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은 이제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겨레의 염원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일 오전 전남 목포의 한 호텔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더 고도화되고 한반도 평화의 길이 더 험난해진 것도 사실"이라며 "비핵화의 해법을 새롭게 강구하고 평화 프로세스도 다시 설계해야 할지 모른다"면서도 이같이 전제했다.
문 전 대통령의 언급은, 그의 집권시 1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던 임종석 전 실장이 전날 "통일, 하지 맙시다. 그냥 따로 함께 살면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라며 "비현실적인 통일 논의는 이제 그만 접어두자",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고 도발적 주장을 한 이후 나와 눈길을 끌었다. (☞관련 기사 : 임종석 "통일, 하지 말자")
문 전 대통령은 전날 행사에서는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도 새롭게 설계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나선데 따라 기존의 평화 담론과 통일담론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고 말해 임 전 실장의 주장과 유사한 인식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날 연설에서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겨레의 염원"이라는 표현으로 기존과 마찬가지로 통일을 지향한다는 관점을 유지했다.
문 전 대통령은 특히 이날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파탄 난 현실을 보며, 남북관계의 미래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있는 법"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2017년 독일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4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이산가족 상봉 재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 중단,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이 그것"이라며 "그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과 북미 간의 험악한 말폭탄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고, 전쟁의 먹구름이 가득했다. 모두가 미래를 비관하고 있을 때, 나는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가졌고, 기회를 기다리며 평화프로세스를 착실히 준비하고 실천한 결과 많은 사람이 몽상처럼 여겼던 4대 실천방안을 1년 안에 모두 실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이 언급한 이른바 2017년 '베를린 선언'에는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는 대목이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날 임 전 실장이 했던 '통일하지 말자'는 연설에 담긴 관점이 '베를린 선언'에 나타난 인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문 전 대통령은 한편 이날 연설에서 '통일 독트린', '힘에 의한 평화' 등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보였다.
그는 "6년 전 나는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함께 역사적인 평양공동선언을 했다. 더이상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었고, (그) 첫 단계 실천방안으로 9.19 군사합의를 체결했다"며 "그러나 현 정부 들어 9.19 군사합의는 파기되었고,한반도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한은 이제 오물풍선과 대북 확성기 방송같은 비군사적 형태의 충돌을 시작했다"며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군사적 충돌로 번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의 대응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힘에 의한 평화'만을 외치며 대화를 포기하고, '자유의 북진'을 주장하며 사실상 흡수통일 의지를 피력함으로써 북한과의 신뢰 구축과 대화를 위해 흡수통일 의지가 없음을 거듭 표명해왔던 역대 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햔국이 미국·일본과 더 밀착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구도가 한층 강화되고, 대한민국이 첨예한 대결구도의 최전선에 서면서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신냉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신냉전구도 강화에 앞장서거나 편승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도가 새롭게 강화되고 있다"며 "신냉전구도는 한반도 평화와 우리 국익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 명백하다. (이는)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의 길을 막고, 한반도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에게 평화보다 절실한 과제는 없다"며 "북한과 대화하고자 했던 역대 정부의 노력들은 그 하나하나가 평화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2018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모두 적대와 위기의 세월을 뛰어넘으며 이어져 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미국의 대선 이후 새정부가 출범하면 북미대화 재개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때 우리가 과거처럼 이른바 '패싱'을 당하고 소외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하자면서 북한의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을 말한다면 대화가 될 리 없다"고 재차 윤석열 정부의 대북 인식을 간접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다시 핵에 매달리고 대결을 외치며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며 국제사회 고립을 더욱 깊게 만들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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