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상수도 세관갱생(관세척) 공사 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보수 작업도중 기습적인 폭우에 수몰돼 사망한 사고는 '관례의 굴레'로 인한 또 하나의 '인재(人災)'였다.
집중호우로 인한 천재지변을 그럴듯 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번 사망사고는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이제껏 밟아온 작업의 '관례'임이 그들의 입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일 전북 전주시 맑은물사업소측에 따르면 해당 공사 현장의 원청과 하청업체는 남원과 대전에 있는 건설사 등으로 이번 사고와 관련된 작업에 있어 그동안 관례처럼 공사를 진행해 왔음을 확인했다는 것.
그동안 이같은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상수도 배관 안에서 용접작업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다면 여전히 유사한 공사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이같은 위험천만한 작업지침이 계속 내려지고, 노동자들은 목숨을 담보로 배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관례처럼 반복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A모(53) 씨는 배관 녹 제거 후 코팅작업을 마친 다음 물방울이 새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정비용 의자등받이에 몸을 의지해 누운 상태로 30m 정도 들어가 용접 작업을 하던 중 기습적인 폭우에 변을 당하고 말았다.
당시 입구까지 어렵사리 빠져 나오긴 했지만, 순식간에 차오른 물로 인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배관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으로 전주시 관계자는 보고 있다.
의자등받이에 생명끈 하나라도 묶여 있었다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역시 공사현장의 책임자들과 업체들은 몹쓸 관례만을 고집해오다 한 생명을 수몰시키는 일을 자초해 버렸다.
모든 공사현장에서는 천재지변을 예상하는 안전 매뉴얼이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7조 1항에는 "사업주는 비·눈·바람 등 기상상태의 불안정으로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고 당일 전주에는 42.8㎜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하더라도 사업주나 관리자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만 있었어도 폭우 역시 현장의 사전 준비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지역본부는 "이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급공사의 재하도급 관행을 전면 근절해야 하고, 발주처가 관급공사 관리감독 의무를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위험 예견 시 작업을 중단하도록 지침을 만들어 시행해야 하고, 지침이 실제 이행되기 위해서는 작업 중단에 따른 공기 연장, 보상 조치가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노총 전북본부는 "이번 사건은 발주처 처벌 조항이 빠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라면서 "중대재해를 막겠다는 취지가 실현되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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