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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생 이준석, 그릇된 시대정신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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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생 이준석, 그릇된 시대정신의 아이콘

[오찬호의 틈새] 최연소 대통령 후보, '한국의 트럼프'가 아니기를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인 이준석 국회의원은 지난 7일 자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한국에서 젠더 갈등을 조장하고 있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막힘없는 영어 구사 모습에 미래의 지도자감이라는 (대단히 한국스러운) 평가가 여기저기에 있는 걸 보니, 의사 표현의 한계가 있진 않았을 거다.

"한국 사회에 젠더 갈등은 10년, 20년 전부터 존재했다. 한국엔 유교적 풍토가 강했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한국 사회도 적응 중이다. 누구는 조금 빠르게, 누구는 조금 느리게 적응한다. 그래서 성 역할과 성 평등 문제에서 격차가 발생한다."

평소와 다르다. 겸손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질문한 사람 바보로 만드는' 냉소적 태도가 사라졌다. 최소한 성평등 주제만큼은 늘 상대를 물어뜯을 정도로 자신만만하지 않았던가. 남녀 갈등을 사회 전체의 과도기 차원에서 보자는 건데, 괴상하다. 적응의 속도 차라면 모두가 같은 지향점을 가졌음에 공감하면서 열띤 토론을 하는 수준일 거다. 그랬는가?

미국에서 교육받아서 앞서 있다니, 그게 망상이다

이준석은 과거 인터뷰에서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졌다고 했다. 동일한 시대정신을 지닌 '우리 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너는 엉터리라는 빈정거림일 뿐이다. 그 빈도가 반복되면 페미니스트는 적이 되고, 강도가 강해지면 적을 향한 린치도 정당화된다. 그래서 이준석 '급'의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돌고 돌아 무례한 폭력으로 사회를 떠돈다. 이미 페미니즘은 사람을 재단하는 도구다. 페미니스트처럼 보인다고 여자 때리는 곳이 한국 아닌가.

그는 교제 살인, 스토킹 범죄가 '여성 죽이지 말라'는 목소리로 확장되는 것을 '페미니즘 선동'이라 했다. 그래 놓고, 빠르고 느린 적응의 문제로 현 상황을 분석하다니 참으로 기만적이다. 갈등의 핵심은 한쪽에서는 차별에 분노하는데 한쪽에서는 그게 왜 차별이냐면서 조롱한다는 거다. 앵커의 질문은 네가 그 장본인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에 "(한국 사회에)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말했는데, 이게 당시 당대표의 과외 없이 가능한 소리였겠는가.

이준석은 한국에서 무슨 성차별 타령이냐는 언급을 여러 번 했다. "(자신처럼) 19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보증 못 한다"는 식으로 단호하게, 거만하게, 오만하게, 그리고 억지로. 종합하면, 마치 트럼프처럼.

비슷한 건 차고 넘친다. 이준석은 계엄 사태 이후 여성들의 집회 참여가 많은 이유를 '치안이 좋아서'라는 어리둥절한 이유로 분석한 사람이다. 정치학, 사회학 강의실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대답이다. 분노가 이번 집회의 연료임이 분명하다면, 윤석열 정부에 '더' 화난 이유가 여성들에게 있을 거라는 전제에서 원인을 살펴야 함이 마땅하다. 만약 해외언론에서 한국인들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과 연결시켜 집회를 보도하면서 '수도권 지하철이 매우 촘촘한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는 저 이야기를 하면서조차 남성들은 군대를 가서 상대적으로 집회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식의 필요 없는 추임새를 끼워 넣는다. 그러한 분석은 군 복무가 지금보다 훨씬 길었던 시절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여성의 분노를 사회구조와 연결시키는 것을 거의 강박 수준에서 거부한 결과일 거다. 이준석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저자가 여성의 안전하지 않은 한국의 보행환경을 지적하자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했을 정도다.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는 이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차별 타령이냐면서 상대를 윽박지른다. 세상이 좋아진 걸 누가 모르는가. 다만, 인간의 신체는 그런 통시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돌려차기를 맞고 기절하는 영상을 보고 어찌 성별 감정이 동일하겠는가. 여성이라면 훨씬 큰 공포를 느낄 건데 이때 "음, 통계적으로는 한국이 매우 안전하니 나도 괜찮을 거다. 내 할머니는 학교도 못 다녔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 감사하면서 살자"면서 무서움을 희석시키는 건 매우 어렵다.

법의 사각지대를 찾는 게 정치다

사회는, '전반적으로는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안전하다. 정치인의 존재 이유일 거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준석은 '여성으로 살기에 불안하다'는 말이 얼마나 꼴불견이었으면, 여성의 집회 참여 이유로 치안 운운하는 걸까. 블룸버그 TV와의 이어진 인터뷰에 답이 있다. 젠더 격차 해소 방법에 대해 그는 역사적 동문서답을 남긴다.

"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이런 이슈에 대해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보다 앞선 견해를 갖고 있다."

미국에서 젠더 논의를 다 꿰뚫고 왔다는 것인가? 아무리 하버드라지만, 학부 전공으론 가능하지 않다. 아마, 페미니즘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을 이유를 미국에서 배웠음을 의미할 거다. 이준석은 대담 형식의 저서 <공정한 경쟁>(2019)에서 교육열 강한 목동에서 같은 학년 700명끼리 치열하게 등수를 다투다가 과학고에 진학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한 걸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 했다. 지금 생각이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의 시점이니 그가 말한 앞선 견해란 결국 능력주의에 기반한 납작한 해석이다.

그의 '남들보다 앞선' 견해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대 강의를 약장수 수업이라고 폄하할 때도 잘 드러났다. 진중권 교수와 할당제 문제로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하다가 나온 말인데, 진 교수가 센델 책이라도 읽어보라는 식으로 말하자 이준석은 '저희 학년에서는 약 파는 수업이라고 해서 안 들었다'면서 저리 말했다.

그 시선, 그러니까 인문학 계열이 아닌 학부생들이 철학을 깔보는 풍토는 미국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어디를 가도 존재한다. 철학은, 인문학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은 언제 어디서나 '세상이 좋아지기 위해 무슨 고민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약을 팔았다. 과거에는 이를 시장에서 안 팔릴 약이라면서 걱정은 했어도 비꼬진 않았다. 하지만 취업률로 학문을 구조조정하는 시대가 되더니, 어떤 공부를 '경쟁력 없으니 도태되어도 마땅한' 쓸모없는 것으로 깔보는 풍토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등장했다. 그때가, 역대 최연소 대통령을 꿈꾸는 이준석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하던 시기다.

그는 제도적 차별 너머의 차별을 보지 않는다. 역사의 유산이 어떻게 사람들의 관성이 되어 문화적 습관으로 이어지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붙들고 망상에 빠지지 말라면서 사람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본인 편견이 크니, 보이는 것도 외면한다. 사회적 편견이 노동시장에서 실제 성별 임금 격차로 이어짐을 200년 치의 데이터로 분석한 클라우디아 골딘은 '유리천장'이 실제로 매우 선명했음을 밝힌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2023년). 게다가 골딘은 '고학력자 여성'조차 이 강철천장을 쉽게 뚫지 못함을 증명했다. 과연, 공부를 '더' 하지 못한 본인 문제였을까?

헌법은 물론이고 노동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통해 한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은 이중, 삼중으로 금지되어 있다. 정치인은 이 '좋은' 법의 '나쁜' 사각지대를 찾고 어떻게 메워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법대로 돌아가면, 애초에 정치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이런저런 문화적 관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순간마다, '어쨌든 법은 공정하잖아!'라고 우기는 건 그가 좋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참으로 '반문명적' 발상일 거다. '최연소' 대통령 후보와는 무관한 이준석 개인의 특징이었으면 한다. 아니라면, 정말 그가 트럼프처럼 '그릇된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것이니 너무 슬프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예비후보가 9일 대구 중구 반월당사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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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민낯들>(2022),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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