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구경 받는 자유는 없다
2018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호롱이가 탈출했다. 부실했던 출입문 단속으로 인해 우리 밖으로 나왔던 호롱이는 탈출 4시간 뒤, 어디 다른 곳도 아닌 동물원 안에서 발견되었음에도 사살되었다. 우리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것도 인간, 한 번에 생포하지 못한 것도 인간, 존재를 위험으로 규정해 결국 목숨을 앗아간 것도 인간이었다.
해당 동물원은 대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다. 당연히 나도 가봤다. 사파리 버스를 타고 동물들을 구경하며 그럭저럭 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딱히 별다른 것 없는 그곳에서 호롱이가 죽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아했다. 온갖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왜 죽여야만 했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였을 것이다. 동물원 측은 생포를 시도했으나 실패해 부득이하게 매뉴얼에 따라 사살하였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매뉴얼과 생명은 등가교환의 대상이 아니다. 호롱이의 사체 사진은 각막에 인쇄라도 된 것마냥 마음을 괴롭혔다. 그 안타까운 죽음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때 다짐했다. 앞으로 동물원을 찾아가는 일이 없으리라고.
그 사건 후에도 동물 전시 시설의 실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점점 더 불편한 곳이 됐다. 굵직한 사건만 놓고 봐도 2020년 거제씨월드 벨루가 학대 논란, 2021년 한화 아쿠아플라넷 벨루가 폐사 사건, 2021년 대구동물원 동물 학대 논란 등 문제가 계속 이어졌다. 인간의 욕심으로 죽거나 고통 받는 동물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는 같았다. 전시 동물은 죽는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두 번씩 사고가 일어날 때만 동물권 논의가 반짝 거세질 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이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음에도 그랬다. 2021년에 동물원법 개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약 2년 정도가 지난 뒤인 지난해 11월에야 겨우 국회 소의원회를 통과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딘 과정이었다.
동물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동물원이 궁극적으로 '동물 없는 동물원'이 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그런 동물원을 구현할 기술도, 능력도 있다. 국내에서도 홀로그램, VR/AR을 이용해 이를 모색한 사례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관람객들이 과거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는 데에는 실체가 있는 로봇이 더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찾은 대안이 바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엣지 이노베이션의 로봇 돌고래였다. 로봇을 이용하면 동물을 마치 학대라도 하듯 전시해둘 필요도 없고, 본래의 교육적 목적도 유지할 수 있다.
엣지 이노베이션은 이 분야에 오랫동안 투자해온 회사이다. 로봇 돌고래를 일반인들에게 시연하거나 테마파크를 기획하는 등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가장 이상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그래서 GCP 프로젝트를 통해 엣지 이노베이션으로의 해외 탐방을 기획했다. 비록 그 대상은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에 있더라도 언젠가는 꼭 방문해 동물원에서도 행복한 돌고래(비록 로봇일지라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아주 개인적인 욕망도 작용했다.
엣지 이노베이션의 소개 영상을 보면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도, 돌고래도 모두 웃고 있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다.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동물 전시 시설이 실존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비록 야심찬 기획을 했음에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직접 방문하지 못하고 온라인 탐방만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엣지 이노베이션에 직접 찾아갈 때는 어떻게 갈 것인지 계획을 짰다. 그러기 위해 회사에 문의 메일을 보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회사를 알아갈수록 가장 크게 느낀 건 분명한 부러움이었다. 이 정도는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우리나라 또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기술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의 동물원이 로봇 동물을 셀링 포인트로 삼고 제대로 홍보한다면 기존의 동물원들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동물 전시 시설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GCP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기존의 동물 전시 시설에 대한 탄압이 아니다. 동물 전시 시설의 무조건적인 축소나 시설 동물의 방사가 능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물 전시 시설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거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역할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동물 전시 시설에도 교육적 목적이라는 순기능이 존재하니 말이다. 책에서만 보던 동물이 실제로 눈앞에 있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경이는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감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단지 현재 한국의 동물 전시 시설이 비윤리적인 경우가 많으니 제대로 관리·감독하자는 얘기였다. 그리고 당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보는 동물이 유리 벽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자신을 해치거나 같은 행동만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모습이 아니라면 훨씬 바람직하지 않을까?
당장 모든 전시 동물을 엄청난 금액을 호가하는 로봇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그렇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험한 국민 생각함 활동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까지는 개인적으로 동물 전시 시설을 소비하지 않는, 소극적인 행동에 그쳤다면 국민 생각함 활동은 직접 행동하는 일이었다. 이 활동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단 아홉 명만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그렇지만 이와 관련된 소식을 SNS에 올리면서 지인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 뒤로는 SNS 친구들이 동물 전시 시설을 소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주변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애초에 그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쌓이는 반응이 모두 달갑고 소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족관이나 동물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멈칫하길 바랐다. 나는 그들이 한 번씩만 더 전시 동물들을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동물권 보호는 단순히 동물만을 돕는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단순한 오락이나 흥미를 위해 다른 생명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되고, 약자는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를, 아주 당연한 사실을, 그러나 요즘은 자꾸만 잊히는 것만 같은 가치를 되살리는 걸음이다. 그러니 동물권 보호는 더 나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보호나 마찬가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 시민이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몸을 흔들고,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가본 적도 없는 고향의 푸른 바다를 꿈꿀 동물들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더라도, 호롱이를 위해서. 쓸쓸하게 죽었을 한 마리 퓨마를 위해서. 바로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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