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용이 화려한 불빛을 자랑하며 남강에 떠 있다. 진주성 주변 곳곳에도 등불이 달린다. 매년 10월 경상남도 진주시 일대에서 진행되는 진주남강유등축제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유등을 보러 찾아오는 축제였지만, 2015년 남강 일대에는 가림막이 세워졌다.
2015년 진주시는 무료로 개방하던 진주유등축제를 유료 입장으로 전환했다. 시는 정부와 도의 지원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축제를 유료화하면서 남강 일대에 펜스와 가림막이 생겼다. 주민들 누구나 즐기던 유등축제가 돈 낸 사람만 볼 수 있는 축제로 변했다. 지역축제를 빼앗긴 주민들은 반발했다.
진주시민들은 '남강유등축제를 지키기 위한 진주시민행동'을 조직했다. 시민행동은 길거리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자체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로 하여금 직접 축제 진행방향을 모색케 했다. 이 행동이 시정 전환으로 이어졌다. 2018년 새롭게 당선된 시장은 시민의 의견을 수용해 축제 유료화를 철회했다. 펜스가 철거된 축제는 다시 주민 품으로 돌아갔다.
지난 9월 21일 <프레시안>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만난 '진주같이' 백인식 대표는 지역정치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진주같이는 '생활정치' 시민네트워크다. 앞선 진주남강유등축제 유료화 반대뿐만 아니라 버스 준공영제 운영 조례 등 진주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생활과 밀착한 주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2013년 지역의 이슈는 묻히고 시민 공론의 장이 온통 중앙에 잠식당하는 현실을 막고, 현실 정치로 지역을 바꾸고자 하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진주같이를 만들었다.
진주같이를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지역정당'이다. 진주같이는 단체 정관에서부터 지역정당을 추구하는 단체임을 명시했다. 최근에는 서울 영등포, 은평과 경기도 과천 등 다른 지역정당들과 함께 지역정당네트워크를 조직해 지역정당 합법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 독자적인 후보를 낼 정도로 탄탄한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선거는 완주에 실패하였으나 여전히 진주같이는 지역정당을 꿈꾸며 단체 운영을 재정비하고 있다.
귀농 1년 차 농부인 백인식 대표는 올해부터 진주같이 대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다시 농사일을 하러 간 백 대표에게 진주같이가 꿈꾸는 지역 내 '같이'와 정치의 '가치'는 무엇인지 들었다.
왜 지역정당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백 대표는 지방의원 자질 문제를 과감하게 언급했다.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중앙정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고, 지역의제에 천착하는 지역의원은 의회에서 사라져 지방의회 신뢰도 자체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호남이나 영남 등 소위 특정 정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에 중앙정치는 지역의 '갑'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지역 시민사회와 가까운 진보정당도 중앙정치에 영향을 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진보정당에서 활동했다는 백 대표는 "진보정당도 중앙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다"라고 분석했다. 환경이나 노동 등 특정 분야에서 진보정당 지역위원회가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전반적인 지역 전체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핵심은 연속성이다. 특정 이슈 혹은 선거 때만 반짝 활동하는 단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역이슈를 이야기하고 책임까지 질 수 있는 존재가 지역정당이라고 백 대표는 말했다. 지역정당이 법으로 금지된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무소속으로 후보를 내지만, 지역정당 이름을 걸고 선거에 나설 때 비로소 주민에게 정치적인 책임도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노인은 주민이 아닌가요? '지역소멸' 지역의 관점에서 되묻다
백 대표는 중앙의 관점이 아닌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전하는 목소리가 지역정치 무대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지역소멸' 담론이다.
균형발전과 인구유입 명목으로 혁신도시로 지정된 후 진주시에 한국주택토지공사(LH) 본사 등 공공기관 본사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효과는 잠깐뿐이었다.
백 대표는 "금요일 저녁이면 LH 본사 앞에 관광버스가 쫙 늘어선다"라고 말했다. 서울로 가는 직원들을 위한 관광버스다. 신도시를 새로 지어도 집값만 올라갈 뿐 인구 유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백 대표는 "인구가 줄어드는 건 이제 당연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주같이는 지역민의 행복의 관점에서 더 나은 정치를 계속 고민 중이다. 전국 10대 자전거 도시 중 하나인 진주의 장점을 살리는 공용자전거 도입 방안을 시에 질의하는 등 주민에게 진주가 오랫동안 '살기 좋은 동네'가 되게끔 노력 중이다.
백 대표는 생활밀착적인 정책을 개발해 주민을 설득해나갈 때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지역정당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정당이 시에 요구하는 행정에 주민 의견을 반영하고, 주민들과 함께 소소한 정책을 만들어 나간다면 "도시를 새롭게 디자인 할 수 있다"라는 의미다.
국내에서 '지역정당' 창당은 불가능
현행 정당법상 국내에서 지역정당 창당은 불가능하다. 1962년 군사정권 시절 만들어진 정당법은 정당 등록 요건으로 △수도에 중앙당 설치 △5개 이상 시·도당 △각 시·도당에 1000명 이상의 당원 등을 규정한다. 사실상 전국에서 활동하는 정당만이 등록이 가능하며,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의 창당은 가로막혀 있다. 정당 설립 요건이 간단하거나, 정당법 자체가 없는 해외 사례와는 다른 실정이다.
한국에서 지역정당 창당 운동을 진행하는 '지역정당네트워크'는 헌법재판소에 현행 정당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서울시 영등포구(직접행동영등포당)와 은평구(은평민들레당), 경기도 과천시(과천시민정치당), 경상남도 진주시(진주같이) 등이 속해있는 지역정당네트워크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지역정당 창당이 법적으로 가능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헌법재판소는 정당법 내 정당 설립 요건이 합헌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가 있으나 정당 설립 요건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제 도입과 함께 창당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또한 지역정당 창당이 가능하도록 정당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관련 기사 ☞ '정치개혁' 논하려면 지역정당 창당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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