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개를 사랑한 적 없다면, 영혼의 일부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19세기 후반 '당대 프랑스의 이상적인 문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아나톨 프랑스가 개를 두고 한 말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굶주린 개를 데려다가 보살펴준다면 개는 당신을 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개와 사람의 차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그리고 트웨인의 시대는 반려동물 문화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장난감'이라는 의미의 애완동물이라는 문화가 팽배했던 시대에도 개는 단지 개로만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야생동물 사진작가 로저 카라스는 '개가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 삶의 전부를 만들어준다.'라고 했다. 조각, 회화 등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을 연구한 수지 그린은 <나의 절친: 예술가의 친구, 개 문화사(Dogs In Art)>(박찬원 옮김, 아트북스 펴냄)에서 '개는 인간의 가장 충직한 친구이자 성실한 동반자이며, 우리가 몹시 우울한 시간에도 의지할 수 있는 영혼'이라고 했다. 그는 개를 '예술가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설명한다.
사실 기록이 많지 않아 그렇지, 아마도 개들이 처음 우리 곁에 왔던 선사시대부터 개는 인류에게 가축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3만2000년 된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 주변에서 어린아이가 강아지를 어루만지기 위해 몸을 숙이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한다. 체코의 고고학 유적지 프로제드모스티에선 2만6000년 전으로 보이는 개들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개들은 선사시대 매머드 등 사냥감을 운반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육견, 즉 가축이었지만, 당시 구석기인들은 개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입에 뼈를 물려 매장했다. 개의 영혼이 먼 천국으로 갈 때 허기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또 개의 머리뼈에 구멍을 내어 뇌를 제거한 사례도 있었다. 수지 그린은 '당시 프로제드모스티 사람들은 식량이 풍부했기에 식량 대용으로 개의 뇌를 꺼낸 것이 아니다.'라면서 '뇌를 꺼내 개들이 자유로이 사후 세계로 떠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개
고대 개는 신격화되거나 신들과 함께 다니는 존재로 묘사됐다. 반려견 전문가 이선필은 <독한 세계사>(은행나무 펴냄)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는 악령을 쫓아 가정을 지키고 이승과 저승을 잇는 매개자였다'라면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포함한 동양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도 그랬고 메소포타미아에서도 그랬다'라고 밝혔다. 고대 이집트에서 개는 죽은 이를 법정으로 인도해 살았을 때 죄를 심판하는 '아누비스'라는 신으로 대접받았다. 중남미 지역 창조 신화에선 아예 개가 많이 등장한다. 마야 문명에선 개가 인류에게 불을 전달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선필은 '아마도 (중남미 민족의) 선조 격인 북방 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늑대 숭배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국내에서는 <원령공주>로 소개됨)는 1997년 7월 12일 개봉해 다음 해 같은 날까지 극장에서 상영되는 등 경이로운 기록을 여럿 갖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됐던 것 중 하나가 일본 홋카이도에 전해지는 산의 정령 레타르 세타(하얀 개) 설화인데, 이 설화는 개가 아이누족의 기원이라는 내용이다.
한편 개는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공격성과 광견병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도 있었다. 사실 서양에서 늑대는 개와 달리 매우 불온한 동물로 취급받았다('늑대인간' 관련 문화도 이러한 영향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에서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 하데스는 사나운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지하세계의 수문장으로 세워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로마 시대엔 콜로세움에서 개끼리 싸우는 투견과 개와 검투사가 싸우는 일도 있었고, 철갑을 두른 개가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교도 풍습을 배척하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어 주변으로 확장되면서 이교도 신과 함께 한 개가 배척되는 일도 있었다. 동양에서는 개가 질병이나 액운을 막아주는 동물로 인식되면서 역설적으로 성곽이나 집을 지을 때 부근에 개를 묻는 일도 있었다.
유럽에선 8세기 무렵 애견 문화가 확산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네덜란드 한 지역 무덤에서 개들의 유골이 나왔는데, DNA 분석 결과 천수를 다했고 생전에 학대 흔적 없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았다. 또 사람 무덤 근처에서 공들인 별도의 개들의 무덤이라는 점에서도 이전과 다른 문화적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여러 회화 작품에 개가 등장했고 가문을 상징하는 휘장에도 개를 사용했다. 당시 귀족들의 개 키우기도 유행하면서 점차 일반 사람들에게 확산했다. 최근 들어서는 반려견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여러 문학작품과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개가 그려지고 있다. 사실 개가 주요하게 등장하거나 주인공인 영화가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다. 최근 영화 중에 동명의 소설을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그려낸 2020년 작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라는 작품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썰매 개로 팔려온 '벅'이 알래스카의 대자연 속에서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에 응답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늑대가 개가 되기까지
깊은 감동을 준 또 다른 작품을 고르라면, <알파: 위대한 여정(Alpha)>(이하 <알파>)이라는 영화도 있다. 2018년 개봉한 이 영화는 늑대가 어떻게 개가 되는지 그 시작점을 보여준다. 영화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빙하기가 최절정이었던 2만 년 전 유럽의 어느 한 부족이 눈보라가 잠시 물러난 짧은 기간 동안 사냥에 나섰다. 이들은 사냥에 성공하지만, 이 과정에서 족장의 아들 케다가 절벽에서 떨어진다. 절벽 좁은 공간에 떨어져 다행히 케다는 죽진 않았지만, 며칠 의식이 없던 시기 그의 부친과 부족민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사냥감을 챙겨 돌아갔다. 발목을 크게 다친 케다는 이제 혼자 마을까지 돌아가야 했다. 그때 등장한 늑대 무리, 케다는 늑대를 피해 겨우 고목 위로 몸을 피하면서, 그의 다리를 물어버린 늑대를 돌칼로 찌른다. 다음날 케다는 다른 포식자를 피해 산속 동굴로 도망가면서, 상처 입은 늑대를 안고 함께 간다. 거기서 케다는 "널 계속 지켜줄 거야. (우린) 친구"라며 늑대를 보살펴주고, '알파'라는 이름도 붙여준다. 이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사냥 호흡을 맞춰 배를 채우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운 밤을 보낸다. 케다가 얼음 속에 빠졌을 때 '알파'가 도와주고, 검치가 공격했을 때 케다가 '알파'를 구해준다. 눈보라를 뚫고 겨우 부족에게 돌아온 케다와 '알파'. '알파'는 거기서 새끼를 낳았고, 새끼 중에는 유난히 사람을 따르는 놈도 있었다. 이후 부족 사람들은 늑대와 함께 사냥에 나서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는 '알파'를 늑대에서 개가 된 최초의 늑대 무리의 수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류학자 중에는 현생 호모 사피엔스가 개의 도움으로 개가 없었던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영화 <알파>는 대사보다 영상이 주는 감동이 큰 작품이다. 감독은 광활한 원시 자연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면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또 위기 상황 속에서 배우와 동물의 감정선을 잘 살려 연출했다. 얼음 속 케다를 구하기 위해 '알파'가 높이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는 장면에서 감독은 얼음을 기준으로 화면을 위아래로 나눠 느리게 연출했는데, 긴장감을 극대화하면서 '알파'와 케다의 감정을 그대로 살려낸, 그야말로 압도적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늑대가 사람과 친구가 되면서 개가 됐다는, 낭만적 과정을 담았다. 어떻게 보면 극적인 드라마적 요소를 좋아하는 '영화적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학술적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늑대를 가축화된 최초의 종으로 보고 있다. 그 시기는 차이가 있는데, DNA 분석 결과 10만 년 전에 늑대와 개의 유전자가 달라졌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늑대가 가축화되는 과정은 크게 3가지 설이 존재한다. 인간이 어린 늑대를 훔쳐 기르면서 애완동물로 키웠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청소부 가설'로 불린다. 사냥 능력을 상실한 늑대가 인간이 먹다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남은 음식을 취했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 개가 됐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진화생물학자 레이먼드 피에로티와 인류학자 브랜드 R. 포그는 <최초의 가축, 그러나 개는 늑대다>(고현석 옮김, 오파비니아 펴냄)에서 앞의 주장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들은 '서양의 전통을 따르는 저자들은(앞의 학설 주장한 이들 지칭) 인간과 늑대의 초기 관계가 협력과 공존이 아닌 경쟁, 폭력, 적대 행위를 포함한다고 거의 항상 가정한다'라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늑대의 우호적 관계, 즉 늑대가 사냥감을 양보하고, 사냥 기술을 가르치는 친구 또는 사승(師承)적 관계 맺음을 강조한다. 이들은 '(늑대가) 인간과 강력하고 꾸준한 사회적 유대를 맺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데다가 심지어 의욕이 아주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현생 인류가 늑대와 공진화하면서 개가 됐다고 것이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늑대가 개가 되는 과정에 관한 학설은 흥미롭지만, 매우 전문적 영역이라는 점에서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개의 시작이 늑대였고, 그 늑대와 인류가 경쟁하고 대항적인 관계가 아닌 협력적 관계였다는 학설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동물과 인류의 협력적 관계는 생태 위기가 심화하는 현재 우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기틀이자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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