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복수의 외신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지원 없이 우크라이나가 올해 중반까지만 버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물 협정이 상황을 풀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일(이하 현지시간) 미 CNN 방송,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백악관 당국자가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 우리 파트너들도 이러한 목표에 헌신해야 한다"며 "해결책에 대한 기여를 확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다른 당국자가 미국 지원 중단은 아직 우크라이나에 도착하지 않은 모든 군사 장비에 적용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나쁜 행동'으로 간주하는 지난주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중단은 일단 '일시' 조치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에 대해 한 고위 행정부 당국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고 판단할 때까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모든 군사 지원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날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날 <AP> 통신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합의는 여전히 매우, 매우 멀다"고 말한 데 분노하며 "이는 젤렌스키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발언"으로 "미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 남자(젤렌스키 대통령)는 미국의 지원이 있는 한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지원 중단 필요성을 시사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2일 유럽이 밝힌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개요에 대해 논평해 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제 "첫 단계"를 밟아 구체적 내용을 말하긴 이르다는 답변 중 나온 것이다.
앞서 지난달 28일 미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미 부통령이 "무례하다", "감사를 표하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격하며 회동 분위기가 격앙됐고 이후 예정됐던 광물 협정 체결 및 공동 기자회견이 취소되기도 했다.
CNN은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고위 보좌진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지원 중단 결정은 3일에 내려졌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 고위 행정부 당국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국가 안보 고문들이 우크라이나 지원 일시 중단에 동의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우리가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해 "시위"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원 중단이 현재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채 미국과 러시아가 틀을 짜고 있는 우크라전 종전 협상 테이블에 우크라이나를 앉히기 위한 압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군사 지원 중단으로 러시아가 협상을 서두를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AP> 통신은 국가정보위원회(NIC)에서 러시아·유라시아 담당 정보관을 지낸 앤절라 스텐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에 골이 있는 상황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스텐트 연구원은 "그(푸틴 대통령)는 전쟁을 끝내는 데 관심이 없다"며 "그는 러시아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방이 더 분열될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지원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추가 영토를 획득하는 게 용이해지고 이 또한 푸틴 대통령이 빠르게 종전 협상에 나설 유인을 줄인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 지원 중단의 "가장 큰 직접적 수혜자는 푸틴 대통령"이라고 짚었다.
지원 중단으로 당장 조 바이든 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12억5000만 달러(약 1조8245억 원) 규모 무기 및 장비 지원 중 아직 이전되지 않은 물량이 동결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신문은 해당 지원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물량만 현재까지 우크라이나로 이전됐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현직 서방 관리들이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군사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올해 중반까진 버틸 수 있는 무기를 비축한 상태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다만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크 캔시언 선임고문이 "우크라이나가 내일이나 다음 주에 항복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점진적으로 군사 역량을 잃을 것이고 어느 순간 패배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두 정상 관계 악화의 도화선이 됐던 광물 협정 체결이 지원 중단을 되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3일 광물 협정이 무산됐냐고 묻는 취재진에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협정이 "우리에게 좋은 거래"라고 칭해 여전히 협정 체결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AP>는 키이우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 우크라이나프리즘외교정책협회 분석가 올렉산드르 크라이예우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적 이익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기 때문에" 두 정상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고위 행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광물 협정에 서명하는 것만으로 트럼프 정부가 무기 배송을 재개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재진에 광물 협정 재개를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더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AP>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겐 백악관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지원 중단으로 유럽은 더 큰 압박을 받게 됐다. 미국이 러시아를 고립시켜 온 동맹들의 단합에서 이탈한 데다 유럽 중심의 우크라이나 안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유럽은 이미 부담을 늘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전후 우크라이나 평화지원군 파병 의지를 표명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2일 유럽 정상회의 뒤 영국, 프랑스, 우크라이나 등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제시할 우크라이나 종전 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종전 협정을 지키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의지의 연합"을 발전시키기로 했으며 영국이 지상군, 항공기 등을 동원해 이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럽이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경우 유럽이 이를 메우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약 1200억 달러(175조1200억 원)를 지원했고 유럽은 1390억 달러(202조8705억 원)를 지원했다. <AP>는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군사 전문가 벤 배리가 미국이 지원을 철회할 경우 "유럽에 대규모 비용이 초래될 것"이라며 유럽에 "그렇게 할 정치적 결단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지난해까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맡았던 드미트로 쿨레바는 3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제 유럽의 전쟁이다"라며 유럽이 더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의 원천은 결국 "무기와 돈"이라며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체 광물 협정을 제공하고 동결 러시아 자산을 이용한 무기 생산과 구매 길을 연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손에서 패를 빼앗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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