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개원식도 열지 못할 정도로 격화된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여야가 16일 국회 곳곳에서 전방위적으로 충돌했다. 이날 국회는 7개 상임위원회와 1개 특위 전체회의를 열었고, 여야 원내대표 회동도 열렸다. 그러나 여야가 맞닿은 거의 모든 접촉면에서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법사위, '탄핵 청문회' 증인채택 2차전…또 야당 단독 의결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개의 직후 여당 간사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원구성을 놓고 벌였던 대립이 국민의힘의 국회 복귀로 마무리된 지 22일 만이었다. 하지만 간사로 선임된 유상범 의원의 인사말 순서에서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법사위가 소집된 것은 오는 26일로 예정된 이른바 '탄핵 청원 청문회' 증인 추가 채택을 위해서였기 때문.
앞서 민주당은 국회 청원에 접수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발의' 청원을 19일·26일 청문회를 통해 심사하겠다며 청문회 실시의 건과 증인채택의 건 등을 지난 9일 일방 처리했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과 장모, 신원식 국방부장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최재영 목사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민주당은 이에 더해 이날에는 대통령실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강의구 부속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 3명과 이원석 검찰총장, 송창진 공수처 차장 직무대행, 이동혁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장 등 6명 증인으로 추가 채택하자며 법사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유 간사는 간사 선임 인사말에서부터 "법률안 개정과 관련된 청원은 법사위에서 심사할 수 있으나 탄핵소추안 발의 관련 부분은 법사위에서 심사할 권한이 없다. 법사위에서 심사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국회의원 과반의 발의에 의해서 본회의에서 국회 법사위에 회부하기로 결의한 경우"라며 대통령 탄핵 청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고 당연히 청문회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송석준·곽규택·주진우 의원 등 다른 여당 의원들도 같은 취지로 청문회의 부적절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우리는 지금 탄핵심판을 하는 게 아니라 청원심사를 하는 것", "국회사무처에서 청원 불성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사위에 회부한 것이고 제가 회부한 게 아니다. 따지려면 국회사무처에 가서 따지라", "자동접수가 된 것이니 자동접수된 기계를 탓하라", "소용없는 토론은 자제하라", "이미 청원으로 성립했다. 이 자체를 인정 못 하겠다면 토론에 참여하면 안 되고 퇴장하셔야 된다"고 여당 의원들 발언을 일일이 반박하면서 결국 토론 종결 및 표결을 강행했고, 여당 의원들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과방위, 이진숙 청문일정 놓고 충돌…'이틀간 장관 청문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을 놓고 여야 간 충돌이 빚어졌다. 민주당은 24~25일 이틀간 인사청문회를 하자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장관 청문회를 이틀간 한 전례가 없다", "24일까지가 청문 기간인데 25일까지 하자는 것은 고의 지연"이라며 "무한정 쓰러질 때까지 진흙 던지기를 하는 것"(최형두 간사)이라고 맞섰다.
최 의원은 "증인 숫자를 조절하든지 해서 하루 내에 끝내야 한다"며 "더구나 이 청문회는 지난번 적반하장식 (김홍일 전 위원장) 탄핵으로 생긴 공석을 채우기 위한 것 아니냐. 그래서 24시간 내로 줄이자는 게 저희 당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의 주장과는 달리, 장관 인사청문회를 이틀에 걸쳐 한 전례가 없지는 않다. 2019년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결과적으론 하루 동안 열렸지만, 야당(당시 자유한국당)의 '연기' 주장 이전 여야 간 합의된 안은 이틀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 노무현 정부 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의 인사청문회는 실제로 이틀간 열렸다. 통상 국무총리, 대법원장 청문회는 이틀간, 장관급은 하루에 걸쳐 진행되는데 이들의 경우가 이례적인 일이기는 했다.
반면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이진숙 후자는 방송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통과의례식으로 하루 만에 끝내자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이정헌), "검증할 내용이 적으면 빨리 끝나고 많으면 오래 걸리는 것이다. 검증할 내용이 너무 많은 후보자를 낸 대통령실 탓"(이해민)이라며 '이틀' 안을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토론 종결을 선언하고 야당이 주장하는 '이틀 청문회'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3대 반대 6으로 가결시켰다.
행안위에선 '이재명 표 25만원 지원法' 공청회…환노위 소위 '노란봉투법' 통과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날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대표 브랜드 정책인 '25만원 민생지원금' 법안(2024년 민생위기극복 특별조치법)에 대한 입법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출석한 임지봉 서강대 교수와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이 법안을 '처분적 법률'로 볼 수 있는지, 이 법안이 행정부의 예산편성 권한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각각 다른 의견을 냈다. 임 교수는 이 법안은 처분적 법률로 볼 수 있으나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면 위헌으로 볼 수 없으며 예산 부분은 하위법령에 위임한 만큼 행정부에 대한 권한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요지로 진술했다. 반면 장 교수는 이 법안을 처분적 법률로 볼 수는 없으나 예산 부분에 있어서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정도, 예컨대 추경예산 편성이 필요한 정도가 된다면 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며 이런 협의가 없었을 경우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돼 위헌으로 볼 수 있다고 진술했다.
여당 의원들은 "조삼모사다. 물가가 올라 오히려 소비 위축이 불보듯 뻔하다"(배준영), "보편적 지원금은 소비 진작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에 공감한다"(이달희) 등 반대 입장을 개진했고, 야당에서는 반대로 "국민들 언 발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물을 부어서 어떻게든 민생을 다독여야 한다"(이상식), "현실 경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눈앞의 고통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 긴급한 조치라도 해야 한다"(한병도)라며 찬성 논리를 폈다.
국민의힘 행안위 간사인 조은희 의원은 이날 오전 당 원내대책회의에서부터 "야당이 끝까지 힘으로 이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진행할 것",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며 강력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조 의원은 "(이 법안은) 헌법상 삼권분립을 무력화하는 위헌법률이자 미래세대에 어마어마한 빚 폭탄을 전가하는 포퓰리즘"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편 이날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는 '노란봉투법' 처리가 야당 단독으로 이뤄졌다. 여당 의원들은 일방적 진행이라며 반발, 표결에 불참했다. 다만 여당이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신청하면서 고용노동소위 직후 열린 환노위 전체회의 통과는 불발됐다. 하지만 안건조정위 역시 민주당 3인, 국민의힘 2인, 진보당 1인으로 구성돼 다소간 시간을 버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밖에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날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열었고(☞관련 기사 보기), 보건복지위는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으로부터(☞관련 기사 보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협 등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유일하게 대법관 인사청문특위만 여야 간 별다른 이견 없이 안건을 처리했다. 이에 따라 노경필·박영재·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각각 22일·24일·25일에 열리게 된다.
양당 원내대표 회동도 '빈손'…'18일 본회의' 일정 미정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도 평행선만 달렸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 회동 모두발언에서도 이례적으로 "한 쪽이 계속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애초부터 협상이나 대화는 어렵다. 대화나 타협도 일을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며 "(국민의힘이) 국회에 돌아온 게 일하려고 한 게 아니고 일을 못 하게 방해하기 위해 돌아온 것 아닌가"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박 원내대표는 특히 "집권 여당인데 민생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회의를 방해하고, 개원식에 대통령 오지 마시라 요청해서 무산시키더니 의사일정 협의도 보이콧하고 있다"며 "게다가 요즘은 전당대회를 하면서 막장 드라마 뺨치는 진흙탕 싸움에 여념이 없다. 이게 제대로 된 집권여당의 모습인지 국민들 보기에 민망하다"고 추경호 원내대표 면전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관련 비난 발언까지 했다.
발끈한 추 원내대표는 "이런 회동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며 "특히 유감스러운 것은 양당 원내대표가 의장님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남의 당 전당대회에 관해 거친 언사를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냐, 서로 지켜야 할 금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 난맥상에 대해 "원인제공자가 누군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시라"며 "다수 의석 힘만 믿고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으로 운영하는 게 현재 상임위 모습 아니냐"고 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회동 후 브리핑에서 "민주당에서는 18일, 25일 본회의 개최를 희망했고 국민의힘은 아직 상정할 안건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일정에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이렇게 마무리됐다. 앞으로 계속 대화를 위해 매주 월요일 국회의장 주재 원내대표 회동을 정기적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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