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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못 먹고, 의사도 없고, 피의자는 빼돌리고…요지경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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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못 먹고, 의사도 없고, 피의자는 빼돌리고…요지경 대한민국

[정희준의 어퍼컷] 21세기 '도바리', 국가권력의 개입인가

"차일 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1974년 발표된 이성교 시인의 <가을운동회> 시구 일부다. 50년 전이다. 총 수출액이 연 44억 달러였고 1인당 소득은 563달러였다. '개발도상국'에 끼지도 못하던 시절이다. 경제력이 아프리카와 비슷했고 필리핀, 태국보다 못 살았다. 그런 시절에도 명절이나 운동회 때면 과일이 쏟아졌고 동네 골목길엔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가 사과를 못 먹다니...

지금은 어떠한가. 작년 연 수출 6322억 달러, 1인당 GDP 3만3000달러로 '10대 경제대국'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과일을 못 먹고 있다. 사과값은 전년 대비 71%, 귤은 78%, 배는 61% 폭등이다. 사과 도매가격은 무려 123% 치솟았다. 1991년 이후 32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사과 한 개에 1만 원이란다. 나 역시 사과 먹어본 지 오래다.

과일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채소는 12% 상승했고, 어느 라면은 2022년 이후 4차례나 가격이 인상됐다. 그래서 성장기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 식비, 간식비에 공포감을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요즘 많은 젊은 부모들이 유튜브를 열독하며 빵, 돈가스, 잼 등 가공식품을 직접 만들어 먹기에 나섰다. 그런데 재료값이 또 비싸다. 그게 그거다.

어쩌겠나. '온 국민의 짠돌이·짠순이화'다. 외식을 줄인다. 동네 수퍼에서 하루치 식자재만 산다. 주기적으로 '냉장고 비우기'를 한다. 식자재 싸게 파는 앱을 설치한다. 이것만으론 안 되지. 한겨울에도 보일러는 잠자는 방만 튼다. 젊은이들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쓴다. 중고를 사고 물물교환을 한다. 카드는 집에 두고 현금만 쓴다. 하루 1만 원이다. 당연히 편의점 점심이다. 다이어트라고 최면을 건다.

아픈데 의사가 없네

해방이 언제던가, 먹거리 걱정까지 하며 무엇엔가 홀린 듯 사는 이 시대, 병원에 가니 의사가 없다. 의대 교수들도 제자들 지키겠다고 환자들을 버린단다. 생후 9개월 된 딸이! 6개월 넘게 수술을 기다렸는데! 의료계 파업이라고 취소됐다. 그저, 언제든, 예약 다시 잡아, 기다리겠다는 엄마의 말에 "기다려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알아서 하시고요, 저는 가야 됩니다"하고 갔단다. 애타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등을 돌리는 저 담대한 의사들. 그리고 이들과 '타협은 없다'며 행정절차에 들어간 정부. 국민들은 어째야 하나.

범죄 피의자 빼돌리는 윤석열 대통령(실)

이 기괴한 시대를 살아가는 와중에 희한한 뉴스가 들린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고 관련하여 대통령실 외압이 있었다는 풍문이 도는 가운데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급작스럽게 호주대사로 임명되더니 도망(?) 출국을 했단다. 그래서 '런종섭,' '도주대사' 칭호까지 받았다.

유력한 범죄 피의자 빼돌리기다. 얼마나 급했으면 이미 출국금지된 인사를 법무부가 급작스레 출국금지를 해제하고, 외무부는 신임 대사와 그 배우자에게 필수적인 교육도 생략한 채 내보냈다. 그런데 또 대통령실은 대사의 '자격증'인 신임장 수여도 하지 않고 급한대로 신임장 사본(복사본?)을 줘서 내보냈다 한다. 피의자 신분의 인사가 호주대사로 나가게 되자 호주에서도 난리가 났나보다.

21세기 '도바리', 국가권력의 개입인가

과거 범죄자나 운동권 학생들이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을 '도바리'라 불렀다. 전직 장관 이종섭이 수사를 피해 도망갔다. 그런데 이 사태는 국방부, 법무부, 외무부, 그리고 대통령실 등 국가 권력기관들이 개입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피의자의 단순 도바리가 아니다. 사고 친 조직원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흔한 말로 조폭의 수법 아닌가?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이종섭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아닌가. 아, 그럼 조폭인가?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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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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