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엔 경직된 형태의 정당법 아래 견고한 양당체제가 확립돼 있다. (관련 기사 ☞ '정치개혁' 논하려면 지역정당 창당 허용해야) 시민이 제도정치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에서나 중앙에서나 시민의 정치활동은 집회 참여와 같은 우회적 형태, 혹은 주민참여예산제와 같은 한정적 형태로 제한된다.
정치는 정책을 만든다. 정치와 시민사회가 유리될수록, 시민 삶을 개선해야 할 정책이 오히려 시민 삶과 멀어진다. 지역정책엔 지역시민의 목소리를, 청년정책엔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해야 한다는 '당사자 정치'론이 때마다 강조되는 이유다.
선거철마다 각 정당은 여성, 청년, 장애인 등 계층별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린다. 그것만으로 '참여정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지난 3월 대선 국면에선 각 정당의 선거캠프가 앞 다퉈 청년인재를 영입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크지 않았다. 외려 청년단체들은 "주요 정당이 외치는 청년정치는 보여주기식 득표 전략"이라며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청년 없는 청년 대선' 비판하는 청년들 "우리는 지금 멸종위기종")
지역정당이나 유권자 그룹 형태의 정치 결사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유럽 지역에선 청년정당의 자체적인 정치활동이 가능하다. (관련기사 ☞ 27살도 '늙은' 정치인…'50대 남성'이 점령한 지방의회 바꾸는 청년들) <프레시안>이 유럽에서 만난 '청년 지역정당'의 정치인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역 법안에 반영해내고 있었다. 지역선거를 통해 제도정치의 무대에 오른 청년 정치인들이 '청년이 원하는 도시의 모습'을 지역 시정에 전달하고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법과 양당체제라는 벽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한국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없을까. 지역정당 형태의 정치는 아니지만, 한국에도 청년 당사자들이 관의 행정에 개입한 사례가 있다. 지난 9월 19일 서울 중구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이주형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는 '청년 당사자 정치'의 모델을 중앙의 정당들이 아닌 지역의 청년 활동가들로부터 찾은 이다.
"내가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그걸 해결하기 위한 정책 사이의 불일치"를 느낀 청년들을 중심으로 당사자 시민운동이 시작됐고, 이 "현장의 요구를 지방자치단체가 받아들이면서" 지역의 청년정책 수립과정에 "일종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그는 설명했다.
2013년,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민관 거버넌스 정책 플랫폼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가 출범했다. 당시 상황으로는 일종의 돌연변이 같은 기구였다. 이 대표는 정책수립 과정에서의 "공간을 확 열었다"는 것이 기존의 거버넌스 플랫폼과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의 중요한 구별점이라고 강조했다.
각 정당들이 정책수립을 위해 민간과 협력하는 거버넌스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각계의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대표 등 소위 '자격을 갖춘 이'가 아닌 "청년이라면 누구나 제도정치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형태의 플랫폼"은 처음이었다.
정책을 기획, 수립하고 평가하는 과정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중앙정부와 서울시 간의 갈등을 낳기도 했던 돌연변이 정책 '서울시 청년지원활동(청년수당)'은 가장 대표적인 성과다. '사회 진입 시기 청년에게 시간과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의 해당 정책은 "청년의 삶은 변했는데 어째서 정책은 그대로인가?"라는 청년 당사자 관점이 청년정책 수립 과정에 반영된 결과였다.
이외 '희망두배청년통장',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 등 현재까지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의 대표적 청년정책들도 서울 청정넷의 제안과 모니터링 속에서 규모적 확장과 내용적 변화를 겪었다. 2020년 기준 서울 청정넷의 정책제안은 지역, 주거, 일자리, 교육, 성평등 등 17개 이상 분야에서 408건에 달했다.
9년 간 이어진 거버넌스의 호흡 속에서 서울시엔 '서울시 청년 기본 조례'를 포함해 8개에 이르는 청년 관련 조례가 신설됐다. 2014년 당시 592억 원 수준이었던 서울시 청년정책 예산은 2020년 기준 5502억 원으로 853% 확대됐다.
이 흐름이 작년 '청년기본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국무총리에게 '청년정책 기본계획' 수립 의무와 '청년정책조정위원회' 구성 의무를 부여하는 법령이다. 지역에서 일으킨 '정치적 균열'이 중앙으로까지 닿은 셈이다.
'당사자들의 참여의 경험은 결국 무엇을 남길까'란 질문에, 이 대표는 거버넌스를 통해 수립된 정책들의 숫자보다도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스템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나마 '다른 정치'를 경험한 사람들이, 결국은 '청년'이나 '지역'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의 변화를 끌어낼 인재로 육성될 수 있다. 거버넌스 참여자들이 주축이 돼 모인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도 "청정넷 등의 거버넌스 활동 속에서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범한 단체다.
어떻게 더 많은 '참여의 경험'을 보장할 것인가. 참여를 통해 길러낸 시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시민참여'의 창구가 좁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과제다.
이 대표는 "현재로서는 (지역 청년 활동가들이) 지역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큰 주요 정당에 입당하는 것" 정도만이 인재활용의 방안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 정당의 인재영입이 '보여주기'에 그친다면, 어렵게 길러낸 '사람'의 유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은 한계인 셈이다.
거버넌스가 가진 한계에서 처음의 질문이 다시 추출된다. 시민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 정치와 시민은 충분히 밀착되어 있는가? 이 대표는 "거버넌스라는 시도 자체가 정치의 부재에서 온 대안"이라며 "정치와 시민 사이 공백을 채우기 위한 당사자들의 활동이 바로 '참여'고, 그래서 참여의 공간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의 공간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한국사회에선 아직 정답이 나오지 않은 방법론적 질문이 하나 남는다. 정치참여의 창구 자체를 늘릴 수 있는 정당법 개정 등 예시 답안이 있을 뿐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에 제기돼 있는 현행 정당법에 대한 위헌소송이 문제풀이의 첫 번째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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