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은."
유성기업의 끔찍한 노조파괴, 그 한가운데를 살아낸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지옥의 모습은 다양했다.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현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기초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금지되었다. 일상적인 감시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화장실에서조차 관리자들의 눈총을 견디며 용변을 봐야 했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에게만 징계가 남발되었고 임금삭감, 해고가 뒤따랐다. 무차별적인 고소고발로 생전 처음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법원의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우편함을 열어보는 시간이 공포스러워졌다. 일상이 그렇게 차근차근 무너져갔다.
노동조합의 요구가 대체 무엇이었기에 회사는 이토록 노동조합을 탄압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밤에는 잠을 자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야간노동이 노동자들을 돌연사하게 만들고, 산재의 위험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2년 사이, 야간노동으로 동료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적어도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절박함이었다. 이 요구를 묵살하기 위해 회사는 직장폐쇄를 하고,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로 조합원들을 폭행했으며 고소고발과 징계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통한 노조파괴로 노동자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그 유명한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원청 현대차의 노조파괴 공작 10년, 26.8%의 노동자가 아직도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두 발을 디딜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느낀 두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지옥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다. 침대 위며 바닥이 피투성이인 수술실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 피를 닦는 청소노동자들의 모습. 알려지지 않아 상상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또 다른 지옥의 한 장면이다. 민주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수술실에서만 5년째 일하고 있는 A씨는 현장에 대해 묻자 손사레부터 쳤다.
피 뿐만이 아니다. 수술을 하며 흘러나온 온갖 종류의 오물들을 치우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단 3분이다. 장기이식 수술처럼 10시간이 넘도록 진행되는 장시간 수술의 경우에만 5분이 주어진다. 장시간 수술의 경우 환자가 피를 많이 흘리기 때문에 치운 오물들을 모두 모으면 가장 큰 사이즈의 폐기물 박스가 열두세개씩 나오기 때문이다. 수술 중 흐른 피를 담은 석션 통이 10개나 나오는 때도 있다. 짐작하기도 어려운 이 엄청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투입되는 인원은 고작 두 명이다.
3분 만에 청소를 완료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락스부터 붓는다. 몸에 피와 오물, 독한 락스가 범벅이 되는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바닥에 붙어 앉아 흥건한 락스와 범벅이 된 피를 걸레로 다 닦아내고, 침대 시트를 걷어내고, 벽이나 수술 기구에 튄 피며 오물들도 모두 닦아낸다. 수술을 할 때 환자가 흘리는 피 등을 받아놓는 석션 통 역시 청소노동자들이 비운다. 그리고 문 옆에 던져둔 수술 도중에 쓴 장갑이며 쓰레기들까지 치워야 모든 작업이 끝난다.
그렇게 하루 동안 9명의 노동자가 처리해야 하는 수술 건수는 100건이다. 수술실 청소노동자들은 5시 30분 출근부터 아침 내내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다. 만보기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만보를 넘긴다.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유해물질과 감염물질로 병드는 노동자들
온 몸에 피와 락스가 흥건한 채 수술실을 나온 노동자들은 피와 쓰레기, 락스가 폐기, 보관되는 공간에서 종일을 보낸다. 다음 수술을 기다리는 대기실이자 휴게실인 셈이다. 그러나 말만 휴게실이지 휴게실이 아니다. 그 공간은 피거품이 끓는 개수대와 감염박스, 뚜껑도 없는 락스통 네다섯개, 락스물에 담긴 걸레 등이 가득한 창고다. 석션 통에 가득 담긴 피를 버리는 개수대 역시 그 공간에 있다. 고강도의 노동을 견딘 노동자들은 피 냄새와 락스냄새가 뒤섞인 그 공간에서 온갖 종류의 오염물질들과 함께 종일을 보낸다. A 씨도 처음에는 그 냄새들 때문에 두통이 심했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어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락스'를 쓰도록 한다고 했다. 종일 락스 냄새를 맡고 흡입했다. 락스를 부어 닦고, 락스를 뿌려서 닦고, 락스에 담갔다 닦는다. 그도 모자라 휴게실에도 락스 냄새로 가득하다. 가끔씩 방문하는 관리자가 이게 무슨 냄새냐라고 이야기 할 정도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렇게 응수한다.
A씨는 함께 일을 하던 사람들 중 이상하게 아팠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세상을 떠난 동료들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그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유독물질과 감염물질에 노출된 것과의 연관성을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락스는 중독사고도 발생하는 유해한 물질이 포함된 세제다. 실제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던 급식실 노동자가 락스 중독으로 쓰러져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렇듯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제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공간에서 종일을 보내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출된 위험은 이 뿐만 아니다. 노동자들이 청소하는 공간에 머물렀던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정보는 의료진들만 알 뿐, 청소노동자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빨리 치우라"는 명령만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그 물질들이 어떤 위험을 가진 줄 알지 못한 채로 단 몇 분 만에 그것들을 전부 닦고 쓸고 나와야 한다.
아파서 그만두는 이, 일하다 다쳐서 그만두는 이,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회사가 수술실 청소노동자들에게 주는 위험수당은 고작 한 달에 4만 원이었다.
"민노를 죽이려고" 자행된 자리 이동
이런 일터의 '끔찍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6년 전 민주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노조파괴의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이동'을 선택했다.
고강도 노동을 견뎌야 하는 수술실에는 지난 6년, 민주노조 조합원만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현재 수술실 오전조는 전원 민주노조 조합원이다. 또 다른 전쟁터, 응급실도 마찬가지다. 근골격계 질환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쓰레기 분류 및 수거 작업, 감염 박스 수거 작업에도 민주노조 조합원이 집중 배치되었다. 감염박스는 한 박스 당 200kg까지 나간다. 감염 박스를 나르는 차 한 대당 감염박스 24개가 실리는데, 하루 20차 정도를 채워 내보내야 한다. 감염박스 이동 작업에 배치되어 일을 그만두거나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들도 있었다. 쓰레기 수거 작업도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150kg에 육박하는 쓰레기를 1500L짜리 카트에 천장이 닿을 정도로 실어 하루 15회~20회 운반해야 하는 엄청난 강도의 노동이다. 그리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담당 구역이 없이 힘든 구역을 떠돌도록 하는 '유동'으로 돌리거나 다른 곳보다 월급이 현저하게 적은 종합관 등으로 배치시켰다. 모두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업무들에만 민주노조 조합원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실제로 용역업체 태가비엠 소속의 세브란스병원 전 현장소장은 회사가 "민노를 죽이려고" 자리이동을 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리이동은 노동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관리자들은 공공연하게 자리 이동하기 싫으면 노조를 탈퇴하라 종용했다. 자리 이동 여부가 발표되는 매월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게 두려워졌다.
현장을 지옥으로 만드는 전략적 괴롭힘
회사는 현장 반장들을 앞세워 조합원들 한 명 한 명을 탈퇴시켰다. 주로 사용된 전략은 '괴롭힘'이었다. 걸레질이 덜 됐다는 이유로 전화를 하며 닦달을 하는 통에 식당에서 밥을 받자마자 숟가락을 그대로 두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던 날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떡이나 커피를 마셨다고 시말서를 쓰게 했다. 근무시간에 1분 늦었다는 이유, 청소가 미흡하다는 이유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징계를 남발했다. 일상적인 감시와 협박으로 노동자들은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민주노총 노조 탈퇴 종용이 끈질기게 지속되었고, 조합원들은 이를 견디다 못해 노조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140명이었던 노조 조합원이 30명까지 줄었다. 나중에 노동부 수사를 통해 이미 원하청이 노조파괴를 위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었음을, 이러한 탈퇴 공작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노동부의 늦장 수사로 회사는 대부분의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었지만, 나중에 밝혀진 문건들만 해도 노조파괴 공작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들이었다. 세브란스병원과 하청업체 태가비엠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최소 15개 이상의 노조파괴 문건을 만들고 수차례의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가비엠은 근무인원, 작업내용, 휴무자 명단 등을 정리한 업무일지를 매일 작성하여 원청인 세브란스병원 사무팀에 보고하여 결제를 받아왔다. 세브란스병원은 제출된 업무일지에 특이사항을 기입하여 다시 태가비엠에 업무를 지시했고, 원하청이 노조파괴를 위해 긴밀하게 협조해온 기록들도 나열되어 있다. 위 내용들은 그 업무일지에 기록된 보고·지시 사항들 중 일부이다. '노노대응 유도바란다'는 업무지시 아래에는 '명심하겠다'는 답변이 적혀 있다.
또한 어용노조에 노조회비를 지원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2021년 5월, 검찰의 기소로 이 내용들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그간 문제가 되어온 원하청의 노조파괴 공모, 집단탈퇴 종용, 출범식 저지, 운영비 지원 등이 모두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은 민주노총 노조 조합원들의 조합 가입 성향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노조 탈퇴 전략을 세우고 실행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자료를 통해 비로소 드러났다.
2016년 진행된 '유성기업 노동자 괴롭힘 및 가학적 노무관리 양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가운데 업무관련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조합원이 63.7%에 이르렀다.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서도 세브란스병원의 측정치는 평균치인 2.2를 크게 상회하는 4로 나타났고, 특히 노조참여 불이익이 모든 기관 통틀어 1위였다. 이렇듯 현장과 당사자들만 다를 뿐,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와 세브란스병원의 노조파괴 양상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자본의 야만에 균열을 내는 청소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2016년 7월, 조종수 씨는 노조 출범식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아침 노동자들을 대강당에 모아놓고, 병원 직원까지 와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하나로 뭉치자는 이야기를 했다. 아침까지 대접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퇴근 전, 병원과 하청업체는 갑자기 노동자들을 대강당에 모아놓고 문을 잠궈버렸다. 그날 4시, 출범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날, 노동자들은 그 강당을 박차고 나와 출범식에 함께 했다. 처음, 회사에 대항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낸 날이었다.
조종수 씨는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현재까지 5년 2개월 동안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인 쓰레기 수거 업무를 하고 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악취도 심해 고정적으로 이 일을 오래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버티기 힘들어 해서 회사도 1년 정도가 지나면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를 해줬다. 그러나 분회장에게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는 모욕을 주며 업무를 바꿔주지 않았다.
원래 조종수 씨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은 너무 고된데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소장 갑질도 한몫했다. 소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려가 30분간 욕을 먹어야 했다. 너무 먼 거리에 있어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퇴사를 결심하고 현장 곳곳에 대한 사진을 찍어두었다. 일을 그만두면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라도 알리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노조가 생긴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제 노동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는 노조에 가입한 네 번째 조합원이 되었다. 그리고 6년간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2021년 5월, 민주노조를 설립한 지 5년 만에 세브란스병원과 용역업체 (주)태가비엠 관계자들이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었다. 형사재판이 진행된 지 300일이 되었지만, 세브란스병원은 사과도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파괴 공모 업체이며 현재까지 민주노조 조합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면서 괴롭힘을 자행하는 악질 용역업체 태가비엠과 재계약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작년 11월,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조종수 씨는 올해 정년을 맞는다. A씨도 역시 올해가 정년이다. A씨는 말한다.
조종수 씨는 세브란스병원이 '사죄'하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유성기업은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했을 때, 조합원들에게 "나는 개다"를 복창하게 했던 회사다. 자본가들의 본심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사람이길 원치 않는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은 바로 이러한 자본의 야만에 균열을 내고 있다. 노조 파괴에 맞선 그들의 '인간 선언'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지옥같은 현장을 바꾸기 위한 6년의 시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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