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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에 새겨진 약속은 아직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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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에 새겨진 약속은 아직 유효한가?

[기고] 이재명 정부의 노동시간제 개악 논의는 철회되어야 한다

1.

대통령의 개혁 추진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여러 엇갈리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소한 노동 영역에 있어서만은 그의 확고부동한 진정성을 믿어왔다.

그가 윤석열에게 패배한 2022년 대선을 약 3개월 앞둔 때였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을 거둔 김용균 씨의 3주기 추모사진전을 찾았다. 고인의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수원 건설현장 추락사 노동자 김태규 씨의 누나를 만났다. 이때 김태규 씨 누나가 후보의 앞에서 울먹이며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제발 사람 살릴 수 있는 법으로 만들도록 꼭 함께 해주세요. 약속해주세요."

이재명 후보는 그녀의 손을 마주잡으며 이런 답을 했다 "그럼요. 제 몸에 박혀 있지 않습니까."

가혹한 소년공 노동 시절 프레스기에 낀 자기 왼쪽 팔의 영구장애를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혹은 독성 화공약품에 노출되어 영원히 마비된 한쪽 후각 기능을 뜻하는 것이었으리라.그때 나는 그의 말이 노동 현장에서 자식과 어미 아비를 잃거나 다친 이 땅의 모든 가족에게 하는 참된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소년공 출신의 일생의 맹세로 들린 것이다.

2.

2026년 8월 6일 관훈토론회 현장.그러나 이재명 정부 산업통상부 장관 김정관은, 정부가 준비 중인 ‘메가특구 특별법’의 노동시간 특례를 겨냥하여 이렇게 말했다. <주 52시간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현행 52시간 노동제의 틀을 바꿔 법적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공개적 주장을 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해당 이슈가 이른바 메가 특구의 반도체 R&D 노동자를 넘어 연구개발·스타트업 등 첨단산업 전반의 문제로 확대될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들의 의지를 제도가 강제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을 듣자마자 내 마음 속에서 어떤 데자뷰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재명이 패배한 바로 그 대선 과정 중에 누군가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윤석열이었다.후일 내란 주범으로 1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2021년 7월 매일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산업의 예를 들어 주 52시간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이와 함께 노동시간 기준 확대를 강변한다.

당시 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그리고 이렇게 주장했다."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노동시간 제한을 개인의 자발성과 산업경쟁력을 해치는 장치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김 장관의 주장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전제할 것은, 아직 주 52시간 노동제 사안이 정부 안에서 최종 확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보고한 <메가특구 노동분야 검토안>에 따르면 연구개발 인력 등의 주 52시간 상한 완화 방안이 포함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이 시도를 노동 기본권 및 노동자 건강권을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개악이라고 지적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해당 사안이 정부·여당과 노동계 사이에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메가특구 특별법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추진하는 주무 부처의 장관이 공개 토론회 자리에서 밝힌 입장을, 일개 각료 개인의 사견으로 축소해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노동부의 국회 보고안에까지 구체적 노동시간 규제 완화 방안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IMF 구제금융사태를 온몸으로 극복한 김대중 정부 이래 국가 주도의 초대규모 산업정책이 드물었던 게 사실이다. 그 점에서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이른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경제적, 지역분권적 가치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 석상에서 관련 기업 회장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일 정도로, 대통령이 이 프로젝트를 국가적 승부수로 생각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하지만 아무리 이 사안이 중요하다 해도, 노동현장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역사상 최초의 정부라면 넘어서는 안 될 마지노선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목숨과 관련된 과도노동 문제가 그것이다.

4.

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주당 55시간 이상 노동을 장시간 노동(long working hours)으로 규정한다. 양대 기구가 194개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공동연구에 따르면 ( Environment International, 2021), 2016년 한 해에만 주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기인한 뇌졸중과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약 74만5천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보다 구체적으로 해당 장시간 노동자 집단은 주 35~40시간 일한 집단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35%, 그리고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 위험이 17%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 문제가 사회적, 국가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이와 같이 '노동하는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결정적 변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산업환경 역사와 사회구조가 다른 유럽 각국과 우리를 수평비교를 할 수는 없겠다.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2026년 현재 프랑스의 법적 노동시간은 35시간이고 원칙적인 주간 최대 노동시간은 48시간이다. 스웨덴의 경우도 총 근로시간에 있어 (4개월 기준으로) 평균 주 48시간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심지어 자본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장시간 노동이 생산성 증가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수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충분한 휴식과 여유가 생산성과 건강을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김정관 장관이 직격하여 예로 든 반도체와 AI 연구 같은 이른바 <창조적 노동>에서 이른바 '워라밸'은 핵심적 긍정 요인으로 작용함을 기억해야 한다.반도체와 AI 관련 수출의 덕이 크겠다. 환율 여건에 따라 2026년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추산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명실공히 확고한 선진경제 국가인 것이다.

지난 수백년 간 세계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축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이 조건의 쟁취야말로 인간으로서 기초적 삶의 질과 가장 밀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인간의 시간을 인간에게 돌려주는 역사였다.

더구나 직접 참혹한 산업재해를 경험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아닌가. 그의 몸에 새겨진 그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면, 김정관 장관의 주 52시간제 개편 주장은 철회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노동부·중기부·공정위 등에 대한 부처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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