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연일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사용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선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만약 전략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러시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실수를 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이날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에 '더티 밤(dirty bomb)'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거짓 깃발 작전인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며 "사실인지 모르지만 이는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더티밤은 재래식 폭탄에 방사능 물질을 넣은 무기로, 핵폭발과 같은 파괴적 위력은 없지만 광범위한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어 사용이 금지돼 있다.
러시아의 이런 주장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이를 빌미로 확전을 꾀하려는 '거짓 깃발 작전'을 의심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24일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주장을 배격했을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러시아의 주장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서방이 우리 경고 무시한 건 용납할 수 없는 일"...美에 핵전쟁 훈련 실시 통보
그러자 러시아는 25일 재차 '더티밤' 사용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가 더티밤을 사용하려 한다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한 것은 위험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23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24일 바실리 네벤지아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공개적으로 '더티밤' 사용 우려에 대해 언급했다. 특히 네벤지아 대사는 유엔에 성명을 보내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사용을 "핵 테러로 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나토가 30일까지 연례 핵억지 연습인 '스테드패스트 눈'을 시작한 가운데 러시아는 이날 미국에 대규모 핵전쟁 훈련인 '그롬'을 실시하겠다고 통보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러시아로부터 훈련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이는 러시아가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일상적 훈련"이라면서 아직 이상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핵발전소에서 러시아 테러 준비" 의혹 제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더티밤' 공세가 전형적인 '거짓 깃발'이라고 주장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숨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독자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유엔 핵사찰단에 공식 초청장을 연장했다고 밝혔다.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러시아가 말한다는 이는 러시아가 이미 그것을 준비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관련해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지난 9월 불법적으로 합병을 선언한 자포리자주에 위치한 핵발전소에서 러시아가 테러 행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자포리자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에네르고아톰은 24일 "러시아가 저장된 핵물질과 방사성 폐기물을 이용한 테러 행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현재 자포리자 발전소는 우크라이나 기업인 에네르고아톰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일 이 발전소를 러시아 연방자산으로 만드는 법령에 사인했다.
에네르고아톰은 러시아가 이 발전소에서 비밀 건설 작업을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노동자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현장 조사관들이 이 현장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푸틴, '강경파' 달래기 위해 '더티밤' 공세 이어갈 수도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당장 '거짓 깃발 작전'을 써서 공격을 가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을 군사 지원을 늦추거나 러시아 내부 여론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들고 나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가 임박한 '가짜 깃발' 더티밤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쇼이구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 지원을 늦추거나 중단시키고 나토 동맹을 약화시키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돌연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당초 푸틴을 포함한 러시아 수뇌부가 기대했던 '신속한 승리'는 이미 물건너 간 상황에서 러시아 내부에서도 장기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분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부족한 군인들을 채우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푸틴이 '부분 동원령'을 내리면서 민심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이미 30만 명 이상의 젊은 남성들이 인근 국가로 도망을 갔고, 전사자들의 소식이 가족들에게 속속 들려오면서 민심의 균열의 더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또 전쟁에 찬성했던 '강경파'들의 불만도 못지 않게 커지고 있다. 일부 강경파들 사이에서 "내가 쇼이구 국방장관이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등 현재 러시아의 전세에 대한 불만도 억누르기 힘들 만큼 커져 있다.
이런 양쪽의 민심을 모두 달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사용이라는 가상의 위협을 연일 강조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더티밤 위협, 한번도 성공한 적 없어
한편, 더티밤을 사용한 성공적인 공격은 현재까지 알려진 적이 없다고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보도했다.
더티밤 위협은 1998년 체첸 반군에 의해 설치된 것이 체첸 보안국에 의해 해체된 기록, 2002년 미국이 알카에카 신병 모집책인 호세 파딜라를 더티밤 사용 계획을 근거로 체포한 기록, 2004년 영국이 알카에다 모집책인 디렌 바로트를 더티밤 사용 계획으로 체포한 기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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