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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스포츠' 대통령 비판하기?…바꿔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제

[장석준 칼럼] 한국형 대통령제 이렇게 바꾸자

몇 차례에 걸쳐 이 지면에서 대한민국 제6공화국 대통령제가 봉착한 한계와 궁지를 살피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의 지난 역사뿐만 아니라 핀란드 사례를 검토했다. 그 와중에도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을 통해 한국형 대통령제의 위기는 실시간으로 진행됐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다시 들고 나온다. 그러나 이 개헌안은 한국식 대통령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약간의 수선을 가하는 데 불과하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최적인 새로운 정부 형태의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번 칼럼에서는 4회에 걸친 논의의 결론 격으로, 제6공화국 대통령제의 극복 방향을 정리하고 싶다. 일단 현실의 여러 난점은 무시한 채로 현재 우리 상황에 가장 부합한다 생각되는 새 정부 형태를 제시하겠다. 그렇다고 무슨 '이상'적 공화국 상은 아니다. 다만 불평등 위기, 미-중 패권 다툼, 감염병 위기, 기후 위기가 중첩된 복합 거대 위기가 지배할, 최소한 수십 년은 지속될 세월 동안 한국 사회가 시대의 혼란에 적절히 대응할 구체적인 정치적 태세를 제안하는 것뿐이다.

※ 관련 칼럼 바로가기

① '대통령'이란 무엇인가…총통·독재관? 거대한 무위도식자?

② 대통령을 대통령제에서 해방시키자

③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의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의회제 정부로 나아가자

일단 첫 번째 방향은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를 전제로 의회제 정부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내각책임제'라 배워온 사례들처럼,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그 총리가 정부 수반을 맡아야 한다. 총리가 국회에서 선출된다면, 결국 의석 과반수를 점한 다수당 후보가 총리가 되든가 아니면 과반수 지지를 얻도록 복수의 정당들이 합의하여 미는 후보가 총리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제2공화국 시기에만 경험한 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절대적인 전제가 있다.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는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1인2표)를 정착시키는 쪽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고, 아예 스웨덴 등이 실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1인1표)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현행 소선거구제 중심 선거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것이 '절대적 전제'인 이유는 애초에 의회제 정부 요소 강화의 취지가 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강화하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더 다원적인 원내 정당 구도가 들어설 것이다. 그럼 극우파 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껏 주로 승자독식 선거제도 탓에 제도정치 진출이 억압됐던 녹색 정당이나 소수자 대변 세력이 원내 정당이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다당 구도를 전제로 경쟁과 제휴를 병행하는 정치에 적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총리를 선출하려면, 원내 정당들 간 합종연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구성된 내각은 현재 한국의 대통령제 아래에서 국무회의가 보이는 모습에 비해 훨씬 더 정책적 선명성을 강조하고 분명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 체제에서 양대 정당은 대선이나 총선에서 내건 정책을 선거만 끝나면 곧바로 폐기하고 정책 주도권을 고위 관료들에게 넘겨 버린다. 정책을 통한 대표성 확보와 정치적 책임성의 실현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한 양대 정당의 끝없는 권력 게임만이 중요한 탓이다.

그러나 원내 다당 구도에 바탕을 둔 의회제 성격의 성부는 그럴 수 없다. 많은 경우 연립정부 형태를 띠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총리 신임 투표에서 충분한 표를 얻으려면 특정 야당들과 최소한 정책 합의 정도는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 정당이 표방하는 정책을 매개로 의회와 정부를 넘나드는 정치 활동이 펼쳐지며, 이게 충분히 활성화된다면 적어도 현재 한국 상황에 비해서는 의회가 관료 기구보다 위에 서서 이를 끌고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증명하는 여러 사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각국의 기후 위기 대응에서 나타나는 현저한 차이를 주목할 만하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기후 위기 대응에서 앞서가는 이유는 다른 사회적 요소들 외에도 원내의 범녹색 정치 세력이 끊임없이 정책적 영향력을 펼치기 때문이다.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를 통해 원내에 진출한 이들 세력은 비록 원내 지분은 크지 않더라도 경쟁과 연합을 병행하는 정치 행위를 통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극적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이 계속 추진되게 만든다.

반면에 미국식 대통령제나 영국 같은 양당 구도 아래에서의 의회제 정부는 대체로 기후 위기 대응에서 뒤처지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 같은 정책은 원내 양대 정당이나 대선에서 격돌하는 양대 진영의 관심사 목록에서 맨 뒤에 놓이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 한국도 바로 이런 상태다.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청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온다와 함께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치는 총리가, 국제 관계는 대통령이

하지만 이전 칼럼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직의 역사와 핀란드 경험을 짚어보며 주장했듯이,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의회제 정부 요소를 강화하더라도, 대안으로는 순수 내각책임제보다는 이원집정부제가 적절하다. 특히 핀란드처럼 대통령에게 헌법상 분명한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 그것은 험난한 국제 정세를 헤쳐 나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외교와 국방을 책임지는 일이다.

즉, 핀란드처럼, 내치는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맡되, 국제 관계와 관련된 임무는 대통령이 맡는 체계가 바람직하다. 외교,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는 원내 정당(들)이 구성하고 총리가 지휘하는 내각이 전담한다. 반면에 외교, 국방 영역에서는 대통령이 내각과 협의하면서 최종 책임을 진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운명상 이 임무만으로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하루하루를 분주히 보내야 할 것이며,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분업이 헌법 문구처럼 깔끔하게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도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지금도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긴장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점 없는 최종 해법 같은 게 아니다. 설령 새로운 결점을 동반하더라도 현행 대통령제에 비해서는 21세기 한국 현실과 더 잘 어울릴 구체적 해법이 필요하며, 나는 그것이 핀란드와 유사한 이원집정부제라 생각한다.

이 경우 대통령 선출 방식은 당연히 직접 선거여야 한다. 또한 제6공화국 대통령 선출 방식과는 달리 결선투표제를 수반해야 한다.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만 대통령에 당선되게 하는 것이다. 혼돈의 지구 정치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책임지는 막중한 직책이니 이런 선출 방식이 합당하다.

대통령의 주된 임무가 대외 관계이니만큼 대선은 이에 초점을 맞춘 대중적 논쟁의 장이 될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가 생존과 직결되는 나라이므로 몇 년에 한 번씩 시민들이 이런 기회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더구나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대외 관계를 중심으로 정당 간 연합이 형성되고 시민사회 내에서 다수파 연합이 가려지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총선과 대선이 각각 중심 주제를 달리 하는 정치적 연합 형성의 계기가 될 것이다. 총선과 이후 내각 구성 과정에서는 국내 문제를 중심으로 대립 전선과 논쟁 지점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시민사회와 제도정치를 가로지르는 연합들이 형성된다. 한편 결선투표를 동반한 대선에서는 대외 관계를 중심으로 역시 대립선과 쟁점이 만들어지고, 또 이에 바탕을 둔 정당 간 연합들, 더 나아가 대중적 연합들이 형성된다.

물론 국내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연합들과 대외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연합들이 전혀 별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는 일정 수준의 개혁에 공감하는 세력들이 외교, 국방에서는 대외 동맹의 중심축을 다르게 상정할 수도 있다. 내가 제안하는 정치 체제에서는 국내 문제와 대외 문제 사이의 이런 상대적 독자성이 일정하게 보장된다. 둘을 뒤섞지 않고 각 영역의 특성에 맞게 다층적인 정치적 대립-연합이 전개된다.

이를 현재 한국 정치 상황과 비교해보자. 제6공화국의 대선에서는 국내 쟁점과 대외 문제가 뒤섞인 채 유권자의 선택이 이뤄진다. 올해 대선 같은 경우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주된 쟁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에 실망과 염증을 느끼며 반대편 거대 정당에 던진 표는 고스란히 이 정당의 외교, 국방 정책 기조에 대한 찬성으로도 계산됐다.

그렇다고 이 정책들에 관한 토론이 진지하고 활발하게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단지 국내 정치 문제에서 한 편이면 대외 정책 지향에서도 같은 편이라는 전제만이 작동했을 뿐이다. 지도상의 위치만으로도 위태로운 이 공화국의 운명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정치 규칙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제안한 새로운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 이런 위험을 차단한다. 순전히 대외 관계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정치적 장이 보장되며, 정확하게 이에 대한 능력과 책임성을 중심으로 선택된 인물이 최고 책임자 역할을 맡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에게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 우크라이나 군인과 소방관들이 지난 5월 1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파괴된 건물을 수색하고 있다. ⓒ AP=연합뉴스AP=연합뉴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해법

현실적 해법이라고는 해도, 여기에 제시한 내용이 당장에 실현되기는 불가능함을 모르지 않는다. 제6공화국 질서가 말기적 상태에 이르렀지만, 대통령제가 오랜 세월 동안 정치 문화와 시민들의 의식 속에 참으로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설령 개헌의 공감대가 커져 새 헌법안이 논의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제가 얼마나 크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부터라도 이런 개혁 방향에 공감하는 이들이 이 내용을 적극 선전하고 설득해가야 한다. 위 내용 중 일부(가령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완화, 총리의 국회 선출, 대외 관계에 집중된 대통령 업무에 관한 전반적 합의)라도 조금씩 실현될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간 세상을 덮치는 혼돈이 점점 가속도를 붙이며 엄습하는데, 이에 대응할 대한민국의 정치 구조는 시대와 너무도 멀찍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벌써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 때문에 '탄핵'이니 '제2의 촛불'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심지어는 광장에 모이기 시작하는 이들까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그런 '촛불'은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고.

대통령을 한 번 더 비상한 방식으로 갈아 치우는 경험은 기껏해야 대한민국의 병을 더욱 깊게 만들 뿐이다. 바꿔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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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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