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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세브란스병원의 노조파괴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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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세브란스병원의 노조파괴는 반복된다

[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 잔혹사] ③ 세브란스병원 6년의 투쟁, 6년의 연대

세브란스병원의 청소노동자는 오전 4시에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손걸레와 대걸레 4개씩을 빨아 청소를 시작한다.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휴지통을 비우고, 바닥과 책상 등을 닦고서 마른 걸레질을 한다. 이어 공용 화장실에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세제를 뿌려 바닥과 거울을 닦는다. 걸레를 담가둔 통 때문에 세제 냄새가 진동하는 두 평 남짓한 전용 휴게실에서,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고 커피도 한 잔 마신다. 그렇게 일하고 퇴근하면 오후 5시, 파김치가 된 몸으로 집 안 정리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 금방 잘 준비해야 한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 공용 휴게실은 일자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할 만큼 좁았다. 당시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변하지 않고 최저임금이었다. 휴일은 한 달에 겨우 이틀에 불과했다. 관리자를 만나면 90도로 깍듯이 인사해야 했다.

중환자실을 담당하던 한 청소노동자는 환자가 숨져 나간 자리를 청소하다 버려진 수술용 칼에 손을 찔렸다. 알지 못할 감염의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1층이 응급실이었지만, 그 노동자는 병원과 용역회사의 요구로 가까운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았다. 용역회사는 병원과의 다음 계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노동자를 질책하기까지 했다.

청소노동자는 가정용보다 훨씬 강한 강산성 변기세정제와 강염기성 세제를 늘 사용하며 일했다. 강염기성 세제인 락스에 포함된 차아염소산나트륨을 다량 흡입하면 기도 화상, 구역질, 호흡곤란이 일어나고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증이 생긴다. 18층 소화기내과에서 일하는 또 다른 한 청소노동자는 변기세정제를 사용한 뒤 팔에 두드러기가 났고, '피부염' 진단을 받았다.

이런 열악한 노동의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서,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금 얘기되는 것은 수면에 드러난 일부일 뿐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엔 알지 못했고, 인식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그렇게 노동조합을 통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 2017년 3월 13일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입장문에서 일부 수정 발췌 -

집단 탈퇴서와 공짜 밥

2016년 학기 말,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대거 가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에 이어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구나."

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조설립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범식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소식이 들렸다. 민주노조에 가입하기로 했던 사람들 수십 명의 집단 탈퇴서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 탈퇴서는 의심쩍었다. 그 탈퇴서는 마치 서명 용지처럼, 맨 앞장에 탈퇴한다는 문서가 적혀있고 그 뒤로 여러 사람의 이름과 사인만 나열돼있는 문서였다. 누군가가 그 종이를 들고 다니며 여러 사람에게 서명받아 제출한 것이 분명한 문서였다. 조직적으로 탈퇴를 진행한 것이다. 

집단 탈퇴서는 세브란스병원 사무팀 번호의 팩스로 보내졌다. 아니, 청소노동자가 일하다 말고 사무팀 팩스를 빌려 탈퇴서를 보냈단 말인가? 잠시라도 일을 멈추거나 계단에 앉아있는 것조차 관리자들이 못하게 해 늘 가슴 졸이며 일했다는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정말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2016년 7월 8일, 서울지부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들을 안정시키고 탈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오전 9시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방문하려 했다. 그런데 청소노동자 휴게실 입구는 보안용역 업체 직원들이 와서 못 들어가게 막고 있었다.

▲왼쪽 끝에 있는 주차장의 회색 철문이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이었다. 그 앞을 보안직원들이 나와 일렬로 서서 막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당시 세브란스병원 사무처장은 현장에 와서 "내가 막으라고 시켰다"라며 당당히 얘기했다. 무슨 근거로 막냐고 항의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한편 그날 청소노동자들은 일하며 처음으로 '아침식사'를 병원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사무팀에서 아침 식사를 돌렸어요. 제가 갔어요. (...) 여기 사인하고 밥을 먹으래요. 딱 봤더니 업무과에요. (...) 꽁짜로 사준대. 적고서 밥 먹으래서. 그래서 "저는 공짜 밥 안 먹습니다"하고 돈 내고 먹었어요. (...) 밥을 갖고 와서 먹는데, (동료들한테) "그 밥을 그렇게 먹고 싶냐"고, "그 뜻을 알고 먹으라"고 그랬어요. (...) 식당이 두 군데래요. 제중관 종합관. 사무팀에 있는 분이 "여사님들 열 시까지에요. 밥 여기서 천천히 먹고 열시까지 가라"고 한거예요.

- 2016년 7월 8일 간담회 녹취록에서 조합원 발언 발췌

주차장 옆 좁은 휴게실에서 아침을 먹던 청소노동자들에게 그동안 한 번도 대접하지 않던 '공짜밥'을 주고, '천천히' 먹고 10시까지 가라고 강조하며, 동시간 휴게실에 보안용역직원을 세워놓은 이유가 도대체 뭘까. 

검찰 압수수색으로 15개의 노조파괴 대응 문건이 밝혀진 지금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에도, 사건을 눈앞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에겐 그 공짜밥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명백한 일이었다. 다만 발뺌하는 철면피들의 입을 다물게 하지 못했을 뿐이다.

'악마의 디테일'을 가진 노조파괴

세브란스병원은 작은 일에도 온갖 트집을 잡아 시말서를 쓰게 했다. 한 조합원은 대기시간 몇 분 사이에 사과와 커피를 잠깐 먹었다고 시말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10일 뒤 "병동에서 화장실 냄새가 난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며, 다시 한번 시말서를 썼다. 그런데 컴플레인을 했다는 사람의 번호로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자신은 그런 (컴플레인을 한) 적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상한 컴플레인이었다.

또 한 조합원은 받은 적도 없는 분리수거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정직하게 얘기한 게 '업체 이미지 훼손'이라며 시말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청소노동자 개인에게 불가항력적인 일을 트집잡아 징계사유를 만들기도 했다. 한 조합원은 색소 때문에 청소해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경고받을 뻔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누적된 징계는 전환배치의 근거로 이용됐다. 업체는 민주노조 조합원들만 골라서 정해진 구역 없이 돌아다니며 일하는 '유동'으로 배치했다. '유동'은 늘 청소구역이 바뀌기 때문에 가장 힘든 자리인데, 원래는 신규입사자가 자기 구역을 배정받아 일하기 전에 잠시 거쳐 가는 자리였다. 몇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을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유동'으로 전환배치됐다.

당시 조합원 중 한 명은 5년 동안 문제없이 5층 수술실에서 일을 해왔는데, 갑자기 15층 병동으로 전환배치가 되더니, 3개월 뒤엔 '유동'으로 전환배치가 됐다. 한때 반장직을 맡을 만큼 업체도 능력을 인정해주는 베테랑이었던 노동자였다. 그러나 조합활동을 열심히 하자 초보자가 가는 '유동'으로 전환배치된 것이다.

이 같은 지속적인 괴롭힘 때문에 조합원 몇 명이 노조를 탈퇴다. 당시 현장조합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비조합원들에게는 징계를 주기 위해 트집을 잡고 감시하던 행위가 중단됐다고 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뻔히 보이는 이런 노조파괴 행위를 용역업체는 '증거있냐'는 뻔뻔한 대답을 하며 끊임없이 자행했다.

'증거있냐'던 병원과 용역업체

어느 날은 용역업체 사무실에 처음 항의방문을 하러 갔다. 정확히 뭘 따지러 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당시 행해진 수많은 노조파괴 행위 중 어떤 것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우리의 항의에 용역업체 관리자는 업무방해 주거침입이라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당장 너무나 명백한 노조파괴의 정황을 매일매일 목격하면서도 "증거있냐"며 뻔뻔하게 경찰을 부르는 관리자를 제압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분이 났다.

당시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점심 선전전을 할 때마다 보안직원들이 나와서 안내문을 부착했다. 그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적혀있었다.

"세브란스병원 환경미화원의 처우는 대한민국 종합병원 중 최고 수준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을 찾아주신 환자와 보호자, 내원객 여러분께서는 시위를 벌이는 자들의 주장에 현혹됨이 없으시기를 당부드리며..."

▲2017년에 병원 로비에서 점심선전전을 진행하던 모습이다. ⓒ양동민

하루는 세브란스병원을 응원하는 학생들의 지지메세지를 받아 세브란스병원 곳곳에 게시하고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그런데 같이 유인물을 나눠주던 연세대 학생이 찾아와 황당한 얘기를 들려줬다. 병원 수납업무를 보던 직원이 무슨 일인지 묻는 내원객에게 "저 사람들 민주노총에서 고용한 사람들인데, 연세대 학생인 척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수납 직원은 정말로 그렇게 믿는 듯했다. 서로가 너무나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당시 가장 힘이 빠졌던 일은 따로 있었다. 용역업체는 온갖 일에 트집을 잡아 시말서를 쓰게 했다. 한 조합원에게는 시말서 세 번을 썼다며 계약만료 후 재계약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해고통보를 했다. 한때 회사에서 업무능력을 인정해 반장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항의도 하고 선전전도 하고 했지만, 결국 해고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그 조합원은 2017년 봄날, 세브란스병원에서 해고됐다. 억울한 이유로 해고되는 조합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고, 분했다.

▲2017년 당시 연세대 학생들로부터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연대메세지를 모으는 활동을 했다. ⓒ양동민

우리의 마음이 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병원 로비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어졌다. 세브란스병원은 노골적인 노조파괴 행위를 하며 뻔뻔하게 '그런 적 없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증거를 수집하고 증언을 모으고 사람들에게 알리려 노력해도 현장에서의 괴롭힘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무력함을 느꼈고, 지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세브란스병원 조합원들을 두고, 2017년 말 군대로 도망갔다.

솔직히 나는 당시에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더 이상 투쟁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내가 군대에 도망가 있는 동안에도, 조합원들은 소수노조로 온갖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노동조합을 지켜냈다. 여전히 바뀌지 않은 고되고 위험하고 인권을 박탈당한 일터를 바꾸고자 투쟁하고 있었고, 노조파괴 문건이 세상에 밝혀지게 했다. 노조파괴 주장이 '허위사실 명예훼손'이라며 노조를 고소하던 병원이 노조파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직 사과는 못 받아냈지만 뻔뻔하던 그 입을 다물게 했다.

'6년의 투쟁, 6년의 연대'라는 제목의 글이지만 내가 함께 투쟁한 기간은 사실 6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6년이란 호칭을 달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6년의 시간 동안 버티며 싸워온 이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서 배웠다. 앞으로도 어쩌면 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그리고 청소노동자의 비인간적인 일터를 바꿔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6년간 투쟁해온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자 한다. 우리의 마음이 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 마음이 축적되다 보면 결국 언젠가 병원을 바꿔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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