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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국적의 이 레즈비언 부부가 사는 법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2] ④ 김규진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저자

지난여름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라는 이름으로 10편의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모아보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진행되고 있을 시점이었다. "누구도 차별당하면 안 된다." 이 당연한 명제를 실현하는 법안에 시민 대부분도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에 관한 이야기는 '성소수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연재는 15년째 반복되는 이 물음에서 더 나아가고자 한 시도였다. "성소수자는 어떤 차별을 당해요?"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가 '사회문제'라고 부르는 것들을 '차별'로 설명하고자 했다. 디지털 성범죄, 죽음과 장례, 직장 내 괴롭힘, 높은 부동산 가격과 주거권. 우리가 겪는 일들, 혹은 너무나 평범해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일들. 그러나 각각 별개로 보이는 영역의 활동가, 당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차별구조에 관해 사회가 고민할 것이고, 이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이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다. 그리고 2022년 오늘날까지, 우리는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국회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차별금지 사유에 넣을 것이냐"에 묶여있다. 이걸 '사회적 합의'라고 했다. 선거를 앞둔 지금은 '민감한 이슈'라고 한다.

<프레시안>이 다시 차별의 평범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엔 누군가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이야기한다. 매 순간의 긴장, 중요한 순간에 주어지는 선택권의 제약. "누가 어떤 차별을 당하는가"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2>

①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지은 씨 "미투 이후의 삶,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바로가기)

② 강원도 왕진의사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 "차별금지법, 노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세상" (☞바로가기)

③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공정'은 '당장' 원하면서 '차별금지'는 왜 항상 '다음에'인가(☞바로가기)

▲화상 인터뷰 중인 김규진 작가. ⓒ프레시안(조성은)

32살의 8년 차 회사원. 소비자마케터로 커리어를 쌓은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부터 프랑스 주재원으로 있다.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퇴근하고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고, 집안일을 좀 하다가 소셜미디어를 훑는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도 좀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한국에 있는 아내와 전화를 하고 나면 평범한 일상 하나가 지나간다. 남편은 아니고 그 역시 아내라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할까.

한국 국적의 유부녀 레즈비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 김규진 씨다.

프레시안 : 2019년에 결혼하고 아직 신혼이네요. 부인과 떨어져 있기 힘들 것 같아요. 또 홀로 프랑스에 간다고 했을 때 부인의 반대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규진 : "당연히 힘들죠. 그렇지만 저보다는 아내가 더 힘들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새로운 환경에 왔으니까, 생기는 수많은 새로운 고민 중에 외로움이 한가지일 뿐인데 아내는 아니잖아요. 삶은 똑같은데 저만 사라진 거니까요. 그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래서 원래는 제가 주재하는 동안에 아내가 올 예정이 없었는데, 좀 힘들었던지 와서 1년 정도 휴직하고 와서 쉬고 가겠다고 하네요. (웃음)

아내가 반대하진 않았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얘기하고 양해를 구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올 수 있었던 거고요. 또 아내가 저를 배우자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야망 있는 사람이 좋아서'라고 하더라고요. 야망 6, 가정 4 정도의 비율을 가진 사람이 좋다고요. (웃음) 어쨌든 커리어가 잘 풀려서 가는 거라 많이 축하해줬어요."

적성, 커리어, 연봉, 그리고…

프레시안 : 직업이 소비자마케터예요. 마케팅 분야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울 것 같은 인식이 있는데요. 직업, 또는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김규진 : "지금의 직장은 말씀드렸다시피 운도 좋고 능력도 좋아서요. (웃음) 해외 본사에 주재원으로 파견 나오게 됐어요. 선택한 이유는 다들 고려하는 연봉 수준, 직무 적성, 그리고 커리어에 대한 계획도 있죠. 여기에 제가 추가로 본 게 문화의 유연성이에요. '퀴어프렌들리'까지는 바라지 않았어요. 특히나 한국 회사에서는요. 그냥 '커밍아웃했을 때 문제가 없는 수준 정도만 돼도 좋겠다'였어요.

한국에서 인턴을 네 군데 회사에서 했거든요. 굉장히 경직된 회사도 다녔고, 반대로 대단히 자유로운 회사도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문화의 유연성을 판단하는 기준점을 잡기 편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유연한 분위기였지만 프랑스 본사는 아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레즈비언이 희귀한 존재는 전혀 아니에요. 다른 문화권에 와서 그런지 그런 편안함이 있었어요."

프레시안 : 경직된 조직문화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김규진 : "두 군데가 그랬어요. 한 군데는 외국계 회사인데 굉장히 보수적이고 경직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인턴 당시 사수에게 커밍아웃하니까, 그분이 동공이 흔들릴 정도로 정말 당황하더라고요. 그냥 '어?'도 아니고 '어, 어? 뭐라고? 그, 그래...' 이런 거 있잖아요. (웃음) 못 들을 것 들었다는 식. 저도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러곤 그 뒤론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회사 분위기 자체도, 나잇대도 높았고요. '외국계 회사'라고 생각하면 흔히 느끼는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완전 반대였죠.

그리고 다른 회사는 국내 대기업이었어요. 나름 젊은 연령의 사람들이 있는 팀이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퀴어가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 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한 번은 회식 중 어쩌다 성소수자 얘기가 나왔는데, 팀원들이 '우리 회사가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라고 하더라고요. 그 회사는 공채에 붙었지만, 그래서 가지 않았어요. 재밌는 건, 그때 저랑 맨날 엮던 신입사원 남자분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 여성이었어요. 그때는 본인도 정체화하기 전이었죠. 성소수자 인권 관련한 활동을 하다 그분을 다시 만났어요. 지금 그분은 트랜지션 중이고 드랙퀸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다들 그래서 '그 회사가 엄청난 다양성을 놓쳤다' 이런 얘기를 하죠. (웃음)

반면 지금 회사는 입사하고 커밍아웃했을 때 그냥 '그래?' 그렇게 끝났어요. 개인의 일은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는 느낌으로요. 조직 자체가 그것에 대해 의견이 있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의 유연성이 있었어요. 뭐 '사람 바이 사람'이겠지만요."

프레시안 : 첫 직장의 사수가 엄청 당황하면서 그 후로 언급을 안 했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언급을 안 하는 게 성소수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규진 : "그렇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지만 사실 저는 변명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직장에서는요. 물론 회사에 놀러 오는 건 아니죠. 공적인 공간이고요. 그렇지만 이성애자는 동료들과 연애 얘기 절대 안 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동성애자는 연애 얘기를 못 한다', '동성애자의 연애는 민감하니 언급해선 안 된다.' 이건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이성애자, 그러니까 비동성애자 보다 동성애자에게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거잖아요. 동성애자에게만 유독 연애이야기 같은 것이 '프로페셔널하지 못함'으로 치부되는 것도요."

"남들 다 하는 거, 내가 못 할 이유가?"

프레시안 : 2020년에 종로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냈어요. 불수리 됐지만요. 갈 때 불수리 될 거 알면서 갔을 텐데 특별히 이유가 있었나요? 또 불수리 통지를 받았을 때는 어땠나요?

김규진 :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제가 혼인신고를 하러 가는 게 유튜브, 다큐멘터리로도 나왔고요. 첫째는 법적 증거를 만들고 싶었죠. 한국은 법 자체에 소송 걸 수 없어요. 어떤 법으로 제가 피해를 받아서 그 증거가 있어야만 거기에 대한 소송을 걸 수 있게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동성혼 법제화가 안 돼 있어서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대신 혼인신고를 했다가 기각당해서, 기각당한 건 부당하다는 증빙이 있어야 하는 거죠. 혹시 모르니까 그걸 마련하는 차원에서 혼인신고하러 간 것도 있고요.

두 번째는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레즈비언도 결혼하고 싶어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아예 동성애자에겐 결혼 자체가 있지 않다는 듯이. 그냥 '결혼 안 해도 둘이 잘 살면 되잖아'라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아닌데?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일 마지막으로는 결혼하면 다들 혼인신고하러 가잖아요. 그런데 '나는 못 갈 이유가 뭐가 있지' 싶은 거예요. 주변에 결혼한 퀴어들도, 실제로 법적으로 결혼을 한 퀴어들도 있어요. 미국인이랑 결혼했다든지. 한국에서 차마 혼인신고하러 가지 못해요. 너무 마음 다칠까 봐. 안될 거 알면서 괜히 갔다가 실랑이하고, 나중에 '법적으로 너는 결혼이 안 된다'라는 문서를 받는 걸 두려워해요.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나는 혼인신고하고 싶고, 또 그런 두려움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맷집이 되는 것 같으니까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하길 잘 한 것 같아요."

ⓒ김규진

프레시안 :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받고 나오실 때 부인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김규진 : "저 혼자 갔어요. 평일에 가야 하는데 아내가 평일에 휴가를 내기 어려웠거든요. 혼인신고는 서류만 있으면 혼자 할 수도 있답니다. (웃음) 그 날이 결혼 1주년 기념일이었어요. 일부러 그 날에 했어요. 의미 있는 날이라서. 갔다 왔더니 아내가 잘 했다고, 용기 있었다고 했어요. 괜찮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제가, 기록된 사례로는 최초 '대면 혼인신고'더라고요. 김조광수 감독 이전에 우편신고를 했던 퀴어부부가 한 번 있었고, 김조광수 감독도 우편 신고했고요. 대면은 제가 최초라고 하더라고요.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 수 있죠. 지금 2022년, 제가 혼인신고를 한 2020년에 와서야 최초로 대면 혼인신고를 했다니 말이에요. 그래서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요즘은 결혼 안 하고 사는 이성애 부부도 꽤 있는 것 같아요. 혼인신고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게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규진 :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인 사례에서 가장 느꼈던 건 새벽에 아내가 다쳐서 응급실에 갔을 때예요. 병원에서 '환자와 무슨 관계냐'고 묻는데, 제가 '가족'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병원에서 '무슨 가족이냐'고 하는 거예요. 이게 중요한 게 법적 가족이어야 수술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어요. 법으로 규정된 건 아니고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거지만, 병원에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동의서가 없으면 수술을 안 하려고 하는 거죠. 그 순간이 되니까 저와 아내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예요. 거기서 실감한 거죠. '법적으로 부부가 아닌 게 이런 거구나.'

그리고 혼인신고하기 전,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왔어요. 세관신고서에 동반가족 몇 명 쓰는 란에 저희 둘 다 '0명'. (웃음) 아까 얘기했던 수술실 동의서 못 쓰는 그런 극적인 일도 있지만,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면 살면서 '너희는 가족이 아닌데?'라는 순간을 마주하게 돼요. 그게 상처가 됩니다.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는 건 서류 이상의 의미가 있죠."

"'한국 국적의 유부녀 레즈비언' 입니다"

프레시안 : 블로그,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로 일상을 전하고 있어요.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도 썼고요.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게 많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김규진 : "고민을 했죠.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레즈비언인 걸 알고 있었지만, 주변의 몇십 명이 아는 것과 불특정다수의 몇천, 몇만 명이 아는 건 굉장히 다른 얘기거든요. 고민했는데 '정말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불특정다수가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알았을 때 내 삶이 망가질까?' 안 망할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안 망하는 걸 보여주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잖아요. 또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도 그냥 잘 먹고, 잘 산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 이상한 건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실제로 잘 먹고 잘 살고 있기도 하고요. (웃음)"

프레시안 :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신을 드러내면서 어찌 됐든 '유부녀 레즈비언'이라는 대표성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부담스럽거나 우려하는 부분이 있나요?

김규진 : "드러내고 활동하기 전부터 그런 생각은 했어요. 또 제가 마케터다 보니 파급을 생각하고 기획하잖아요. (웃음)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한다? 어떤 식으로든 대표성을 띨 수밖에 없다고요. 한편으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많이 비장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좀 비장한 사람인데 아내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즐겁고 낙관적이에요. 언니(아내)가 옆에서 큰 힘이 됐어요. 언니가 '규진아, 네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옆에서 이렇게. (웃음) 그럼 전 또 '아 맞다, 맞다. 내가 또 아차차. 내가 뭐라고 아이쿠쿠.' (웃음)"

프레시안 : 얼마나 만나고 결혼하신 거예요? 부인을 보며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한 점이 있었나요?

김규진 : "진짜 얼마 안 만났어요. 프로포즈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하고, 미국에서 혼인신고는 넉 달 만에 했어요. 결혼식은 11개월 만에 했고요.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한, 그런 극적인 계기가 없었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이전 연애에서는 너무 좋으니까 그런 점을 참고 넘어가는 거라 생각했어요. 반면 언니와는 안 맞는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찾기 어려웠어요. 생각이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고 거슬리는 점이 없다고 할까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단점일 수 있지만, 저에겐 큰 단점이라 생각되지 않았고요. 설레면서도 또 같이 있으면 편안한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왠지 결혼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관계를 알 수 없다고 생각도 했어요. 10년 사귀고 결혼해도 이혼하기도 하고요. 여섯 달 만에 결혼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도 있고요. '이 관계는 직접 관계에 돌입하기 전까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리스크를 쥘 것이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걸 충분히 질 만큼의 확률과 사랑이라고 두 달 만에 알 수 있었어요."

ⓒ김규진

프레시안 : 결혼과 가족구성의 이야기를 담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외에도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커밍아웃 꿀팁' 생활정보를 알려주면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스스로 청소년 시절에 레즈비언 성인의 삶을 상상할 수 없어서 어렵거나 고민한 일이 있었나요?

김규진 : "그 당시에 제가 접한 레즈비언 관련 창작물이 다 비극적인 거예요. 그래서 '좀 밝은 얘기는 없나?'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어요. 학교 선배들까지는 동아리를 통해서 알았지만, 그 윗세대는 알 수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고요. '다들 뭐 하고 사는 걸까', '다들 잘 살아있나?', '존재는 하나?' 아무것도 몰라서 구체적인 질문도 하지 못했어요. 고민의 단계까지도 가지 못했죠.

이성애자 친구들이 생각하듯이 커리어라든지 그런 측면의 미래는 상상했어요. 그런데 가족이라든지 구체적인 생활, 이런 쪽으로 가면 구체성을 전혀 띠지 못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원래 길이 있어야 내가 이 길과 맞는지 아닌지 알잖아요. 그냥 흰 도화지를 주면 힘들고. 그래서 제가 저는 롤모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모두에게 공개하면 '아 나는 저건 별로' 아니면 '저것도 괜찮은데?'라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동성애는 죄악이다"라는 가족이 있었다

프레시안 : 커밍아웃할 때 주변에 없는 게 좋지만, 혐오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만약 있다면 커밍아웃 후 그분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김규진 : "당연히 있죠. 저희 외가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에요. 오지에 선교가고 그러는 분들. 친척 모임에선 '동성애자 악마들, 다 지옥에 가야 한다' 이런 얘기를 자주 하셨대요. 저는 몰랐는데 부모님이 굳이 알려주시더라고요. (웃음) 저분들은 안 좋아하니까 입조심하라는 의미였겠죠.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으셨죠.

그런데 보수적인 사람은 가족관계에서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동성애자는 악마이지만 가족을 버리는 것도 악마다.' (웃음) 이 딜레마 속에서 결국 가족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아내와 같이 식사하자고 그러셨어요. 다 알린 이후에 오히려 더 돈독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모들은 아는데 차마 본인 남편에게는 말을 못 하겠는지 이모부들은 몰라요. (웃음) 이모부들은 아직 제가 미혼인 줄 아세요. (웃음)"

프레시안 :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책도 냈고 언론에도 꽤 나왔는데 언젠간 알게 되지 않을까요?

김규진 : "그건 모르겠어요. 미디어가 워낙 많잖아요. 유튜브만 해도 특정 채널 보면 그 비슷한 콘텐츠만 나오고. 그러니 이런 이슈에 굳이 관심이 없다면 모르지 않을까요? (웃음) 아니면 봤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이름도 같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니겠지.' (웃음)"

프레시안 : 어머니도 처음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가요?

김규진 : "엄마가 결혼식에 안 온다고 했을 때 저는 의절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알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의절도 쉽지 않잖아요. 제가 되레 '알았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하니까 한 번씩 '규진아 보고싶다'고 연락해요. (웃음) 지난겨울에 한국에 갔을 때는 아빠가 '엄마 제발 한 번만 만나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웃음) 아빠와는 엄마보다 관계가 좋아서 자주 연락하거든요. 그래서 엄마랑 다시 만나게 됐어요. 엄마가 아내랑 같이 만나자고 해서 언니랑 엄마랑 저랑 남동생이랑 넷이 같이 만났어요. 아주 화기애애한 자리였죠. 엄마가 아내를 치켜세워주면서 저를 까는 그런 모범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웃음)"

프레시안 : 어머니가 아내분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생각은 언제쯤 했나요? 어떤 점에서 그랬나요?

김규진 : "사실 받아들이는 거는 항상, 계속 진행되는 일인 것 같아요. 이성애자 부부도 그렇잖아요. 사위, 며느리 100% 좋아하는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계속 익숙해지려고,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런데 확실히 알게 된 건, 부모님이 '결혼식에 안 간다. 너무 실망이다. 다시는 보지 말자' 이런 얘기를 했을 때도 제가 '알았다'라고 하는 걸 보고 '아 진짜 얘가 새 가정을 꾸리는구나' 하고 실감한 것 같아요. '우리가 무슨 협박을 해도 안 되겠구나.' (웃음)

제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제 성격의 이유도 있지만, 저는 제가 잘못을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확실했죠. 내가 그 어떤 잘못을 하지 않는데도 가족이 나와 멀어지고 싶다면, 멀어지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 나오는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분들이 강조하는 말이 '가족은 버려도 된다. 나쁜 부모는 손절해라. 그래야 네가 산다'잖아요. 본인들도 부모님이면서. (웃음) 저도 마음 한켠에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쿨하게 사이를 끊어내려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좀 더 동등한 관계에서 새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되는 법

프레시안 : 한국사회는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지간을 '천륜'이라고도 하잖아요. 부부는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진짜 부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또 이성애자 부부에게도 "자식이 없으면 어떻게 사냐, 나중엔 다 자식 보고 산다" 이런 말들을 하기도 하는데요, 김규진 작가가 '가족'을 다시 정의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김규진 : "우선 어떤 형태든 공동체라는 걸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나의 행동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알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제가 좀 보수적인 편이거든요. 가족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경제공동체이기 때문에 큰돈을 쓸 때 상의하고 허락을 구한다든지요. 서로가 아플 때 서로를 돌보는 것도요. 상호책임이 생기는 거죠. 법적 책임이 없을지라도 그런 걸 다하는 게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요. 근데 이건 또 어려운 상황을 처하기 전에는 모르는 거겠죠. 지금 저와 아내는 젊고 건강하니까.

재밌는 게 있어요. 법적으로 정의하는 '가족'의 범위를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먼저 배우자와 직계가족이 있죠. 그런데 배우자의 직계가족, 직계가족의 배우자, 이분들은 조건이 붙어요. '생계를 함께 해야한다.' 그 말은 곧 사실 정부도 알고 있다는 거죠. 생활을 함께해야 가족이라는 걸. 그냥 혈연으로만은 안 된다는 걸. 저도 동의해요. 생활을 함께하고 서로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관계가 가족인 거지, 단순히 태어나고, 국가에서 인정했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제1항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편집자

ⓒ김규진

프레시안 : 생계를 함께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로 포기하고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김규진 작가는 그런 점이 있나요?

김규진 : "그런 제약을 원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원하는 게 아닐까요? (웃음) 저와 아내는 둘 다 독립적인 편이에요. '독립적인 두 사람이 합쳤을 때 과연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운 점은 별로 없었어요. 저와 언니가 서로의 행동을 그렇게 제약하려는 편도 아니고, 또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을 만한 행동을 그렇게 원하는 것도 없고요. 가족이 되고 생활이 그렇게 달라진 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예를 들어 혼자 살 때는 집을 잘 안 치워도 나 혼자 더럽고 마는 거니까 괜찮은데 함께 살면 공동 주거공간이니 서로 조금 더 성실하게 관리하게 됐어요. 아, 기준이 다른 건 있어요. 저는 수납을 신경 쓰는 편이에요. 정리정돈이 돼 있어야 하죠. 그런데 아내는 수납보다 눈에 안 보이게 치우는 걸 좀 더 중요하게 여겨요. 일단 넣고 보는 거죠. 그럴 때면 저는 '으악! 그렇게 넣어 두면 안 돼!' 그러고. (웃음) 그런 다른 기준을 맞추며 사는 건 혼자 살 때보다 자유롭지는 않네요.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큰 희생이나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거 이상으로 장점이 많고요."

프레시안 : 장점이라면요?

김규진 : "정말로 삶의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요. 아주아주 큰 장점이죠. 연애할 때는 나의 삶, 너의 삶이 따로 있고 둘이 행복하게 교류했다면 이제는 정말 삶 자체가 함께 이루어지는 느낌이에요. 고민하지 않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무언가를 함께할 사람이 항상 있다는 게요. 젊고 친구가 많을 때와 나이가 들고 나서는 다르잖아요. 함께할 동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하고 행복해요.

미래의 계획을 함께 세울 수 있는 것도 매우 큰 장점이고요. '함께 행복하자' 이상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함께 세울 수 있죠. 예를 들어 '자산을 언제쯤 얼마나 융통해서 뭘 하자' 이런 거요. 저희는 법적으로 부부는 아니라 이성애자 부부처럼 공동자산을 만들고 불려 나갈 수 없어요. 공동자산을 만들기가 굉장히 까다로워요. 저희는 우선 서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죠. 그러면서 제가 비용을 담당하고 언니가 투자와 자산 불리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쫑쫑따리 굴리는 것보단 한쪽에 몰아주는 게 유리할 것 같고요. 만약 제가 차이면 전 정말 큰일 나요. (웃음) 정말 아주 큰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랍니다. 그러니 여기서 '출산을 고민해볼까?' 또는 '누가 출산할 것인가?' 하는 얘기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됐고요. 그런 이유로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부부가 된 후에 많은 게 달라졌어요."

"가족이 됐다. 이젠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결혼도 그렇지만 가족계획, 특히 출산은 상상하지 못 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출산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했나요? 또 성소수자의 출산계획은 이성애자 부부와 다른 점이 있나요?

김규진 : "저는 사실 출산 생각이 크게 없었어요. 나이가 되니 이성애자 친구들이 점점 출산을 시작했어요. 아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까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모든 걸 떠나서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어요. 또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처럼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아니기도 하잖아요. (웃음) 계획과 준비도 필요하고, 고민해야 할 것도 많고요. 그런데 프랑스에 와서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프랑스가 생각보다 보수적이거든요.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아 레즈비언이야? 그래그래, 근데 애는 가질 거지?' 이런 식이에요. (웃음) 가족관이 보수적이면서 동성애자에는 개방적이니까 그런 정서가 있는 거죠. 한국인 입장엔 매우 특이하죠. 실제로 아이가 있는 동성부부들을 보면서 '아, 저런 삶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미래 계획의 가능성 중 하나로 고려할 수 있게 됐죠.

또 주변에 제 전후로 결혼한 레즈비언들이 많아졌어요. 출산을 생각하는 부부들도 조금씩 생기고 있고요. 함께 해나갈 동료들이 생긴 거예요. 가능하면 출산 시점을 맞추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공동육아를 할 수도 있고, 또 같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도 있죠. 한 학교에 레즈비언 부부의 자식이 한 명인 것보단 세 명인 게 좋고요. 셋 중 하나는 친구 많은 '인싸'이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 생각을 괜히 해보고 있답니다. 저희의 경제적인 조건부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생기니 '마음이 정해진다면 출산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단계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여러가지 영향이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프랑스 문화가 매우 독특한 것 같습니다. 보수적이라면 동성부부와 그 아이라는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한국사회와 완전히 반대네요.

김규진 : "한국의 보수적인 가족관과는 조금 달라요. '팍스'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기도 하고요, 결혼하는 건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는 의미에서 프랑스가 생각보다 보수적이란 거예요. 그래서인지 제가 결혼했다 아니까 '당연히 애를 가질 거지?' 이런 질문을 주변에서 몇 번 받았어요. 한국은 다르죠. 한국사회가 되레 특이한 점이 있어요. 동성혐오 보수집단에서 상반된 반응을 봐요. 한쪽은 '어떻게 애의 미래를 망치려고 애를 키우려 하냐' 그래요. 낳는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입양만을 전제하고서 말이에요. 다른 한쪽은 '출산율에 도움 안 되는 것들'. (웃음) 이렇게 완전히 다른 반응이 있으니 '뭐가 됐든 욕을 먹을 바에는 하고 싶은 거 하자. 나와 언니가 행복한 선택을 하자.' 그렇게 된 거죠."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는 프랑스가 1999년 도입한 '느슨한 가족 결합 제도'다. '시민연대계약' 또는 '공동생활약정'이라고 불린다. 팍스를 맺은 커플은 결혼하지 않고도 부부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가진다. 결혼한 부부가 갈라설 때 이혼절차, 경우에 따라 지난한 소송까지 거친다면 팍스는 해지의사를 담은 서류를 제출해 관계를 정리한다. 한쪽의 의사만으로 가능하고 법적 기록이 남지 않는다. 동성커플이 주로 팍스를 맺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성커플이 대다수다. 또 연인관계만 적용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프랑스는 2013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지만 팍스는 유지하고 있다. 팍스는 특히 프랑스의 출생률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팍스로 맺은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결혼으로 맺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차별없이 같은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2020년 기준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의 60.4%가 결혼 이외의 관계에서 태어났다. 팍스와 유사한 제도로는 스웨덴의 '동거법(Sambolagen)', 네덜란드와 독일 등의 '동반자 등록법(National Registered Partnership)', 영국의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이 있다.편집자

프레시안 : 출산 이야기를 하면 부인은 뭐라고 하나요?

김규진 : "일단 출산담당은 저예요. (웃음) 아내는 '나는 출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있으면 좋겠다' 이 정도 생각이에요. 언니의 이성애자 여자친구들이 언니를 엄청 부러워해요. '네가 안 낳아도 되는구나!' 이러면서요. (웃음)"

프레시안 : 남편이 낳는 거네요. 그런데 가족이라는 게, 이성애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지만 아빠가 아이를 낳는다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요.

김규진 : "제가 아빤가요? (웃음) 아니요, 남편은 없어요. 저도 아내이고 언니도 아내인 거예요. 엄마가 둘인 셈이죠."

프레시안 : 아이고 죄송합니다. 배우자를 '아내'라고 하니 당연히 '남편일 것이다' 넘겨짚었어요. '누가 아내이고 누가 남편이다'라는 건 또 어떻게 정하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정말 차별적인 생각이네요.

김규진 :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언니가 아내면 너는 남편이냐'라고요. '서로가 아내다'라고 하면 많이 당황해요. 아이에겐 엄마가 둘인 셈이죠. 생각해보면 되게 간단하잖아요. 여자가 둘, 아내가 둘, 엄마가 둘. 생경한 광경이긴 하죠."

프레시안 : 출산을 생각하면서 하는 고민이 있나요?

김규진 : "앞서 말한 것처럼 일단 임신까지 가는 과정부터 이성애자와 비교도 안 되게 어려워요. 산부인과협회 지침상 미혼여성에게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없거든요. 원래는 법적 혼인관계만 됐다가 사유리 씨의 출산을 계기로 사실혼까지 가능하게 바뀌었어요. 미혼여성은 안 되죠. 그런데 법으로 규정된 게 아니고 산부인과협회 지침일 뿐이에요."

프레시안 : 출산도 그렇지만 출산 후 양육에도 많은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김규진 : "당연히 하죠. 예를 들면 '교육관은 누구의 교육관을 따를 것인가.' 이거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웃음)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이성애자 부부가 하지 않는 고민이라면 그런 게 있죠. '사회적 시선은 어떻게 하지?' 그런데 저는 이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는 않으려 해요. 왜냐면 차별하는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요.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아이의 삶은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낳냐'고 하면, '그럼 도와달라. 차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가서 뭐라 해달라', '우리와 함께 혐오세력과 싸우자' 이렇게 얘기하려고요. 뭐 그렇게까지 아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전집이라도 사주지 않겠어요? (웃음)

'아이 정서에 안 좋다', '아빠 없이 자란다' 이런 말도 하죠. 저는 이성애자들이 애를 더 잘 기른다면 사회뉴스에 왜 아동학대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정말 아이가 너무 걱정된다면 함께 차별하는 사람이 차별하지 못하도록 말려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아이가 좀 더 건강하게 클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에게 '애가 아빠가 있어야지' 하는 것보다는 애한테는 아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이가 더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가 친구가 생기고 학교에 가면 더 많은 것이 달라질 거예요. 생각할 것도 더 많아지겠죠. 일단 저희 부부는 둘 다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해외에 나가는 것도 선택지 중에 있어요. 일단 정말 출산할 마음이 정해지고 확실해지고 나면 생각할 문제겠죠. 난임 검사했는데 아이를 못 낳는 몸일 수도 있잖아요. 요즘 난임도 흔하고요."

프레시안 :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요?

김규진 : "저는 항상 '난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 '나는 이러이러한 면에서 부족할 것 같다'는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아내가 정말 낙천적이거든요. 제가 그런 걱정을 털어놓으면 언니는 '아닐걸? 잘 기를걸?' 그러죠. (웃음) 아내가 또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 대책 없이 하는 얘기도 아닐 테고요. 그런 반응을 보니 저도 정말로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생겨요. 그래서 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됐고요. 부모님께 이 얘기를 하면 아빠는 '그래, 인생 한 번 사는 거 재밌게 살아야지'라면서 좋아해요. 손주 보니 좋다는 거죠. 그런데 엄마는 싫어했어요. '혹시 나에게 애를 맡기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하실지도요. (웃음) 결혼한 딸을 둔 엄마들의 고민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애를 안 낳는 게 레즈비언 딸의 장점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잖아요. (웃음)"

ⓒ김규진

"이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10년 후엔 동성결혼이 법제화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상황은 그런 기대와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나요?

김규진 : "2019년도에 처음 그런 인터뷰를 했어요.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웃음) 근데 돌이켜보면 저 2009년에도 10년 안에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도 낙천적인 면이 있긴 한가 봐요. (웃음) 저는 여전히 남은 7년 안에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일단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정서나 법·제도가 달라졌어요. 일본에서 '동성애자가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라는 결정이 났어요. 그런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니 일본은 곧 법제화될 거예요. 대만은 법제화된 지 좀 됐고요. 

주변 국가들이 이런 흐름 속에 있다면 한국도 여기에 따른 문제가 생길 거예요. 예를 들면 '일본인과 한국인 동성커플은 어떡하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요. 그럼 얘기할 수밖에 없거든요. 지금도 한국이 동성혼 청정국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아니죠. 가령 주한미군의 한국인 배우자는 소파협정의 대상이기 때문에 배우자의 지위를 누려요. 한국인이어도요. 또 뉴질랜드 대사의 동성 배우자를 청와대에서 초대한 일도 있었죠. 이런 일들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고 절대로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구가 줄잖아요. 있는 사람들이라도 잘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 생각을 저는 좀 해봅니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승인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3월 삿포로지방법원이 '이성간의 결혼 만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도쿄는 올 4월 성소수자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한편 일본은 G7 국가 중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성결혼은 2001년 네덜란드가 처음으로 승인했다./편집자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김규진 :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천지가 개벽할 것처럼 얘기해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같은 법이죠. 그런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중요한 이유는 일단 그 당연한 것마저 되고 있지 않은 현실이라는 거죠. 퀴어아티스트 이반지하 씨가 쓴 칼럼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한 번은 캐나다의 공연기획자가 한국에서 퀴어인권 의제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물었대요. 이반지하 씨가 오래 고민하다가 '응, 우리는 이제 차별금지법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중이야'라고 답했대요. (웃음) 차별을 하지 말자는 얘기조차 꺼내기조차 힘든 게 실정이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절망스러워요. 하지만 한국은 흐름을 타면 빠르게 해 나가는 나라라는 믿음이 있어요. 이제 물살을 탔으니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을까요? 차별금지법이 생긴다고 차별이 바로 없어지진 않겠지만요.

차별금지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생기면 사람들이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될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시민들 불편하게 출근 시간에 시위한다'고요. 이상한 얘기죠. 장애인은 시민이 아니라는 듯. 이동권에서 장애인이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거죠. '이동권은 비장애인의 것'이고 '장애인이 왜 비장애인과 같은 이동권을 가져야 하지?'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그런 말을 하는 거고, 심지어 일부 공공기관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도 안 하는 거겠죠.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개인은 물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큰 기관들이 생각할 거예요. '이게 차별이 될까?', '차별사유가 될까?' 하는 기본적인 생각을 말이에요. 여기에서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 생각해요. 중대재해처벌법도 그렇죠. 아주 최소한의 법이지만 눈치라도 보잖아요. 그 눈치보는 게 변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요? 차별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저. 위즈덤하우스)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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