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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빌린 탓? 빌려준 탓? 가계부채 증가로 이익 얻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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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빌린 탓? 빌려준 탓? 가계부채 증가로 이익 얻는 자 누구인가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는 금융 시스템

많이 빌린 탓인가? 많이 빌려준 탓인가?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를 경고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국제통화기금(IMF)마저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 문제를 얘기하는 판이다. 지난달에 열린 2023년 한국–국제통화기금 연례협의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국제통화기금의 대표단장은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라면서 부채 증가율을 둔화시키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모기지 대출(주택담보대출) 증가를 부를 수 있는 불필요한 정책의 규제들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나라에 주택담보대출을 줄일 것을 조언한 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목소리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절대적인 수준, 증가율, 소득에 대한 비율은 과도한 편이고 국제적으로 비교를 해보더라도 매우 큰 편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1년 말에 76.5% 수준이었는데, 2021년에는 103.6%로 늘어난다. 이는 2021년 기준 선진국 평균 7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선진국의 경우 2011년 76.4%에서 소폭이나마 감소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여년 사이에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가를 알 수 있다. 지난해에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세는 지속하는 모습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부채 데이터베이스>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의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8.1%로 늘어났다. 조사대상국 가운데 증가율도 우리나라가 가장 높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탓인지 한국은행도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8월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가계부채 연착륙이 자기가 한국은행 총재가 된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먼저 가계부채 증가 원인이 많이 빌려주기 때문인지 많이 빌리기 때문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창용 총재는 앞서 언급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현재 부동산 관련 대출이 늘어나는 이유를 사람들이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는 점과, 집값이 바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이자가 과거 1~2%대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으므로 이자 감당 여력이 있는지를 고려해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창용 총재는 명백하게 사람들이 돈을 많이 빌려가기 때문에 대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러한 설명은 금융 교과서나 언론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고 따라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예컨대 주류 교과서에서는 가계대출의 증가 원인을 생애주기 가설에 이론적 기초를 두고 설명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개인들은 항상소득(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가치)을 바탕으로 현재소비를 결정하는데, 소득수준이 낮은 생애주기 초반에는 항상소득 수준에 맞추어 소득보다 높게 소비수준을 유지하려 한다. 곧, 가계부채는 생애 주기에 걸친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선택의 결과 생긴다는 것이다.

<빚으로 지은 집>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미안&수피(Atif Mian&Amir Sufi)는 신용과 주택시장 거품 사이의 인과관계를 조사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신용이 먼저 늘어난 다음 주택시장 거품이 생겼는가, 아니면 대출과 관계없이 주택시장 거품이 먼저 생긴 다음 대출 증가가 나타났는가를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전자를 부채 중심적 시각, 후자를 야수적 충동(동물적인 감각)에 기반을 둔 시각으로 정의했다. 만약 야수적 충동에 기반을 둔 시각이 맞다면 주택시장의 거품 생성과 붕괴는 부채가 전혀 없더라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닭이 먼저나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비슷한 풀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 미안&수피는 광범위한 조사를 했고 그 결과 거품 때문에 대출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대출 증가 때문에 거품이 생겼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안&수피의 결론이 함의하는 바는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데에서 차입자들의 동물적인 감각에 따른 행동보다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출 욕구가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교과서가 설명하는 내용이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결론이다. 일반적인 설명은 차입자들이 돈을 빌리려고 하고 거기에 금융기관들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출이 증가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안&수피의 결론은 대출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출이 증가하는 원인은 역사적인 시기에 따라, 나라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때는 많이 빌리기 때문에, 다른 때는 많이 빌려주기 때문에 대출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이 많이 빌린 탓인가 아니면 많이 빌려준 탓인가를 판정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계부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서나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서 그러한 판정이 역할을 한다. 이것은 나중에 가계부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를 가를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만약 빌린 쪽의 탓이 크다면 가계부채에 따른 책임도 빌린 쪽에 지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거꾸로 빌려준 쪽의 탓이 크다면 거기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어느 쪽의 책임이 큰가를 명쾌하게 가르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한 나라만의 현상인가 세계적인 현상의 일부인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에 대해 그것을 한 나라 안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지 아니면 세계적인 현상의 일부로 볼지의 측면에서도 구분할 수 있다. 일국적인 시각의 특징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한 나라 안의 소득 분배율의 변화로 설명한다는 데에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노동소득에 대한 분배율이 하락하면서 소비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이러한 수요 부족을 빚을 내서 메우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는 1980년대부터 가계부채가 증가한 배경에 실질 임금 상승이 정체하면서 총수요가 줄어든 사정이 놓여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은 진보진영 안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임금주도성장론의 적극적인 옹호자인 스톡해머(Stockhammer E.)는 소득 불평등이 가계부채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정책(자본에 우호적인 분배정책)과 주주가치 중심의 경영이 노동시장 유연화(비정규직과 임시직·파견직의 증가)를 통하여 임금 몫의 상대적인 축소와 이윤 몫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소득 불평등의 확대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소득 최상위 계층은 리스크가 큰 청구권 자산(금융자산, 토지) 투기를 증대시킬 수 있었던 반면 하위 계층은 부채로 소비를 충당해야 했다. 부채주도 성장 전략이 나타난 것은 이 때문이라고 스톡해머는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가계부채 해결 대안으로 불평등 축소를 목표로 한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 전략을 제시한다. 이 전략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전략의 원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조절학파 경제학자인 아글리에타(Aglieta M.)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그도 1980년대 이후의 임금 소득 정체에서 가계부채의 증가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생산성이 증가했음에도 그에 비례해서 임금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계의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럼에도 소비는 늘어났는데, 가계는 저축을 줄이고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가계부채가 증가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일찍이 미국의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그룹'은 자본주의 독점화 경향과 그에 따른 정체 테제라는 맥락에서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들은 경제가 성숙할수록 한 사회의 잉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기회는 오히려 점점 줄어들어 자본주의가 정체로 나아가는 일반적인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향은 미래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같은 정체를 표현하는 지표의 하나가 가계부채 증가를 내포한 금융화(Financialization)라는 것이다. 이들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투자의 부족을 강조한다는 점이 특징적인데, 일국적인 틀 속에서 이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위의 설명들과 공통점을 갖는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임금 분배율의 하락에서 찾는 시각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또 그것이 제시하는 정책 대안이 임금 분배율의 상승이라는 점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이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시각이 들어맞으려면 무엇보다 가계부채를 짊어진 사람들이 주로 소득이 낮은 계층에 속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례에 한정할 경우 관련 자료들은 가계부채를 저소득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계부채 증가를 세계시장 현상의 일부로 보는 시각은 그것을 달러 체제라는 맥락에서 설명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달러의 종말>을 쓴 던컨(Duncan R.)은 그러한 시각을 대표한다. 그에 따르면 금융의 성장은 미국의 이해와 들어맞고 또한 주변 나라들의 금융자산가 세력들의 이해와도 어긋나지도 않는다. 미국과 주변 나라들에서 부채가 증가하는 이유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달러를 발행하여 메웠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과잉 달러 현상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달러들이 여러 나라의 금융시스템이 유입되어 신용을 팽창시켰다. 그러고 여러 나라의 금융시스템은 그러한 달러 유통 시스템에 맞춰 변화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그러한 과정은 금융 구조조정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세계경제의 주변(특히 동아시아) 구조를 주로 연구한 웨이드(Wade Robert)는 퍼거슨&슐라릭(Niall Ferguson&Moritz Schularick)이 '차이메리카(Chimerica)'(차이나와 아메리카의 합성어)라 부른 글로벌 불균형이 가계부채 증대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무역 흑자국(중국, 아시아 신흥 공업국, 일본, 독일 그리고 산유국)에서 무역 적자국인 미국으로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된 결과 미국 은행에는 예금이 쌓이고 이는 낮은 이자율의 구조화 현상으로 나타났다. 자본유입 때문에 생긴 신용팽창과 낮은 이자율은 대출 레버리지 상승의 촉매제가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주택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가 증가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앞서서 가계부채 증가 이유를 많이 빌린 탓인가, 많이 빌려준 탓인가를 구별했는데, 전자는 일국적인 시각과 친화성을 갖고 후자는 세계시장 시각과 친화성을 갖는다. 후자의 시각에 따르면 가계부채 증가 문제의 해법은 일국적인 시각과는 다른 내용을 갖는다. 이 시각에서는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이동의 자유를 줄이는 것과 자본이동의 전달 통로인 금융시스템에 대한 규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국 연준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자본이동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 금융기관 영업 행태에 대한 규제, 영업 행태를 규정하는 금융기관 소유구조와 거버넌스의 개혁이 중요하다. 전자의 시각에 따를 경우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 해법이 임금 분배 몫의 상승에 있었다.

▲지난 9월 3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공공성을 경시하는 금융 시스템의 책임이 크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은 금융기관의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금융기관의 역할에 대한 주류의 관점은 현대 금융이론에 나타난다. 재무관리론의 유명한 모딜리아니-밀러(Modigliani-Miller) 모델이 대표하는(파마(Fama E.)의 효율적 시장 가설, 매키넌&쇼(MacKinnon R.&Shaw E.)의 금융 억압이론을 포함해서) 현대의 금융이론은 기업의 재무구조가 기업가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기업 쪽에서 보면 금융기관의 대출은 여러 재원조달 수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대출을 받든, 주식을 발행하든 기업으로서는 무차별하다. 이 모델은 은행이 기업의 재무구조에 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 기업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사실, 그리고 단순히 자금의 중개 역할만을 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은행들이 단순히 자금 중개만을 하지는 않는다. 은행들은 전략적 선택을 하며 그 결과에 따라 경제 주체들의 부채 증가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주류의 관점과는 다른,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을 인정하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경우는 국제 준비자산의 증가로 은행 시스템에 대출 가능한 자금이 쌓일 때이다. 이때는 은행들이 이를 적절한 곳에 대출해야만 한다. 돈을 쌓아놓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은행의 기능이 아니다. 특히 은행에 쌓인 자금의 규모가 클 때, 금융기관들은 남보다 앞서서 새로운 대출처를 찾아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와 함께 대출을 좀 더 늘리기 위한 다양한 금융기법들을 발견해내야 한다. 담비사 모요(Dambisa Moyo)가 얘기하듯이 새로운 차입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은 은행의 숙명이다. 물론 이런 숙명이 나중에는 은행을 옥죄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1980년대 초부터 새로운 대출처를 찾기 위한 서방 은행들의 노력이 커지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사정이 있었다. 1970년대의 원유가격 파동 이후 산유국들은 거액의 잉여금을 갑자기 떠안았는데, 그 나라들은 이 자금을 서방 은행들에 예금으로 맡겼다. 서방 은행들(특히 미국 은행들)은 처음에는 이 예금의 많은 부분을 개발도상국에 대출해주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이 국가들이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부채 위기를 맞으면서 미국 국적의 글로벌 은행들은 새로운 대출처를 찾아야 했다. 새롭게 떠오른 대출 대상은 미국 내의 개인들이었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제 국내의 개인 대출,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냈다. 이는 사실 새로운 변화였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는 사회의 소수만이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한 원인의 하나는 금융기관의 영업행태 변화와 관련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형 상업은행 대부분은 외국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는데, 이 은행들은 금융기관이 갖는 공공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상업성과 수익성만을 강조하는 영업행태를 보였다. 은행들은 기업대출보다 개인대출에, 개인대출 가운데서는 신용대출보다 담보대출에 주력했다. 은행들은 이른바 부자마케팅(프라이빗 뱅킹) 기법을 도입하여 부유층 고객 중심의 영업전략을 적극적으로 펴나갔다. 규제당국은 대체로 금융기관 편에 서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감으로써 은행들의 영업 확대 전략을 보장해주었다.

규제 가운데서 특히 국제결제은행 바젤위원회의 자기자본 비율(BIS 비율)이 가계대출 증가에 끼친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자기자본 비율이란 은행 위험자산 대비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자본이 얼마나 되는가를 비율로 나타낸 지표이다. 국제결제은행은 위험자산에 대해서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은 위험한 곳에 100을 대출해주었다면 8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국제결제은행의 이 비율은 은행들로 하여금 위험한 곳에 대한 대출을 줄이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위험한 곳에 대출을 해주었다가 차입자들이 파산을 하면 은행마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 자기자본 비율이 담보대출 증가에 기여한 바가 크다.

자기자본 비율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 위험 가중치를 부여하여 계산된다. 따라서 같은 금액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자산에 대한 위험 가중치가 다르다면 자기자본 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본 비율을 계산할 때 핵심이 되는 사항은 위험자산(대출을 포함하여)에서 발생할 실제의 위험이 얼마나 될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은 대출에서 발생하는 부도 경험이나 기타 위험요인을 고려하여 평가된다. 규제 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위험자산들에 대해 표준적인 가중치를 제시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젤위원회가 각국 감독당국에 위험가중치를 적절히 조정할 수 있는 국가재량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실제로 적용된 위험 가중치를 보면, 기업 대출 75%, 주택담보대출 18%, 개인신용대출 26%였다(한국은행 국회보고 자료).

이는 주택담보대출 위험이 낮게 평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은행에는 자기자본비율 계산에 관한 한 주택담보대출이 다른 대출에 비해 더 유리하다.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기업대출을 줄이고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려는 유인을 갖는다. 이러한 사정은 은행 대출에서 기업대출보다 개인 담보대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결과에 영향을 준다. 이는 달리 말하면 주택대출에 위험 가중치를 정책적으로 높게 부여한다면 은행 영업행태를 바꾸고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계부채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

개인이 가계부채를 늘리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줄어든 임금을 빚으로 보충하려는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빚으로 자산을 늘리려는 목적이다. 생계비 목적의 대출 시장과 자산구입 목적의 대출 시장은 서로 구분되어 있다. 물론 두 시장을 무 자르듯 엄격하게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계비 대출은 주로 소비재 구입에 사용된다. 자산구입 목적의 대출은 주식, 부동산 등 청구권 자산의 구입에 사용된다. 한 사회의 총 생계비 대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총생산 가운데 임금으로 지급되는 부분은 한계가 있고 임금 부족분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산 구입 목적의 대출에는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다. 자산구입 대출이 늘어나면 담보가치가 커지고 그러면 은행들은 그 커진 담보가치를 기준으로 다시 대출을 늘릴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은행 대출은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클 허드슨(Hudson M.)은 독특한 자금순환 모델을 통해 가계부채 증가를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금융부문에서 창출된 신용이 실물부문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금융부문에 갇혀 그곳에서만 순환하는 현상에 눈길을 돌렸다. 일찍이 케인즈(Keynes J. M.)도 그러한 현상에 주목했는데, 그는 이를 '산업순환'과 구분하여 '금융순환'이라 불렀다. 허드슨은 금융부문에서 만들어진 신용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부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에 갇혀서 청구권 자산 매매에만 사용될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은 자산구입 목적의 대출시장과 생계비 목적의 대출시장이 구분되어 있다는 점, 자산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는 점이다. 여러 경험 연구들은 금융부문에서 창출된 신용이 주로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는 허드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가계대출의 많은 부분은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특히 은행들이 담보를 기준으로 대출을 해주는 영업행태를 관행으로 굳히면서 가계대출을 부유층이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화폐수량설로 유명한 어빙 피셔(Fisher I.)는 20세기 초에 펴낸 <이자율(Rate of Interest)>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채무자 계층이 빈곤층이라고 가정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채무자는 흔히 주식 소유자이고, 채권 소유자이다"는 말을 남겼다. 피셔의 말은 최소한 우리나라에 대해서만큼은 사실이다. 곧, 고소득층이 돈을 빌려주고 저소득층이 돈을 빌리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 가지 통계를 통해서 고소득층이 가계부채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소득이 낮은 하위 10%는 전체 가구 가운데 23.8%만 가계부채를 보유한다. 그렇지만 상위 10%는 전체 가구의 74.8%가 가계부채를 보유한다. 고소득층일수록 대출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득 분위별 대출 잔액 점유율을 보면 상위 20%가 53.0%를 보유하고 있고 하위 5%는 5.0%만 보유하고 있다. 분위별 소득 점유율을 보면 상위 20%가 37.3%를 보유하고 있다. 이로 볼때 대출의 집중도가 소득의 집중도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이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주택담보대출 630.8조 원 가운데 199.9조 원은 2건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가 차지하며, 비율로는 31.7%였다. 이는 다주택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나라 다주택자 인구수는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고소득층이 보유하고 있고 그 목적은 자산 구입에 있다. 이를 통해 가계부채를 통해 누가 큰 이익을 얻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은행들은 기업대출보다 위험이 낮게 평가되는 개인 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려 한다. 개인 담보대출의 증가는 곧바로 이익의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은행들은 성과급제를 도입하면서까지 담보대출을 늘리는데 영업력을 집중한다. 은행들이 대출을 적극적으로 확장할 때 고소득 부유층들은 이를 자산을 늘려서 자본이득을 얻을 기회로 삼는다. 부유층이 대출을 독점하여 적극적으로 자산 구입에 나서면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다시 대출 금액을 늘리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은행과 부유층은 큰 이득을 얻는다. 로마 시대의 키케로에 따르면 현명한 재판관 루키우스 카시우스는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cui bono fuisset)" 라는 질문을 습관적으로 했다고 한다. 아마 이 질문이 가계부채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핵심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은 금융기관과 부유층이 가계대출로 이익을 얻기 위해 그들의 대변자들을 앞세워서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과거 미국이나 영국의 보수정부들은 자가소유를 늘리는 이데올로기를 이끌었다. 미국 부시 정부의 '자산소유사회(Ownership Society)', 영국 대처 정부의 '주택소유사회(Nation of Homeowners)'는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구호는 누구나 대출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용민주주의' 구호와 결합하여 결과적으로 가계대출을 늘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부의 효과(wealth effect)'는 자산 투기를 부추기는 유명한 논리이다. 부의 효과란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 부가 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 소비가 늘고 그리하여 경제 전반이 좋아진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다. 곧 자산가격이 오를수록 경제 전체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실증연구들은 주식의 경우는 어느 정도 부의 효과가 나타나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상식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텐데, 예를 들어 가계대출을 통해 자산 구입을 늘리고 그리하여 자산 가격이 올라가면 자산 보유자들은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있지만 더 많은 임대료를 부담해야 하는 세입자들은 오히려 소비를 줄일 것이다. 자산 보유자들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클 경우는 소비를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이 '부의 효과' 논리는 자산 가격을 부양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근거로 활용된다. '부의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자산 가격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소비가 줄어들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동원된다. '하우스푸어론'이나 '영끌론'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많은 부분은 부유층이 보유하고 있고 그 목적은 자산 구입을 늘리는 데 있다. 따라서 하우스푸어나 영끌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 규제기관, 금융기관 등은 소수의 사례가 마치 전체를 대표하는 듯이 이를 끌어들여서 정부 지원을 늘리는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금리 부담을 덜어주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서 집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현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례보금자리론, 안심전환대출 확대, 그밖의 여러 시장안정 대책들은 모두 그러한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영끌이나 하우스푸어를 근거로 담보대출 금리를 낮춰주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다면 거기에서 생기는 가장 큰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당연히 최대의 혜택은 부유한 다주택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결국, 가계부채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을 따져 물어야 하고 다른 한편 허위 이데올로기를 꿰뚫어보아야 한다.

<도움 받은 자료>

아티프 미안&아미르 수피 저, 박기영 옮김, <빚으로 지은 집>, 2014.

담비사 모요 저, 김종수 옮김, <미국이 파산하는 날>, 2011.

리처드 던컨, 김석중 옮김, <달러의 위기, 세계경제의 몰락>. 2004.

한국은행이 국회에 보고한 여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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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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