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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 폐쇄, 무신장증...'반도체 아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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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 폐쇄, 무신장증...'반도체 아이'를 아십니까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

삼성반도체 노동자 출신 엄마들이 아이들을 위해 나섰습니다. 엄마들은 모두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면서 임신 중 유해화학 물질을 취급했고, 후에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들은 지난 5월 20일 '엄마의 직업병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아이가 아픈 게 엄마 탓이 아닌, 업무상 요인에서 비롯된 산업재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서 입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은 엄마의 업무상 요인으로 인해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산재법상 보험급여는 근로자만 받을 수 있는데, 노동능력이 없는 태아는 아예 청구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근로자인 엄마가 태아의 보험급여를 대신 받아 줄 수도 없습니다. 보험급여 청구자와 수급자가 동일해야하는 전제 조건에서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이유로 몸이 아파 산재를 신청하는 사람과 그 급여를 받는 사람이 같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셜록>은 이번 기획을 통해 ‘태아를 수급 주체로 인정하는 산재법 개정‘의 필요성을 세상에 알릴 예정입니다. 한 마디로, 산재법상 ‘태아를 근로자로 인정하자’는 겁니다. 그래야 법적 공백을 메울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병실에 누워 갓 태어난 아이를 안자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처음으로 모유도 수유했다. 아이는 젖을 잘 빨았다. 열 달간 불안했던 마음이 단숨에 사라졌다.

'내게 와줘서 너무 고마워.'

그렇게 김성화(가명, 당시 30세) 씨는 아들 박수빈(가명)을 출산했다. 아이는 왼쪽 신장 없이 태어났지만, 나머지는 건강해 보였다.

첫 수유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가 신생아실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돼 간호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머니, 아이가 모유를 토하고 있어요. 얼른 큰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김 씨의 손발이 떨렸다. 모유를 줄 때, 아이가 제대로 못 삼킨다고 느끼지 못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선 아이에게 ‘선천성 식도폐쇄증‘을 진단했다.

아이의 식도 윗부분이 막힌 상태였다. 아이 날개뼈 쪽 등을 열어, 식도끼리 연결하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2008년 5월께 일이다.

선천성 식도폐쇄증을 앓은 박수빈(가명) 군이 2008년 5월경 태어난지 하루만에 수술을 받고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모습. ⓒ김성화 제공

태어나기 전부터 무신장증을 앓다가 출생 이후엔 선천적 식도폐쇄증까지 겪은 아이. 고통은 수술 이후에도 이어졌다. 병원 퇴원 다음날, 수빈이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남편의 응급처치에도, 고개는 점점 바닥 쪽으로 처졌다.

김 씨는 손이 떨려 전화기로 119도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정말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줄 알았어요. 얼른 병원으로 가야하는데, 제가 너무 놀라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다행히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회복했는데.. 애기가 어떻게 될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다고요."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수빈이는 자라는 동안 자주 아팠다. 한두 살 무렵엔, 유아용 과자를 먹다가 목에 걸려 숨을 못 쉰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여섯 살 때는 오른쪽 시력 발달이 늦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빈이는 약 1년 동안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교정 치료를 받았다. 아이가 자랄수록 의문도 커졌다.

'수빈이는 왜 아픈 몸으로 태어난 걸까?'

김 씨가 전 직장 후배를 만난 날이었다. 그는 후배에게 아이 고민을 털어놨다. 후배는 김 씨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 임신 상태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게 태아에게 영향을 미쳤을지 몰라. 반올림이라는 시민단체가 있는데, 회사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암 등에 걸린 사람들을 도와준대. 선천적 자녀질환도 해당될지 모르니까, 반올림에 한 번 연락해 봐."

반올림은 반도체, 전자산업체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 연대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다.

아이가 아픈 게 회사 때문일 수도 있다니. 가족력에서 원인을 찾던 김 씨는 처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저는 회사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가족력 때문에 아이가 아픈 걸까 고민했죠. 저나 남편한테서 원인을 찾고, 서로 자책하는 걸 반복했어요. 그런데 저랑 남편은 둘 다 너무 건강하거든요. 주변에 알아보니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본인이 아프거나 혹은 유산한 사례가 참 많더라고요. ‘정말 회사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그때 생각이 바뀌었어요."

김 씨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다. 1995년 만 18살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약 10년을 일했다. 수빈이 임신 7개월 무렵까지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러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2011년에 삼성반도체 공장을 퇴사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할 때 김 씨는 설비 확산 공정을 맡았다. 확산 공정은 반도체에 일부분만 전기가 통하도록 불순물을 통해 전도 형태를 변화시키는 공정이다.

김 씨가 일한 확산 공정에선 총 19종의 생식독성을 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했다. 그 중 암모니아, 아르신, 전리방사선 등 7종의 유해인자가 태아 발달 과정에 이상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 씨는 일하는 동안 자주 두통에 시달렸다. 그의 주된 작업은 장비에서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 묶음이 담긴 ‘런 캐리어‘를 빼서 다음 공정에 넣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장비 내부의 열감과 화학 물질 냄새가 김 씨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원칙상 설비 가동이 끝난 후 충분한 쿨링 타임(cooling time)을 갖고 ‘런 캐리어‘를 빼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 회사 측이 원하는 생산량을 맞출 수 없었다. 이런 고온 환경이 ‘선천성 신장무발생증‘과 관련성이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학계에 이미 보고됐다.

웨이퍼 계측도 김 씨 업무였다. 공정이 완료된 웨이퍼는 불량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측을 해야 하는데, 이때 전리방사선이 발생하는 특수 장비가 공정에 사용됐다. 김 씨는 일반 마스크와 방진복만 입고 특수 장비 옆에서 일을 했다. 방사선이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개인용 방사선 측정기나 방사선 차폐 앞치마 등의 특수 보호 장비는 지급된 적 없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2012년에 발간한 <반도체산업 근로자를 위한 건강관리 길잡이>에 따르면, 전리방사선 노출은 백혈병을 포함한 각종 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2020년 5월, 반올림의 도움을 받아 ‘삼성지원보상위원회‘에 자녀질환에 대한 보상을 신청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전자산업의 직업병 위험성을 인정하고 회사 차원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삼성지원보상위원회를 통해 자녀질환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그해 12월 지원받았다. 수빈이의 선천적 질환은 김 씨의 업무에서 비롯됐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다. 김 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2021년 5월 20일 “엄마의 직업병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아이의 선천적 질병이 엄마 탓이 아닌, 업무에서 비롯된 산업재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서다.

"아이가 아픈 게 내 책임이 아니라 회사 때문이었구나,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는데, 아이가 선천적으로 아픈 게 저만의 일이 아닐 수 있잖아요. 제가 산재를 인정받으면, 저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그의 말대로, 엄마의 직업병으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은 김 씨만의 고통이 아니다. 삼성지원보상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지원보상금 지급이 완료된 사례 400건 중 자녀질환은 26건이다. 사례 별로 나누면 선천성 장애는 16건, 소아암이 9건, 희귀자녀질환이 1건이다.

생식독성 물질 취급 여성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여성노동자보다 선천성 질환아를 낳을 확률이 33% 더 높다는 고용노동부의 2018년 연구용역 결과도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의 산재 신청에 대해 ‘업무상 질병자문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결과에 따라, 태아의 선천성 질병이 엄마의 업무에서 기인한 게 맞는지 심의하기 위한 역학조사 또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개최 여부가 결정된다.

안타깝게도, 근로복지공단이 태아 산재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은 엄마의 업무상 요인으로 인해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산재법상 보험급여는 근로자만 받을 수 있기에 노동능력이 없는 태아는 아예 청구권이 없다. 그렇다고 근로자인 엄마가 태아의 보험급여를 대신 받을 수도 없다. 보험급여 청구자와 수급자가 동일해야하는 전제 조건에도 어긋난다. 아픈 건 아이인데, 산재를 신청하는 주체가 엄마로 되는 사례는 인정하지 않는다. 업무상의 이유로 몸이 아파 산재를 신청하는 사람과 그 급여를 받는 사람이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문제는 법 개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산재법상 태아를 수급 주체로 인정'하는 게 법 개정의 핵심이다. 한 마디로, ‘태아를 근로자로 인정하자‘는 논리다. 그래야 태아도 근로자와 똑같은 지위에서 선천적 질병에 대한 적절한 보험급여를 보상받을 수 있다.

▲ 김성화(가명) 씨와 박수빈(가명) 군 ⓒ주용성

국회에선 태아 산재 관련 개정 발의안이 이미 여러 개 나와 있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철민, 송옥주, 박주민, 국민의힘 소속 이영, 정의당 소속 강은미 의원이 태아 산재 관련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엄마의 업무상 사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보험급여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발의된 법안이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 5건 모두 2021년 7월 현재,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김 씨는 이런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태아 산재 관련 개정안 대부분 작년에 발의된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잖아요. 결국 저희가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에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직접 태아 산재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한 거예요.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힘겨운 싸움이 될 듯합니다."

김 씨는 최근 경기도 용인에서 충남 태안으로 이사했다. 선천적으로 아팠던 아이에게 더 적합한 교육 환경이 뭔지 고민한 결과다.

그는 수빈이와 함께 태안 근처 바다로 종종 향한다. 자연을 좋아하는 수빈이는 엄마와 바다 산책을 즐긴다. 지난 7월 9일도, 아이는 엄마와 함께 바다를 찾았다. 수빈이는 혼자서 모래 속에 숨은 조개를 찾아다녔다. 아이가 쪼그려 앉을 때마다 등은 활처럼 휘고 날개뼈는 하늘을 향했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멀리서 지켜봤다.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저는 애 등을 보면 속이 상해요. 어려서 받은 수술 때문인지, 어깨도 한 쪽으로 약간 기울고, 등도 굽은 듯해서요."

수빈이 등엔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그걸 볼 때마다, 엄마는 그날의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태아 산재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이들의 아픔은 아이 등에 자리 잡은 흉터처럼 영원히 지속될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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