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주범' 몰린 특례보금자리론, 연소득 1억 미만에 집중한다(23.08.25 머니투데이)
50년 만기 주담대 '가계부채 주범' 논란에 은행들 판매 중단 조치…수요는↑(23.08.23 노컷뉴스)
가계빚 주범 '50년 주담대', 대출 한도 수천만원 싹둑(23.09.01 서울신문)
금리 3%대 '인뱅' 주담대도 사라져... '가계부채 주범' 눈총 때문?(23.08.31 한국일보)
"당국 장려한 '50년 주담대', 빚 주범이라니" 은행 혼란(23.08.23 동아일보)
지난달부터 갑자기 '가계부채 주범'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정부가 가계부채 '주범'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이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인터넷은행 등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급증하자 회의 소집한 정부
한동안 줄어들던 가계대출잔액이 지난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하더니 4개월 연속 증가했다. 7월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8조100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무려 6조 원 증가했다. 월간 증가폭은 2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중 주담대가 전월보다 6조 원 늘어난 820조8000억 원이므로, 가계대출 증가의 대부분은 주담대 증가로 설명된다.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지난달 10일, 윤석열 정부는 갑자기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당국자들은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를 문제 삼으면서 특례보금자리론 금리 소폭 인상과 50년 만기 주담대 연령 제한 등의 방안을 거론했다. 시중 은행장들에게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우회 등 과잉 대출을 자극하는 요소가 없는지 살펴 달라"고 요청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8월 중 은행 가계대출 관리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현장점검에 나설 계획"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비대면 주담대의 소득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 또는 "일부 차주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DSR 우회 수단으로 악용"하는 문제 등이 지적되었다.
그런데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 같은 금융상품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은행들의 '관리' 부실을 바로잡으면 끝일까? 그런 정책을 시행한 사람들의 책임은 왜 거론하지 않을까? 몰라서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언론 보도의 행간을 읽어보면 은행들의 억울함에 대한 공감이 느껴진다. 정부가 '주범'으로 지목한 특례보금자리론이나 50년 만기 주담대 같은 대출 상품들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50년 만기 주담대와 특례보금자리론
최대 만기 50년 주담대는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민생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청년 및 신혼부부의 내집 마련"을 위한다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정책이다. 지난해 6월 주택금융공사에서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출시했고, 올 1월 sh수협, 6월 대구은행에 이어 7월부터 5대 은행에서도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놓았다. 5대 은행에서 상품이 출시되자 50년 만기 주담대는 놀라운 속도로 팔려 나갔다. 8월 24일 기준으로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2조8876억 원에 달한다.
2022년 6월 16일 금융위원회의 보도자료를 보면 "50년 만기 모기지 도입을 통한 대출 한도 확대"를 추진한다는 설명 아래, 연소득 3000만 원인 신혼부부가 보금자리론을 받으려 할 때 50년 만기를 선택하면 40년 만기 대비 대출 한도가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보여주는 표가 있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의 비율이므로, 원금 분할기간이 길어지면 연간 원리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출 한도는 늘어난다. 따라서 이 보도자료는 만기가 긴 대출을 통해 DSR을 우회하는 방안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권장한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기존의 보금자리론에 일반형 안심전환대출, 적격대출을 통합한 상품이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안심전환대출 제도는 집값 상한선 6억 이하, 소득 연 7000만 원 이하라는 제한을 두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제한을 완화해서 소득 기준을 없애고 집값 상한선은 9억 이하로 높여 특례보금자리론을 만들었다. 그동안 소득 제한 때문에 안심전환대출, 디딤돌대출 등의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던 상대적 고소득자들도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은 DSR 우회 방안이 아니고 아예 면제 방안이다. 정부는 지난 1월 30일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신청을 받으면서 "DSR 미적용"이라고 홍보까지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출시 6개월 만에 배정 예산 39조 원의 78.5%가 소진되었고, 신청자의 40%가 30대였다.
그러니까 DSR 규제를 무력화하며 가계부채를 늘려놓은 진짜 주범은 윤석열 정부라고 해야 앞뒤가 맞는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할 뿐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당국자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DSR은 원칙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취임 때부터 "DSR 규제를 통해 가계부채 안정화 대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7월에는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면서 "DSR 규제 원칙을 지킨다"고 밝혔다. 하지만 말과 행동(정책)이 완전히 다르다.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 이후에도 정책의 방향 전환은 없다. 50년 만기 주담대에 연령 제한 도입이라는 소극적인 방안을 검토했다가 40대 이상이 반발한다는 이유로 그것도 없던 일로 만들었다. 결국 8월에도 은행권 주담대 잔액만 2조 원 이상 증가했다. 정부가 규제 도입을 시사하자 오히려 '50년 주담대 막차'를 타자는 수요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사 출신으로 금융정책의 '실세'라고 알려진 이복현 금감원장은 또 어떤가.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은 공공재"라면서 시중 은행들이 고금리를 통해 돈잔치를 한다고 비판하자, 이복현 금감원장은 아예 시중 은행을 돌아다니며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은행의 공공성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은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주택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행보였다. 금감원장의 압박에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인하하자 대출금리도 그만큼 낮아졌다. 주택 거래량이 늘어나고, 서울의 경우 아파트 매매가격에 이어 전세가격도 상승으로 돌아섰다.
한은이 이런 문제를 모를 리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7월 금통위 이후 "여러 금통위원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 경제의 큰 불안 요소"가 될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한은 총재나 금통위원들은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발언을 할 뿐이고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2월부터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10월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왜 말로만 가계부채를 우려하는가?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면피하기 위해서 늘어놓는 말들이 아니길 바란다.
윤석열판 '빚내서 집 사라'의 위험성
윤석열 정부는 매우 공격적으로 주택 관련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윤석열판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세가격 상승으로 임차인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기준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면서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시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주담대를 규제했지만 저금리 환경 속에서 급격히 증가한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의 동력이 되는 것을 방치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가계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아예 없어 보인다. 미분양이 늘어나자 분양과 관련된 모든 규제를 풀어 투기세력을 유입시킨 후에 정책금융을 통해 가계대출을 급격히 늘렸다. 빚으로 빚 돌려막기 정책이다. 그러나 가계는 이미 허덕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질임금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가계에 소비 여력이 없는데 더 큰 빚을 지라고 권유하는 것은 내수 경제를 망가뜨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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