 이 논의를 주도해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공식 국호 사용을 제안했고,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용어 하나 표현 하나를 갖고 정쟁 대상이 되는 만큼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선의는 이해하지만, 호칭 변경에 관한 정치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공식 국호 사용한 건 딱 한 번
나는 호칭 문제를 둘러싼 신중론을 존중하면서도 한 단계 논의의 진전을 위해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본다. 먼저 역대 한국과 조선의 합의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사용했고, 국제무대에서도 영문명인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가 통용되어왔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남북 합의문에 공식 국호가 병기되었다는 것이 곧 우리가 조선의 공식 국호를 '사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양측의 서명자가 공식 국호를 사용한 것을 '수용'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공식 국호를 사용해왔다는 주장 역시 검증을 요한다. 일례로 한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연설을 들 수 있다.
한국과 조선의 유엔 동시 가입 이후 한국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공식 국호를 언급한 사례는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이 유일했다. 그 이후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연설에서 '북'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라는 호칭이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며, 굳이 호칭을 바꿔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호칭 문제를 떠나 이미 남북관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진단이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호칭이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 조선 여자축구팀의 기자회견 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은 2023년 7월부터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 '한국'이라고 호칭하면서 한국인이 '북한'이나 '북측'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례로 조선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2023년 9월에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한국과의 8강전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과 2024년 2월 '파리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가 '북측'이나 '북한'이라고 표현하면서 질문하자 공식 국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가장 주목할 사례는 5월 하순 내고향여자축구단 우승 기자회견 자리이다. 기자회견 막바지에 한국의 한 언론사 기자가 "북쪽, 북측"이라고 부르면서 질문하려고 하자, 내고향팀 감독, 통역관, 주장은 연이어 공식 국호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고향팀은 자리를 떴다. 그리고 상당수 언론은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를 재확인한 것이라는 평가를 쏟아냈다.
과연 그럴까? 내고향팀은 여러 기자회견에서 국호를 '무음'을 처리한 질문에 모두 답했다. 이는 "북쪽, 북측"이라고 표현한 기자가 내고향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보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시 선민후관으로
이밖에도 호칭 문제를 둘러싸고 짚어봐야 할 문제들은 많다. 나 역시 '조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공식 국호 사용이 당장 남북대화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국제 스포츠 기자회견 등으로 마련된 접촉의 기회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발판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이러한 사례가 축적되다보면 '북한'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남북대화 재개에 기여할 것이라고도 본다.
또한 정부 차원의 공식 국호 사용이 반발과 정쟁을 낳을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우려에도 동의한다. 다만 이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부터 형성하자'고 제안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든다.
요컨대, 이제부터 호칭 문제를 둘러싼 생산적인 공론화를 본격화할 때이다.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이 논의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장을 하나둘씩 만들어야 한다. 언론사도 검토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북한(조선), 혹은 조선(북한)이라고 병기하는 것도 과도기적 방식일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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