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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의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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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의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장석준 칼럼] 대통령제 개혁의 방향, 핀란드에서 배운다

한 달 전부터 이 지면을 통해 한국형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재료 삼아 살펴보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추락 기록을 거듭 갱신하며 제6공화국 대통령제의 위신과 신뢰를 한껏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나의 결론 역시 비슷하다. 굳이 말하면, 이원집정부제 쪽에 가깝다. 의회제 정부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역사를 통해 확인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합리적 핵심, 즉 외교와 국방을 맡으며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과 평화, 번영의 좁은 길을 열어가는 대통령직의 의의와 역할이 여전히 크다 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교과서 속 정부 형태들 가운데에는 '이원집정부제'에 닿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너무 건조하거나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과연 한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 구조를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 하나 고르듯 선택할 수 있을까? 다들 어렴풋이나마 그럴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매번 정권의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개헌 논의는 빈번히 출몰해도, 한국형 대통령제가 바뀌기는 결국 불가능할 것이라는 여론이나 정서가 그토록 강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제냐,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냐는 식의 논의 구도는 변화의 물꼬를 열기보다는 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다른 접근법과 전개 방식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을 돌아보며 이 공화국의 독특한 운명에 맞는 정부 구조를 설계해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 사례를 검토할 때에도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식 범주에만 갇히기보다는 그들이 역사 속에서 자기네 나름의 고뇌와 실험을 펼친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경우에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참고 사례는 핀란드라고 생각한다. 흔히 이원집정부제의 전형이라 이야기되는 프랑스가 아니다. 핀란드다. 이 나라는 사회복지나 교육 분야만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권력 체계와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 거리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지난달 24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제 개혁의 훌륭한 참고 사례는 프랑스가 아니라 핀란드

사실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라고는 해도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 2000년에 대통령 임기와 의회 임기를 일치시켜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가 같은 해에 실시되도록 개헌을 한 뒤에는 더욱 그렇다. 반면에 핀란드는 20세기에는 지금의 프랑스처럼 대통령 권한이 강했다가 1999년에 개헌을 통해 의회제 요소를 전보다 강화했다. 일단 이 점에서 프랑스보다는 핀란드 쪽이 우리에게 더 많은 참고가 된다.

그러나 핀란드에 눈길이 가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운명이 프랑스보다는 핀란드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프랑스는 제국주의 강대국의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끈질긴 유산 속에 살고 있다. 이런 나라가 의회제 정부 형태가 상식인 유럽에서 유독 사실상의 대통령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틀림없이 한국 사회에는 낯선 것들일 것이다.

반면에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낀 소국이었다. 스웨덴이 북방의 강자이던 시절에는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 땅에서 각축을 벌였고, 19세기에는 줄곧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누가 봐도 한반도와 대단히 유사한 지정학적 운명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반도 쪽이 훨씬 더 가혹하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는 열강이 넷이나 되지만, 핀란드의 경우는 근대 이후에는 오직 동쪽 강국 러시아가 골칫거리였다.

1919년에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처음 제정한 핀란드 헌법의 권력 구조는 대통령제에 가까웠다. 핀란드는 러시아령이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자치의회를 운영했고, 웬만한 유럽 독립국들보다 이른 1907년에 보통선거로 자치의회 선거를 실시한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의회 중심 정치가 뿌리를 내렸기에 사실 신생 핀란드공화국이 더 친숙하게 느낄 법한 것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회제 정부였다. 이 점에서 핀란드의 정치 문화는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생 핀란드는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직을 도입했다. 대통령 선출 방식은 미국을 본받아 선거인단 선출을 통한 간접선거제도를 채택했지만,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 등을 부여했기 때문에 헌법상 대통령 권한은 미국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헌법 문구로만 놔두지 않고 실제로 행사한다면 쉽게 권위주의 내지는 독재 체제로 전락할 위험마저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핀란드 국민은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기꺼이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었다. 무엇보다도 신생 공화국의 위태로운 지정학적 운명을 우려한 탓이었다. 핀란드는 독립 과정에서 이미 국내 좌우 내전 그리고 이와 복잡하게 얽힌 러시아 혁명정부와의 전쟁을 동시에 치른 바 있었다. 핀란드인들은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이런 숙명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정확히 예감했고, 그래서 통상적인 의회제의 내각보다는 더 안정적인 정부 구조를 바랐다. 그 결과가 바로 미국식과 유럽식이 뒤섞인 독특한 헌정 구조였다.

이런 헌정 구조가 실제로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은 핀란드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유럽 신생국들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핀란드처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폴란드에서는 대통령직이 결국 의회를 압도하는 총통 비슷한 지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달랐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회 중심 정치에 익숙했던 탓인지 헌법 속의 막강한 대통령 권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속 의회 내 정당 분포를 존중하며 주로 연립내각 형태로 구성됐다. 권위주의 통치자가 될 위험이 다분한 전시사령관 출신 대통령까지 등장했음에도 감히 이 전통을 뒤집으려 하지는 않았다. 핀란드에서는 불안하게나마 민주주의의 미묘한 균형이 유지됐다.

그러나 반민주주의로 퇴보하는 유혹에 굴하지 않았던 점만큼이나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소 모호한 헌법 규정들이라는 무대 위에서 핀란드인들이 자기네 운명의 유지와 개척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공화국의 실제 구조를 다듬어왔다는 점이다. 그들이 찾아낸 균형점은 대통령이 공화국의 생존과 직결된 외교와 국방을 전담하고 나머지 내정은 의회가 구성한 내각이 도맡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를 이끈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이런 전통이 굳어졌다. 유호 쿠스티 파시비키(1946년-1956년 재임)와 우르호 칼레바 케코넨(1956년-1982년 재임)이 그들인데, 둘의 재임 기간을 합치면 무려 36년으로 20세기 중반을 꽉 채운다. 이 기간 중에 두 대통령은 소련을 달래고 미국, 서유럽 국가들과 거래하며 중립국가 핀란드의 생존을 보장받았고, 이로써 국내 사회 개혁을 통해 북유럽 복지국가 대열에 합류할 시공간적 여유를 확보했다.

사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 핀란드는 나치 이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국경 문제를 놓고 소련과 단독전쟁을 벌였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파시스트 진영의 동조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전후에 자칫하면 발트해 세 나라들처럼 연합군 진영의 묵인 아래 소련에 편입될 위험까지 있었다. 냉전 시기에 양 진영의 피 말리는 압박 속에서도 이런 비극을 피하고 독립국이자 중립국으로 인정받는다는 난해한 과제를 성공시킨 데는 파시비키와 케코넨, 두 대통령의 공이 컸다.

파시키비와 케코넨 모두 이념상으로는 우파에 속한 정치가들이었다. 파시비키는 정통 보수파인 국민연합당 소속이었고, 케코넨은 중도우파 성향의 농민동맹당(이후 중도당으로 개명)에 속했다. 그럼에도 핀란드 대통령으로서 두 사람은 소련이 핀란드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거두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 두 대통령은 핀란드의 두 좌파 세력 중에 좀 더 온건하지만 소련을 적대시하던 사회민주당보다 친소적인 구 공산당 후신들과 더 가깝게 지내기까지 했다. 대외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거의 서커스 수준의 국내 좌우합작이었던 셈이다.

혹시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 좌우합작과 미국-소련 간 협상에 성공하여 통일 정부가 들어섰다면, 이런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김규식이 초대 대통령을 맡고 여운형이 좌우연립정부의 총리가 되었다면 말이다. 우리의 경우는 이것이 대체역사소설의 소재나 될 순전한 공상의 영역이지만, 핀란드인들은 실제로 이러한 20세기를 살았다.

의회제 정부와 대통령의 역할 분담이 뚜렷한 핀란드 모델

그렇다고 아름다운 일화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대통령과 의회의 역할이 헌법을 통해 분명히 나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을 활용해 원내의 정당 간 정치에도 지나치게 개입하곤 했다. 특히 케코넨 대통령 말기에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졌다.

핀란드인들은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헌정 구조를 개혁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 했다. 1982년에 드디어 케코넨 대통령이 물러나고 그때부터 2012년까지 세 명의 사회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잇달아 재임한 시기에 개혁이 추진됐다. 그 결실로 1999년에 헌법이 개정돼 현재의 핀란드공화국 헌정 구조가 등장했다.

개헌의 커다란 방향은 의회제 정부 요소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의회가 국가 운영의 중심임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대통령 권한은 축소했다. 대통령은 총리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원내 정당들과 협의하여 조기 총선을 선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독단적 의회 해산 가능성을 차단했다. 마찬가지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대통령이 이견이 있더라도 의회가 다시 심의해 법률을 확정하면 대통령이 무조건 이에 따르도록 했다. 어찌 보면 핀란드 대통령도 이탈리아나 독일 대통령처럼 내각책임제 국가의 형식적 국가원수 지위에 가까워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중대한 차이가 있다. 새 헌법은 외교와 국방 분야에서는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최고 책임자임을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국제 관계라는 성난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하는 핀란드호의 선장 역할을 대통령이 계속 맡는다. 비록 항상 정부와 협의해야만 한다는 단서를 달지만 말이다. 헌법 개정 전에는 일종의 관행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내각이 분업을 했다면, 이제는 아예 헌법으로 역할 분담을 정해 놓은 것이다.

또한 대통령 선출 방식도 바꾸었다. 미국을 본 딴 간접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직접선거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결선투표제도 채택하여 반드시 핀란드 국민 절반 이상이 동의하는 인물이 대통령직을 맡게 했다. 외교, 국방의 총책임자가 대통령이기에 대선에서는 무엇보다도, 후보가 핀란드공화국에 가장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인 대외 관계에 대해 어떠한 비전과 능력을 갖췄는지가 주된 판단 근거가 된다.

이리하여 오늘날 핀란드는 이원집정부제라 분류되는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대통령과 총리-내각 사이의 분업이 가장 뚜렷하고 체계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것은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독립뿐만 아니라 발전과 번영까지 쟁취한 한 국민의 고단한 역사 여정에서 나온 경험과 지혜의 산물이다. 이제까지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열린 눈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제도적 배합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뼈대로서 이런 제도적 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 상황, 미래 가능성들에 맞추어 대통령과 국회,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새로운 임무와 배열, 상호 관계와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 핀란드의 현 모델 자체보다도 이 모델에 도달하기까지 핀란드인들이 걸어온 여정에서 영감과 교훈을 얻으며 우리의 길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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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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